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 문화' 해외트레킹 | 그리스] 아테네·고린도는 왕이 나올 '토체의 산' 델피는 '화체의 산'

글·사진 월간산 박정원 부장대우 2016. 8. 18.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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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수호신과 입지조건 절묘하게 맞아.. 각 지역 신전마다 수호신 달라

그리스의 역사와 신화는 한반도와 마찬가지로 산에서 시작한다. 천신의 아들 환인이 환웅을 태백산으로 내려 보내 곰에서 인간으로 화한 웅녀를 만나 낳은 아들이 단군이다. 단군은 신시로 내려와 아사달에 도읍을 정하고 인간세상을 다스렸다고 단군신화는 전한다.

그리스신화가 시작되는 올림푸스산(Olympus·2,917m)은 그리스 반도의 북쪽에 있고, 그곳이 모든 신들의 거처였다. 올림푸스산만큼이나 자주 언급되는 그 남쪽의 파르나소스산(Parnassos·2,200m)에 있는 델피신전은 하늘의 뜻을 받드는 신탁(神託·oracle)의 장소였다. 신탁은 제사장이었던 샤먼이 했고, 주변 모든 도시국가에서 신탁을 받기 위해 델피로 모여들었다. 당시 델피는 상업과 무역이 번성한 도시였고, ‘세계의 중심’이었다. 지구가 평평하다는 수평적 세계관과 인간은 평등하다는 평등사상의 출발점이 되기도 한다.

그리스 역시 한반도와 마찬가지로 반도국가이면서 지형적으로도 산악국가로서 도시국가가 발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스의 면적은 13만2,000㎢이며, 이 중 약 6만㎢가 산지다. 전 국토의 50% 남짓 산으로 이뤄져 있다. 그나마 평지도 복잡한 지형구조를 보여 사람이 경작하고 살 만한 땅은 그리 많지 않다. 사람이 살 만한 평야는 산간분지와 주요 하천의 하류부에 주로 위치해 있다. 따라서 그리스는 지형적으로 도시국가가 발달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도시국가는 분산된 산간분지와 작은 평야지대를 차지해서 발달했다. 고대 한반도에도 많은 부족국가들이 형성될 수밖에 없는 지형적 조건과 상황이 비슷하다.

[월간산]델피는 산 사면을 깎아 도시를 조성했지만 제일 위에 원형경기장, 그 밑에 원형극장, 그 밑에 신전, 그 밑에 사람들이 사는 마을을 구성한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리스는 도시국가가 발달할 수밖에 없는 지형
[월간산]델피 마을 중앙에 우뚝 솟은 바위 봉우리에 오라스 록 신탁바위가 있다. 드라마 ‘태양의 후예’에 나온 탑과 마을이다.
그리스는 산악지형으로 도시국가의 발달과 함께 각 도시마다 수호신을 숭배하고 있다. 일부 중복되는 신을 모시기도 한다. 한반도에서 각각의 산에서 개별적인 산신을 모시는 것과 마찬가지 형태로 볼 수 있다. 각 지역의 수호신은 지역적 특징, 지형조건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먼저, 각 지역의 수호신을 한 번 살펴보자.

세계 최초의 민주주의가 행해진 아테네에서는 BC 5세기에 건립된 파르테논신전이 도시의 중앙에 우뚝 솟아 단연 돋보인다. 세계문화유산 유네스코 로고의 상징물이기도 한 신전이다. 이 신전에는 최고의 신 제우스가 아니라 전쟁과 지혜의 신이자 수호신이기도 한 ‘아테나 여신’을 모셨다. 수도 아테네의 지명도 아테나 여신에서 유래했다. 여신상은 제국주의 시대에 영국이 약탈해 가 지금은 대영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제우스신전은 아크로폴리스 아래 평지에 있으며, 파르테논신전이 아크로폴리스 정중앙에 있어 아테네를 감시하고 지배하는 듯한 모습이다. 

고대도시 고린도에는 아폴론신전이 있다. 고린도의 황금기인 BC 6세기에 태양의 신 ‘아폴론’을 모시기 위해 건립했다. 그리스 신전 중에 올림피아의 헤라신전 다음으로 오래된 신전이다. 고린도 북쪽으로 아크로고린도스(Acrogorinthos·575m)라는 산이 우뚝 솟아 있고, 사방은 성을 쌓아 철옹성을 구축하고 있다. 우리식으로 하자면 산성이다. 아크로고린도스엔 아프로디테신전이 있다. 사랑의 신 아프로디테를 모셨으며, 사제와 무녀들은 외국 상인들을 상대로 창녀와 남창을 하면서 부를 축적한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고대 올림픽이 열린 올림피아엔 최고의 신 제우스를 모신 제우스신전이 있으며, 그 외에 헤라신전과 펠롭스신전 등도 있다. 델피가 형성되기 이전인 BC 1000년경에 대지신(大地神)의 신탁소로 알려져 있다. 제우스의 신역으로 전하는 곳은 헤라클레스가 만들었다고 전하는 벽으로 사방이 둘러싸여 있다. 이곳에서 4년마다 올림픽 경기가 치러졌다. 일종의 축제였지만 사실은 축제기간 만큼은 도시국가 간 전쟁을 하지 말자는 합의를 했다. 그러기 위해선 최고의 신 제우스가 중재를 해야 했다. 제우스가 수호신으로 모셔진 이유이기도 하다.

아테네 옆에 있는 해안도시인 수니온곶은 예로부터 군사 지리적으로 매우 중요한 해상요충지였다고 한다. 그래서 바다의 신 ‘포세이돈’을 모시는 포세이돈신전이 있다.

아테네와 경쟁도시로 유명한 스파르타는 아르테미스신전에 달의 여신이자 사냥의 여신, 야생동물의 수호신으로 알려진 아르테미스를 모신다. 아르테미스는 출산의 여신이며, 사람과 짐승에 풍요함을 가져다주는 여신이다. 스파르타에서 아르테미스는 아르테미스 오르티아(Artemis Orthia)로 숭배한다. 고고학적으로 오르티아는 도리아인이 숭배하던 여신이었다. BC 1200년경 그리스로 이주해 온 도리아인은 자신들의 여신 오르티아와 아르테미스를 합쳐서 숭배했다고 학자들은 추정한다.

인류 최초의 의사로 평가받는 히포크라테스의 고향인 코스섬의 아스클레피온신전에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를 모시고 있다. 신전 유적은 펠로폰네소스반도 동쪽의 에피다우로스에도 있다. 에피다우로스엔 실제로 많은 병자들이 이곳을 방문해 치료를 받고 휴양했다. 아늑하고 조용한 전형적인 휴양도시다.

사모스섬 헤레온(Hereon)마을에 있는 헤라신전에 신성한 결혼의 여신 ‘헤라’를 모신다. 남편 제우스의 바람기 때문에 질투하며 속이 상한 헤라는 제우스가 상대한 여신과 여자들을 괴롭히는 내용으로 신화에 많이 등장한다. 헤라는 제우스와 동침한 다음날 아침에 카나토스샘에서 몸을 씻는다. 카나토스샘에서 몸을 씻은 여성은 다시 처녀로 거듭나게 해주는 마법의 샘이다. 제우스는 항상 처녀와 동침하는 셈인 것이다. 신화에 따르면, 헤라는 사모스섬에서 태어나고 자랐다고 전한다.

[월간산]아테네 외곽을 둘러싸고 있는 11개의 언덕과 산은 전부 평평한 토체의 산의 형체를 띤다.
델피의 세계중심 옴파로스
 델피는 아폴론신전이 있으며, 태양의 신 아폴론을 모신다. 그리스인들은 델피가 세계의 중심이라고 믿었다. 그리스 전설에 따르면, 최고의 신 제우스가 세계의 중심을 향해서 동쪽과 서쪽으로 두 마리의 독수리를 날려 보냈더니, 두 독수리가 날아와 만난 장소가 델피라고 전한다. 그 장소가 바로 세계의 배꼽이라고 하는 ‘옴파로스’다. 도시국가의 왕들은 신탁을 받기 위해 끊임없이 사자를 보내 상업, 무역적으로 매우 성업한 곳이었다.

이와 같이 각 도시엔 개별 수호신을 모시고 있었다. 그 수호신은 그 지역의 성격과 지형적 조건과 딱 맞아떨어졌다. 이제부터 구체적으로 한번 살펴보자. ‘산과문화’ 트레킹 일정상 도시 전체를 돌아볼 수는 없었고, 아테네와 고린도, 델피를 보면서 도시의 입지적 조건과 신전에 어떤 신을 모셨는지 등에 대해 동양학자 조용헌 박사와 건축학 박사이면서 풍수학자인 WDU 조인철 교수의 통찰력 있는 해석과 함께 둘러 보았다.

아테네 아크로폴리스에 올라섰다. 그리스어 아크로(akros)는 ‘높다’는 뜻이다. 따라서 아크로폴리스는 높은 곳에 있는 도시란 의미다. 곧 성채이자 수호신들이 거주하는 국가의 성소인 셈이다. 또 시민들의 정신적 위안소이자 마지막 피난처이기도 했다. 아크로폴리스에서는 사방이 한눈에 확 들어온다. 세 방향은 평평한 산들이 도시를 에워싸고 있고, 나머지 한 방향은 바다를 향한다. 그 중앙에 있는 아크로폴리스는 외벽을 성벽으로 쌓아 철옹성을 구축했다.

[월간산]델피에 있는 세계의 배꼽으로 불리는 옴파로스 바위와 그 뒤에 신전의 창고와 신전을 파르나소스 산이 위협하듯 감싸고 있다.

아테네 도시 외곽을 둘러싸고 있는 산들은 모두 11개다. 4개의 산과 7개의 언덕이라고 현지인은 말한다. 그 4개의 산은 이미토스, 밴델리, 파르니사, 애갈래오다. 7개의 언덕은 아크로폴리스, 필라파포스, 피닉스, 아리오파고스, 리카피토스, 투르크푼야, 아르비토스이다. 11개의 야트막한 산과 언덕들이 주위를 감싸는 아테네는 전형적인 분지다. 11개의 산 안에 거대도시가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 산들은 전부 평평하다. 높낮이도 없이 평평한 산이 도시 외곽을 비슷한 높이로 에워싸고 있다. 전형적인 토체(土體)의 산이다. 동양의 음양오행사상에서 토체의 산은 왕(王)이 나올 형세다. 옛날 왕이 아닌 사람이 토체의 산에 묘를 쓰면 역모를 꾸민다고 해서 처형당하기도 했다. 남아공의 테이블마운틴은 대표적인 토체의 산이다. 여기서 만델라가 나올 수 있었다고 말하는 풍수학자도 있다. 토체의 산은 또한 대단히 균형 잡힌 산이다. 왕의 권력은 균형에서 나온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의 뿌리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모두가 평등한 산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그리스 민주주의의 뿌리는 토체의 산에서 나왔고, 그 토체의 산의 구체화된 형태는 신전의 기둥이라고 말한다. 신전의 기둥은 모두 같은 높이, 같은 형태로 지붕을 떠받친다. 이집트의 피라미드가 삼각형 수직으로 된 권력구조라면 그리스의 신전 기둥은 둥글고 평평한 수평구조로서 민주주의의 원천이라고까지 주장한다.

[월간산]델피마을의 시계탑. 이곳에서 드라마 ‘태양의 후예’를 촬영했다. 들어가는 입구에는 ‘Ora's rock(오라스 록)’이란 표시가 있어 옛날 신탁을 하던 장소로 알리고 있다.

어쨌든 아테네 외곽의 산들은 평평하다. 풍수적으로는 평평한 산 중심에 우뚝 솟은 산은 단연코 중심의 산이고, 왕의 산으로 해석한다. 지금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가 꼭 그 형태다. 이를 군신봉조형이라고도 한다. 여러 군신들이 중심에 있는 하나의 왕을 향해서 예(禮)를 다하고 있는 형국이라는 뜻이다. 중간에 가끔 아크로폴리스보다 낮게 솟은 봉우리는 호위무사형이다. 왕을 지키면서 주변을 살핀다는 의미다.

아크로폴리스엔 파르테논신전이 있다.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은 페르시아전쟁의 승리를 기념해서 아테네의 수호신인 아테나 여신에게 바치기 위해 BC 447~432년 15년간에 걸쳐 건립했다. 파르테논은 그리스어로 ‘처녀의 집’이다. 여신이 아테나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고대 그리스의 건축물 가운데 가장 유명하고 가장 그리스적이라 말한다. 그리스 예술의 정점으로 평가받고 있다. 파르테논신전은 고대 그리스의 상징이자 아테네 민주주의의 발상지이자 상징이기도 한 곳이다.

[월간산]신탁으로 유명한 델피는 파르나소스산 사면을 깎아 조성한 도시다. 파르나소스의 웅장한 기운을 느낄 수 있는 암벽 아래 봉긋한 바위가 최초의 신탁을 한 바위로 알려져 있다.
파르테논신전에는 최고의 신 제우스를 모신 게 아니라 전쟁의 신이자 지혜의 신이며, 수호신이기도 한 아테나 신을 모시고 있다. 아크로폴리스 옆 평지에 제우스신전이 있다. 도대체 궁금했다. 어찌 최고의 신이며 신 중의 신을 평지로 밀어내고 그의 딸로 알려진 아테나 신이 아크로폴리스 정중앙에 자리 잡을 수 있었을까?

그리스 현지 해설사는 “제우스신전은 파르테논신전이 조성되기 몇 백 년 전에 이미 평지에 세워져서 아크로폴리스로 옮길 수 없어 그냥 따로 모시게 됐다”고 설명한다. 정말 편한 해석같이 들렸다. 아마 이런 질문을 받아본 적이 없어 의례적인 답을 했을 성싶다. 제우스는 알다시피 최고의 신이다. 신들의 거처 올림푸스산과 고대 올림픽 개최지인 올림피아를 지배하는 신이다.

아테네의 수호신은 제우스가 아닌 아테나
[월간산]벽에서 올려다본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는 마치 난공불락의 요새 같아 보인다. 지금 한창 공사 중인 신전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1호인 파르테논신전.
이에 반해 도시국가 아테네는 최고의 신보다는 현실적으로 지형과 상황에 맞는 신을 선택한 결과로 보인다. 당시 각 도시국가는 전쟁을 치르면서 때로는 연합을 꾀하기도 했다. 도시 간 전쟁 때는 휴전을 위해 올림픽을 개최했고, 페르시아와 수십 년간 전쟁할 때는 연합을 했다. 아테네는 전쟁의 신과 전쟁에 이길 지혜와 전략을 갖춘 신이 현실적으로 더 절실했다. 당연히 아테나 신이다. 그 아테나 신이 아테네의 가장 높은 곳 아크로폴리스 정중앙에 세워졌음은 어찌 보면 당연한 선택이었을 것 같다.

아크로폴리스를 올려다보는 옆에 조그만 광장이 있다. 이른바 아고라. 이곳에서 재판과 처형과 온갖 세속적인 일들이 벌어졌다. 그래서 위로는 아크로폴리스의 성(聖)의 땅이고, 아래로는 아고라의 속(俗)의 땅이라고까지 한다. 성과 속이 따로 있는 듯 옆에 있고, 구분되는 듯 공존하는 느낌이다.

다음은 고린도로 간다. 아테네에서 고린도까지는 약 87km, 버스로 2시간 내외 걸린다. 그리스반도에서 떨어져 나온 펠로폰네소스반도라고 부른다. 그런데 고린도운하를 개설하면서부터 반도가 아닌 섬으로 돼 버렸다. 고린도운하(Corinth Canal)는 로마시대부터 운하를 뚫으려고 했던 곳이다. 몇 천 년에 걸친 수차례의 시도 끝에 1893년에 결국 완공했다. 총 길이 6.34km에 수심 8m, 폭 25m로 파마나·수에즈운하와 함께 세계 3대 운하 중 하나다.

고린도운하를 건너 고대도시 고린도로 들어서는 순간 우뚝 솟은 봉우리로 눈길이 집중된다.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 비슷하게 도시에 우뚝 솟은 형국이다. 이 산의 이름이 아크로고린도스. 사방은 성으로 둘러싸여 있다. 밑에서 올려다본 성벽은 정말 난공불락 철옹성 같아 보인다.

고린도는 BC 6세기 중반까지 아테네 못지않게 상업과 무역도시로서 매우 번성했다. 이오니아와 에게해를 잇는 해상교통의 요충지였다. 당시 그리스 전 지역에서 3번째로 꼽는 도시였다. 헬레니즘 시대에는 ‘헬라스의 별’로 일컬을 정도였다. 프랑스의 노벨상 소설가 카뮈의 <시지프스신화>에 나오는 그곳이 바로 고린도다. 현지 해설사도 “고린도의 지하엔 BC 7000년경에 건설한 고대 시지프스왕의 왕국이 있다”고 설명한다. 그래서 “그게 신화냐, 역사냐?”고 물었다. 해설사도 씨익 웃으며 “매우 좋은 질문이다”고 말한다. 되레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되묻는다.

신화인지 역사인지 아직 알 수 없다. 신화는 인간의 상상력을 자극해 역사적 상황과 끊임없이 교류하며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한편으로는 허구같고 다른 한편으로 역사같이 들린다. 신화의 구체적인 유적을 찾는 어느 순간 역사로 변한다.

[월간산]고린도의 아폴론신전이 중앙에 있고, 주변 지형은 평평한 토체의 산 형체를 보여 준다.

고린도는 방탕·사치스러움의 어원

현재 폐허가 된 유적지, 고린도의 지하엔 고대에 형성된 도시 유적의 한 단면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529년 지진과 1858년 지진으로 내려앉은 모습 그대로다. 시지프스 왕국은 그 지하도시보다 한층 더 아래 있다고 한다. 후대의 역사학자와 고고학자에게 발굴을 기대해 보자. 그리고 기독교의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 고린도를 방문한 기록이 ‘고린도전서’에 남아 있다. 역사·신화적으로 매우 의미 있고 유서 깊은 도시다.

고린도엔 아폴론신전이 있다. 아직 기둥 7개가 비교적 잘 보존돼 있다. 태양의 신 아폴론을 모신 신전이다. 왜 태양의 신을 모셨을까?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아폴론은 아르테미스와 쌍둥이형제로 알려져 있다. 아르테미스신전이 있는 곳은 터키의 에페소스. 바로 고대 7대 불가사의 건축물로 꼽히는 그 신전이다. 아르테미스는 인간의 양육자, 여성의 수호자 역할을 하는 여성전사 아마존이 아르테미스신전을 세우고 숭배했다고 전한다. 그 대립적 개념으로 고린도에 태양의 신 아폴론을 모신 걸로 추정한다. 당시 고린도는 매우 번성한 도시로서, 태양과 같이 번성하라는 신의 역할이 있었다고 믿고 있다.

반면 남쪽 우뚝 솟은 아크로고린도스엔 아프로디테신전이 있다. 사랑의 신이다. 태양의 신 아폴론과 대립되는 신일 수도 있다. 아프로디테신전에서 일하는 수천 명의 젊은 여사제들은 종교적 행위를 빙자해 지역주민과 외국 상인을 상대로 매춘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당시 남자들이 아크로고린도스에 가기 위해 줄을 설 정도였다고 한다. 아크로고린도스 성벽 안에는 밤마다 괴성이 울려, 세속의 극치를 보였다고 전한다. 성경 고린도전서에도 이에 대한 기록이 있다.

당시 이들이 벌어들인 외화는 상업 이외 고린도의 주요 수입원이 됐다. 거대한 상업중심지로서 희귀한 사치품들이 끊임없이 공급돼, 도시의 화려함과 사치는 극에 달했다고 한다. ‘고린도’라는 명칭은 헬라어로 ‘방탕함’, ‘사치스러움’, ‘성적인 문란함’과 같은 말의 어원이 될 정도였다.

[월간산]세계 3대 운하에 꼽히는 고린도운하가 에게해와 이오니아해를 연결시키고 있다.
고린도 아폴론신전과 남쪽에 있는 아크로고린도스는 입지적 조건이 완벽한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아크로고린도스에 올라서면 에게해와 이오니아해로 접근하는 모든 배들을 감시할 수 있다. 그리고 맞은편 게라니아(Gerania·1,300m)산이 앞산으로 안성맞춤이다.

풍수적으로 고린도는 재물과 사람이 모이는 명당에 속한다. 본토와 반도를 연결하는 지협(地峽) 지점으로 번창할 수밖에 없는 위치다. 남쪽에 있는 아크로고린도스는 통바위 같은 암벽으로 기운이 넘친다. 지기(地氣)가 느껴질 정도로 강하게 올라온다. 각각의 신전 옆에는 우물이 있다. 그리고 바로 앞에는 바다가 있다. 지기와 수기가 조화를 이룬 터다. 아래는 태양의 신으로 양이 넘치고, 위는 여성 신으로 음이 넘쳐난다. 남성과 여성, 양기와 음기, 수기와 지기, 이 얼마나 완벽한 조화인가. 그 땅이 고린도다. 한마디로 명당이다.

폐허가 된 유적지엔 거주지, 감옥, 원형극장, 광장, 공동우물, 공동화장실 등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은 공동체였다. 지상도 그렇고, 지하에 드러난 한 단면도 화려한 과거의 영광을 대변하는 듯했다.

고린도 고고학박물관엔 코와 머리가 잘려나간 석상들이 수북이 쌓여 있다. 현지 해설사는 “기독교인들이 다신을 믿었던 그리스에 와서 제일 먼저 한 작업은 신들의 조각상에서 코를 깨거나 두상만 잘라내는 일이었다”고 설명했다. 이같은 작업은 유일신인 기독교에서 다른 신을 용납하지 않기 때문에 벌어진 행위라고 덧붙였다.

델피 수호신은 태양·운명의 신 아폴론

[월간산]드라마 ‘태양의 후예’ 촬영지로 유명한 자킨토스 섬의 부서진 배와 해변. 파도가 높아 접근하지 못하고 사진으로만 촬영하고 있다.

델피는 고린도와 아테네와는 조금 다르다. 델피 가는 길목에 조그만 그림 같은 마을이 하나 있다. 드라마 ‘태양의 후예’에 나온 마을이다. 마을 이곳저곳 둘러보며 드라마에 나온 장소와 비교해 본다. 눈에 띄는 바위가 하나 있다. 산 능선 사면을 따라 기운이 흐르다 바위에서 응집되어 솟아오른 ‘결국(結局)’의 형국이다. 우뚝 솟은 바위에 교회탑을 만들어 시계를 세워 놓았다. ‘송송커플’이 키스한 장소라고 현지 가이드는 소개한다. 그곳으로 간다. 입구에 ‘Ora's rock(오라스 록)’이라는 표시가 있다.

무심코 지나치는데, 조 박사가 “이곳이 신탁을 받던 장소 표시가 아닌가”라고 말한다. ‘아, 그렇지’ 유심히 살펴봐야 하는데, 놓칠 뻔했다. 안내 그대로 하늘의 뜻을 받던 ‘신탁바위’라고 해도 될 만큼 기운이 응집돼 있다. 이곳에서 불과 몇 분 거리에 세계의 중심 델피가 있다.

델피는 산 사면을 깎아 도시를 건설했다. 제일 밑이 사람이 사는 장소고, 그 위에 신전, 그 위에 극장, 제일 위에는 원형경기장이 차례로 자리 잡고 있다. 어느 도시를 가든 신전과 극장, 원형경기장은 필수적으로 건립돼 있다. 이 구조는 신과 인간을 연결하는 일종의 고리역할을 하는 듯했다. 신전은 신과 통하는 장소고, 극장은 연극이나 노래 등 예술을 통해 정신을 정화시키는 기능을 하고, 원형경기장에서는 정신뿐만 아니라 육체를 강건하게 단련시킨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신과 인간의 정신과 육체, 이 삼위일체는 고대문명을 얘기할 때 빠질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이지 싶다. 

신과 통하는 장소는 단연 델피다. 당시 세계의 모든 지역에서 신탁을 위해 모여들었다. 세계의 배꼽이라는 옴파로스를 상징하는 달걀 같은 바위가 있고, 바로 그 위에 최초에 신탁을 했던 장소라고 표시된 바위가 있다. 아폴론신전은 그 뒤에 있다. 파르나소스산이 병풍처럼 신전을 감싼다. 파르나소스산은 그리스에서 올림푸스산만큼이나 자주 등장하고 유명하다. 올림푸스산이 신들의 거처였다면, 파르나소스산은 사제를 통해서 신의 계시를 받는 곳이다. 신탁은 델피의 아폴론신전에 인간의 운명이 어떻게 될 것인지 맡겨 놓았다는 의미다. 아폴론은 태양의 신, 음악의 신이기도 했지만 때로는 운명을 점치는 예언의 신이기도 했다.

델피의 아폴론신전 수호신은 아폴론이다. 아폴론은 시·음악·광명·예언 등에 능통했다. 예술의 여신인 뮤즈도 그의 밑에 있다. 파르나소스산의 정상은 파이드리아데스(Phaidriades). 파이드리아데스는 두 개의 타워링 같은 봉우리로 나뉘어 반짝이고 있다. 일명 빛나는 바위다. 아폴론신전을 보호하는 듯 위협하는 듯 웅장한 위태를 뽐낸다. 플레이토스강의 높은 협곡(the high valley of the River Pleistos)이 두 산을 나누고 있다. 파르나소스의 앞산은 키르페(Mt Kirphe)산이다. 앞산엔 안성맞춤 높이로 자리 잡고 있다. 더욱이 키르페산에는 예술의 여신 9자매가 살았던 것으로 전한다. 주산과 앞산이 맞장구를 치듯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 수호신이 아폴론이 될 수밖에 없는 지형적 구조다. 아테네·고린도와는 또 다른 지형이다. 아테네와 고린도가 군신봉조형에 가깝다면 델피는 독불장군형이다. 홀로 우뚝 솟아 신과 통하기도 아주 좋다. 더욱이 깊은 협곡에 양쪽으로 갈라진 봉우리의 한 사면을 잘라 조성한 도시 델피는 기운이 넘쳐흐른다. 그 맞은편 앞산은 전형적 육산으로 파르나소스의 기운을 잘 받아주는 형국이다. 그리고 아폴론의 광명과 예술, 예지력을 보충해 주는 듯하다.

신탁사제, 목욕재계 후 가스 마시고 접신

[월간산]고린도의 유적 밑에 있는 지하도시 유적의 한 단면을 볼 수 있다. 지하도시 밑에 시지프스신화에 나오는 왕국의 도시가 있다고 한다.

그런데 델피가 왜 신탁을 받는 성스러운 장소가 됐는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이 험한 지형에 암벽 산을 깎아 힘들게 도시를 조성하고 신전을 건립했을까와 연결되는 의문이다. 신화에 따르면 사제(일종의 예언녀)는 아폴론신전의 ‘갈라진 틈’으로 올라오는 가스(프네우마라고 한다)를 흡입하고 신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인간의 현재와 미래를 예지해 주었다고 전한다. 지금 그 흔적도 없고 고고학자들도 찾아내지 못했다. 그래서 단지 신화적 허구성이라고 취급했다.

하지만 20세기 들어서 중요한 단서를 찾아냈다. 델피의 아폴론신전은 당시 온천지형이었다고 한다. 지표면으로 올라오는 가스가 물과 만나 기포가 잘 생성하도록 배수와 도관을 설치했다. 그리고 가스가 올라오는 틈을 보호하기 위해 신전의 중심을 벗어난 남동쪽 지하에 신탁장소를 배치해 가스를 흡입할 수 있도록 했다. 이 가스를 마신 사제는 몽롱한 상태에서 정신적·심리적 집중력을 높여 신과 영적으로 교감했다고 한다. 기록에 따르면 사제는 매달 7일 신탁일에 적정한 농도의 가스를 흡입하고 신의 뜻을 전했다고 한다. 결국 이 가스 때문에 현재의 위치에 델피를 건립할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가 된다.

또한 신탁장소 옆에는 어떻게 암벽 사이에서 그 많은 물이 흘러나오는지 신기할 뿐이다. 사제가 신탁을 하기 전에 목욕재계를 하던 곳인 성수 ‘카스탈냐’가 바로 그곳에 있다. 기운이 넘쳐나는 통바위 높은 산, 물과 가스, 그리고 사제, 신과 통하기엔 모든 조건이 완벽하다.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는 신탁의 장소다. 아폴론은 태양과 예술의 신이기도 했지만 예언의 신으로서, 델피의 수호신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과도 맞아떨어진다. 수호신과 입지적 조건, 두 가지가 한 세트같이 여겨진다. 단지 델피는 풍수적으로는 그리 좋은 지형은 아니지만 산 사면을 깎아 만든 지형치고는 최대한 풍수를 맞추려고 한 흔적을 볼 수 있다고 조용헌 박사와 조인철 교수는 공통적으로 말한다.

9월호에서는 이번호에 소개 못 한 ‘유럽 최초의 문명’으로 통하는 크레타섬 크노소스에 있는 미노스왕국과 터키 에페소의 고대 세계 7대 불가사의에 속하는 아르테미스신전의 입지조건과 유적지 등을 서로 비교해 가며 살펴보기로 하자.

[월간산]아크로고린도스에 있는 성벽이 철옹성 같아 보인다. 주변 지형도 대체적으로 토체의 산의 형세를 보이지만 야트막한 봉우리들이 마치 왕을 호위하듯이 살짝 살짝 솟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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