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1983년엔 '대도' 2016년엔 '피싱'..달라진 범죄 트렌드

박주연 기자 2016. 8. 5.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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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소매치기에서 스피어피싱까지’ 범죄 양상의 재구성
ㆍ작년 한 해 소매치기 1400건·사이버 범죄 14만건

1998년 한 버스정류장 표지판에 붙은 ‘소매치기 주의’ 경고문.

경향신문 자료사진

# 1983년 4월19일 오전 10시24분 서울 중구 장충동 2가 주택가에서 두 발의 총성이 울린다. 엿새 전 법원 구내 구치감의 환풍기망을 뜯고 탈주한 절도범 조세형이 인질극을 벌이다 경찰이 쏜 총에 맞아 붙잡힌 것이다. 이 일로 세상은 떠들썩했다. 사람들은 그를 ‘대도(大盜)’, ‘의적’으로 불렀다. 권력층과 부유층의 저택만 골라 물방울 다이아몬드를 비롯한 수백억원대 귀금속과 현금을 털어온 행적 때문이다. 검거 당시 그는 전과 11범이었다.

# 2016년 3월 LG화학은 사우디아라비아의 거래처로부터 납품대금 계좌가 변경됐다는 e메일을 받았다. LG화학은 의심 없이 해당 계좌로 거래대금 240억원을 송금했다. 하지만 변경된 계좌는 거래처의 계좌가 아닌 국제사기단이 만든 가짜 계좌였다. 국제사기단이 LG화학의 주요 거래처들의 e메일을 해킹한 후 LG화학에 송금 계좌가 변경됐다는 e메일을 보내 무역대금을 자신들의 계좌로 보내게 한 것이다. 240억원은 LG화학 분기 영업이익의 5%에 해당하는 금액이자 직원 280명의 1년치 급여와 맞먹는 액수다.

사회환경이 변하면서 주거침입 범죄와 연쇄살인 등이 감소하는 대신 경제적 이득이 큰 신종 디지털 범죄가 활개를 치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탈주극 끝에 총에 맞은 대도 조세형(1983), 연쇄살인범 유영철(2004), 국과수 감식반원들의 현장 감식, 사이버 해커 시연 장면. 경향신문 자료사진

1990년대까지만 해도 남의 집에 들어가 금품을 훔치거나 강도짓을 하는 범죄가 속출했다. 7~8명이 한 조를 이뤄 대로상에서 거액을 낚아채 유유히 사라지거나, 4~5명이 팀을 이뤄 만원버스에서 피해자의 주머니나 가방을 찢고 감쪽같이 돈을 훔치는 소매치기도 많았다. 최근 들어 이 같은 주거침입 절도 및 강도 범죄와 소매치기 범죄가 눈에 띄게 줄고 있다. 반면 피싱·파밍·스미싱·스피어피싱(e메일해킹 무역사기) 등 신종 사이버금융사기 범죄가 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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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흐름은 경찰청과 대검찰청의 최근 10년간의 범죄통계 분석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5일 경찰청은 주거침입 절도는 2006년 3만1362건에서 2015년 1만7919건으로, 소매치기 절도는 2006년 3083건에서 2015년 1401건으로 각각 감소했다고 밝혔다. 10년 새 주거침입 절도는 43%, 소매치기 절도는 55%나 급감한 셈이다. 반면 전화금융사기(보이스피싱)는 2007년 3981건에서 2009년 8454건으로 급증한 이후 등락을 거듭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사이버범죄는 2006년 8만2186건이던 것이 2013년 15만366건으로 2배 가까이 증가했다가 2014년 사이버범죄 유형 구분이 바뀌면서 11만109건으로 줄었다. 그러다 지난해 14만4679건으로 다시 급증했다.

침입강도 범죄의 감소 추세는 대검찰청 통계 자료 분석을 통해 확인된다. 2005년 1912건이던 것이 2014년 682건으로 10년 새 64%나 감소했다. 이 수치엔 주거침입뿐 아니라 편의점, 유흥접객업소 등이 포함돼 있어 실제 주거침입범죄 건수는 훨씬 더 적을 것으로 추정된다.

■사회환경 변화에 범죄유형도 변화

범죄양상의 변화는 달라진 사회환경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주거침입 절도와 강도가 급격히 줄고 있는 것은 주거환경 변화가 가장 큰 요인”이라고 진단했다. 과거엔 보안이 허술하고 담 하나만 넘으면 침입할 수 있는 단독주택이 많았지만 지금은 CCTV 등 보안시설이 갖춰진 아파트나 오피스텔 등이 많기 때문이다.

과학수사 발전도 범죄의지를 꺾는 데 한몫한다.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DNA를 비롯해 손바닥 지문, 냄새, 걸음걸이, 혈흔 등 다양한 흔적들로 범인을 특정하는 수준까지 과학수사기법이 발전하면서 강력범죄 가해자에 대한 검거율이 높아졌고 이것이 보안시설의 보편화와 함께 범죄예방 효과를 가져왔다”고 설명했다. 표 의원은 또 “경제수준의 향상, 복지혜택의 증가, 금융거래 환경의 변화도 주거침입 절도·강도 발생을 감소시킨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현금 등 가져갈 게 별로 없어 범죄자 입장에서는 높은 위험을 감수할 만큼의 이득이 사라진 것이다. 또한 범죄에 대한 시민들의 경각심이 높아져 문단속 등 침입 절도·강도에 대한 대비가 강화된 것도 범죄발생건수를 줄이는 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경찰청의 ㄱ간부는 “침입절도·강도에 대한 경찰의 인식변화도 영향을 끼쳤다”고 말했다. 과거엔 절도범을 잡아도 실적으로 쳐주지 않는 데다 잡기도 힘들어 형사들이 관심을 크게 두지 않았다. 대부분 피해자가 모르는 사람의 범행인 데다 지금처럼 CCTV·차량 블랙박스 같은 장비도 없고 과학수사도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면에 살인사건은 대부분 면식범에 의해 일어나고 범행동기가 있어 상대적으로 해결하기 쉽다. 게다가 검거 공로로 특진 기회도 주어진다. 이 때문에 살인사건이 터진 지역에서 절도가 되레 늘어나는 웃지 못할 현상이 빚어지기도 했다. 해당 지역에 살인사건 해결을 위한 수사본부가 차려지면 모든 형사들이 여기에만 집중한 탓이다. ㄱ간부는 “요즘은 침입 강·절도에 대해 국민들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데다 경찰 내부에서도 공로를 인정해주면서 형사들의 검거 의지가 높아졌다”고 말했다.

소매치기가 줄어든 것은 현금 대신 카드 사용이 일반화하면서부터다. 힘들게 남의 주머니를 털어봐야 ‘카드뿐인 지갑’이다 보니 저절로 감소했다. 서울지방경찰청 강력계 ㄴ경감은 “소매치기가 한풀 꺾인 대신 한동안 기승을 부린 게 편의점 강도”라고 말했다. 기본적으로 현금이 있는 데다 접근성이 좋고 근무자가 혼자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24시간 영업도 당장 돈이 필요한 범죄자를 유혹한다. 하지만 검거율이 90%를 넘고 언론보도도 잦다 보니 요즘엔 편의점 범죄도 많이 줄어드는 추세라는 게 ㄴ경감의 설명이다.

■노력 대비 이득 큰 ‘사이버금융사기’

정보통신이 발달하면서 ‘전통적인’ 범죄가 주는 대신 신종 사이버범죄가 급증하고 있다. 신의기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돈이 목적일 경우, 금융사기 범죄가 몸을 쓰는 노가다형 대면범죄보다 노력 대비 이득이 크기 때문에 전자가 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금융환경 변화는 초기 유형인 보이스피싱(전화금융사기)부터 시작해 피싱, 파밍, 스미싱, 메모리해킹, 스피어피싱 등 다양한 사이버 금융사기를 낳고 있다. 요즘엔 해킹, 악성코드, 개인정보 탈취 등이 결합된 신종 금융사기도 등장했다.

경찰청 사이버안전국에 따르면 스미싱, 피싱, 파밍 등 사이버금융범죄로 인한 피해액은 2014년 10월 말 기준으로 500억원을 훌쩍 넘었다. 정명국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 팀장은 “최근 가장 문제되는 사이버범죄 중 하나가 LG화학 사례와 같은 스피어피싱”이라며 “이들 사기단은 양쪽 어딘가를 해킹해서 e메일을 계속 관찰하다 어느 순간 끼어들어 상대방에게 송금계좌가 변경됐다는 식의 거짓말로 돈을 가로챈다”고 말했다. 김대근 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사이버범죄의 특징 중 하나는 수천만 건을 뿌려 한 건이라도 걸리면 이득을 얻는 확률게임이라는 점”이라고 말했다.

성을 매개로 한 사기나 성매매범죄도 온라인을 기반으로 횡행한다. 스마트폰 채팅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조건만남이 이뤄진 지는 이미 오래. 지난 4월엔 스마트폰 영상통화로 음란행위를 유도한 뒤 이를 약점 삼아 돈을 뜯어내는 이른바 ‘몸캠 피싱’으로 수억원을 가로챈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 6월엔 ‘사모님’과의 매춘을 알선해 고액을 벌게 해주겠다며 입회비 등을 빌미로 수천만원을 가로채 중국으로 송금한 보이스피싱 조직원이 경찰에 붙잡히기도 했다.

■연쇄살인 사라지고 조폭은 분화되고

서울지방경찰청 강력계 ㄴ경감은 “살인범죄에서 두드러진 특성은 연쇄살인범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2010년 경찰에 붙잡힌 안남기 이후 연쇄살인범은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청주에서 택시운전기사로 일한 안남기는 2004년부터 2010년까지 자신의 차에 탄 부녀자 세 명을 잇따라 살해했다. 서울에선 2006년 4월 검거된 정남규가 마지막이다. 정남규는 2004년부터 2006년 4월까지 3년간 쇠망치를 이용해 모두 8명을 살해하고 14명에게 중상을 입혔다. 유영철, 강호순 등 2000년대만 해도 경찰에 붙잡힌 연쇄살인범은 8명에 달한다. 연쇄살인이 최근 몇 년 사이 나타나지 않는 것에 대해 전문가들은 첫번째 살인 후 범인이 곧바로 검거되기 때문으로 해석한다. CCTV 등에 의해 범죄자 추적이 쉬워졌고, 과학수사 덕분에 범인 적발률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조직폭력배들의 움직임에도 변화가 생겼다. 김석호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조직폭력반장은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조폭범죄는 몰려다니면서 일으키는 세력 대결이었다. 그리고 대다수가 ‘나와바리(관할권)’를 둘러싼 다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개인화, 소규모화했다. 계파와 관계없이 돈 되는 일을 찾아 개별적으로 움직인다”고 말했다. 보스가 월급을 주면서 단체 행동에 나서던 시대는 저문 것이다. 서울에서 폭력조직들이 조직 대 조직으로 맞붙은 마지막 사건은 2009년 11월 서울 강남 청담동 한복판에서 발생했다. 당시 범서방파와 부산 칠성파가 회칼과 각목 등을 들고 일촉즉발의 상황까지 갔다. 다행히 경찰이 출동해 참극은 벌어지지 않았다. 김 반장은 “이 사건도 관할권 다툼이 아니라 개인적 원한으로 시작한 게 커진 것”이라고 말했다.

■달라진 유괴 양상과 성범죄 수치의 함정

영화 <그놈 목소리>(2007)는 미제사건인 이형호군 유괴살해사건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1991년 1월29일 서울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앞에서 형호군을 납치한 범인은 사건 당일 밤부터 16일 동안 50여 차례의 전화통화와 10차례의 메모지로 부모를 협박하며 돈을 요구했다. 번번이 경찰의 작전은 실패했고, 이군은 사건 발생 43일 후 숨진 채 발견됐다. 이처럼 부모에게 돈을 뜯어내기 위해 어린이를 납치해 대서특필 된 사건은 1997년 발생한 박초롱초롱빛나리 유괴 살인사건이 마지막이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까지 특별담화에 나선 정효주 유괴사건(1978년, 1979년 두 차례 발생), 이윤상 유괴 살해사건(1980) 등 1970~1980년대만 해도 이런 종류의 유괴사건이 많았다. 이 역시 CCTV 등으로 인해 추적이 쉬워지면서 점차 소멸된 것으로 해석된다.

이후 어린이 유괴 양상이 많이 달라졌다. 가장 뚜렷한 변화는 가해자가 친부모 등 가족인 경우가 많아진 점이다. 강은영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2004년부터 2008년 통계 분석 결과 29.1%가 친부모에 의한 유괴였고 지금은 그 비율이 더 높아졌을 것으로 추정된다”며 “이혼율이 높아지면서 양육권이 없는 한쪽 부모가 전 배우자 몰래 아이를 데려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혼율이 높은 미국의 경우도 유괴 사건의 70%는 가족이 가해자다.

성폭력범죄는 2005년 1만3631건에서 2014년 2만9863건으로 10년 사이 2배 이상 늘었다. 하지만 통계만으로 성범죄가 증가했다고 단정하긴 어렵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황지태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 10여년간 거의 매년 성폭력범죄 관련 특별법 제정 및 개정 과정에서 성폭력범죄 적용범위가 확대됐다. 그 자체만으로도 성폭력범죄 수치가 늘어날 수 있다. 여기에 여성인권 신장 등으로 성폭력범죄 신고율의 변화 가능성, 사법기관의 성폭력범죄에 대한 인식 변화 등 요인을 감안하면 통계추세만으로 실질적 증감을 파악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실제로 강제추행 범위는 과거에 비해 크게 확장됐다. 또 2013년부터 친고죄가 폐지되고 성인 남성도 강간의 객체에 포함됐다.

전문가들은 “사회환경 변화에 따라 달라지는 범죄양상에 대처하기 위해선 치안의 패러다임 변화가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표창원 의원은 “선진국에선 정보가 주도하는 치안활동(intelligence led policing)이 1980년대 이후 적용됐다. 즉, 경찰이 범죄추이 변화를 계속 모니터링해 즉각 정보로 취합해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인력배치, 교육연수, 치안의 방향전환을 한다. 그 결과 범죄대책이 선제적, 공격적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국내 범죄대책은 바뀐 범죄양상이 큰 사회적 문제로 부상하면 뒤쫓아가는 형국이다. 표 의원은 “현재 사회, 정치, 문화, 학원, 노동 등에 대한 감시에 집중돼 있는 경찰의 정보 역량을 범죄 트렌드 분석, 범죄자들의 동향 분석에 집중해야 비로소 정보 중심의 치안활동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박주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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