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찌감치 결혼·출산 포기하는 청소년들..왜?

고영득 기자 2016. 9. 17.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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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요즘 세상에 혼자서도 살기 힘든데 결혼까지 한다고요?”

수도권에 있는 한 고교 3학년생 김모군(19)은 평생 음악가로 사는 게 꿈이다. 김군은 결혼을 인생의 ‘걸림돌’로 생각하고 있다. 김군에게 최우선은 자신이고, 가족은 그 다음이다. 우선순위 상위권에 ‘결혼’이란 단어는 없다. ‘만일 결혼하게 된다면’이란 전제를 달아보게 했다. 김군은 “결혼한다 해도 둘이서 잘살면 된다. 굳이 아이까지 낳으면서 힘들게 살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곽모양(17)은 좋아하는 사람과 만나면 결혼할 생각이 있다고 했다. 다만 자녀 출산에 대해선 고개를 가로저었다. 곽양은 “아기가 태어나서 자랄 때까지 잘 보살필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아이가 나중에 잘못 나가면 굉장히 마음이 아플 것 같다”며 “그래서 미리 그런 일을 만들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만일 결혼할 사람이 아이를 갖고 싶다고 한다면 만나지 않을 것”이라고 못박았다. 이모양(19)은 “내 몸을 임신과 출산으로 힘들게 하고 싶지 않다”고 2세 출산 포기 이유를 댔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신생아실이 텅 비어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정부가 저출산을 우려하며 각종 정책을 내놓고 있는 가운데 미래 가임세대인 청소년들 사이에선 일찌감치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는 경향이 확산되고 있다. 결혼을 의무가 아닌 선택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2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내놓은 보고서 ‘저출산·고령사회 대응 국민 인식 및 욕구 모니터링’에 따르면 중·고교생 2명 중 1명은 결혼을 하지 않아도 살아가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학생과 고등학교 1~2학년생 1179명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 결과다.

청소년들은 ‘결혼을 하지 않아도 살아가는 데 문제가 없다’는 항목에 52.6%가 동의했다. 이런 경향은 여학생일수록, 고학년일수록 강했다. 여학생은 28.7%가 자녀가 없어도 된다고 응답했다. 고교 2학년은 35.0%가 자녀가 필요 없다고 했다. 자녀가 없어도 되는 이유로는 ‘내 일에 전념하고 싶어서’(29.8%)가 가장 많았고 ‘양육비 및 교육비 부담’(26.8%), ‘부모 역할 부담’(12.3%) 순이었다.

이 결과에 대해 보고서는 “한국 사회에서 여성이 결혼 생활과 학업 또는 일에서의 성취를 동시에 수행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라는 인지하고 있어 만혼화 현상이 더 고착화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고 분석했다. 보고서는 “청소년들도 결혼, 출산, 자녀 양육과 관련한 학교 교육의 필요성을 인지하고 있지만, 학습만으로는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많았다”며 “저출산과 관련한 학교 교육을 체계적으로 실시하는 한편 체험학습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1983년부터 저출산에 돌입한 한국은 이후 2001년부터 1.3명 미만의 초저출산국이 됐다. 지난달 통계청이 발표한 2015년 출생통계(확정치)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1.24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7개국 중 36위를 기록했다.

출산율 증가는 장기적으로 경제성장률에 영향을 미치게 마련이어서 정부는 저출산 탈출구 확보에 안간힘을 쓴다. 하지만 근시안적 대책으로 생색만 낸다는 지적을 받는다.

지난달 정부가 난임치료 지원 확대와 남성 육아휴직 수당 확대 등 대책을 내놓은 것과 관련,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관계자는 “난임부부 중 소득이 있는 계층은 이미 스스로 치료를 받고 있고, 여성도 육아휴직 후 복귀하기 어려운 한국의 기업문화 현실에서 말뿐인 정책이 될 공산이 크다”며 “근본적인 저출산 대책은 주거비와 교육비 부담 완화”라고 말했다.

이 같은 지적을 방증하듯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는 건 교육정책 등 현 사회의 구조적 문제 때문이라는 청소년들의 따끔한 충고도 들렸다. 서울 마포구의 한 중학교 3학년생인 강모양(16)은 현재로선 결혼이나 출산 생각은 전혀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

“혼자 살아도 전혀 문제가 될 게 없잖아요. 아이도 낳고 싶지 않아요. 교육비가 많이 들잖아요. 또 육아휴직을 쓰면 승진에도 문제 있다고 들었어요. 무엇보다 한국은 청소년이 살기 좋은 나라가 아니잖아요. 지금과 같은 교육환경이라면 자식에게까지 제가 받고 있는 스트레스를 주고 싶지 않습니다.”

<고영득 기자 god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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