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 주차장·숲 속 도서관.. 굴뚝 없는 녹색 공장 '네이버'

IT 기업 밀집한 성남시 정자동엔 굴뚝 없는 '녹색 공장(Green Factory)'이 있다. 녹색빛 감도는 유리 벽으로 둘러싸인 네모 반듯한 이 건물은 2010년 완공된 '국민 포털' 네어버 사옥. 검은 연기 내뿜으며 유형(有形) 재화 만들던 시절을 지나 무형(無形)의 지식·정보 생산하는 '녹색 시대'로의 변화를 표현한 이름이란다. 로고 색상이자 친환경의 상징이기도 한 '그린(Green)'은 네이버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핵심 키워드. 사옥 곳곳에 스민 '그린'을 처음 만난 장소는 지하 주차장이었다. 차 문을 여니 어디선가 귀뚜라미 우는 소리가 들렸다. 파도 소리, 바람 소리, 대나무 잎사귀 부딪치는 소리까지 이 회사 주차장은 층마다 다른 소리를 튼다.

숲 속 도서관, 레고 같은 사무실
로비는 책가방을 멘 사람들로 가득했다. 1층과 2층에 마련된 '라이브러리'와 '매거진룸'을 이용하는 인근 주민들이다. 이곳이 소장한 IT·디자인 관련 서적은 2만3000권, 세계 잡지는 4000권에 이른다. 숲을 형상화한 도서관은 책장과 책상, 의자까지 모두 원목(原木)으로 꾸몄다. 책상이 비치된 2층에서 한 층 아래를 내려다보면 늘어선 책장 사이사이로 피어난 풀포기 덕에 숲 속에 앉아 공부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대학생 김지원(24)씨는 "공강(空講)인 날엔 학교까지 갈 필요없이 이곳 도서관을 찾는다. 학교에선 보지 못했던 특이한 잡지들을 읽을 수 있다"고 말했다. 백발노인도 보였다. 퇴직 공무원인 박창근(81)씨는 "오전 11시쯤 1층 카페에 들러 커피를 한 잔 마시고 밤까지 책을 읽다가 돌아간다"며 읽고 있던 김승옥 소설책의 겉표지를 보여줬다. 완공 첫해부터 지역 주민에게 개방한 이 공간은 매달 성남시 주민 1만여명이 찾는 쉼터이자 공부터다.
27개 층 인테리어는 저마다 다르다. 네이버는 30여개 부서가 회사 간섭 없이 자치(自治)하는 구조다. 층별·부서별 인테리어도 부서 특성에 맞춰 꾸민다. 층마다 엘리베이터 가까이 마련된 휴식 공간 '하이브(HIVE)'에선 부서별 개성을 한눈에 엿볼 수 있다. '놀이터'가 콘셉트인 개발자 부서 '랩스(LABS)'의 하이브는 탁구대와 전자오락 기기, 소파로 채워져 있다. 음료수 자판기는 200원만 내면 뽑아 먹을 수 있다. 웹툰·웹소설 부서는 사람 키만 한 '마음의 소리' 캐릭터 피규어로 꾸며놨다. 웹툰 담당자 한동근씨는 "프로젝트 단위의 부서 편성이 잦다 보니 내부 공간도 쉽게 만들고 쉽게 부수는 일종의 '레고' 같은 구조"라며 "부서장과 부서원이 원하는 대로 꾸미고, 원하는 대로 즐긴다"고 했다. 층마다 설치된 '조식(早食) 자판기'는 동전이나 지폐를 챙기지 않아도 된다. 아침 거르고 출근하는 사원이 많아 샌드위치나 김밥, 빵, 우유 같은 요깃거리를 매일 아침 자판기에 넣어둔다. 비용은 회사가 부담한다.

칼퇴? 정해진 출퇴근 시간이 없다
4층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시끌시끌한 소리가 들렸다. 200여명의 사원이 1800㎡(약 545평) 남짓한 카페테리아 공간에서 삼삼오오 짝을 지어 대화를 나눈다. 아메리카노 가격은 700원. 은행과 24시간 편의점, 여행사와 보험사도 입주해 있다. 한 층 올라가니 복지 시설이다. 사내 병원인 '홈닥터'에선 적외선 물리치료 기기에서 손을 쬐고 있는 직원 둘이 보이고, 바로 옆 모유 수유실엔 '모자유친 방'이라는 간판이 걸려 있다. '코어센터'에선 여성 직원 넷이 트레이너로부터 자세 교정을 받고 있었다. 게시판엔 필라테스·서킷 트레이닝 강의 목차를 정리해둔 종이가 보였다. 자세 교정 수업을 마치고 나온 여지원씨는 "잘못된 자세로 장시간 앉아 있다가 골반 균형이 틀어져 한 달째 교정을 받고 있다. 앉아서 일하는 직업이라 사원 다수가 주기적으로 이 치료를 받는다"고 했다.
'칼퇴'나 '야근' 개념은 없다. 정해진 출퇴근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부서마다 채택하는 출퇴근 방식의 차이는 있지만 '자율 출퇴근제'를 기조로 전 사원이 '업무 시간 상관없이 자기 할 일만 해내면 된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 김민중 대리는 "이곳엔 퇴근 시간만 기다리며 수시로 시계를 쳐다보는 풍토가 없다. 직장인 누구나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시간과 '생산성' 사이에 아무 연관성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스스로 업무 시간을 탄력적으로 사용하다 보니 업무 집중도도 높아지고, 처리 속도도 빨라졌다"고 했다. 휴가나 연차, 병가도 부서장 승인받을 필요 없이 사내 인사 정보 시스템에서 직접 신청하고 직접 결재한다.

애벌레, 번데기 거쳐 나비로 날다
조직 구조는 애벌레―번데기―나비로 이어지는 '나비의 탄생'을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대여섯 명 규모로 꾸려진 '프로젝트'가 가장 낮은 '애벌레' 단계. 여기서 성과가 나 사업 규모가 커지면 변태(變態) 과도기인 '셀(Cell)' 조직으로 격상된다. 번데기 속에서 한 마리 나비로 날아오를 준비가 됐다면, 다시 말해 '회사 속의 작은 회사(CIC·Company In Company)'로 불릴 만큼 자생력이 생기면 나비가 되어 날아간다. 계열사 내지는 독립 법인으로 분사(分社)하는 것이다. 네이버엔 27개 층에서 자생(自生)하는 29마리 애벌레와 네이버 동영상·스포츠·페이 등 6마리의 번데기, 그리고 한 마리의 나비 '웹툰·웹소설 CIC'가 있다.
전(全) 층 둘러봐도 찾지 못한 복지 시설이 있었다. '어린이집'이다. "사원들 거주율이 높은 지역 세 곳에 어린이집을 지어 운영하고 있어요." PR 부서의 '워킹맘' 노수진씨가 말했다. 네이버는 2011년부터 '푸른보육'과 연계해 경기도 분당과 수지, 서울 서초동에서 '푸르니 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있다. 젊은 사원 많은 IT 기업이라 어린이집 수요도 늘어나 내년 초쯤 분당에 한 곳을 더 개원할 예정이다. 이날 노씨는 오후 다섯 시쯤 업무를 끝냈다. "아이 데리러 가면 '우리 엄마가 왔나' 문소리 나는 방향으로 미어캣처럼 고개 돌리는 아이들이 보여요. 시간을 잘 분배하면 한두 시간 일찍 일을 끝내고 어린이집에 들러 아이를 데려올 수 있지요. '일과 가정의 양립'은 적어도 네이버에선 난제(難題)가 아닙니다." 사옥을 나서는 노씨의 발걸음이 미어캣처럼 가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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