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is Story >"작물 살리는 비료·농약에 '감동'.. 생명공학 산업화가 내 의무"

한국생명공학연합회 초대회장 김정회
“제 고향이 충남 예산시 오가면입니다. 1960년대 초반 초등학교 시절 할아버님이 집 고추밭에 살충제 가루를 뿌리면 신기하게 고춧대를 잘라 먹던 굼벵이가 없어지는 거예요. 어린 마음에 ‘왜 저럴까?’라는 호기심이 결국 저를 생명과학자의 길로 이끈 것 같습니다.”
유년시절 충청도 예당평야가 펼쳐진 너른 들녘에서 할아버지의 밭일을 곧잘 돕던 소년 김정회의 눈에는 농약의 병해충 방지 효과와 비료의 작물 성장 효과가 신기하기만 했다. 애써 심은 고추 모종의 고춧대를 꼬박꼬박 따먹는 얄미운 굼벵이가 가루약제만 뿌리면 사라지고, 영양이 부족해 누리끼리하던 대파도 질산복합비료를 주면 몰라보게 생기를 되찾는 것을 보면 억제할 수 없는 호기심과 ‘감동’까지 느꼈다. 형제가 나란히 서울대에 진학할 정도로 예산에서 알아주던 수재 집안의 둘째 아들이던 김정회는 결국 21세기 바이오 경제시대를 주도하는 한국의 대표적 생명공학 연구자의 길을 걷게 된다. 지난 8월 말 출범한 한국생명공학연합회 초대회장으로 선출된 김정회(64) 카이스트 생명과학기술대학장 겸 생명과학과 교수를 지난 9월 12일 대전 유성구 구성동 카이스트 생명과학과 연구실에서 만났다.
―한국생명공학연합회 초대 회장으로 선출되신 것을 축하드린다. 한국경제의 신성장 동력으로 바이오 시대를 열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높은 가운데 연합회가 출범했다. 연합회 출범 배경은.
“연합회는 우리나라 생명공학 분야를 이끌어 가고 있는 대표적인 4개 학회 즉, 한국미생물·생명공학회, 한국생물공학회, 한국식품과학회, 그리고 대한약학회가 주축이 돼서 창립한 단체다. 생명공학 분야는 아시다시피 농수산 분야에서 의약학 분야까지 대단히 범위가 넓다. 서로 다른 분야의 생명공학(BT) 연구자들이 융합을 통한 혁신기술 창출을 위해 학문 간 문턱을 헐고 서로 소통을 활성화하기 위해 지난 3년간 4개 학회 회장단이 마음을 열고 공동협력을 통해 연합회를 결성하기로 의기투합해 결실을 본 것이다.”
―생명과학자가 된 동기가 궁금하다.
“유년시절 고향인 충남 예산의 농촌 자연 속에서 지내다 보니 자연스럽게 농작물 재배과정에서 할아버지와 부모님을 도와 농촌 일에 적응이 됐다. 아버지는 전매청 공직자셨는데 내가 2남 3녀 가운데 막내다. 열 살 터울 큰형이 서울대 물리학과에 갈 정도로 예산군에서 수재집안으로 유명했다. 시골에서 농작물을 키우는 과정에서 비료, 농약 등의 효과에 대해 호기심을 갖게 되고 감동을 받은 것이 대학에서 농화학과를 선택하게 했고, 카이스트 생물공학과 석사과정 1기로 1974년 입학해 생명공학연구를 통해 생명현상의 원리를 실제 생활과 산업에 응용 연구하는 길을 걷게 됐다. 대학 졸업 때 ROTC장교로 임관했는데 군 복무가 면제되는 카이스트에 합격하는 바람에 군 복무는 하지 않고 군적만 보유하게 됐다.”
―카이스트 출신으로는 1세대인 셈인데 당시 과학기술계 분위기는 어땠나.
“박정희 전 대통령이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세우면서 과학기술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는 소위 ‘과학입국’의 기치를 앞세웠다. 서울 홍릉에 1973년 카이스트를 설립했는데, 교수들은 서울대 교수보다 월급을 3~4배 더 주고 해외에서 스카우트해왔다. 석사 과정 학생에게 군 복무 면제 혜택과 관련 업계 취업을 보장해줘 당시 카이스트 석사과정 입학은 대학생들 사이에서 선망의 대상이었고 합격생들의 자부심도 하늘을 찔렀다. 생물공학과는 다른 학과보다 1년 늦은 1974년 1기가 입학했는데 약대, 공대, 자연대, 농대 출신 등이 주로 들어왔다. 당시 유전공학의 원리가 발견되고, 산업적 이용에 대한 관심이 생길 때였지만 우리가 1기다 보니 실험장비를 청계천 유리가공 업체에 가서 만들어올 만큼 환경은 열악했다. 하지만 우리가 대한민국을 일으켜 세워야 한다는 자부심, 열정만큼은 대단했다.”
―산학협동 연구를 통해 껌에 함유된 충치예방 성분인 자일리톨을 생물공학적으로 대량생산하는 기술을 개발해 1998년 장영실상을 수상하고 이후에도 각종 학술상을 수상하신 것으로 유명하다.
“생명공학 연구자로서 연구를 논문으로 끝내는 것보다는 실제 인류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수준까지 끈질기게 연구해 산업에 이바지하는 것이 과학자의 의무이고 보람이라고 믿고 있다. 자일리톨은 저칼로리로 비만, 혈당 증가와 무관한 차세대 감미료다. 당뇨환자용 링거주사 원료로도 활용되는데 자작나무 등에서 추출되는 천연원료는 너무 비싸다는 단점이 있다. 미생물을 대상으로 유전공학기술을 접목하면 화학 합성 자일리톨보다 친환경적이고 인체에 무해하게 생산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에 착안해 7년간의 연구 끝에 천연자일리톨을 대량생산할 수 있는 기술의 산업화에 성공하게 됐다. 다만 현재는 원료생산국인 중국 측이 한국 경쟁사를 도태시키려는 의도로 원자재 가격을 터무니없이 높여 국내 천연자일리톨 생산이 중단된 것이 안타깝다.”
―현재 국내 생명공학 연구와 산업의 발전 정도는 세계 수준에서 어느 정도 위상으로 평가하나. 또 생명산업 발전을 위한 당면 과제가 있다면.
“전 세계 생명공학 제품 시장은 연간 약 200조 원 규모로 추정된다. 이 중 미국이 40% 정도를 차지해 압도적인 1위고, 한국은 연간 4조~5조 원대로 3% 수준에 머물러 아직 미미한 수준이다. 독일·일본·프랑스 등은 8~10%로 우리보다 2~3배 많은 시장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세계시장의 6~7% 정도 돼야 바이오 선진국 대열에 들어간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아직 선진국에 비해 산학협력이 취약한 편이다. 우리 대학은 호기심을 바탕으로 한 학문적 연구를 하는 경향이 강한 반면, 기업은 응용연구를 원한다. 그 틈이 있는데 산학이 좀 더 활발한 교류를 통해, 기업이 적극적으로 학문을 만나야 한다. 갑갑한 얘기지만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구개발비 비중은 전 세계 최상위 수준이지만 투자 대비 성과물이나 산업적 효과가 낮다. 그 이유는 산학협력이 잘되지 않고 단절돼 있기 때문이다.”
―생명공학 발전을 위해 정부가 무엇보다 먼저 서둘러 해야 할 일은 무엇이라고 보나.
“정부도 없는 살림에 엄청나게 지원하고 노력하고 있다. 그런데 절대 액수로 본다면 미국의 20분의 1에 불과하다. 틈새 전략을 잘 짜서, 우리의 강점을 살리고 집중해야 한다. 스위스, 덴마크, 네덜란드 등 유럽국가의 강소국을 모델로 해야 한다. 그 사람들이 최고로 잘사는 이유는 자기네만의 독특한 강점을 살려 독보적인 산업과 기술이 있기 때문이다. 힘든 작업이지만 우리도 전략이 필요하다.”
―우수 인재의 이공계 기피 현상으로 우리나라가 근본적인 성장동력의 위기와 인재의 해외 유출 우려도 큰 상황인데 바람직한 이공계 인재 육성을 위한 견해가 있다면.
“우리나라가 좁은 국토에 지하자원도 없는 상황에서 국민소득 2만8000달러로 세계 경제 대국 10위권의 문턱에 진입한 것은 높은 교육열과 근면함, 3공화국 시절부터 과학기술을 바탕으로 한 경제개발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우리 경제의 발전 토대는 과학기술로, 이는 과거, 현재는 물론, 미래에도 변함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 이공계 기피현상이 시작되면서 우수 인재들이 의대나 법대를 선호하는 경향이 심화되면서 국가경제의 장래에 대해 우려가 커지고 있는데 이는 국가가 정책을 잘못 펼치기 때문이다. 의대·법대를 더 선호하는 이유는 너무도 자명하게 수입이 높기 때문이다. 말로는 과학자 역할이 중요하다고 떠들지만 실제 수입 면에서 상대적으로 불리한데 누가 오겠나. 이제라도 정부는 과학자들을 사회적으로 우대하고 급여체계를 강화하는 정책을 세워줘야 한다. 확실하게 ‘과학입국’의 의지를 온 국민이 체감할 정도로 각종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끝으로 이공계 과학도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과학기술자들은 끊임없이 ‘왜?’라는 질문을 던지고 그 해법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그 과정에서 많은 도전과 실패를 반복하면서 새로운 세상을 여는 법칙을 발견하는데 이 과정에서 필요한 것이 창의력이다. 창의력은 공상 속에서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어떤 상황의 한계점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는 과정에서 얻어지는 축복이고 선물인 것이다. 대학 시절 너무 학점에 집착하지 말고 하고 싶은 분야에 대해 과감히 도전하고 앞으로 인생에서 무엇을 해보고 싶은지 여러 가지 경험을 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인터뷰=김창희 차장 (전국부) ch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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