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에서 본 슬로바키아

트래비 2016. 10. 17.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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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론을 띄워 촬영한 보이니체성. 마지막 성주의 유언에 따라 박물관으로 개방되고 있다

●Bojnice Castle 보이니체성  
동화 속을 날다 

하늘이 맑았다. 서둘러 드론을 띄웠다. 슬로바키아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성 보이니체를 촬영하기 위해 서서히 고도를 높이는 동안 가슴은 심하게 쿵쾅거리고 있었다. 산책 나온 슬로바키아 사람들도 호기심을 감추지 못했다. 비로소 드러난 보이니체는 누구나 상상하는 성, 동화에서 본 모습 그대로였다.

보이니체성은 팔피 가문의 막대한 재력 덕에 르네상스 스타일의 샤토로 변신했다

성들의 흥망성쇠 

슬로바키아에 성이 많다는 사실을 경험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수도 브라티슬라바를 떠나 북동쪽으로 차를 몰다 보면 십여 분도 지나지 않아 언덕 위에 우뚝 솟은 성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물론 깨끗하게 재단장한 브라티슬라바성과는 다르다. 대부분 반쯤 무너진 돌탑과 잔해들이다. 처음에는 마치 산삼이라도 발견한 듯 ‘성이다!’를 외치지만 반복되는 풍경에 이내 흥미를 잃어버릴 만큼 고성이 흔하다. 

이 많은 성들은 누가, 언제 세운 것일까? 오스만 제국을 비롯한 외적을 방어하기 위해 헝가리 통치자들은 슬로바키아 전역에 성을 축조했다. 13세기에는 그 숫자가 150여 개에 이르렀을 정도다. 정작 고성의 운명을 쇠락으로 몰고 간 것은 적들이 아니었다. 정세에 따라 확장과 쇠퇴를 반복했던 성들은 17세기 반(反) 합스부르크 반란이 전개되면서 황제의 군대에 의해 파괴됐다. 반란군의 소굴이 될 것을 우려한 조치였다. 쓰임새를 잃은 성들은 맥없이 방치되어 현재 슬로바키아에는 120여 개 정도의 성이 불완전한 모습으로 존재한다. 그중 소수의 성들만이 관광명소로 개발되어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고, 드물게는 부유한 성주를 만나 최고급 호텔이나 레스토랑으로 변신한 경우도 있다. 

Bojnice Castle
주소: Trenciansky kraj, okres Prievidza, Bojnice
요금: 성인 €8(가이드 투어 75분 소요), 카메라 촬영 €2 
전화: +421 46 543 06 33
홈페이지:  www.bojnicecastle.sk 

천장에 팔피 가문의 문장이 새겨진 방

로맨틱 고성의 모범답안 

아름답기로 소문난 보이니체성은 사실 여러 번의 수술을 받았다. 10세기 이전에 목재로 만들어졌다가 13세기 이후 석조로 개축된 것이 첫 번째 환골탈퇴였다면, 16세기에 이 성을 넘겨 맡은 투르조(Thurzo) 가문은 방어 목적의 요새를 사람이 거주할 수 있는 샤토(Chateau)로 개조해 정체성마저 바꾸어 버렸다. 다음 세기에 성을 넘겨받은 팔피 가문은 장장 21년에 걸친 성형 작업에 착수했다. 프랑스 루아르 지방의 고성에서 영감을 받아 르네상스 스타일로 치장하는 작업은 상속자 야노스 팔피(Janos Palffy) 백작의 막대한 재력 없이는 불가능했을 대수술이었다. 그 결과 보이니체는 슬로바키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이 됐다. 백조들이 유유히 헤엄치는 해자에 드리워지는 네오고딕풍 첨탑들의 반영 사진은 ‘믿기 힘든 장관’으로 SNS를 떠돌고 있다. 

대부분의 슬로바키아성들이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자리 잡은 것과 달리, 보이니체성은 평지에 자리를 잡았다. 접근성이 좋아 주말이면 해자 주변에 돗자리를 펴고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내부 관람에는 가이드의 족집게 설명이 필수다. 천장에 183명의 금빛 천사가 내려다보고 있는 금색의 방, 팔피 백작의 집무실이었던 오리엔탈 방, 창과 갑옷이 전시되어 있는 기사의 방, 체스나 카드놀이를 했던 겨울정원, 식수를 저장했던 지름 22m의 지하 동굴 등을 지나 관람의 대미를 장식하는 것을 역시 팔피 백작의 무덤이다. 후손이 없었던 팔피 백작은 성의 완공을 보지 못한 채 1908년에 사망했고, 유언에 따라 성은 대중에게 활짝 열렸다. 


오라바강 옆 절벽에 우뚝 선 오라바성은 난공불락의 요새였다 

●Oravsky hrad Castle 오라바성
시간을 거슬러 오르다

독수리 둥지처럼 고립된 오라바성은 112m의 절벽 위에서 오라바(Oravsky Podzamok)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다. 성 위에서 내려다보이는 모든 땅이 성주의 소유라니 성들이 죄다 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한 이유를 알겠다. 낭떠러지 아래로는 오라바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 어떤 적들도 침공에 성공하지 못한 난공불락의 성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요즘이 어떤 시대인가. 가볍게 날아오른 드론에게 난공불락의 대상이란 없었다. 새의 시점으로 오라바성을 내려다보고서야 계단식으로 안착된 성채와 묵직하게 흘러가는 오라바강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정찰을 끝냈으니 내부를 공략할 순서다. 굳게 닫혔던 철문이 열리면서 영어가이드 투어 손님들만 들어오라고 했다. 목조에서 석조로 다시 태어났고, 수많은 주인을 섬기는 동안 로마네스크, 고딕, 바로크, 로맨틱 등 모든 사조를 경험하며 늙어 왔다는 점에서 오라바성의 생애는 다른 성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14세기 오라바 지역의 주성으로, 폴란드로 넘어가는 길목을 방어해야 했기에 그 위상은 남달랐다. 

하지만 땅이 넓을수록 걱정도 늘어났다. 헝가리 제국 귀족들의 통치를 받는 동안 성은 3개의 성문을 가지게 됐을 정도로 전투력을 갱신해 오다가 16세기에 이르러 투르조 가문의 조지 투르조(Gyorgy Thurzo)에 의해 다시 한 번 대대적인 개보수 작업을 거치게 된다. 그러나 23세까지 살지 못했던 그의 요절 이후 성은 반 합스부르크 세력의 손에 넘어갔다가 반란 진압 과정에서 치명적으로 손상됐다. 가장 큰 불행은 그 후 찾아온 1800년의 대화재였다. 

목조 구조물들이 모두 불타 버리고 폐허처럼 변한 성의 재건을 이끈 것은 역시 팔피 가문이었다. 1868년부터는 슬로바키아 최초의 박물관으로 개방되고 있다. 

아래에서 위로 진행되는 관람 순서는 성의 가장 젊은 부분에서 가장 오래된 곳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시간 여행이다. 최종점은 무려 선사시대. 이곳에서 발견되었다는 선사시대 여성들의 철제 브래지어(마돈나의 무대 의상과 비슷하다)는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150년 가까이 박물관으로 운영해 온 노하우가 곳곳에 엿보인다. 벨벳 드레스를 차려 입고 관광객들을 맞이하는 미녀들은 ‘인생샷’의 포인트들을 이미 파악하고 있다. 기념촬영의 유혹을 피해가기 어렵다. 그렇다고 길게 한눈을 팔아서는 안 된다. 오라바성은 꽤 유명한 드라큘라성*이기도 하므로. 

*드라큘라성 | 1922년에 독일의 프리드리히 빌헬름 무르나우(F. W. Murnau) 감독이 오라바성에서 영화 역사상 최초의 장편 드라큘라 영화인 <노스페라투(Nosferatu)>를 촬영해서 붙여진 별칭이다. 

오라바성 투어의 재미 중 하나는 중세시대 미녀들과 기념 촬영을 하는 것이다
슬로바키아 최고의 박물관답게 볼거리가 풍부하다
성 하단에 위치한 성 미카엘 예배당에서 발굴된 성상들
드라큘라성이라는 콘셉트에 어울리게 꾸며진 방

Oravsky hrad Castle 
운영시간: 11~3월 10:00~15:00, 4월 폐장, 5~10월 8:00~17:30, 
요금: 성인 5~7€(가이드 투어 2시간 소요), 영어 가이드 투어 1일 3회(하절기만 운영 11:00, 15:00, 17:00) 카메라 촬영 €3, 비디오 촬영 €5 
홈페이지: www.oravskemuzeum.sk

 

글 천소현 기자 사진 Travie photographer 이승무 취재협조 슬로바키아관광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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