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주년 창간기획-창간기념 콩트]호모 사피엔스 '나는 너다'
[경향신문]

■인구밀도 세계 3위 국가에 사는 너
N, 너는 2016년 9월27일 오전 8시15분16초 현재 지구상에 존재하는 호모 사피엔스 7341874089명 가운데 1인. 1㎢의 면적 안에 509명이 살아서 인구밀도 세계 3위의 국가에 사는 N. 41년 하고도 두 달 조금 넘게 산 너는 ‘나이가 벼슬’이라는 유구한 전통을 가진 나라 한국에서 딱 중간의 나이지.
■요람이자 무덤, 스마트폰 중독인 너

지금 너는 스마트폰을 보며 길을 건너고 있다. 이미 세 번쯤 남 모를 사람과 부딪쳤고 두어 번은 아슬아슬하게 자전거가 피해 갔으며 한 번은 치명적인 차 사고를 당할 뻔 했으나 너는 그걸 모른 채 지하철역에 들어섰다. 구름 같은 사람 사이를 필사적으로 파고들어 전동차에 오르고 자리를 잡고난 뒤 다시 스마트폰을 보는 너.
전세보증금이 조금이라도 싼 수도권의 아파트에서 네가 직장에 출근하기까지 마을버스-광역버스-지하철로 58분이 걸리고 그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출근시간의 2배가 넘는다. 너는 출근 전에 스마트폰을 보며 양치질을 하고 스마트폰을 식탁의 반찬그릇과 나란히 놓고 반찬보다 그걸 자주 보며 식사를 했지. 스마트폰으로 네가 뭘 얼마나 먹는지 계산해 봤다. 너는 하루 평균 2074㎉를 섭취하는데 그건 1998년 1933㎈에서 7.3% 늘어난 것. 이 중 술로 섭취하는 에너지만 100㎉다. 맥주로 쳐서 200㎖, ‘꿀꺽꿀꺽’ 두 번 하는 양이다. 맥주 자체의 열량은 몸에 축적되지 않고 배설이 된다니 살찌는 것과는 상관없을 것 같지만, 네가 좋아하는 ‘치맥’이 그렇듯 푸짐한 안주가 네 배를 맥주통 모양으로 만들어주는 중이지. 헤이, 아기라도 가진 사람처럼 자주 쓰다듬지 말라고.
호모 사피엔스 1인당 하루 필요한 식량이 580g이라는데 너는 하루에 쌀 170g 남짓, 일년에 70㎏을 먹고 있다. 옛날에는 징병 적령자인 장정 한 사람이 한 해 한 섬, 160㎏을 먹는다고 했는데 말이지. N, 너는 육류를 일년에 47.6㎏ 정도를 먹는데 아버지는 네 나이 때 5.2㎏밖에 먹지 못했다. 이런 저런 지식을 너는 스마트폰 하나로 얻는다. 그게 밥상머리에서 꼭 필요하거나 궁금한 것도 아닌데.
사람이 밥만 먹고 살지는 않지. 자장면도 떡볶이도 먹는다. 너는 작년 한 해 라면을 76개 먹었다. 1년간 먹은 면류 중 라면이 전체의 69%이고 나머지가 국수, 냉면, 파스타 등등이지. 1인당 라면 소비에서는 한국인이 단연 세계 1위인데 그 뒤에 베트남, 인도네시아가 쫓고 있지.
21세기 초에 미국인 61%가 과체중이었다. 한국인은 지금 60%가 자신이 과체중이라고 믿고 있고. 공장식 축산, 기업형 농장이 값싸게 먹을거리를 쏟아내고 필요 이상의 고열량을 공급하기 때문이다. 소화하기 쉽게 곱게 간 밀가루, 부드럽게 가공한 음식, 더 높게 농축된 열량이 마트의 매장과 식당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지. 이제 사람들은 사과를 사과로 먹지 않고 주로 사과주스로 마시지. 그 사과주스에는 주문하지 않은 액상과당, 합성향료, 착색료, 보존료가 들어가 있을 수 있고. 그거 알아? 부드러운 음식을 먹을수록 허리가 더 굵어진다는 걸. 그 결과 일찍 죽는다고도 하지. 요점은 음식이 가공되지 않을수록 몸에는 좋다는 것.
네가 밥이든 고기든 술이든 편히 먹으려면 기본적으로 필요한 게 있다. 밥상, 그릇, 수저, 요리해주는 사람…. 무엇보다 돈이 있어야지. 돈, 돈, 돌고 돈다는 돈. 전문용어로는 ‘소득’이라고 하던가. 국제통화기금(IMF) 통계로 2016년 기준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은 1조3212억달러이고 1인당 소득은 2만5990달러. 국가경제적 순위는 미국, 중국, 일본, 독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브라질, 인도, 캐나다 다음인 11위이고 1인당 국민소득은 10만달러가 넘는 룩셈부르크, 5만달러를 상회하는 미국, 인구 30만명을 조금 넘는 아이슬란드(5만6114달러), 일본(3만4871달러) 등등의 뒷자리인 28위. 자랑스러운가, N? 내 손에 쥐여지는 건 그게 아닌데 무슨 이웃집 포메라니안 짖는 소리 같은 숫자놀음이냐고?
N, 너는 맞벌이 하는 아내, 초등학생 딸 해서 세 식구고 2016년 1분기 월 평균 가계소득이 455만원이라는데. 그건 평균이니까 너와는 별 상관없고, 네 주먹 속에 뭐가 들어있는가가 중요한 거지. 신경 쓰이는, 신경 써야 할 통계는 따로 있다. 국회 입법조사처에서 2012년 기준 한국의 상위 10% 소득집중도는 44.9%로 아시아 주요국 중 가장 높은 ‘수치’며 영광스럽게도 전 세계에서 미국(47.8%) 다음으로 높은 수준이라고 발표했다.
세계선수권으로 쳐서 한국의 인구밀도는 동메달, 한국인의 라면 소비량과 출근시간은 금메달인데 드디어 은메달도 나타났다. 2012년 통계지만 올라가면 올라갔지 낮아지지는 않았을 터, 체감하기로는 50%를 넘었다. 상위 10%가 전체 국민소득의 절반 가깝게 가지고 가고 나머지를 두고 90%가 피 터지게 경쟁하는 상황이니 ‘헬조선’이라고 불리는 거지. ‘헬조선민’의 1인당 연간 소득은? 2016년 소득을 가지고 2012년 소득집중도에 단순 대입해 계산하면 1만2866달러. 이건 54위 칠레와 55위 폴란드 사이. 상관없는 이야기지만 한국의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은 2016년 9월 현재 49위로군.
■자녀 1인당 양육비 3억 쓰는 너
한국 국민의 가계부채 규모가 1250조원을 돌파했는데 네 가족은 딱 6181만원의 빚을 지고 있다. 넌 그것도 아주 선방한 것이라 생각한다. 한국보다 가계부채 비율이 높은 나라는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아일랜드 등등인데 이런 나라들은 한국과 비교할 수 없이 사회복지제도가 잘되어 있지. 자녀 1인당 양육비가 3억원씩이나 들지도 않고.
■부부 연소득 모아도 빚 못 갚는 너
어쨌든 부부의 연소득 1년치를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은다 해도 빚은 절대 갚을 수 없다. 의식주에 한 푼도 쓰지 않고 ‘헬’ 아닌 이승에 1년 아니라 일주일도 존재할 수가 없다는 게 사소한 문제다. 이승에 없는데 무슨 수로, 왜 빚을 갚나.
그래도 N, 너는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했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이가 있고 집도 있고 직장인으로 순탄하게 살아왔으니 성공한 편에 든다고 생각한다.
지금 직책은 과장이지만 임원이 될 가능성도 있다! 확률은 1%도 되지 않지만.
N, 너는 업무 중에도 습관적으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구나. 실시간 검색어, 뉴스 랭킹에 따라(주로 네 생계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연예인 가십이나 예능 프로그램에 관한 것이지만), SNS(라고만 하면 너무 간단하고 네가 스마트폰으로 접하는 것만 해도 ‘카톡’ ‘페북’ ‘인스타’ ‘트위터’ ‘카스’ ‘밴드’ ‘텔레그램’…)를, 인터넷 포털(지식인, 뉴스, 블로그, 카페, 커뮤니티, 뉴스…), 게임, 영상을 보고, 스포츠·전쟁·테러·선거의 생중계를 실시간으로 보고 사지 않을 아웃도어 신발 ‘신상’을 살피고 ‘핏’이 좋은 옷을 보고 어느 때는 그저 멀거니 ‘사이버 방랑’을 하고 있고 핫 이슈에 달린 댓글까지 꼬박꼬박 읽는다. 구글이나 네이버 같은 대기업이 무료 검색엔진을 제공하는 건 인류애가 넘쳐서가 아니지. 광고주들이 원하는 수많은 마케팅 정보를 제공할 수 있게 해주려는 것. 온라인에 넘치는 돌팔이와 사기꾼, 사이비 종교 지도자, 가짜 전문가들에게 한 번 주의를 분산해 업무에 방해를 받았다 다시 집중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30분. 그러다 상위 10%에 진입할 기회를 누군가에게 빼앗기고 있다. 물론 그것도 네 탓은 아니다.
상위 10%의 10%의 10%…의 그들은 네가 스마트폰에 들이는 시간과 주의력 같은 ‘가난한 과부의 동전 두 닢’을, 하위 90% 이하의 절대다수에게서 얻어냄으로써 부와 권력을 얻는다. 유권자가 하나씩 가진 표를 모으고 서민의 지갑에서 알뜰하게 세금을 빼가고 정보, 데이터, 물, 불, 사회 인프라, 자원, 땅, 환경, 시대, 불안, 불화, 평화를 제 것인 양 소매로 팔아서 그들만의 거대한 철옹성을 쌓는다. 하위 90%에 속한 그 누구도 넘지 못할 영구불멸의 진입장벽을 설치한다. ‘지금 이대로 영원히’라는 슬로건으로 성벽을 두른다.
그들은 인생의 중요한 단계에서 놀라운 집중력을 발휘해 시험을 통과하고 맨 앞에서 내달렸다. 남들의 머리 위, ‘수석’에 일단 올라선 뒤로는 그들끼리의 ‘메이저 리그’를 형성하고 무법, 탈법, 초법, 비법, 불법을 가리지 않고 그 자리를 지켜왔다. 마치 자신은 그런 운명을, 유전자를 타고난 듯 당연하게. 연민과 염치의 유전자는 결락된 채. 그런 그들 앞에서 너는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어서 스마트폰을, 스마트폰만을 보고 있는 게 아니냐.
너는 잠에서 깬 새벽부터 잠들 때까지 스마트폰을 본다. 아침 먹으면서 보고, 점심 먹으면서 보고, 간식 먹으면서 보고, 저녁 먹고 회식 하면서도 보고, 퇴근하면서도 본다. 너는 보고 또 본다. 스마트폰은 네 시간과 지각과 판단력의 요람이자 무덤이다.
넌 앞으로 40년하고도 두 달 정도를 더 살 거다. 그 중 건강하게 살 시간은 25년이 남았다. 스마트폰과 함께, TV와 함께, 카페인과 함께, 도파민과 옥시토신과 세로토닌과 멜라토닌, 코르티솔, 아세틸콜린, 노르에피네프린, 글루탐산, 엔도르핀과 함께. 기능성식품, 비만, 불면증, 대사성질환, 요요현상, 수면제, 알코올 중독, 다이어트 중독, 약물중독, 탄수화물 중독 등등과 살아갈 거다.
정백당, 정백미, 정백밀가루, 정백염, 백색 화학조미료, 트랜스지방, 항생제, 설탕, 액상과당, 잔류농약, 방부제, 유전자변형식품, 인공착색제, 인공감미료를 피하려 애쓰면서. 기아로 죽는 사람보다 비만 때문에 죽는 사람이 더 많아진 세상에서. 이대로. 정말? 이대로?
네가 얼마나 어렵게 이 세상에 왔는지 계산해볼까. 너는 네 부모가 사랑에 빠진 결과 한 개의 난자세포와 한 개의 정자세포가 수정됨으로써 새 생명으로 태어날 수 있었다. 3억마리의 정자가 초속 4㎜의 속도로 필사적인 경주를 벌였고 그 중 일착으로 난자에 도달한 정자는 머리 끝에서 효소를 생성해서 난자를 둘러싼 젤리층의 보호막을 녹인 뒤 난자 속으로 들어갔지. 수정된 난자는 12일 동안 자궁으로 이동한 뒤 착상하는 과정을 거쳤다. 너는 100만분의 1g의 수정란에서 생명이 시작되어 266일 동안 자궁 안에서 영양을 공급받아 발육을 계속한 끝에 수정란 무게의 30억배인 3㎏이 넘는 아기가 되어 탄생한 몸이시다…. 로또에 당첨될 확률보다 수백배 낮은 확률을 뚫고 세상에 나온, 기적적 존재, 아니 기적 그 자체다.
탄생뿐 아니라 너의 첫 호흡, 너의 옹알이, 울음, 까르르 하는 웃음, 뒤집기, 처음으로 “엄마, 아빠”라고 부른 것, 네 손으로 물을 마신 것, 너의 그림·노래·글·춤·연기, 첫사랑, 열 번의 프러포즈, 아홉 번의 이별 그 모두가 신비 그 자체. 너의 시간, 너의 삶, 너의 일상은 오직 하나뿐이고 유한하고 부스러지기 쉽고 그래서 고귀하다. 너는 무엇과도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존엄성 그 자체다.
■반성 없는 상위 10%와 사는 너
자살률이 OECD 국가 중 부동의 1위인 나라, 인구 10만명당 28.5명이 자살로 죽는 나라에 너는 살고 있다. 권력 비리, 법조 비리, 경제 비리, 방산 비리, 채용 비리, 병역 비리, 세무 비리, 측근 비리, 친인척 비리, 사학 비리, 조선 비리, 급식 비리, 아파트 관리비 비리, 공직자 비리, 하청 비리, 종합세트 비리를 은퇴 없는 로봇처럼 저지르면서도 반성과 연민과 공감의 능력이 결핍된 상위 10%의 10%의 10%…가 지배하는 나라이지만, 매일 매시 매분 매초 열 받는 일로 겨울 난방비를 절약하게 해주는 이 나라, 이 시대에도, 이 더러운 역사 속에서도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훨씬 가치 있다.
과거와 미래가 현재보다 행복할 리 없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믿는다. 현실이 힘들면 호모 사피엔스의 뇌는 그렇게 작동한다. 과거나 미래가 아닌 현실에서, 지금 여기 이 시간 좀처럼 행복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저 7341896144명 가운데 1인, N분의 1로 산다는 게 N, 1㎢의 면적 안에 사는 나와 비슷한 508명과 살아간다는 게 N, 누군가를 사랑하고 보살피고 만나고 어울리고 이별하고 다시 만나고 N, 너 스스로를 저버리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 사는 게 잡은 줄을 탁 놓아버리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고 귀한 것이다.
상위 10%의 10%의 10%의 10%라 할지라도 네 기적적인 현존에 비하면 발가락 사이의 때만도 못한 것. 쇼윈도에 진열돼 화려한 자태를 뽐내다가 성공의 태양에 가장 먼저 빛이 바래고 폐기물처리장으로 가거나, 고속압축성장으로 백열등의 필라멘트처럼 가늘고 떨리는 전성기를 맞은 뒤 돌연 내파하거나 끊어져 버리는 그들의, 그들이 보여주는 리얼리티 순도 100%의 드라마를 관람할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라도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위선적 말종들의 지뢰와 폭탄이 곳곳에서 터질 때 조금 떨어져서, 그들이 남긴 고고한 높이의 똥무더기와 장엄한 넓이의 쓰레기를 밟지 않으려고 조심하면서, 부디 오래. 너절하고 거지 같은 그들의, 그들끼리의 리그가 무너지고 스러져 바람 속 먼지처럼 흩날리는 것을 보기 위해 더 오래. 아주 오래오래, 살아 ‘영화’를 보려, 깨달음의 드높은 세계로 가는 일은 나중으로 미루고 기대수명 따위 훌쩍 넘어 천년만년 살아남으라. 살아남는 것이 이기는 것.
N, 너는 나다. 나의 모든 사랑이며 영원한 전부인, N, 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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