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 초유의 '익명시위', 동력 지속할 수 있을까

김준영 2016. 8. 18.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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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교육 단과대학(미래라이프대학) 사업 철회를 요구하며 시작된 이화여대 재학·졸업생의 본관 점거 농성이 18일로 3주가 넘었지만 쉽사리 동력이 꺾이지 않고 있다. 거대 기득권인 총장 및 학교를 상대로 ‘사업 철회’와 ‘총장의 사과’ 등 소기의 성과를 거둔 뒤에도 장기화할 전망이다. 여기에는 최대 1만명이 넘는 인원 모두가 마스크나 선글라스, 모자 등을 착용해 장기간 익명성을 지키는 전략이 실효를 거둔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농성이 장기화할 경우에는 익명시위의 장점을 유지하기 쉽지 않을 전망이다.

최경희 이화여대 총장은 지난 1일 기자회견 당시 “개교 이래로 많은 시위가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마스크 쓰고 고함지른 적은 없었다. 놀랍고 통탄스럽다”라며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감금됐던 교수 및 교직원을 구조하기 위해 1600여명을 동원했던 경찰 또한 마찬가지이다. 동영상과 사진 등 채증 자료를 통해 감금에 대한 혐의를 입증해야 하지만 온갖 장비로 얼굴을 꽁꽁 싸매는 통에 신원을 특정할 수가 없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화여대 학생들이 10일 오후 최경희 총장의 사퇴를 촉구하며 교내 행진을 하고 있다.
연합
현행법상 익명시위는 불법이 아니다. 이를 막기 위한 ‘복면금지법’이 과거 세 차례 발의됐지만 모두 무산된 바 있다.

학생 측은 거대 권력인 학교 측과 언론 등 미디어에 대한 불신이 누적됐고 여성 혐오행위가 극에 달하다 보니 이런 방식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는 입장이다. 이대 졸업생 A씨는 “이번 시위는 단순히 평생교육 단과대학 사업 하나가 아니라 프라임사업 등 과거 학교 측의 일방통행적 의사결정에 대한 반발이 누적된 결과”라고 말했다.

여성민우회 관계자는 “여성의 사진이 노출되는 즉시 일베(일간베스트) 등에 의한 신상털기와 위협이 일상화된 사회적 상황도 이번 시위에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지난 5월 강남역 살인사건 뒤 추모현장에서도 그러했듯 공공장소에서 여성의 마스크 착용이 늘어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학생들의 시위 범위가 학내에 머무르고 있는 점도 같은 차원으로 보인다.

익명 시위는 주로 플래시몹 등 단기 시위에서 선보이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이대의 이번 시위는 총장 사퇴 및 교수·임직원 감금 관련 사법처리 등 각종 사안을 놓고 양측의 입장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어 장기화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한 시민단체의 관계자는 “익명시위는 반대 측의 흔들기를 차단하면서 온전히 메시지에 집중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고 설명했다. 시위의 주체가 드러나면서 대표나 단체의 전력 및 시위의 쟁점과 무관한 사항으로 공격을 받는 경우가 허다한데 이를 차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표자도 없이 익명으로 벌이는 시위가 장기화할 경우 호소력이 떨어질 수 있다. ‘이대 순혈주의’나 ‘처벌 회피’ 등의 비판도 부담이다. 중앙대 이병훈 교수(사회학)는 “익명 시위를 통해 학생들이 학교에 맞서기가 용이한 부분이 있지만 길어질수록 대중에게 위화감을 조성할 수 있고 호소력을 얻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아울러 학생 측은 ‘재학생과 졸업생 다수가 참여했다’고 주장하지만 어느 정도 대표성을 띠고 있고, 실제 어느 정도가 참여하는지를 파악할 수 없다. 이로 인해 학교 측에서는 대화 및 협상의 상대를, 경찰은 감금죄 등 혐의의 대상을 특정하기 힘든 상황이다.

이러한 가운데 지난 16일 ‘이화여자대학교 정상화를 바라는 졸업생들의 모임’ 이름으로 한 일간지 1면에 농성 해제를 요구하고 협박·강요 등 불법 행위를 지적하며 ‘총장의 사퇴 요구에 공감할 수 없다’는 내용의 광고가 게재됐다. 농성 측은 “실체 없는 일부의 의견”이고 “광고의 출처도 밝혀지지 않았다”며 일축했다.

최 총장에 대한 농성 측의 사퇴 요구에 교수들까지 합세했지만 학교 측과 최 총장의 별다른 반응이 없는 만큼 양측의 평행선은 쉽게 좁혀지지 않을 분위기이다. 교수협의회 주축으로 꾸려진 비상대책위원회가 전날 성명을 발표한 데 이어 이날 교수 114명(11%·전체 전임교수 1101명)이 사퇴 찬성에 서명했다.

본관 점거 농성이 이달 말 개강 시기까지 이어질 경우 학내 업무 마비로 인한 피해도 더욱 현실화할 수밖에 없다. 경찰 관계자는 “본관 건물에 대한 농성이 길어진다면 다른 시위와 마찬가지로 퇴거 불응 및 업무방해 혐의도 적용될 수 있다”고 밝혔다.

김준영 기자 papeniqu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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