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 | <선택> 출판기념회] "아쉬움은 당연히 남지만 후회는 남기지 않았다"

글·월간산 서현우 인턴기자 2016. 9. 12.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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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우, 최인수 대원, "누구나 다 그렇게 했을 것"'행복한 빚쟁이' 곽정혜가 펴낸 <선택> 보고회에서 극찬 이어져

“형,지금 올라가면 살면서 평생 후회할 것 같아.”

[월간산](왼쪽부터) 곽 씨와 딸 봄이, 중동고 은인인 박재우씨와 이명호씨.

2006년 5월 18일 정오, 곽정혜 씨는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랐다. 우리나라 여성 산악인 중 5번째의 쾌거였다. 등정의 기쁨이 미처 가시기도 전, 하산 도중 목에 걸려 있던 캠코더를 벗기 위해 배낭을 벗는 순간 균형을 잃으며 100m 아래 나락으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중동고 원정대 박재우, 최인수, 이명호 대원이 곽씨를 발견, 마지막 캠프로 후송했다. 신속하고 극진한 응급처치를 통해 곽씨는 가까스로 의식을 되찾았다. 아직 의식을 또렷이 차리지 못한 곽씨를 앞에 두고 이명호 대원이 정상 등반 의사를 물어왔다. 그러자 박재우, 최인수 대원은 곽씨를 마저 구조하기 위해 에베레스트 정상을 포기하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시간이 한참 흐른 뒤 무전을 통해 들려오는 이명호 대원의 정상 등정 소식에 그들은 눈물 한 방울을 삼킨다.

급박했던 순간의 선택

<선택>은 당시 급박했던 순간 에베레스트 등정 이전과 이후의 산악인 곽정혜의 삶을 담은 책이다. 또한, 곽씨에게 두 번째 삶을 준 박재우, 최인수씨를 포함해 곽씨 구조를 위해 희생한 많은 사람들에게 헌정하는 비망록이기도 하다. 자신의 산을 포기하는 이들의 선택은 산을 잘 모르는 이들마저도 가슴을 뜨겁게 했다.

지난 8월 11일 오후 강남구 청담동 킹콩빌딩 8층 라운지에서 열린 <선택> 출판기념회에서 박재우씨를 만났다. 이날 행사에는 곽씨의 가족과 더불어 아시아산악연맹 이인정 회장, 한국산악회 정기범 회장 등 내로라하는 산악계 원로들이 모여 자리를 빛냈고, 중동고원정대 지훈구 대장, 박재우, 최인수 대원 등이 참석해 의미를 더했다.

아시아산악연맹 배경미 사무총장의 개회사로 시작한 행사에서 책의 감수와 서평을 맡았던 이용대 명예교장은 “희생, 봉사, 애타심이 없는 이 시대에 유의미한 기록”이라고 축사를 전했다.

한국산악회 정기범 회장도 “휴머니즘에 대한 책”이라며 “중동고 원정대의 자기희생의 숭고함이 전해진다”고 말했다.

[월간산]<선택>을 펴낸 곽정혜 씨.

김영도 고문은 박정헌의 책 <끈>을 언급하며 “산서를 좀처럼 쓰지 않는 현 세태에 정말 놀라운 일”이라며 “앞으로 영원히 고전으로 남을 책”이라고 극찬했다.

축사가 끝난 후 저자인 곽씨가 감사를 표하며 등장했다. 곽씨는 2006년 에베레스트 등정의 영광스러운 순간을 다시 떠올리며 “따뜻한 관심과 격려를 보내 주신 모든 원로 및 선후배, 천안·클린 에베레스트 원정대에게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책에 대한 극찬이 다소 부끄럽다는 곽씨는 “문학적, 대중적으로 높은 수준의 책은 아니다”며 “산의 정서이자 산의 언어로 썼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밝혔다. 중동고원정대원들이 입을 모아 “이번 책 출판으로 마음의 짐을 덜기를 바란다”고 말했지만, 곽씨는 “이젠 죄책감이 아니라 제가 살아가는 원동력으로 삼아 행복한 빚쟁이로 살고 싶다”고 웃으며 마무리했다.

정상(頂上)에 오르지 않은 정상(正常)인

이 책은 곽씨의 에베레스트 등정 이야기를 담았지만, 진정한 주인공은 당시 주변의 산악인으로 삼았다. 특히 박재우씨는 에베레스트 등반을 위해 다니던 직장을 그만둔 상태였고, 최인수씨는 부인에게 유급휴가라고 거짓말을 한 채 무급으로 원정을 온 상태였다.

이들은 하나의 산 정상을 오르지 못한 것이 아니라, 두 번 다시는 오지 않을 젊음과 꿈을 포기한 것이다. 박씨는 3캠프를 지나 로체 페이스를 내려오는 도중에 뜨거운 눈물을 쏟았을 정도로 아쉬움이 컸다.

그러나 이번 행사에서 만난 박씨는 “아쉬움은 당연히 남지만 후회는 남기지 않았다”며 “곽씨를 구한 게 아니라 그저 산에서 인연이 닿은 것 뿐”이라고 했다. “당시 천안 팀도 로체 등정을 포기하고 캠프4에서부터 하산을 도맡아줬는데, 우리만 너무 주목받는 것 같아 부끄럽다”고 밝혔다.

“책에는 제가 다소 ‘흥분했다’고 나와 있는데 그렇게까지 당황하진 않았어요. 당시 원정대에서 의료를 맡고 있었는데 아이스폴에서 추락한 한 대원을 치료한 후 다소 긴장하고 있던 차에 정혜를 만나서 그렇게 보였나 봐요.”

박씨는 “정혜를 발견한 후 짐 끌듯이 끌고 와서 보니 상태가 매우 심각했다”고 회고했다. 박씨는 최씨와 함께 의식도 없고 호흡이 약한 곽씨를 고산증세로 판단하고 비아그라를 처방한 후에 산소마스크를 씌우고 심장마사지를 계속했다. 곽씨가 의식을 되찾고 살아나자 그저 감사한 마음밖에 들지 않았다고 했다.

[월간산]8월 11일 청담동 킹콩빌딩 8층 라운지에서 열린 <선택> 출판기념회 전경.

“정상 공격을 포기하고 어느 정도 수습이 됐을 당시에는 다시 한 번 기회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날씨도 좋았고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준비가 잘되어 있었거든요. 하지만 계산된 대로 움직여야 한다고 베이스캠프의 대장께서 판단하면서 결국 하산하게 됐죠.”

당시 서른네 살이던 박씨는 “원정을 위해 다니던 건축 설계사무소를 그만 두고 에베레스트에 가기로 결정했었다”며 “이후 프리랜서로 일하다가 현재는 개인 사업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같이 남았던 최씨는 현재 방송통신위원회에서 공무원으로 근무하고 있다고 전했다.

당시 중동고 창학 100주년 기념으로 이뤄진 에베레스트 등정은 110주년까지 7대륙 최고봉을 오르는 것이 목표였다. 중동고원정대는 올해 1월, 남극 빈슨매시프를 등정하면서 대장정에 마침표를 찍었다. 박씨도 엘브루즈와 아콩카구아 원정에 참여하며 해외 원정 등반을 이어갔다. 그러나 여전히 에베레스트는 오르지 못한 채 남아 있다. 박씨는 다시 가고 싶지만 훈련 강도가 너무 힘들었기에 선뜻 말하기 어렵다며 웃었다.

“당시에는 중동산악회가 후원하고 7대륙 최고봉이라는 명백한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사전준비를 철두철미하게 했습니다. 경희대 저압저산소 트레이닝센터에서 훈련하며 다른 등반대의 기록도 꼼꼼히 참고했어요. 또 한라산에서 1주일간 야영하며 장비와 식량도 사전 테스트하고, 임자체(6,189m) 예비 등반도 했습니다. 2년간의 치열한 준비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무사고에 대한 압박감과 책임감이 더욱 컸던 것 같아요.”

박씨는 조난과 구조의 극적스토리 때문에 곽씨의 업적이 평가절하되는 상황에 대하여 안타까워했다. 당시 에베레스트에 있던 26개팀 중 한국 팀은  3개팀이었는데 그중에서도 의료를 맡은 자신을 만난 건 그저 행운이며 응당 누구라도 똑같이 행동했을 테니 자신을 특별한 영웅처럼 여기는 것이 불편하다고 한다.

“그저 제가 거기 있었을 뿐, 누구라도 똑같이 했을 거예요. 저는 영웅이 아니라 그냥 평범한 사람이에요. 그러니 중동고원정대에 의해 구해진 곽정혜가 아니라 우리나라 여성 산악인 중 5번째로 에베레스트 서미터로 기억해 줬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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