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냉전' 이끈 CIA는 왜 괴물이 됐나
[한겨레] 영국 역사학자·다큐 감독 손더스의 역작
문화전쟁 주역들과 비밀자금 구조 조명
지식·예술인들 동원 ‘냉전’ 철저히 관리
지식의 생산과 유통 방식 성찰 촉구


문화적 냉전-CIA와 지식인들
프랜시스 스토너 손더스 지음,유광태·임채원 옮김/그린비·3만7000원
“‘미국 첩보계의 황금기를 아무런 반성없이 그리워하는 태도’의 이면에는 훨씬 더 통렬한 진실이 숨어 있다. 예일대학교를 다니고 단테를 읽으며 시민적 미덕에 의해서 교육받은 사람과, 나치를 채용하고 민주적인 선거 결과를 조작하고 정보기관 내부의 실정을 잘 모르는 대상에게 환각제를 주고, 수많은 미국 시민들의 우편함을 열어 보고, 정부를 전복시키고, 독재를 지원하며, 암살을 획책하고, 피그스만 침공 같은 재앙을 계획한 사람이 사실은 모두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라는 사실이다. ‘무엇을 위해 그런 일을 했는가?’ 한 평론가는 묻고 있다. ‘시민적 미덕은 아닐 터, 곧 제국을 위해서.’”

영국의 역사학자이자 독립 다큐멘터리 감독 프랜시스 손더스가 700쪽이 넘는 역작 <문화적 냉전> 맨 끝에 인용한 미국 저널리스트 조지프 알솝의 편지 한 구절이다. 알솝은 2차대전 뒤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서방 지식·예술인들을 대상으로 비밀 첩보작전처럼 펼친 거대한 반공 심리전의 실체를, 기획자와 포섭된 자들의 기록·증언들을 통해 생생하게 파헤친 이 책의 등장인물 중 한 사람이다. CIA의 첩보작전에 가담했던 그가 역시 그 작전에 협력했던 영국의 자유주의자이자 반공주의 철학자 아이자이어 벌린에게 보낸 회고조의 이 편지 구절은 단어 몇 개만 바꾸면 우리 상황에도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

원제(Who Paid the Piper?: The CIA and the Cultural Cold War)에 압축돼 있듯이, 그 실체가 가려져 있었던 이 문화냉전의 요체는 ‘누가 그 (막대한) 비용을 댔는가?’라는 것이다. 물론 CIA다. 무엇을 위해? 서방 지식인들에게 “공산주의라는 병균이 퍼지지 않도록 예방접종”을 하고, “미국의 외교적 이권을 선취하는 길을 닦기” 위해서였다. 미국 뜻에 따르도록 함으로써 팍스아메리카나, ‘미국의 세기’를 열기 위한 것이었다.
이를 위해 CIA는 세계문화자유회의(CCF, 나중에 국제문화자유협회로 개칭) 등 민간 위장단체들을 만들어 컨소시엄을 구성하고, 35개국에 그 지부를 두었다. “사실상 CIA의 가장 야심찬 전위부대 중의 하나”요 “공산주의 사상의 확산을 막는 교두보”라고 했던 세계문화자유회의는 한국에도 그 지부가 있었다. 이 컨소시엄 구성을 주도한 이가 CIA의 아버지라고도 불린 최장수 5대 국장 앨런 덜레스(1893~69)다.
컨소시엄은 대변지 <인카운터> 등 20종이 넘는 선전매체(잡지)들을 발행했으며, 통신사까지 소유하고 수많은 학술행사, 전시회, 콘서트, 대형 국제회의 등을 열었다. 한국에서도 열린 국제펜클럽 대회가 이 컨소시엄과 무관하지 않으며, 1953년에 창간된 잡지 <사상계>가 미 공보원(USIS)의 자금 지원을 받아 탄생했다는 망명객 정경모의 증언도 있었지만 일본의 <자유>, 이탈리아의 <템포프레젠테> 같은 반공주의 잡지들이 CIA 자금 지원으로 창간됐다.
조지 오웰, 버트런드 러셀, 장 콕토, 한나 아렌트, 솔 벨로,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쇼스타코비치, 레너드 번스타인, 대니얼 벨, 아서 슐레진저 2세…. 서방 지식계를 이끈 유명인사들도 대거 등장한다. “모르고 한 일일 수도 있겠지만, 전후 유럽의 작가, 시인, 미술가, 역사가, 과학자, 평론가 중 이 은밀한 사업과 연관되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었다.” 대중은 CIA의 반공 심리전 각본에 따라 알게 모르게 동원·포섭된 이들의 작품과 의견, 태도, 감정과 행동에 영향을 받아 “사실은 누군가가 바라는 대로 움직인다 해도 스스로는 자신의 의지에 따라 움직인다고 믿게 되는” 상태에 빠졌다. 이 ‘세뇌’ 작전에 가담한 유명인들은 돈을 받아 교양계층의 안락한 기득권을 유지하며 CIA에 포박당했다. 이는 지식·정보의 생산·유통 방식에 대한 반성과 성찰을 요한다. 누가 무슨 목적으로 돈을 대고 자리를 주었고, 받은 이들은 어떻게 대응했던가.

“소련에 불리한 것이라면 널리 폭로될 것이요, 미국에 불리하다면 쉬쉬하며 덮는 것”이 <인카운터> 등의 게재 기준이었단다. 중립을 표방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CIA의 기본 교의에 흠집을 내지 않는 범위 내에서였을 뿐이다. 탈정치야말로 가장 정치적일 수 있다는 점을 선명하게 보여준 사례가 액션페인팅의 창시자 잭슨 폴락의 경우다. 미국 문화계 주류는 정치에 대해 침묵하는 추상표현주의 작품들에서 반공주의 이데올로기, 자유 이데올로기, 자유 기업가 정신을 발견했다. 유럽에 문화적 콤플렉스를 지니고 있던 미국인들은 유럽 미술계가 시도하지 못했던 자유분방한 폴락의 모더니즘을 내세워 “미국 회화의 승리”를 구가하며 열광했다. 이를 만들어내고 연출한 것이 CIA고, 전면에 나선 게 뉴욕현대미술관(MoMA), 돈을 댄 건 국무부 산하 대라틴아메리카 정보부서를 이끈 넬슨 록펠러 ‘록펠러브러더스 기금’ 이사였다.
세계문화자유회의 주최 국제행사 참석자들 항공료까지 댄 CIA의 자금줄은 이들 록펠러, 포드 등의 재단만이 아니었고, 유럽 재건을 위한 마셜플랜 내에도 있었다. 유럽 각국이 미국의 지원금을 중앙은행에 예치할 때 그 5%를 미국 자산으로 따로 떼어 놓게 했고, CIA는 이를 활동자금으로 썼다. 세계문화자유회의가 창설돼 해체되기까지 17년간(1950~1967) 이 단체 관련 프로젝트에 투입한 돈만 수천만 달러, 그 돈의 90%를 CIA가 댔다. “이런 활동을 통해 CIA는 사실상 미국 문화부 역할을 하고 있었다.”
CIA가 내세운 위장 민간 파필드 재단이 이 단체에 지불한 돈은 연간 100만 달러(99년 가치로 600여만 달러)였다. CIA는 이런 재단을 170여 개나 운용했다. 국가안보회의 냉전지침 NSC-68을 작성한 1950년 심리전에 쓴 돈은 4000만 달러였고, 2년 뒤엔 그 4배로 불었다. 이 심리전에서 CIA는 좌파들, 특히 비공산주의계 좌파들의 높은 동원 효과에 주목하고 특별히 신경을 썼다.

책은 이런 사업을 조직한 일선 책임자로 패전 독일을 통치한 미 군정청 문화담당 장교 출신 마이클 조셀슨, 그리고 존 헌트·맬빈 래스키 등의 CIA 요원들과 니콜라스 나보코프(소설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사촌) 세계문화자유회의 사무총장, <인카운터>의 영국인 편집자 스티븐 스펜더와 미국인 편집자 어빙 크리스톨 등에 주목한다. “뉴라이트의 수호성인”이라 불린 네오콘의 기수 어빙 크리스톨은 급진주의에서 전향한 전형적인 경우다.
1960대 중후반이 되면 이런 CIA에 대한 비판 여론이 들끓는다. 1966년 4월 <뉴욕타임스>는 CIA를 “누구의 통제도 받지 않는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괴물 같은 존재”라며 “자랑스럽고 존경받아야 할 국민의 정부가 마치 세계의 ‘뒷골목’을 배회하듯이 ‘비밀’ 첩보작전, ‘더러운 눈속임’, 무자비한 불법적 행위에 너무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고 비판했다. 윌리엄 풀브라이트 상원의원은 CIA가 이런 활동의 구실로 삼은 당시 소련의 흉포함, ‘세계정복 계획’ 따위는 허구이며 오히려 체제 안보를 유지하기 위한 병적인 공포, 허약함에서 나온 것일지도 모른다며 비판했다. 이 또한 우리와 닮아 있지 않은가.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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