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의 기술 베끼기 논란

최용성 2016. 8. 22. 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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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ch Talk-69] 최근 국내 인터넷업계에 때아닌 '기술 베끼기' 논란이 있었다. 네이버, 카카오 등 국내 내로라 하는 인터넷 대기업이 작은 벤처기업 기술을 베낀 것은 물론, 기반 기술을 마치 혁신인 양 외부에 공개해 정작 해당 벤처기업을 고사시키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처음 문제를 제기한 이는 권혁철 부산대 교수였다. 그는 26년 전 한글 맞춤법 검사기를 개발하고 이 분야 전문업체 나라인포테크라는 작은 기업을 운영하고 있다. 권 교수는 지난 1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마음이 착잡하고 안타깝다"며 포털 네이버와 카카오 등이 자신의 맞춤법 검사기 기술을 베꼈다고 주장했다. 그는 "다음(카카오)은 아예 API도 공개했다. 심하게 말하면 도둑질해서 선심 쓰는 것"이라고 분통을 터트렸다.

 API란 '응용 프로그램 인터페이스'라는 것으로, 이게 공개되면 인터넷 이용자들이나 개발자들이 특정 응용 프로그램을 마음대로 쓸 수 있게 된다. 이 같은 오픈 API는 혁신 기술의 밑바탕으로 크게 작용하고 있다. 구글, 페이스북 등은 자신들이 개발한 기술을 혼자서만 갖고 있지 않고 많은 벤처기업들을 위해 무료로 공개해 실리콘밸리 인터넷 기술력을 세계 최첨단으로 만들었다.

 그런데 국내에서는 오픈 API가 오히려 논란이 됐다. 한글 맞춤법 검사기를 처음 만든 게 네이버나 카카오였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 텐데, 권 교수였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이를 도식화하면 이렇다.

 (1) 권혁철 교수, 한글 맞춤법 검사기를 개발

 (2) 포털사업자 네이버, 다음 등이 찾아와 기술을 요구

 (3) 서로 의견이 안 맞아 네이버가 자체 개발을 추진

 (4) 다음도 자체 개발을 추진

 (5) 네이버, 무료 한글 맞춤법 검사 서비스

 (6) 다음, 무료 서비스에 이어 API 무료 공개

 권 교수는 이 과정 중 (3)과 (4)에서 대기업 횡포(?) 혹은 자본력이 있었고 이어 (7) 이후 과정에서 걱정이 된다고 했다. 권 교수는 네이버와 다음 등이 포털에 한글 맞춤법 검사기 서비스를 해주는 대신 돈을 요구했다고 썼다. 이후엔 오히려 연간 5000만원 정도 비용을 댈 테니 서비스를 하라고 하다가 결국 협상이 결렬돼 자체 개발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고 했다. 문제는 자체 개발 과정이다. 권 교수에 따르면 이들은 리버스 엔지니어링(역공학)을 통해 사실상 최초 개발 제품을 베꼈다. 리버스 엔지니어링이란 완제품을 분해·해체하고 분석함으로써 원천 기술을 파악하는 것을 말한다. 권 교수는 "어떤 회사는 리버스 엔지니어링에 8명을 투입하기도 했다"며 "훔치고도 이를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에서 소프트웨어 산업은 살아남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그런데 여기에 한술 더 떠서 카카오는 API를 무료로 공개해 최초 개발자를 위협했다고 권 교수는 주장했다. 그는 "무료로 API를 공개해 다른 업체나 개발자 싹을 잘라버려서는 안 된다"며 "포털이 자체에서 사용하는 것을 넘어 개발한 시스템을 무료로 공개하는 것은 막아야 한다. 빵을 무료로 나누어주면 재료비라도 들지만, 응용시스템은 거의 비용이 안 들면서 다른 개발업체는 모두 죽인다"고 하소연했다.

 논란이 커지자 카카오는 18일 공식 블로그를 통해 "다음 맞춤법 검사기 API 공개를 중단한다"고 밝혔다. 카카오는 "API 공개는 공익적 차원에서 한 것이지만 오랫동안 업계에 기여한 분께서 이 때문에 개발을 못하는 상황이 됐다는 것을 고려한 것"이라며 "다만 맞춤법 검사기는 자체 구축한 것으로 리버스 엔지니어링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오히려 카카오의 API 공개 중단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맞춤법 검사기 API 공개'라는 공익적 서비스를 특정 회사(즉, 권 교수가 운영하고 있는 나라인포테크) 이익을 위해 중단하는 게 과연 옳은 결정이냐는 물음이다. 맞춤법 검사기 프로그램에서 권 교수가 기여한 공로를 충분히 인정하지만 카카오의 오픈 API 중단은 냉정하게 보면 나라인포테크 1개 회사의 생존을 위한 것이라는 얘기다. 한 이용자는 "카카오의 오픈 API 폐쇄 결정은 권혁철 교수 연구를 위한 결정인가? 아니면 주식회사 나라인포테크를 위한 결정인가?"라고 되묻고 있다.

 이런 상황을 보는 국내 개발자들 모두 착잡한 마음일 것이다. 많은 이들이 네이버, 카카오가 역공학으로 맞춤법 검사기를 개발했다고 보지 않는다.(만일 그렇게 개발해 놓고 아니라고 거짓 주장을 하고 있다면 이는 엄청난 범죄다.) 그리고 처음 기술을 개발하고 작은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권혁철 교수 공로도 분명 인정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그 때문에 공익 서비스 확산이 막히는 것은 바람지하지 않다는 데 공감한다.

 분명한 것은 이보다 더 좋은 길이 있었다는 점이다. 네이버, 카카오가 처음 기술을 개발한 권 교수에게 더 진보적으로 접근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것이다. 공짜로 이용하려고 하지 않고 개발한 기술에 상응하는 가치를 주고 살 생각을 왜 하지 않았을까. 기술의 가치가 정당하게 인정받는 풍토가 어서 뿌리내리기를 바란다.

 [최용성 모바일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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