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릿' '리어왕' 등 셰익스피어 희곡 대부분은 원래 '시'였다

(서울=뉴스1) 권영미 기자 = 연극과 문학의 '공통 조상'이라고 할 '시극'(詩劇)의 전통을 되살리기 위한 노력이 극작과 번역 등 분야에서 이뤄지고 있다. 시인이자 극작가인 이윤택(64)·김경주씨(40)와 최종철(67) 연세대 교수가 그 주인공이다. 시극이란 대사의 대부분을 리듬감있는 시로 표현한 극을 말한다.
◇"속도 일변도의 사회, 시가 주는 떨림과 여백 주고파"
우선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극작가이자 연출가인 이윤택은 시극 불모지 상태인 국내 문화예술계에서는 보기 힘든 시극 작품을 최근 발표했다. 5장으로 구성된 시극 '꽃을 바치는 시간'이 든 신작시집 '숲으로 간다'(현대서정사)를 출간한 것이다.
'꽃을…'은 신라 향가인 '헌화가'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오래된 카페 '아미고'와 철거를 앞둔 고층빌딩, 고비사막을 배경으로 중년 남녀, 노인, 젊은 남녀 등 인간 군상의 내적 갈등을 흥미로우면서도 심도 깊게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시인 김경주 역시 2013년 서울시극단이 세종문화회관 무대에 올린 자신의 희곡 작품 '나비잠'(호미)을 지난달 책으로 내놨다. 시인으로 출발한 김경주는 올해 신춘문예 희곡 부문에 당선됐지만 이미 지난 10여년간 '시극운동'을 전개하고 시극으로만 채운 희곡집을 세 권 냈을 정도로 시극에 각별한 애정을 표해 왔다.
'나비잠'은 조선 건국 초기인 1390년대 중반, 사대문 성벽 공사가 한창인 한양을 무대로 무자비한 대목수에게 혹사당하는 민중들의 잠(또는 구원)을 향한 염원을 시적인 압축과 상징 속에 담은 작품이다.
시인으로 출발해 연극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가진 공통점을 가진 이윤택 연출가와 김경주 시인은 입을 모아 시극의 필요성을 말하고 있다. 이윤택 연출가는 "요즘 극들은 TV드라마처럼 서사 중심의 줄거리와 설명이 많지만 150년전만 해도 거의 모든 극은 시극이었다"면서 "극의 미학적이고 종합적인 면모를 되살리기 위해 시극을 썼다"고 밝혔다.
김경주 시인은 "속도가 지배하는 사회로 접어들면서 예술분야에서도 속도감 있는 스토리만 중시돼 시어가 줄 수 있는 떨림과 여백이 사라져가는 게 아쉬웠다"면서 "시적 침묵과 여백을 되살리기 위해 시극을 쓴다"고 설명했다. "감수성을 회복하려면 시를 회복해야 하고 시가 회복되려면 시의 소리가 회복돼야 한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우리나라 시극 역사는 길지만 현실은 척박
고대 그리스 연극이나 셰익스피어 희곡에서 보듯 3000년 가까이 서양의 극은 시극의 형태로 존재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바리데기 굿'에서 부르는 '바리공주 무가'나 판소리 등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시극의 역사가 서구 못지않게 길다.
하지만 현재 운율을 가진 대사로 구성된 현대시극은 국내는 물론 유럽이나 미국에서도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이윤택 연출가는 "서구에서는 19세기 후반 리얼리즘 연극 시대가 열리면서 헨리크 입센이나 안톤 체호프 등을 필두로 산문극이 위력을 떨치지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그나마 운문 중심인 셰익스피어 연극 전통이 살아있는 현재 서구에 비해 우리나라는 특히 시극의 불모지나 마찬가지인 상황이다. 김경주 시인은 "시가 주는 여백을 상상하고 채우는 능동적 역할이 독자들에게 요구되는데 사회상과 생활패턴이 바뀌면서 독자들은 지하철 시처럼 단순한 시를 찾고 있다"면서 시극 창작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하지만 척박한 현실에서도 이윤택 연출가는 시극의 가능성이 높다고 보았다. 그는 "시라는 추상적 장르와 극이라는 구상(具象)적인 장르가 만나는 과정에서 창작상의 어려움과 관객이 갖는 어색함이 있을 수 있다"면서도 "이를 극복하고 나아가면 국내에서도 좋은 창작 시극이 생산될 것"이라고 말했다.

◇시로 이뤄진 셰익스피어 희곡의 운문 번역도 진행중
이와 함께 내용의 절반 이상이 운문 형식으로 이뤄진 셰익스피어 희곡의 '음악성' '함축성' '상징성'을 되살리려는 시도도 번역 부문에서 이뤄지고 있다. 셰익스피어 희곡 가운데에는 운문 형식의 비율이 80% 이상인 작품도 전체 38편 가운데 22편이나 된다.
대표작인 '햄릿'과 '리어왕'은 전체 대사의 75%, '오셀로'는 80%, '맥베스'는 95%가 운문 즉 시다. 하지만 그간 국내에서 셰익스피어 희곡은 산문으로만 번역되어 내용(스토리) 전달에만 급급했다. 이 산문희곡을 토대로 연극을 공연하기에 셰익스피어 극은 영어권에서보다 우리나라에서 공연시간이 30분~1시간 더 길다.
제대로 된 셰익스피어 극을 소개하겠다는 생각에 최종철(67) 연세대 교수는 2019년 완간을 목표로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운문으로 번역하는 작업을 진행중이다. 2014년 ‘한여름 밤의 꿈’을 비롯한 희극 5편과 ‘헨리 4세’ 등 사극 및 로맨스 3편을 번역한 '셰익스피어 전집'(민음사) 2권을 내놓은 것을 시작으로 현재 전체 10권 중 5권이 출간된 상태다.
최종철 교수는 셰익스피어 희곡의 5음보 운문형식을 한국식 3·4조 또는 4·4조 리듬으로 번역했다. “시 형식으로 쓴 연극 대사를 산문으로 바꿀 경우 시가 가지는 함축성과 상징성 및 긴장감이 줄어들고, 수많은 비유를 통한 상상력의 자극이 둔화되며, 이 모든 시어의 의미와 특성을 잘 전달해줄 음악성이 거의 사라진다"는 것이 운문 번역을 고집하는 이유다.
한국셰익스피어학회 회장인 안병대 한양여대 교수는 "셰익스피어 극의 주인공들은 시로 된 대사를 소화해 압축적이고 장엄한 느낌을 극에 주었고 주변인물들은 산문으로 된 대사로 상황 설명의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시극을 무대에 올리는 것은 일반극보다 높은 배우의 역량을 필요로 한다"면서 "시극의 발성과 운율을 소화하기 위해 영미권 연극배우들도 수년씩 대사연습을 한다"고 전했다. 안교수는 "하지만 원작의 맛을 살린 운문으로 셰익스피어 극이 완역되고 실력있는 배우들이 이를 소화한다면 셰익스피어 극의 음악성과 깊은 내용을 국내 관객들도 곧 즐길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ungaung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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