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기자 MLB리포트]굿바이! 애증의 에이로드

스즈키 이치로(43)가 미 콜로라도 주 덴버의 쿠어스필드에서 우익수 머리를 넘어가는 3루타로 MLB 사상 30번째로 3000안타를 치기 몇 시간 전 뉴욕 양키스타디움.

운동장인 아닌 기자회견 실에서 울먹이며 마이크 앞에 앉은 선수는 바로 알렉스 로드리게스(41)였습니다. ‘에이로드(A-Rod)’라는 애칭으로 불리던 그는 22년 야구 생애를 접는다고 발표했습니다. 1994년 시애틀 매리너스에서 만 18세의 미소년으로 빅리그에 데뷔한 에이로드는 텍사스 레인저스와 뉴욕 양키즈를 거치며 정규 시즌 총 2781경기를 뛰었습니다. 그 사이 MLB 통산 4번째로 많은 696개의 홈런을 쳤고, 329도루를 기록했으며, 통산 3위인 2084타점을 수확했습니다. 대체선수대비승수기여도인 WAR은 117.9로 역대 12위에 올랐고, 547개의 2루타로 매니 라미레스와 함께 통산 30위에 랭크됐습니다. 오는 주말 한국 시간 14일에 은퇴 경기를 한다니 이 기록은 큰 변화 없이 에이로드의 역사책에 남을 것으로 보입니다. 


8일 기자회견을 통해 은퇴를 선언한 알렉스 로드리게스. 돌연 이번 주말 은퇴 경기를 한다고 발표했습니다. 통산 696홈런을 친 에이로드는 700홈런을 채우기 힘들어졌습니다. @MLB.com



에이로드를 떠올리면 2002년 텍사스 레인저스의 홈구장 알링턴볼파크 기자실에서 경기 취재 중 목격했던 한 장면이  늘 오버랩됩니다. 


정확한 경기 내용이나 상대 팀 등은 떠오르지 않습니다. 무더웠던 8월의 어느 날 저녁 경기였습니다. 구름과 바람이 많던 저녁에 난타전으로 벌어졌던 그 경기는 9회말 투아웃 만루까지 이어졌습니다. 레인저스는 2점차로 지고 있었고 타자는 바로 4번 에이로드였습니다. 

엄청나게 강한 파워를 뿜어낼 수 있는 커다란 아크의, 오른손 타자 중 가장 아름다운 스윙을 지녔다는 평을 듣던 시절이었습니다. 힘껏 휘두른 그의 방망이에 제대로 걸린 공은 좌측 관중석을 향해 힘차게 스타트를 끊었습니다. 에이로드는 끝내기 만루 홈런을 의식한 듯 양팔을 올리며 1루를 향해 뛰었고 더그아웃의 동료들과 관중석의 팬들도 모두 벌떡 일어났습니다. 그렇게 짜릿한 끝내기 만루포로 더운 여름밤의 대미를 장식할 순간이었습니다. 

앗, 그런데 누구도 의심치 않았던 좌측 담장 너머 관중석에 꽂혀야 할 그 공이 점점 힘을 잃기 시작하더니 워닝 트랙 담장 앞에서 상대 좌익수의 글러브에 잡히고 말았습니다. 당시 동료 박찬호도 무조건 넘어가는 줄 알았다며 아마 바람 때문에 잡힌 것 같다고도 했습니다. 


지나고 나서 에이로드가 각종 구설수에 연루될 때마다 그 장면을 떠올리게 됩니다. 혹시 바로 그 타석, 그때부터 에이로드가 약물의 유혹에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아닐까 하는 부질없는 상상을 하곤 합니다. 


텍사스 시절 에이로드는 팀의 리더였지만 그 자리가 그리 편해보이진 않았습니다. 기대에 부응하려는 중압감으로 이때 금지약물을 시작했다고 후에 밝혔습니다. @Rangers.com


191cm의 신장에 104kg의 건장한 체격의 에이로드는 아마도 야구 역사상 가장 뛰어난 재능을 타고난 선수일지도 모릅니다.

1994년 7월 드래프트에서 투수가 아닌 내야수, 그것도 고졸 선수가 전체 1번으로 뽑힌 것을 시작으로 바로 그 해 9월에 빅리그 데뷔전을 가졌을 정도로 그는 천재였습니다. 전체 1번으로 뽑혔을 당시 에이로드는 만 17세, 데뷔 때는 갓 18세였습니다. 1996년 풀타임 2년차이던 에이로는 만 20세에 3할5푼8리로 AL 타격왕에 올랐고 MVP 투표에서 2위를 차지하며 올스타와 실버슬러거에 선정됐습니다. 1998년 22세 시즌에는 42홈런에 46도루를 기록하며 ‘40-40 클럽’의 멤버가 됐고, 생애 통산 14번의 올스타와 MVP 3번, 실버슬러거 10번을 차지했습니다. 양키즈로 옮기면서 부동의 유격수이자 리더인 데릭 지터 때문에 3루수로 자리를 옮겼지만, 텍사스 시절 두 번이나 골드글러브를 받으며 지터를 제치고 AL 최고의 유격수 자리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수비폭이나 어깨에서 오히려 지터를 앞서는 유격수 능력도 보유했던 에이로드였습니다. 


그런데 텍사스 취재 시절 한동안 거의 매일 봤던 에이로드는 엄청난 재능과 비교하면 정신력이 대단히 강인한 선수는 아니었습니다. (물론 일반적인 잣대가 아니라 세계 최고 수준의 스포츠맨의 기준으로 볼 때 그랬습니다.)

자신의 팀내 위치에 걸맞게 리더의 역할을 열심히 하려고 했지만, 팀을 전체적으로 이끌어갈 리더십은 조금 부족했습니다. 착한 심성의 선수였지만 최고 스타의 자리에 적응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드릴 수 있는 성격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후에 부인이 됐다가 이혼했던 여자 친구를 당시 사귀고 있었는데, 심리학을 전공했다는 그 여자 친구는 에이로드에게 많은 위안이었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습니다. 흔한 스타들의 그릇된 거만함도 없었지만, 당당한 자존감도 왠지 부족한 그런 면이 종종 보였습니다. 인터뷰도 적극적으로 하고 친절했지만 모든 것을 드러내는 선수는 아니었습니다. 그런 에이로드는 뉴욕으로 옮긴 후 지터의 아우라에 묻히면서 더욱 내부로 파고들어간 듯했습니다. 


최초로 800홈런을 돌파할 선수로 기대를 모으던 그는 참 대단하고, 다양하고, 복잡하고, 아쉽기도 한 여러 가지 기록과 에피소드를 남기고 이제 녹색 다이아몬드를 떠납니다.(이번의 돌연한 작별도 100% 그의 의사로 결정한 것인지 잘 모르겠다는 느낌은 텍사스 시절부터 봐온 그의 성격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만 25세에 에이로드는 미국 팀 스포츠 사상 가장 큰 계약인 10년 2억5200만 달러를 받고 시애틀에서 텍사스로 이적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표현에 따르면 ‘텍사스의 알링턴에서 MLB의 낙오자로 묻히는 것이 두려워 금지약물에 손을 대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27세였고 엄청난 거액 연봉에 적합한 성적을 올려야 한다는 중압감이 극심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우승에 대한 열망은 그를 텍사스를 떠나 뉴욕의 양키즈 유니폼을 입게 만듭니다. 유격수 포지션의 자존심도 포기하고 3루수로 이동하면서까지 그는 최고의 팀으로 갑니다.  

그러나 양키즈에서도 우승 기회를 오지 않는 가운데 이적 후 5년째인 2009년 처음 금지약물 사건에 이름이 오르내리기 시작하면서 그의 남은 야구 인생은 롤러코스터를 타기 시작합니다. 개인 8번의 포스트 시즌 만에 처음으로 월드시리즈에 진출한 것이 바로 2009년이었는데, 에이로드는 그간 가을 잔치에서 보여줬던 지독한 부진과는 달리 끝내기 홈런을 거푸 치는 등 맹활약을 펼치며 꿈에 그리던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를 끼게 됩니다. 그것이 에이로드의 화려한 야구 생애에서 유일한 월드시리즈가 됐습니다. 그 후 4번 더 포스트 시즌에 올랐지만 월드시리즈 무대를 다시 밟지는 못합니다.

그 후 바이오제네시스 약물 스캔들에 직격탄을 맞은 에이로드는 적절치 못한 대처로 더욱 애증의 대상이 되고 맙니다. 솔직히 모든 것을 털어놓고 죄값을 치르는 대신 소송을 거듭하며 피해보려고 했지만 오히려 거짓말만 늘어놓게 됐고, 결국은 2014시즌 통째로 출전정지를 당합니다. 

징계를 받은 시즌 이미 그의 나이는 만 38세였습니다. 아직 3년의 계약이 더 남아있었지만 과연 에이로드가 2015년에 정상적으로 복귀할 수 있을지도 극히 회의적인 시선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런데 2015년 우리 나이로 마흔, 만 39세에 다시 돌아온 에이로드는 151경기를 뛰며 33홈런 86타점으로 부활해 야구계를 깜짝 놀라게 합니다. 심지어 꾸준한 팀 기여도와 동료 의식, 희생정신 등을 과시하며 MVP 후보에 선정돼 28위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역시 에이로드’라는 말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올 시즌은 어느 정도 기대도 됐습니다. 내년까지 계약이 남았으니 어쩌면, 혹시 어쩌면 본즈의 762홈런을 넘어설 수도 있지 않을까 가냘픈 희망까지 품게 만들었습니다. (-75였으니 사실 거의 불가능에 가깝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2016시즌 에이로드는 데뷔 후 22년 만에 처음으로 ‘벤치 워머’가 됐습니다. 62경기를 뛰었지만 교체 출전도 많았고 216타수에 44안타, 2할4리에 9홈런 29타점의 초라한 성적을 거두고 있었습니다. 팀은 주력 선수들을 대거 팔면서 본격적인 팜 리빌딩을 시작했고, 1루수 마크 터셰어러는 시즌 후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그 어수선한 팀 분위기 와중에 에이로드는 의외로 시즌 중반에 갑자기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만 17세에 시애틀이 전체 1번으로 뽑은 에이로드는 빅리그에 18세에 데뷔했고 20세에 타격왕이 됐습니다. 800홈런을 넘길지도 모른다는 기대는 금지약물 등의 추문과 함께 사라졌습니다. @Mariners.com



그렇다면 그는 과연 어느 정도의 선수였을까요?

‘프로야구는 비즈니스’라는 측면에서 볼 때 에이로드는 사상 최고의 몸값을 받은, 최고로 인정받은 선수였습니다. 

내년까지 남은 계약에 대한 정리가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에이로드는 야구 선수로 구단과 계약한 몸값만 총 4억5200만 달러인 것으로 ESPN.com은 밝히고 있습니다. 1994년 100만 달러라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사이닝 보너스를 받고 프로 생활을 시작한 그는 사상 유례가 없던 초대형 계약을 계속 이어가며 미국 팀 스포츠 사상 가장 많은 몸값을 받은 선수가 됐습니다. NBA 농구 스타 케빈 가넷이 3억3600만 달러로 역대 2위니까 다른 스포츠와도 큰 차이가 납니다. 

에이로드는 MLB 정규 시즌 2781경기를 뛰었는데 경기 당 평균 약 16만2500 달러, 우리 돈으로는 약 1억8000만 원을 받고 뛴 셈이 됩니다. 시애틀 시절은 경기 당 1만6000 달러가 약간 넘었고, 텍사스 시절에는 한 경기를 뛰며 무려 25만7700 달러를 받았고, 양키즈에서도 20만 달러가 약간 넘는 경기 보수를 받은 셈이 됩니다.  

 

봉급으로 따지면 역대 최고인 에이로드는 팀 기여도에서도 역시 정상급이었습니다. 

앞서 언급한 WAR 117.9는 1990년 이후 데뷔한 선수 중에 단연 최고입니다. 알버트 푸홀스가 100.5로 2위이고, 아드리안 벨트레가 87점, 페드로 마르티네스가 86점 등으로 뒤를 잇고 있습니다. 

통산 WAR 80 이상을 기록한 선수 46명 중에 명예의 전당에 들지 못한 선수는 7명이 있습니다. 그 중에 에이로드와 함께 벨트레와 푸홀스는 현역이고, 치퍼 존스는 은퇴 후 5년이 안 돼 아직 후보 자격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현재 후보에 올라있지만 뽑히지 않은 선수는 마이크 무시나(82.7), 로저 클레멘스(139.4), 배리 본즈(162.4) 등 3명뿐입니다. 100점이 넘는 선수 중에는 클레멘스와 본즈만이 명예의 전당에 들지 못했습니다.  


에이로드는 3팀에서 각각 150개 이상의 홈런을 친 유일한 선수이기도 합니다.

또한, 그는 MLB 사상 유일하게 두 포지션에서 250개 이상의 홈런을 친 타자이기도 합니다. 작고한 어니 뱅크스가 포수와 1루수로 각각 200개 넘은 홈런을 친 기록은 있습니다. 행크 애런과 베이스 루스에 이어 역대 타점 3위이기도 한 에이로드는 역사상 300도루+와 500홈런+을 이룬 세 명 중 하나입니다. 배리 본즈가 762홈런에 514도루를, 윌리 메이스는 660홈런과 338도루를 기록했습니다. 

696홈런은 역대 4위이고, 3114안타는 역대 19위, 2021득점은 역대 8위, 그리고 25개의 그랜드슬램은 통산 1위입니다. 


만 30세 시즌까지 464홈런을 치며 역대 최다였던(켄 그리피 주니어 438홈런으로 2위) 그는 약물 스캔들과 얽히면서 나이와 함께 점차 하락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2010시즌을 마쳤을 당시 34세의 에이로드는 613홈런을 쳤고 13년 연속 30홈런 이상으로 여전히 건재했습니다. 그런데 그 후 6년간 총 83홈런을 치는데 그쳤습니다. 징계로 한 시즌은 아예 못 뛰었고, 100경기 이상 뛴 시즌은 두 번뿐이었습니다. 


8일 은퇴 선언을 하며 에이로드는 “오늘은 내게 정말 힘겨운 날이다. 나는 야구를 정말 사랑하며 우리 팀을 사랑한다. 그러나 나는 오늘 작별을 고하려고 한다.”라며 울먹였습니다. 

참 많은 팬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고, 또 참 많은 팬들을 실망시키며 애증의 대상이 됐던 알렉스 에마누엘 로드리게스. 이렇게 전격적으로 끝날 줄은 몰랐지만 또 한 명의 스타 플레이어가 이제 막 글러브를 접고 방망이를 내려놓으려고 합니다. 

그가 명예의 전당에 들어갈 수 있을지는 현재로서는 의문이지만, 역사상 가장 뛰어난 재능을 가진, 아주 많이 아쉬운 선수로 오래 기억될 것은 분명합니다. 


이 기사는 minkiza.com, ESPN.com, MLB.com, baseballreference.com, CBSSports.com 등을 참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