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00대 1' 유치원 입학 전쟁 또 온다..깊어지는 누리과정 갈등
정부, 내년 예산에 누리과정 별도 편성 안해예산 미편성 불안감에 유치원 ‘쏠림 현상’ 반복 우려

경기도 화성시 동탄에 사는 김진이씨(가명·33세)는 지난해 4세 아들을 유치원에 보내기 위해 국공립은 물론 사립 유치원까지 10곳에 원서를 냈다. 신혼집을 구한 곳이 신도시이기 때문에 유치원이 턱없이 모자라 경쟁률은 무려 100 대 1에 달했다. 같은 날 동시에 진행된 유치원 추첨을 위해 지방에 계신 시어머니까지 동원했지만, 결국 추첨에서 떨어졌다. 4세 아들은 현재 다른 도시 유치원에 다닌다.
‘유치원 입학 전쟁’이 올해도 재연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정부가 내년도 예산안에 누리과정(3~5세 어린이의 보육료 지급) 부분을 별도 배정하지 않으면서 중앙정부와 시도교육청의 갈등이 또 일어날 조짐이다. 시도교육청이 내년에도 예산 부족을 이유로 어린이집에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하지 못할 것을 우려한 학부모들이 유치원으로 발길을 돌리는 ‘쏠림 현상’이 반복될 수 있다.
◆ 누리과정 갈등에 학부모들 “유치원 보내자”
교육부와 한국교육개발원의 '2016년 교육기본통계'에 따르면 초·중·고 학생 수는 매년 줄고 있다. 올해 초등학생 수는 지난해보다 1.5%(4만1767명) 줄었고, 중학생은 8.1%(12만8461명), 고등학생은 2.0%(3만5809명) 감소했다.
반면 유치원생은 늘었다. 유치원 원아 수는 지난해보다 3.2%(2만1585명) 증가해 70만4138명으로 집계됐다. 유치원 원아 수는 지난 2012년 누리과정 도입 이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그렇다면 누리과정과 유치원 원아 수는 무슨 관계가 있을까. 누리과정은 국가가 만 3세에서 5세까지의 보육료를 지원하는 사업이다. 누리과정 대상이 되는 만 3~5세 어린이는 현행법상 유치원과 어린이집 모두 다닐 수 있다.
문제는 누리과정 예산을 배정해야 하는 시도교육청에게 ‘어린이집’은 챙겨야 할 소관 기관이 아니라는 점이다. 현재 유치원은 유아교육법에 따라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의 관리·감독을 받는다. 그러나 어린이집은 영유아보육법상 사회복지시설로 분류돼 보건복지부와 지방자치단체의 통제를 받는다. 올해 일부 시도교육청들은 유아교육법상 교육시설이 아닌 어린이집까지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을 지급할 여유가 없다며 누리과정 예산 편성을 거부했다.
학부모들 입장에서는 어린이집에 재정이 투입되지 않을 경우 보육이나 교육과정이 부실해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할 수 밖에 없고, 자연히 어린이집보다 유치원을 선호하고 있다. 결국 유치원 원아 수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게 됐다. 유치원 입학 경쟁률은 상승하고 있지만 어린이집은 원아 모집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유치원의 치열한 입학 경쟁은 올해도 반복 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내년도 예산안에도 별도의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하지 않아 일부 시도교육청이 어린이집 예산을 또 미편성할 수 있어서다. 정부는 내년 예산 중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을 올해 41조2000억원에서 11.4% 증액한 45조9000억원을 편성했다. 정부는 11.4% 늘어난 지방교육재정교부금으로 누리과정 예산 투입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시도교육청은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은 누리과정 외 투입될 곳이 많다며 별도의 예산 편성을 주문하고 있다.

내년 유치원에 입학하려면 올해 연말 원서를 접수해 추첨 결과를 기다려야 한다. 정부가 올해부터 서울·세종·충북 등 3개 시도에서는 접수와 추첨을 온라인으로 진행하지만, 다른 시도들은 여러 곳의 현장 추첨을 위해 온 가족을 동원하는 ‘유치원 입학 전쟁’을 다시 치뤄야 한다. 4살 딸을 둔 학부모 이선주(36세)씨는 “내년에도 누리과정 예산 갈등이 있을 것이라는 뉴스를 보고 학부모들 사이에서 어린이집 보다 유치원으로 보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있었다”며 “유치원 입학 경쟁률이 더 높아질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 합의 했다 vs 안했다, 돈 부족하다 vs 아니다 ‘진실공방’
상황은 심각한데 시도교육청들은 왜 어린이집에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하지 않을까. 이 부분에서는 정부와 시도교육청의 ‘진실공방’이 벌어진다.
정부는 지난 2012년 유아교육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로 무상 유아교육을 ‘만 5세’에서 ‘만 3~5세’로 확대했다. 정부는 내국세의 20.27% 정도를 17개 시도교육청에 교육예산으로 쓰라고 보낸다. 이를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이라고 한다. 정부는 2012년 유아교육법 개정으로 누리과정 예산은 지방교육재정교부금에서 쓰도록 시도교육청과 합의했다고 본다.
반면 시도교육청은 2012년 유아교육법 개정은 소관 기관인 유치원에 대해서만 무상 유아교육을 확대한 것이라고 반박한다. 정부가 예산의 증액 없이 소관 기관이 아닌 어린이집 무상 유아교육 예산까지 교육청에 떠넘겼다는 주장이다. 개정안 이전까지 시도교육청은 유치원에 다니는 ‘만 5세’에 대해서만 자체 예산을 배정했다. 개정안 이후에는 ‘어린이집에 다니는 만 5세’와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다니는 만 3~4세’를 추가로 책임지게 됐다.
시도교육청은 갑자기 떠안은 어린이집의 누리과정 예산 편성 의무로 ‘재정 부족’을 호소하고 있다. 어린이집까지 편성할 예산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이다. 누리과정 도입 당시인 지난 2012년 5월 정부는 매년 8.8%(3조5000억원)이상의 지방교육재정교부금 증가를 예측했다. 하지만 세수 추계 오류로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은 최근 3년간(2013~2015년) 예상 보다 15조8000억원 덜 걷였다. 그 사이 시도교육청의 누리과정 예산 필요분은 매년 증가해 올해 4조원을 넘어섰다.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은 시도교육청이 교육행정기관을 운영하기 위한 총 예산을 말한다. 누리과정 예산으로만은 쓸 수 없다. 시도교육청은 누리과정 예산 증가분을 떠안기 위해 지난 2015년에는 추가 6조원의 지방교육채를 발행했고, 올해 14조원이 넘는 지방교육채를 가지고 있다. 올해 지방교육채 상환액만 5000억원이 넘는다는 주장이다.
정부는 이 부분에서도 시도교육청과 ‘진실공방’을 벌이고 있다. 정부는 시도교육청들이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을 마음대로 용도 변경한 뒤 예산이 없다고 둘러대고 있다고 본다. 그 근거로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을 전액 미편성한 일부 시도교육청의 재정여건이 예산을 전액 편성한 다른 교육청의 재정여건과 유사하다는 조사 결과를 인용하고 있다. 실제로 교육부는 올해 초 어린이집 누리예산을 편성하지 않았던 광주교육청이 예산을 편성한 대전교육청과 비교했을 때 재정 운용에 더 유연성이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고 발표했다. 강원과 전북교육청도 예산을 편성한 충남교육청과 비교했을 때 세출 예산 대비 누리과정 재정 부담이 적었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또 세수가 부족했던 해에는 시도교육청의 지방채 발행 이자를 정부가 내줬으며, 올해와 내년에는 국세수입이 호조를 보이면서 ‘누리과정 예산’이 부족한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아울러 출산율 저하로 초·중·고 학생 수는 급감하고 있기 때문에 향후 지방재정교부금의 여윳돈도 늘어날 것이라고 예측한다.

◆ 정부, 내년 누리과정 강제 편성 추진…갈등 깊어질 듯
정부와 시도교육청의 ‘진실공방’에 대한 해결책은 없을까. 정부는 시도교육청의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 미편성을 막기 위해 대안책을 마련했다. 지방재정교육교부금 중 일부를 누리과정 예산에만 투입되도록 ‘꼬리표’를 달아서 시도교육청에 내려보낸다는 것이다.
정부는 이를 위해 내년도 예산안에 지방교육정책특별회계를 신설했다. 교육청에 배정되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 중 교육세 약 5조2000억원을 특별회계로 편성해 지출 항목을 정해놨다. 특별회계 예산은 누리과정과 학교시설 개선, 초등돌봄 사업 등 정책사업에만 쓸 수 있다. 시도교육청이 누리과정 예산을 딴 곳에 쓰지 못하게 ‘칸막이’를 쳤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정부의 누리과정 특별회계 신설은 국회 법안 통과가 전제돼야 한다. 새누리당은 19대 국회에서 관련 법안을 발의했으며, 20대 국회에 들어와서도 재발의한 상태다. 관련 법안은 올해 연말 국회에서 내년도 예산안과 함께 심의될 예정이다.
시도교육청과 야권은 정부의 특별회계 추진에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야권은 현재 정부에 반발해 국회 추가경정예산 심의 과정에서도 3000억원의 누리과정 투입 가능 ‘목적예비비’ 편성을 요구하고 있다. 전국 시도교육감협의회는 "교육감의 예산편성권을 침해하는 것이다"라고 즉각 항의 성명을 발표했다. 국회 교육문화체육특별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관계자도 "예산을 더 증액하기는 커녕 예산을 편성하는 국회와 시도교육청의 권한까지 없앤 조치다”며 “갈등이 더 깊어져 법 통과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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