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당국은 왜 백남기 농민 부검에 집착할까

박준용 기자 입력 2016. 9. 27.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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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검영장 청구에 "은폐시도 아니냐"비판

9월26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 병원 장례식장에는 헌화행렬이 이어졌다. 숨진 고(故)백남기 농민을 추모하기 위한 발걸음이다. 백씨는 2015년 11월 1차 민중총궐기 집회에 참가했다가, 경찰이 직격으로 쏜 물대포를 맞아 혼수상태에 빠졌다. 그는 317일 간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채 끝내 9월25일 오후 숨졌다. 

 

경찰이 쏜 물대포에 맞은 백씨가 사망하자 수사당국이 가장 먼저 취한 조치는 ‘부검을 하겠다’고 요청한 것이었다. 9월25일 백씨의 사망 후 곧장 ‘백씨의 부검’을 포함한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했다. 수사당국은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숨진 백씨의 부검을 요청하는 이유에 대해 “사인을 규명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수사당국이 요청한 ‘강제 부검’은 정당성과 필요성이 결여됐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우선 유족 측은 백씨의 부검을 반대한다는 입장이다. 수사당국은 유족과 협의를 하지 않은 채 ‘부검시도’에 나서고 있다. 박석운 백남기대책위원회 공동대표는 “검찰이 유가족과 부검관련 논의를 협의해 진행하겠다고 하다가 갑자기 부검 영장을 청구했다”고 말했다. 백씨의 장녀인 백도라지씨도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부터 경찰이 병원 주변에 왔고, 장례식장으로 시신을 옮길 때도 방해했다“면서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민중총궐기대회 당시 경찰의 물대포에 맞고 의식불명에 빠졌던 농민 백남기 씨가 25일 사망했다.©연합뉴스

의료적 필요성에도 의문이 제기된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인의협)는 “환자의 발병 원인은 경찰 살수차의 수압과 수력으로 가해진 외상으로 인한 외상성 뇌출혈과 외상성 두개골절 때문이며 당시의 상태는 당일 촬영한 CT 영상과 수술 기록으로 확인할 수 있다”면서 “외상 부위는 수술적 치료 및 전신상태 악화로 인해 변형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으므로 사망 선언 후 사인을 밝히기 위해 부검을 하는 것은 불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인의협 소속 의료인 전진한씨도 “병사로 돼 있는 사망진단서가 엉터리에 가깝다. 사망 진단서는 원 사인을 기준으로 사인을 판단해야 하게 돼 있다”면서 “수술 기록, 진료 기록에도 다 나와 있듯 백씨의 원 사인은 '외상에 의한 뇌출혈'이다”라고 말했다.

 

법원도 수사당국의 ‘부검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9월26일 새벽 부검영장을 기각했다. 하지만 수사당국은 부검시도를 멈추지 않을 모양새다. 백씨에 대한 부검영장을 재청구했는데 9월27일 서울중앙지법은 경찰 쪽에 영장의 필요성과 상당성에 대한 추가 소명 자료를 제출하라고 요구한 것으로 전해진다.​

 

거듭되는 부검영장 청구를 두고 수사당국이 백씨의 부검을 원하는 목적이 ‘정확한 사인 규명’과는 동떨어진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백씨의 사망사건 규명을 은폐하려는 시도라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인의협은 “발병원인이 명백한 환자에게 부검을 운운하는 것은 발병원인을 환자의 기저질환으로 몰아가려는 저의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상식적인 의심을 하게 된다”고 분석했다. 

 

정현찬 백남기대책위 공동대표도 "(경찰의 부검영장 신청은) 백 농민이 지병으로 죽은 것처럼 뒤집어씌우려는 것"이라며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다"라고 말했다. 

 

박준용 기자 juneyong@sisa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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