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뉴스][오래전'이날'] 9월5일 '여성은 열등한가'

주영재 기자 2016. 9. 4. 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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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오래전‘이날’]은 1956년부터 2006년까지 매 십년 경향신문의 같은 날 보도를 살펴보는 코너입니다. 매일 업데이트 합니다.

■1966년 9월5일 ‘여성은 열등한가’

총무처가 실시한 ‘5급 을류국가 공무원 채용필답시험’에서 여자 200명을 필요로 한다는 세무직에 합격한 여성이 단 한 명에 그쳐 논란이 됐습니다. 여성 고용을 늘리기 위해 특별히 세무직 여직원 200명을 뽑기로 했는데 합격 커트라인 60점을 넘은 사람이 응시자 1300여명 중 단 한 명이었다고 합니다. “여자들은 공부를 안 하는가, 여자들은 본래 능력이 없는가, 남자와 똑같이 경쟁시험을 거치는 한 여자들은 영영 직장을 찾지 못할 것인가. 여자들에게만 시험을 쉽게 하고 커트라인을 낮춰서 필요한 200명을 채워야 하는가” 오늘날 여성들이 들으면 모욕감을 느낄만한 말들이 분분합니다. 경향신문이 인터뷰한 한 대학교수는 저조한 여성 합격률을 여성들의 공부하는 태도가 나빠서라고 말합니다. 지난해 치러진 행정고시에서 여성 합격자 비율이 절반에 육박하고 각 직렬의 수석도 여성들이 휩쓰는 모습을 보면 머리나 태도의 문제가 아니라 분명 다른 구조적 요인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1956년 9월5일 최초의 서울 시의회 개막

1948년 제헌헌법에서 지방자치를 명시하고 이듬해 최초의 지방자치법이 제정된 이후 처음으로 서울에 시의회가 구성됐습니다. 당시 서울시민 150만명의 직접투표로 선출된 47명의 시의원들은 이날 오전 10시 최초의 시의회 개원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서울시의회는 1956년 설치된 지 6년만인 1961년, 5·16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군사정부가 지방자치제도를 폐지하면서 사라집니다. 당시 군사정부는 “지방자치의 부활을 통일 이후로 유보한다”고 결정한 뒤 모든 행정국역의 장을 중앙정부가 직접 임명했습니다. 지방자치의 암흑기는 1987년 6월 항쟁 이후 헌법이 개정되고 지방자치법이 부활하면서 끝납니다. 1995년부터 본격적인 지방자치제가 시작됐지만 아직 한계는 많습니다. 특히 세금 대부분을 중앙정부가 가져가 지방정부가 독립적으로 사업을 진행하기 어려운 한계가 있습니다. 이 때문에 김문수 전 경기지사는 “자치는 없고 지방선거만 있다”고 비꼬기도 했습니다.

■1996년 9월5일 그 몸 그만 깎지?

일본 미쓰비시가 인사사무를 전문으로 하는 자회사를 설립해 인사부 업무를 이 자회사로 이전한다는 소식입니다. 현재의 인사부원 88명 중 61명이 자회사로 가는데 회사 자체의 인건비를 크게 줄이는 장점이 있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회사가 스스로 몸을 깎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사원 전체에 ‘비용의식’을 주입한다는 목적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자회사를 만들어 비용을 줄이는게 기업의 자기 희생처럼 묘사되고 있습니다. 직원들이 스스로를 ‘비용’이라고 느끼도록 압박하는 것이 직원들의 사기 진작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2006년 9월5일 “이제 펜을 놓습니다”

많은 진보 지식인들에게 ‘사상의 은사’로 여겨져온 故 리영희 전 한양대 교수가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50년 지적활동의 마감을 선언했습니다. 그는 “욕심과 집착을 버려야 할 시기가 있는 데 그 시간이 온 것 같다”며 “지금까지 쓴 글들을 묶은 저작집 출간으로 지적활동, 50여년간의 연구와 집필 생활을 마감하려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미 2000년 11월 뇌출혈로 쓰러져 건강이 좋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그는 당시 노무현 정부의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움직임에 군 원로들이 반대한 것에 대해 “남북문제, 작통권 문제는 과거 집권 세력이 거짓으로 꾸며낸 논리체계들에 의한 것”이라며 “진실을 가린 거짓으로 권력을 행사하고 지배하려는 개인, 집단, 사상, 이데올리기”를 드러내는 것이 자신의 글쓰기였다고 밝혔습니다.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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