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자들'의 '부당거래'..현실이 된 허구

박재용 2016. 9. 14.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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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에 단어 세 개만 좀 바꿉시다. ‘볼 수 있다’가 아니라 ‘매우 보여진다’로.”

영화 ‘내부자들’에서 언론사 논설주간인 백윤식(이강희 역)의 말이다.

언뜻 보기에는 그 말이 그 말 같지만 풍기는 뉘앙스는 사뭇 다르다.

“어떠어떠하다고 보기 힘들다, 볼 수 있다, 매우 보여진다...”

백윤식의 말대로 같은 사안이라도 서술어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본질이 크게 달라진다.

권력자에 대해 부패 의혹이 제기될 경우 당연히 ‘나쁘다고 매우 보여진다’거나 적어도 ‘나쁘다고 볼 수 있다’고 표현해야 하나 ‘나쁘다고 보기 힘들다’로 치부되는 경우가 많다.

언론이 어떤 부분에 강조점을 두느냐에 따라 사실을 왜곡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백윤식은 펜 끝으로 여론을 어떻게 조작하는 지를 보여주고 있다.

영화 ‘부당거래’


“세금 낼 거 다 내면 고생하시는 우리 검사님 양복 누가 챙기나?”

영화 ‘부당거래’에서 스폰서인 태경그룹 김 회장이 검사 류승범(주양 역)에게 하는 말이다.

재벌 회장과 검사 사이의 은밀한 거래를 엿볼 수 있는 대화이다.

이런 거래는 기자와도 맺어진다.

검사는 유리한 보도를 위해 기자에게 성 접대를 하고 고가의 선물을 제공한다.

하지만 자기편을 건드는 사람에게는 한없이 매몰차다.

스폰서의 약점을 잡고 물어지는 형사 반장과의 갈등 속에서 영화는 복잡한 갈등 구조를 만들어낸다.

조작된 범인을 둘러싸고 물고 물리면서 부당 거래를 하는 경찰과 검사, 그리고 스폰서의 관계에서 우리는 대한민국 현재의 모습을 읽는다.

영화 ‘내부자들’


“어차피 대중들은 개, 돼지들입니다. 적당히 짖어대다가 알아서 조용해질 겁니다.”

영화 ‘내부자들’에서 논설 주간 백윤식이 자신의 스폰서인 오 회장에게 여론에 신경 쓰지 말라면서 한 말이다.

이 말은 교육부의 한 고위공무원이 기자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인용하면서 사회적으로 큰 파장과 공분을 일으켰다.

영화 속에서는 여론 그까짓 거 아무 것도 아니라고 무시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해당 공무원은 여론의 뭇매를 맞고 파면 조치 당했다.

분노한 여론은 절대 무시하고 깔볼 대상이 아닌 것이다.

영화 ‘내부자들’ 제작 장면


올해 초 한국 영화계에 새로운 기록이 하나 세워졌다.

청소년 관람 불가 영화인 ‘내부자들’이 관객 900만 명(감독판 영화와 합산)을 돌파한 것이다.

그전 청불(靑不) 영화의 최고 기록은 ‘친구’의 818만여 명이었다.

관객을 성인으로만 제한하는 영화로서는 대단한 흥행 기록이다.

2010년에 개봉한 ‘부당거래’도 272만여 명의 기록을 세웠다.

그럼, 이들 영화의 무엇이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일까?

영화는 우리 사회의 비리와 부패의 사슬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검찰과 경찰, 그리고 스폰서의 부당한 거래(‘부당거래’)를 뛰어 넘어 정치 권력과 재벌, 언론이 야합(‘내부자들’)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내부자들’에서는 ‘별장 성 접대 사건’이나 ‘신문사 논설 주간 비리 사건’을, ‘부당거래’에서는 ‘스폰서 검사 사건’ 등을 연상케 하는 장면들이 나온다.

한때 큰 파문을 일으켰고 지금도 우리 사회를 뒤흔들고 있는 사건들이다.

관객들은 영화를 통해 이른바 ‘가진 자’와 ‘힘 있는 자’들의 세상을 엿보며 혀끝을 찬다.

그러면서 비록 깡패지만 “화끈하게 복수극 영화 한판하자”며 부패 집단을 파헤치는 이병헌(안상구 역)의 활약에 박수를 보낸다.

영화 ‘부당거래’


이들 영화가 허구임을 알면서도 허구로만 생각되지 않는 이유는 그만큼 우리 사회의 정의가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정의를 실현해야 할 언론과 정치인, 검찰과 경찰이 제 역할을 못 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현실에서 실망감을 느낀 관객들은 영화에서나마 정의가 실현되는 모습에 어느 정도 위안을 받는다. 일종의 대리 만족이다. 하지만 이들 영화의 역할은 거기서 끝나고 있다.

영화가 영화로만 머물지 않고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대중들은 무언가를 요구해야 한다.

영화 ‘도가니’, ‘이태원 살인사건’


2011년 개봉한 영화 ‘도가니’는 아동·장애인 성폭력 범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의 ‘도가니법’을 이끌어냈다.

1997년 이태원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은 부실 수사 논란과 함께 미제로 남을 뻔했지만 이를 다룬 영화 ‘이태원 살인 사건’이 상영되면서 사건은 재조명을 받게 됐다.

재수사 여론이 강하게 일자 검찰은 곧바로 재수사에 들어갔고 지난해 미국인 용의자가 한국으로 송환돼 현재 재판을 받고 있다.

최근 들어 사회 고발성 영화들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관객들의 관심도 크다.

하지만 이들 영화들이 제기하는 ‘권력의 전횡’ 문제를 감시하는 제도적 필요성에 대한 결집된 여론 형성까지는 나가지 못하고 있다.

“정의? 대한민국에 아직 그런 달달한 것이 남아 있긴 한가?”라는 이병헌의 말처럼 패배 의식에 빠져서는 안 된다.

위에서 말했듯이 여론이 분노하면 절대로 무시하거나 깔볼 수 없다.

그런 여론을 만드는 것은 궁극적으로 국민의 몫이다.

박재용기자 ( pjyrep@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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