"해외여행이 가성비 좋아".. 외국서만 지갑 여는 사람들

손진석 기자 입력 2016. 11. 19. 03:08 수정 2016. 11. 19. 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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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세상]
불황의 역설.. 실질소득 마이너스에도 해외카드 사용 역대 최대
저가항공 타고 中·동남아 여행.. 국내 여행보다 낫다고 생각
해외에서 목돈 쓰다 보니 內需는 점점 더 쪼그라들어
"눈치 안 보고 돈 쓸 수 있어" 고소득층도 해외서 소비 선호

경기도 성남시에 사는 직장인 최모씨는 지난 8월 아내, 초등학생 아들과 함께 셋이서 괌으로 여름휴가를 다녀왔다. 최씨는 "항공·숙박료를 치르고 쇼핑까지 하다 보니 카드값을 막느라 애를 먹었다"면서도 "국내 여행도 비싸기 때문에 기왕이면 해외에 나가려고 한다"고 말했다.

불황이 장기화되고 실질 가계소득이 줄어들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점점 많은 사람이 해외여행을 즐기고 외국에서 쓰는 돈도 늘어나고 있다. 국경 밖에 나가 목돈을 쓰다 보니 국내에서는 씀씀이를 줄이는 '소비 공동화(空洞化)'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가라앉은 내수(內需)를 더욱 억누르는 요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소득 줄어들고 있지만 해외 여행객은 늘어

실질 가계소득은 작년 3분기 이후 5분기 연속 마이너스 흐름을 보이고 있다. 소득 증가율이 물가 상승률보다 낮아 체감 소득이 줄어든다는 뜻이다. 그렇다 보니 좀처럼 지갑도 열지 않는다. 세금 납부액 등을 제외하고 쓸 수 있는 돈 대비 실제로 쓴 금액을 말하는 평균 소비성향(3분기 기준)은 2010년 77.9%에서 올해 71.5%까지 줄어들었다. 100만원을 손에 쥐었을 때 쓰는 돈이 6년 전에는 77만9000원이었지만 올해는 71만5000원으로 쪼그라들었다는 얘기다.

소득과 지출 흐름이 뚜렷한 하향세를 그리는데도 해외 소비 규모는 수직 상승하고 있다. 우선 점점 많은 사람이 해외로 나간다. 올해 3분기 출국자는 작년 3분기(502만명)보다 20.5% 늘어난 605만명이었다. 자연스레 외국에서 많은 돈을 쓰고 있다. 올해 3분기 국내 거주자가 해외에서 카드로 결제한 금액은 37억8400만달러로 사상 최대였다. 지난 2분기(34억7000만달러)에 이어 두 분기 연속 사상 최고액을 기록 중이다.

일단 올해 3분기가 해외에 나가기 좋은 시기였다는 계절적 요인이 있었다. 추석 연휴가 최장 9일까지 쉴 수 있는 '황금 연휴'였고 이때쯤 원화 가치가 높아져 환율도 유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책 당국 관계자들은 "돈을 쓰더라도 외국에 나가서 쓰겠다는 생각이 저변에 깔려 있고 내수 부진의 한 원인이 되고 있다"며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지난 7월 휴가철을 맞아 인천국제공항 출국장이 여행객들로 붐비고 있다. 올 3분기(7~9월)에 해외로 나간 출국자는 작년보다 20% 이상 늘어난 605만명에 달했다. 가계소득이 줄고 있지만, 정작 해외에서의 카드 사용액은 역대 최고액을 기록했다. /이태경 기자

◇부유층, 이목 피해 해외에서 지갑 연다 타국(他國)에 나가 소비하는 현상이 두드러지는 이유는 다양하다. 우선 부유층이 이런 흐름을 주도한다. 의사 김모(39)씨는 "경기가 나쁜 요즘 주변의 평범한 직장인들에게 거들먹거린다는 인상을 주고 싶지 않다"며 "외국에 나가면 눈치 안 보고 돈을 쓸 수 있어 마음이 편하다"고 했다. 기획재정부의 한 관계자는 "부정청탁방지법(김영란법) 시행과 맞물려 자산가들이 남의 시선을 받지 않고 돈을 쓰려는 심리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 규모가 성장하면서 해외여행이 사치로 여겨지지 않고 점점 일상화되고 있다는 분석도 힘을 얻는다. 올해 2분기와 3분기를 비교하면 해외에서의 카드 결제액 증가율(9%)이 해외 여행객 증가율(19.4%)보다 낮게 나왔다. 많은 사람이 외국에 우르르 나간 것에 비하면 1인당 쓴 돈이 많이 늘지 않았다는 뜻으로서, 저렴한 가격에 실속형 여행을 즐기는 사람이 많다는 의미다.

신한카드 관계자는 "중국, 동남아시아 등 가까우면서 물가가 저렴한 나라로 저가 항공사를 이용해 알뜰한 여행을 즐기는 사람이 많다"며 "그렇다 보니 여행자 숫자가 늘어난 규모에 비해 해외에서 카드 사용액은 상대적으로 적게 늘었다"고 했다.

해외여행의 문턱이 점점 낮아지고 있기 때문에 부실한 국내 관광 인프라를 획기적으로 개선하지 않으면 앞으로도 해외에 나가 돈을 쓰는 트렌드는 지속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비싸고 질이 낮은 국내 여행보다는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높은 해외여행을 선호하는 사람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조영무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불황이라서 가격에 보다 민감하게 반응하고 상품별로 꼼꼼하게 비교하게 되기 때문에 경기가 나쁠 때 역설적으로 가성비가 높은 해외여행을 선호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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