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의 공간>계용묵은.. 삶의 근원적 슬픔을 세심하게 형상화 .. '백치 아다다'로 유명

기자 2016. 10. 21.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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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용묵(사진)은 1904년 평안북도 선천군에서 계향교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전통적인 가정환경 속에서 한학을 배웠으며, 1919년 삼봉공립보통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중동학교, 휘문고등보통학교, 도요(東洋)대학 동양학과 등에서 수학했다. 1925년에 ‘조선문단’에 ‘상환’을 ‘자아청년(自我靑年)’이라는 필명으로 발표하며 등단했고, 이후 1950년까지 약 45편의 단편소설을 별다른 공백없이 발표했다.

계용묵은 기본적으로 문장과 기교를 중요시했으며, 허무주의적인 인생관을 평생 유지했다. 그의 문학세계는 무산자들의 계급적 차별과 빈곤 문제를 다룬 초기(등단부터 1930년대 전반까지), 현실보다는 삶의 근원적 비애와 슬픔을 세심하게 형상화한 중기(1930년대 중반부터 해방 이전까지), 해방 이후 민족이 겪은 비극의 모습을 중립적으로 묘파한 후기(해방 직후부터 1950년까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각각의 시기를 대표하는 작품으로는 ‘최서방’(조선문단, 1927년 4월), ‘백치 아다다’(조선문단, 1935년 5월), ‘별을 헨다’(동아일보, 1946년 12월 24∼31일) 등을 들 수 있다.

계용묵은 늘 소외된 사람들에 대해 따뜻한 관심을 갖고, 문장 하나에도 정성을 기울였다. 1961년 ‘현대문학’에 ‘설수집(屑穗集)’을 연재하던 중 서울 성북구 정릉 자택에서 지병으로 별세, 망우동 묘지에 안장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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