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들은 '눈'이 아니라 '귀'로 본다?
핀란드 탐페레대 연구진은 소리를 이용해 단백질을 관찰할 수 있는 새로운 시뮬레이션 기술을 개발했다. 소니피케이션이라고 불리는 이 기술은 의료, 천문 등 다양한 분야에 활용되고 있다. 헬리욘(Heliyon) 제공 |
영화 주인공만큼은 아니지만 과학기술을 이용한 인공적인 소니피케이션 기술도 현실에서 크게 주목받고 있다. 자동차 후진 시에 들려오는 후방경고음이 대표적인 사례다. 소리의 크기나 빈도로 후방에 있는 물체까지의 거리가 어느 정도인지 알아낼 수 있다. 이 기술은 시각장애인들의 길 안내에도 활용된다. 스페인 ‘마드리드카를로스3세대’ 파블로 레부엘타 산스 교수팀은 2014년 안내견이나 지팡이를 대신할 수 있는 안경 형태의 소니피케이션 장비를 개발한 바 있다. 두 개의 카메라로 전방 장애물까지의 거리를 파악하고 소리로 알려준다. 연구진은 28명의 사람을 대상으로 이 장비를 시험한 결과 다른 보조 장비 없이도 안전하게 길을 걸을 수 있음을 확인했다.
소니피케이션 기술은 운동선수들의 훈련에도 활용된다. 독일 빌레펠트대 토마스 헤르만 교수팀은 지난해 9월 실제로 수영선수 10명을 대상으로 소니피케이션 훈련 실험을 진행했다. 선수들은 압력센서가 포함된 장갑을 끼고 헤엄쳤는데, 손이 물살을 가를 때 생기는 압력 변화를 감지해 선수들이 끼고 있는 헤드폰으로 높낮이가 다른 소리를 들려줬다.
헤르만 교수는 “선수들이 감각으로만 파악했던 물의 압력 변화를 소리를 통해 실시간으로 파악해 즉시 자세를 고칠 수 있다”며 “자신만의 리듬감을 찾아 체력을 안배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고 말했다.
소니피케이션 기술은 최근 과학 실험 분야에서도 유용하게 쓰인다. 눈으로 모든 정보를 파악하기 어려운 천체, 세포 관찰 등에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우주 공간에는 이온화된 가스인 플라스마가 존재하는데, 별이나 행성의 중력이나 진화 정도에 따라 수백∼수천 Hz(헤르츠) 사이의 우주 전파를 내놓는다. 이 전파를 수신해 소리로 바꾸면 별을 관측하면서 다양한 정보를 추가로 얻을 수 있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은 최초의 장거리 우주탐사선 ‘보이저 1호’가 수집한 우주전파를 분석해 태양계의 각 행성이 내는 소리를 공개하기도 했다.
이런 ‘별의 소리’는 실제로 작곡을 할 때 쓰이기도 한다. 미국의 록 그룹 ‘에코 무브먼트’는 NASA가 운영 중인 ‘케플러 우주망원경’으로 발견한 두 개의 별 ‘케플러-4665989’와 ‘케플러-10291683’이 내는 음원 데이터를 그대로 사용해 노래를 만든 바 있다.
최근 소니피케이션 기술을 의료 분야에 적용하려는 시도도 있다. 환자들의 뇌파를 소리로 변환해 뇌의 상태를 실시간으로 분석하는 등 다양한 분야에 적용하고 있다.
핀란드 탐페레대 연구진은 최근 국제학술지 ‘헬리욘(Heliyon)’ 20일자에 단백질의 구조를 소니피케이션으로 분석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단백질을 구성하는 원소마다 고유의 음원을 입력해 두면,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단백질 특유의 소리를 화음(和音)처럼 만들 수 있는데, 만일 단백질 내에 돌연변이가 발생하면 소리 자체가 달라진다.
여운승 이화여대 디지털미디어학부 교수는 “시선은 한 번에 한 장소에만 머무를 수 있지만 청각은 여러 개의 데이터를 한번에 모니터링할 수 있다”며 “사람의 예술적 능력이 과학적 데이터 분석에 사용되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말했다.
권예슬 동아사이언스 기자 ys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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