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리포트] 세계가 금지하는 집속탄, 우리는?

정규진 기자 2016. 9. 28.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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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질녘 카메라가 멀리서 태양이 떠오르듯 반짝이며 하늘로 치솟는 수십 개의 불빛을 담습니다. 다연장 로켓입니다. 이어 카메라는 다연장 로켓이 떨어진 마을을 잡습니다. 마치 LED 전구 수십 개가 켜졌다 꺼졌다는 반복하듯 섬광이 쉴 새 없이 여기저기서 번쩍입니다.

섬광이 터지는 범위는 어림잡아 반경 1킬로미터는 족히 돼 보입니다. ‘잔인한’ 불꽃쇼는 1분 가량 지속됩니다. 폭격이 끝난 뒤 마을은 자욱한 연기로 뒤덮였습니다. 수 백발의 폭탄이 터진 마을은 초토화가 됐습니다.

[SBS 뉴스 사이트에서 해당 동영상 보기]

(출처 : GlobalLeaks News, youtube )

● 폭탄 속의 폭탄 ‘모자(母子)폭탄’

이 영상은 지난해 가을 ‘하마’란 반군거점 부근 마을을 러시아군이 폭격한 걸 촬영한 겁니다. 마을을 한 순간에 쑥대밭으로 만든 ‘위력적인’ 폭탄이 바로 ‘집속탄’(集束彈, cluster bomb )입니다. 집속탄은 한마디로 용기 안에 작은 폭탄이 수십~수백 개가 들어있는 폭탄을 말합니다.

폭탄이 폭탄을 안고 있다고 해서 ‘모자(母子)폭탄’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타이머에 의해 폭탄이 공중에서 터지면서 작은 폭탄이 넓은 지역에 퍼지는 효과를 냅니다. 폭탄 하나로 여러 개 폭탄을 쓴 것 같은 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목표물을 하나로 특정하지 않고 그 주변을 한 번에 폭격할 때 용이합니다. 예를 들어 대규모인 적군이나 진지를 겨냥할 경우를 최적의 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집속탄 원리

이런 집속탄의 장점은 곧 단점이기도 합니다. 불특정한 다수를 겨냥한 대량살상에 아주 용이하기 때문입니다. 적이 점령한 마을, 그 곳에 민간인도 있습니다. 특히 민간인에 적이 숨어든 경우, 적이 있는 곳을 쉽게 특정할 수 없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집속탄을 쓰면 적을 제압하는 건 편하겠죠? 그럼 민간인들은 어떻게 되나요?

빈대 잡다 초가삼간 태우는 식, 배보다 배꼽이 큰 식으로 막대한 희생을 낳을 수 있습니다. 집속탄은 아주 넓은 범위로 자탄(子彈)이 퍼지기 때문에 대피하기도 어렵습니다. 집속탄 한 발의 위력은 축구장 3개를 초토화할 수 있고 1개 중대 병력을 한꺼번에 살상할 수 있습니다.

하늘에서 시뻘건 불길이 비오듯 주변을 다 태워버리는 백린탄도 집속탄의 일종입니다. 백린탄이 떨어지는 모습을 ‘Steel Rain’이라고 표현하는데, 백린탄은 고열로 물체 깊숙이 파고 들어가 녹여버리기 때문에 핵무기를 제외하고 ‘인류 최악의 무기’라는 악명을 얻고 있습니다. ( 2014년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폭격할 때 이 백린탄을 마구 썼죠. 피난시설로 쓰던 학교도 이스라엘의 백린탄에 폭격당하기도 했습니다. ) 백린탄의 희생자들은 살과 뼈가 다 녹아버린 처참한 모습이라 차마 담지는 못 하겠습니다.

[SBS 뉴스 사이트에서 해당 동영상 보기]

(출처 : WhattaMachine Tech&Space News, youtube)
2014년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주민의 대피소인 학교에 백린탄을 폭격한 장면
요즘 집속탄은 모탄에서 수십 개의 자탄을 실은 탄도가 분리되고, 이 탄도가 낙하산이 타고 넓게 퍼져가다 ‘열’을 감지하면 목표를 향해 수십 개의 자탄이 튀어나가는 방식입니다. 살상력과 폭격 범위는 훨씬 강하고 넓겠죠. ‘CBU 105’ 라는 폭탄이 그런데, 우리나라도 가지고 있습니다.
최신형 집속탄 CBU 105
이런 가공할만한 무기를 너도나도 쓴다면 전쟁이 끝난 뒤 남아나는 게 없겠죠. 무고한 민간인의 피해는 불 보듯 뻔합니다. 이런 식으면 이기기 위한 전쟁이 아니라 죽이기 위한 전쟁으로 전쟁의 의미가 변질 되는 겁니다.

● 30%의 불발탄, 라오스에만 8,000만 개

집속탄은 30%가 불발탄으로 남습니다. 당장의 피해 뿐 아니라 전쟁이 끝난 뒤에 남기는 상처도큽니다. 대표적인 피해 지역이 라오스입니다. 베트남전쟁 당시 미국은 북베트남(베트공)이 물자를 라오스를 통해 들여오자 라오스에 대대적인 폭격을 가했습니다.

9년간 60만번의 폭격, 2백만 톤의 폭탄이 라오스에 투하됐습니다. 8분 마다 한 번 씩 폭격한 셈입니다. 라오스는 고산밀림이 많아 대부분 폭탄은 살상 효과를 높이기 위한 집속탄이 사용됐습니다. 당시 쓰인 집속탄의 자탄은 3억 개,(지금까지 전세계에 사용된 집속 자탄이 4억 5천만 개니 3분의 2가 다 라오스에 떨어진 셈입니다.) 이중 30%인 8천만 개의 자탄이 불발탄으로 남아 있습니다.

베트남전에서 쓴 집속탄, 하나의 집속탄에 수백 개의 자탄이 들어있다

산악지대 곳곳에 숨어버린 불발탄은 언제 어디서 터질 지 모를 지뢰와 같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이 불발탄 때문에 숨지거나 다친 이들이 2만 여명에 달합니다. 40년이 지난 지금도 매년 50명의 희생자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라오스 정부가 불발탄 제거 작업을 벌이고 있다지만 지금까지 제거된 불발탄은 8천만 개의 1%밖에 되지 않습니다.

결국 9월초 라오스를 방문한 오바마 미 대통령이 라오스의 상흔을 치유하게 위해 적극적인 지원에 나섰습니다. 물론 ‘결자해지’의 행동이지만, 불발탄 제거를 위해 9천만 달러, 우리돈 995억원을 내놓기로 했죠.

● 111개국 집속탄 금지, 미국·러시아·한국은 협약 거부

집속탄의 이런 문제 때문에 2008년 111개 국가가 오슬로에 모여 집속탄의 생산과 이전, 사용, 비축을 금지하는 협약을 체결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빠져서는 안 될 군수강국인 미국과 러시아, 중국은 의정서 서명을 거부했습니다. 이스라엘과 인도, 파키스탄, 북한, 그리고, 우리나라도 협약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집속탄에는 ‘국제적으로’ 사용이 금지된 무기라는 한계성 수식어가 따라붙습니다.

러시아는 시리아에서 반군 지역에 대놓고 집속탄을 쏟아 붇고 있습니다. 유튜브에는 러시아제 전투기에서 투하된 집속탄이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영상이 한 두 개 아닙니다. 이른 바 최신식 집속탄인 낙하산형 폭탄도 목격됐습니다. 집속탄에 폭격을 받아 희생된 민간인의 영상도 수두룩 합니다.

국제사회가 대량살상무기로 무고한 희생이 늘어가는데 러시아와 시리아 정부를 비난하고 있지만 이들 둘은 아랑곳 하지 않습니다. “난 가입도 안 했으니 쓴다고 무슨 상관이냐?” 라는 말대꾸조차 하지 않습니다. 너희가 비난하든 말든 내 갈 길을 간다는 식입니다.

미국은 좀 다른 모양새입니다. 국제사회의 비난을 의식한 듯 백악관이 최근 집속탄의 사우디에 대한 수출금지조치를 내렸습니다. ‘CBU 105’ 라는 최신형 집속탄인데, 사우디가 예멘 내전에 개입해 이 집속탄을 후티반군 지역에 마구 뿌리면서 민간인 희생이 급증하자 수출을 금지한 겁니다.

미국의 유일한 집속탄 생산 업체도 수출길이 막히자 생산을 중단했습니다. 그렇다고 미국이 집속탄을 폐기하거나 사용을 안 하겠다는 건 아닙니다. 소중한 인간의 생명을 대가로 돈벌이를 한다는 국제사회의 비난을 회피하기 위한 조치로 보여집니다.

● 한국은 집속탄 투자 2위국

집속탄을 버리지 않는 나라가운데 눈에 들어오는 게 바로 ‘대한민국’입니다. 우리나라가 비인도적 대량살상무기 보유국가란 오명을 받으면서도 집속탄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뭘까요? 군사전문가들은 북한과 대치하는 분단의 실정을 이유로 듭니다.

병력 규모면에서 북한에 뒤지는 우리나라가 전시에 북한의 대규모 병력을 효과적으로 제압하기 위해선 집속탄이 필요하다는 논리입니다. 우리나라의 지형이 산악지대가 많아서 폭탄의 살상반경이 좁다는 거죠. 그래서 자탄이 넓게 퍼져 폭격 반경이 큰 집속탄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한반도에 전쟁이 벌어지면 순식간에 북한군이 밀려 내려올 것이고 긴급한 상황에 집속탄 만한 방어 수단이 없다는 겁니다. 물론 북한도 집속탄을 가지고 있으니 우리도 보유할 수 밖에 없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거죠. 우리가 굳이 쓰지는 않겠지만 유사시에 대비해 보유할 필요는 있다는 겁니다. 비등한 군사력은 역설적으로 전쟁을 억제하는 효과를 낸다는 이론도 있습니다.

집속탄은 스틸레인 ‘STEEL RAIN’ 이라고 불릴 정도로 폭격범위가 넓다

네덜란드에 본부를 둔 평화연구소 PAX가 최근 보고서를 발간했습니다. 전세계 158개의 금융기관이 집속탄 생산에 33조원을 투자했다는 내용입니다. 미국이 76개사로 가장 많았습니다. JP모건이나 뱅크오브아메리카 같은 굴지의 금융사가 포함됐습니다.

우리나라도 불명예스러운 타이틀을 달았는데 미국 다음으로 많은 21개사가 집속탄 생산에 투자한 걸로 조사됐습니다. 삼성부터 현대중공업, SK, 동부, 농협 같은 한국의 내로라하는 굴지의 기업뿐 아니라 국민연금까지도 집속탄 생산기업에 투자한 것으로 나왔습니다. ‘생명보험기업’도 들어가 있던데 회원들의 만수무강을 빌면서 학살무기를 생산하는 기업에 투자를 한다는 데 솔직히 비위가 상하더군요.

PAX 보고서에 따르면 전세계에 집속탄을 생산하는 업체는 모두 8개사인데 우리나라에선 한화와 풍산 2곳이 포함됐습니다. 솔직히 전 세계의 4분의 1이니 적은 비중은 아니죠. 한국의 금융사들은 대부분 돈을 한화와 풍산에 투자했더군요.

기업 입장에선 투자 기업의 비전과 수익성을 보고 투자한 거지 특정 무기 생산을 염두에 두고 투자했을 것이라고는 보지 않습니다. 다만, ‘필요악’적인 이유로 집속탄을 생산.보유하고 있더라도, 세계적으로 학살무기라며 집속탄을 금지하는 상황에서 집속탄 생산기업에 투자할 때 최소한의 도덕적인 고민을 했느냐에 대한 의문이 남습니다. 위에 나온 대기업들 자사 이미지 광고를 통해 인재가 중요하니 사람이 우선이니 한껏 떠들었잖아요?

그렇다면, 돈벌이를 할 때도 그 대상을 자신들 기업의 가치에 걸맞게 선택을 하는 자세는 필요하지 않았냐는 거죠. 뭐 ‘딴지걸기’식 말장난 아니냐고 반박해도 할 말은 없습니다.

저 스스로도 러시아와 시리아 정부가 무차별적으로 집속탄을 퍼붇는다는 리포트를 하면서 과연 내가 이런 말 할 자격이 있는 나라의 기자인가? 라는 자책과 부끄러움을 느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기 때문이죠. 우리나라가 러시아 같은 학살자는 아니더라도 학살을 각오하고 있는 나라라는 점은 분명하거든요. 집속탄을 유사시 최선의 수단이라고 판단하는 지금에선…    

정규진 기자soccer@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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