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스토리> '투기 광풍' 뒤에..속 타는 무주택자
(서울=연합뉴스) 한혜원 기자·김동임 강현우 인턴기자 = 정부가 서울 강남지역 등을 중심으로 투기 억제 대책을 내놓을 가능성을 시사해 시장이 술렁이고 있습니다.
집값이 급등하고 청약 열풍이 심한 일부 지역을 투기과열지구로 지정해 분양권 전매제한 기간을 늘리는 등 주택 수요규제를 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어쩌다 '투기 과열'이라는 말이 나왔을까요?
우선 재건축 아파트값이 폭등하면서 서울 강남3구 재건축 아파트의 3.3㎡당 평균 가격이 사상 처음으로 4천만원을 돌파했습니다.
부동산114 조사에 따르면 지난 7일 기준 강남3구의 재건축 아파트값은 3.3㎡당 4천12만원. 사상 첫 4천만원대 진입입니다. 강남 3구 재건축 아파트값이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2006년의 3천635만원에 비해서도 3.3㎡당 377만원이나 높은 값입니다.
올해 전국 아파트의 평균 청약경쟁률도 역대 최고 기록을 넘어섰습니다.
부동산114가 금융결제원 자료를 토대로 2008년 이후 매년 1월부터 10월까지 전국 아파트 청약경쟁률(1순위 기준, 특별공급 제외)을 분석한 결과 올해 평균 경쟁률이 13.91대 1로 집계됐습니다.
이는 전국적으로 분양시장이 호황을 보인 작년 평균 청약경쟁률(11.15대 1)을 넘어선 것으로, 역대 최고 수준입니다.
전문가들은 '저금리로 갈 곳을 잃은 돈이 단기 차익이 가능한 재건축과 청약 시장으로 몰렸다'고 분석합니다.
정부는 지난 8·25 가계부채대책에서 주택시장의 공급 과잉을 우려해 공공택지 내 분양 아파트를 줄이는 등의 '공급 축소' 방안을 내놨지만 분양권 전매제한 같은 직접적 '수요규제'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국지적 과열 양상이 심해지자 직접 수요규제를 결심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이와 함께 많은 무주택자를 당황스럽게 한 소식도 들려왔습니다.
주택금융공사가 보금자리론의 자격 요건을 강화해 사실상 연말까지 보금자리론을 중단한다고 밝힌 겁니다.
보금자리론은 주택금융공사가 취급하는 10∼30년 만기의 장기 주택담보대출 상품으로, 정부 정책 가이드라인에 맞춰 고정금리 및 원리금 분할상환 방식만 가능하게 했습니다.
대출금리가 시중은행 일반 주택담보대출보다 낮고 초장기 고정금리 대출이 가능해 내 집 마련을 하려는 30~40대 가구에 인기가 높았죠.
주택금융공사가 발표한 자격 요건 강화는 대출의 담보가 되는 주택 가격을 '9억원 이하'에서 '3억원 이하'로 낮추고, 대출한도도 기존 5억원에서 1억원으로 대폭 줄이는 내용입니다. 별도 제한이 없었던 소득조건은 디딤돌 대출과 같은 부부합산 6천만원 이하로 신설됐습니다.
현재 수도권 집값을 고려할 때 이것은 사실상 많은 이의 대출 기회를 박탈하는 것입니다.
올해 상반기 거래된 서울 아파트 매매 실거래가 평균은 5억원을 돌파했고, 10월 기준으로 전국 아파트값도 3.3㎡당 1천만원을 넘어섰습니다.
보금자리론과 함께 대표적인 서민금융 상품인 적격대출도 사실상 판매가 중단됐습니다.
내집마련을 꿈꾸는 신혼부부와 무주택자들은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폐지,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 추가 유예 등 규제 완화로 집값을 올려놓을 때는 언제고, 갑자기 대출을 막아 이제는 집 살 길이 더 막막해졌다'는 겁니다.
"저처럼 집 필요한 사람도 '투기꾼'으로 보는 것 같아요. 재건축이야 남 이야기라고 하더라도, 주택청약만큼은 투기 목적이 아니라 진짜 필요한 사람들이 안정적으로 살 수 있게 했으면 좋겠어요." (29세 변모씨, 결혼 2년차)
금융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금융위의 '수요예측 실패'가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주택금융공사가 보금자리론 자격을 갑작스럽게 제한한 이유로 '8~9월 들어 신청 수요가 급격히 늘었다'는 설명을 했기 때문입니다.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주택금융공사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지난해 보금자리론 판매 금액의 15%에 달하는 2조2천739억원이 2주택 소유자에게 지급됐습니다. 무주택자를 지원한다는 애초 취지와 달리 많은 다주택자가 혜택을 본 것입니다.
금융위는 보금자리론 제도를 내년부터 개편하고 은행별로 배정한 적격대출 한도를 늘리겠다고 밝혔지만, 일관성 없는 부동산 대책이라는 비판은 피하지 못하게 됐습니다.
많은 신혼부부가 출산을 미루는 이유로 주거비용 부담을 꼽는다는 점에서 더 큰 허탈함을 내비칩니다.
"정부가 저출산 대책의 하나로 신혼부부에게 안정된 주택을 공급하겠다고 하는데 실제 대책은 대부분 대출제도 아닌가요? 싼 이자로 빌려줄 테니 일단 집을 사라고 이야기하는 거죠. 그것보다 환경이 좋은 곳에서 이사 걱정 없이 살 수 있게 안정적인 부동산 가격을 형성하겠다고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31세 오모씨, 결혼 3년차)
국토교통부의 '2015년 신혼부부가구 주거실태 패널조사'에 따르면 신혼부부(혼인신고 5년이 지나지 않은 부부)의 35.3%가 '부부자금+대출·융자'로 주택자금을 마련했습니다. 부부 자금과 부모·친인척 도움, 대출금을 모아 겨우 주택자금을 만든 부부도 9.5%에 달했습니다. 오로지 부부 돈만으로 주택자금을 일군 비중은 20%가 채 되지 않았습니다.
또 '향후 내집마련의 여건이 어떻게 변화할 것 같은가'라는 질문에는 신혼부부 48.0%가 '현재보다 어려워질 것 같다'고 답했습니다.
지난 17일,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가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글이 화제가 됐습니다.
이 교수는 "(정부가) 투기를 부추길 때는 언제고 이제는 투기 광풍을 잡겠다고 뒤늦게 수선을 떨고 있다"며 "이런 결과가 나올지 모르고 그런 무모한 부동산 경기 띄우기를 했다면 누가 그 말을 믿겠는가"라고 꼬집었습니다.
이 교수는 또 "마치 '폭탄 돌리기'를 하는 것 같다. 당장 내 임기 동안 부동산 가격이 높은 수준으로 유지되면 그만이라는 안이한 생각에서 투기 부추기는 일을 마다치 않고 있다"며 "아직도 수많은 사람이 집 없는 설움을 안고 살아간다는 현실을 생각하면 주택 가격의 하향안정화가 절실히 요구된다는 사실은 그들의 안중에 없다"고 비판했습니다.
'장사꾼 살(buy) 집'보다 '내 가족 살(live) 집'을 찾는 많은 이들이 '투기 열풍' 속에 애만 태우고 있습니다.
hye1@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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