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서울 상동교회서 우당 이회영 선생 순국 84주기 추모식

김관용 2016. 11. 16.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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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훈처는 평생을 독립운동에 헌신한 우당 이회영 선생의 순국 84주기 추모식을 17일 오후 2시 상동교회(서울 남창동 소재)에서 개최한다고 밝혔다. 선생은 1910년 12월말 6형제 50여명의 가족과 함께 압록강을 건너 중국 만주로 망명해 일생을 독립운동에 헌신했다. 1928년 6월 상해에서 한·중·일·필리핀·대만·안남 등 각국의 아나키스트들로 ‘동방무정부주의자연맹’이 창설되자 ‘한국의 독립운동과 무정부주의운동’이라는 논문을 보내 한국 독립 지원을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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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관용 기자] 국가보훈처는 평생을 독립운동에 헌신한 우당 이회영 선생의 순국 84주기 추모식을 17일 오후 2시 상동교회(서울 남창동 소재)에서 개최한다고 밝혔다.

우당이회영선생기념사업회 주관으로 열리는 이날 기념식은 정세균 국회의장과 이경근 서울지방보훈청장, 독립운동 관련 단체장 및 회원, 유족, 시민 등 200여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1부 추모예식과 2부 추모식 및 장학금 수여식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우당 이회영 선생 [뉴시스 제공]
우당장학회에서는 매년 이회영 선생의 순국 주기에 맞춰 장학금을 지원해왔다. 올해에는 독립운동가 김승곤 애국지사(1977년 독립장)의 손자녀 김하나 학생 등 독립유공자 후손 53명에게 총 8100만원의 장학금을 전달한다.

이회영 선생은 한말 이조판서를 지낸 이유승의 4남으로 일제에 국권이 침탈당하자 장래가 보장된 명문대가의 자손임에도 불구하고 구국운동에 몸을 바친 독립운동가다. 선생은 1910년 12월말 6형제 50여명의 가족과 함께 압록강을 건너 중국 만주로 망명해 일생을 독립운동에 헌신했다.

망명 후 서간도 유하현 삼원보 추가장에 정착한 선생은 1912년에 이주 동포들을 위한 자치기구인 경학사를 조직하고 신흥무관학교의 전신인 신흥강습소를 설립해 독립군을 양성했다.

1919년 3·1운동 직전 중국 북경으로 다시 망명길에 올라 상해에서 동지들과 임시정부 수립 문제를 논의했다. 이후 북경으로 돌아와 1924년 4월 류자명·이을규·백정기 등과 함께 ‘재중국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을 조직하고 ‘정의공보’를 간행했다.

1928년 6월 상해에서 한·중·일·필리핀·대만·안남 등 각국의 아나키스트들로 ‘동방무정부주의자연맹’이 창설되자 ‘한국의 독립운동과 무정부주의운동’이라는 논문을 보내 한국 독립 지원을 호소했다. 1930년 아들 규창과 함께 상해의 ‘남화한인청년연맹’에서 활동했다.

1932년 중국의 동지들과 만주에서 한·중 연합의 항일투쟁을 계획했다. 11월 초 대련행 기선을 타고 상해 황포강을 출발해 만주로 가던 중 일본 경찰에 체포돼 모진 고문을 받다가 11월 17일 66세를 일기로 옥중에서 순국했다.

정부는 선생의 공적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김관용 (kky1441@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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