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잘못 쓰면 죽을 수도" 제품에 잘 보이게 써놓은 독일
[경향신문]

지난 24일 오후 7시(현지시간), 독일 남서부 라인란트팔츠주 마인츠에 있는 유명 생활화학제품 유통회사 데엠(DM) 매장으로 향했다. 소비자 입장에서 한국과 독일의 제품에 어떤 차이가 있을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본 제품들엔 놀라운 문구가 쓰여있었다.
“이 제품은 집의 위생을 위해 좋은 대안이 아닙니다.”

탈취제 제품 겉면엔 번듯이 이런 글이 적혀있었다. ‘이렇게 써놓으면 누가 이 제품을 살까?’ 하는 생각도 잠시, 뒷면을 빼곡히 채운 문구에선 “일부러 잘못 사용하면 몸에 좋지 않거나 죽을 수도 있습니다”, “무조건 통풍이 되는 곳에서 사용하세요”라고 경고하는 글도 보였다.
어떤 곰팡이 제거제엔 “다른 제품과 같이 사용하지 마세요. 같이 사용할 경우 염소 가스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라고 쓰여있었다. 사용할 때는 장갑과 옷뿐 아니라 눈과 입, 얼굴을 보호할 수 있는 장구까지 착용하라고 했다. 소비자들이 제품을 사용할 때 참고해야 하는 설명은 매우 구체적이고 혹시 모를 사고를 대비해 엄격하게 주의사항을 제시하고 있었다. 소비자가 읽기 편리하게 동일한 형식과 픽토그램(그림문자)도 사용했다. 제품의 포장과 표시를 통일한 유럽연합 규제(CLP)를 적용받은 제품들이다.
제품마다 여러 ‘인증마크’ 스티커도 붙어있었다. 액체형 데오드란트 제품엔 ‘Oeko Test(외코 테스트)’ 스티커가, 모기 기피제 뚜껑엔 ‘Stiftung warentest(슈티프퉁 바렌테스트)’ 스티커가 보였다. 스티커엔 각각 1.0, 2.0과 같은 점수와 Gut(좋음), Sehr Gut(매우 좋음)라고 써있었다. 모두 민간기관의 평가 결과다. 기업이 돈 주고 인증을 의뢰하는 게 아니라, 기관에서 자체적으로 전문성을 갖추고 시판 제품의 기능과 친환경성 등을 평가해 제품에 점수를 부여한다. 소비자들은 이 마크를 믿고 제품을 산다. 정부가 1차적으로 화학물질관리제도를 통해서 제품에 유해한 물질이 들어가지 않도록 막는다면, 신뢰성 있는 민간기관들이 2차 검증을 하는 것이다.
혼란은 막는다. 제품 이름에 ‘nature’라고 표기한 주방세제에는 ‘EU 에코라벨’이라는 표시가 함께 나와있었다. EU 에코라벨은 유럽연합 국가들이 협의해 만든 인증제도로 소비자에게 친환경제품 구매를 유도하기 위해 만들었다. 인증 조건도 까다롭고 인증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유효기간인 3~5년이 지나기 전에 갱신해야 한다. 아무 제품에나 ‘친환경’ 딱지를 붙이는 한국 제품들과 다른 모습이다. 마트를 돌아보면서 내내 떠오른 것은 ‘세균과 냄새는 무조건 없애야 행복할 수 있다’고 광고하고, ‘넘치도록 생활화학제품을 권하면서도 유해성은 제대로 알리지 않는’ 한국의 민낯이었다.
<마인츠 |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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