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기의 세상을 뒤흔든 사상 70년] (33)문명의 불평등 만든 '환경'의 힘 주목..세계사를 새롭게 읽다

김호기 |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2016. 11. 8. 20:37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경향신문] ㆍ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

미국 출신의 문명학자 재레드 다이아몬드 교수는 생리학자로 출발해 인류문명 발달을 연구하는 비교사학자의 길을 걸어 왔다. 문명의 역사를 선사시대부터 최근까지 지리학·인류학·유전학 등 다양한 분야 연구를 기반으로 거시적 연구를 한 대표적 학자로 꼽힌다. 안희경 재미저널리스트 제공

인간에 대한 철학사상과 사회에 대한 사회사상은 사상의 양대 축을 이룬다. 사회사상은 다시 통시적 역사에 대한 사상과 공시적 구조에 대한 사상으로 나뉜다. 전후 70년간 역사로서의 자본주의 문명을 연구한 대표적 사상가가 페르낭 브로델과 이매뉴얼 월러스틴이었다면, 구조로서의 근대사회를 연구한 대표적 사상가는 미셸 푸코와 위르겐 하버마스였다. 지구상에 존재해온 문명의 역사를 선사시대부터 최근까지 거시적으로 연구한 대표적 학자를 꼽으라면 그는 미국의 재레드 다이아몬드(Jared Diamond·1937~)였다.

다이아몬드는 전공을 한 분야에 귀속시키기 어려운 지식인이다. 그는 생리학자이자 지리학자이며 인류학자다. 동시에 ‘빅 히스토리’를 다루는 역사학자다. 한마디로 이 모든 분야를 포괄하는 문명학자라 할 수 있다.

그는 2005년 미국 ‘포린폴리시’와 영국 ‘프로스펙트’가 선정한 ‘세계의 100대 공적 지식인’ 가운데 아홉 번째 자리를 차지했다. <제3의 침팬지>로 자신의 존재를 알린 그는 <총, 균, 쇠: 무기·병균·금속은 인류의 운명을 어떻게 바꿨는가>(원제: Guns, Germs, and Steel: The Fates of Human Societies, 1997), <문명의 붕괴>(2005), <어제까지의 세계>(2012) 등을 통해 인류 문명의 역사에 대한 새로운 통찰과 더없는 흥미를 선사했다.

<총, 균, 쇠>는 다이아몬드의 대표 저작이다. 이제까지 그 어떤 학자들도 접근하기 어려웠던 문명의 기원과 발전 그리고 불평등에 대해 그는 지리학·인류학·고고학·언어학·역사학·생물학·유전학·병리학·생태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이뤄진 연구들에 기반을 둬 거시적이면서도 포괄적인 분석을 시도했다.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는 문명의 역사에서 왜 어떤 민족은 지배하고 어떤 민족은 지배받게 됐는지 원인을 추적함으로써 인류 역사에 대한 이해에 한발 더 가깝게 다가서게 했다.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대표저작 <총, 균, 쇠: 무기·병균·금속은 인류의 운명을 어떻게 바꿨는가>

■환경 차이가 낳은 문명 불평등

<총, 균, 쇠>를 관통하는 핵심 아이디어를 다이아몬드는 프롤로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민족마다 역사가 다르게 진행된 것은 각 민족의 생물학적 차이 때문이 아니라 환경적 차이 때문이다”라는 주장이 그것이다.

이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그는 먼저 제1부 ‘인간 사회의 다양한 운명의 갈림길’에서 700만년 전부터 1만3000년 전까지 인류 진화의 역사를 돌아본다. 이어 지난 1만3000년 동안 각 대륙의 환경이 역사에 미친 영향을 폴리네시아 사례를 통해, 유럽이 세계를 정복한 힘의 원천을 잉카를 정복한 스페인의 사례를 통해 살펴본다.

제2부 ‘식량 생산의 기원과 문명의 교차로’에선 문명의 불평등을 가져온 궁극적 원인으로 식량 생산의 차이, 가축과 농작물의 가축화 및 작물화의 차이를 주목한다. 흥미로운 것은 식량 생산의 전파에서 각 대륙 축의 방향이 큰 영향을 미쳤다는 다이아몬드의 견해다. 유라시아의 동서 방향이 아메리카와 아프리카의 남북 방향보다 유리했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제3부 ‘지배하는 문명, 지배받는 문명’은 문명 불평등의 직접적 원인을 다룬다. 대륙에 따른 지리적 환경의 차이는 병균의 진화, 문자의 발명, 기술의 발전, 정치의 등장에서 차이를 가져왔고, 이러한 차이는 유라시아가 아메리카를 정복하는 것을 가능하게 했다. 요컨대, 환경의 차이는 특히 유럽으로 하여금 총기, 병균, 철제 무기 등을 갖게 함으로써 아메리카와 아프리카를 지배하게 만들었다는 게 다이아몬드의 주장이다.

제4부 ‘인류사의 발전적 연구 과제와 방향’은 앞서의 분석틀을 몇몇 대륙과 섬들에 구체적으로 적용해 살펴본다. 그리고 에필로그에선 환경적 원인 이외 원인들인 문화적 요인, 개인의 역할 등을 분석하기 위한 새로운 ‘역사적 과학’을 요청한다.

■환경결정론을 둘러싼 토론

<총, 균, 쇠>로 대중적 성공을 거둔 다이아몬드는 그 후속 연구로 <문명의 붕괴>와 <어제까지의 세계>를 잇달아 발표했다. <문명의 붕괴>가 위기와 몰락을 겪어야 했던 문명들의 역사에 대한 탐구를 통해 그 교훈을 얻으려고 했다면, <어제까지의 세계>는 과거 문명과 현재 문명에 대한 비교를 통해 전통과 현대의 화해 및 공존을 모색했다. <총, 균, 쇠> <문명의 붕괴> <어제까지의 세계>는 다이아몬드의 인류 문명 연구 3부작을 이룬다.

<총, 균, 쇠>가 출간된 후 이 문제적 저작에 대한 활발한 토론이 진행됐다. 역사학과 인류학 등 지식사회 안에선 비교적 냉담했지만, 퓰리처상을 받은 베스트셀러인 만큼 독자들 사이에선 찬반 논쟁이 뜨거웠다. 다이아몬드는 <총, 균, 쇠>에 쏟아진 논평들에 응답했다. 그는 자신이 인종차별주의나 유럽 중심주의를 주장한 게 아니라 오히려 비판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리고 환경결정론에 대해선 자신이 말하는 환경을 좁은 의미가 아니라 넓은 의미로 받아들일 것을 제안했다. 그가 말하는 환경은 생태적 환경과 지리적 환경을 모두 포괄하는 것이었다.

김호기 |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문명의 변화에서 주체의 역량과 환경적 조건 가운데 어떤 것이 더 큰 영향을 미쳤느냐는 오랜 쟁점이었다. 사회과학에서도 주체의 역량을 중시하는 이론과 구조의 영향을 중시하는 이론이 전후 70년 동안 경쟁해왔다. 이 쟁점에 대해선 정답이 없다. 서로 견해를 존중하면서 주체와 환경 간 상호관계를 경험적으로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문명 변화와 사회 변동을 이론화할 수밖에 없는 것으로 보인다.

<총, 균, 쇠>는 전문적 연구서라기보다 대중적 교양서에 가깝다. 이 책의 미덕은 환경을 중시하는 시각에서 장구하면서도 역동적인 문명의 변화를 추적함으로써 책읽기의 즐거움을 한껏 안겨준다는 데 있다. 교양시민이라면 다이아몬드가 선사하는 문명의 역사에 대한 경이로운 이야기에 한 번쯤 귀 기울여 볼 만하다.

■한국어판 저작은

<총, 균, 쇠>는 전문번역가인 김진준에 의해 우리말로 옮겨졌다. 번역본 말미에 실린 ‘2003 후기: <총, 균, 쇠> 그 후의 이야기’는 초판본 출간 이후 제기된 문제들에 대한 저자의 응답을 담고 있다.

■토인비, 문명의 주체적 대응 강조…하라리, 인류라는 ‘종’ 특징에 착안인류의 기원과 문명의 역사에 대한 거시적·포괄적 연구들은 인문·사회과학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여기서 독특한 위치란 이 연구들이 대학 교양과정에서 빈번히 다뤄지지만 전공과정에선 활발히 논의되지 않는다는 점을 말한다.



문명에 대한 거시적·포괄적 연구들의 경우 그 분석 대상이 장구하고 거대한 만큼 학문적 치밀성과 엄격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는 게 적지 않은 전문적 학자들의 평가다.



페르낭 브로델과 이매뉴얼 월러스틴의 자본주의 문명 연구들은 지식사회 안팎에서 모두 높은 평가를 받은 이례적 사례였고, <총, 균, 쇠>를 위시한 거시적·포괄적 인류 문명 연구들은 정작 지식사회 안에선 큰 주목을 받지 못했던 셈이다.
아널드 토인비
인류와 문명에 대한 연구에서 재레드 다이아몬드에 비견할 저작을 발표한 이들로는 아널드 토인비와 유발 하라리를 꼽을 수 있다.



토인비는 지식사회 안팎에서 고평(高評)을 받은 영국의 역사학자다. <역사의 연구> 전 12권은 그의 대표 저작이다. 그는 문명을 발생·성장·쇠퇴·해체 과정을 거치는 유기체로 파악하고, 이러한 문명이 ‘도전’에 대한 ‘응전’으로 탄생한다고 주장했다. 이 방대한 저작에서 그는 인류 역사상 등장했던 다수의 문명들을 비교·분석하는 데 환경보다는 주체적 대응을 중시했다. 다이아몬드는 <총, 균, 쇠> ‘참고문헌’에서 토인비의 <문명의 연구>가 비교역사학 연구서들 가운데 단연 독보적인 저작이라고 평가했다.
유발 하라리
하라리는 이스라엘의 역사학자다. 인류 역사를 다룬 그의 <사피엔스>는 <총, 균, 쇠> 못지않은 대중적 성공을 거뒀다. 그는 호모 사피엔스가 종으로서 갖는 가장 중요한 특징을 화폐·종교·정치·법 등의 허구를 믿을 수 있는 능력에서 찾았다. 그리고 사피엔스의 역사가 인지혁명·농업혁명·과학혁명의 세 계기를 통해 진행돼 왔다고 분석했다. 최근 본격화된 생명공학 혁명으로 인해 사피엔스는 사이보그로 대체되면서 결국 사라지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그의 결론이다. 하라리는 인류에 대한 자신의 탐구에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로부터 가장 큰 영감을 받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총, 균, 쇠> <사피엔스>와 같은 저작들은 학제 간 연구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그리고 지식의 대중화에도 작지 않게 기여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도 이러한 빅 히스토리에 대한 연구들이 활성화되길 기대한다.

<김호기 |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