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인 이환의가 쓰는 농부 이반의 초록일기] 귀촌 꿈꾸는 당신.. 3년 버틸 생활비 확보해야
지금 사는 곳에서 멀지 않은 곳으로 이사를 가려 해도 챙겨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아이들 학교는 가까운지, 놀이터가 있는지, 주변이 시끄럽거나 교통이 불편하지는 않은지…. 하물며 도시에서 농촌으로, 회사원에서 농부로, 이해 중심에서 관계 중심으로 삶의 뿌리를 송두리째 옮겨야 하는 시골살이는 실행하기 전에 점검해야 할 것도, 조목조목 짚어봐야 할 것도 많다. 시골살이를 꿈꾸는 이라면 언젠가 한 번은 스스로 꼭 묻고 넘어가야 할 항목을 다섯 가지로 요약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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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농법 논에서 모를 심는 도시민들. 농사의 어려움을 몸으로 체험하는 중이다. |
농촌으로 가려는 가장 큰 이유는 뭐니 뭐니 해도 ‘나와 가족의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찾아서’일 것이다. 시골에 가면 확실히 도시에서 살 때보다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나 자연스레 가족 간의 거리가 줄어든다. 하지만 전제되어야 할 것은 부부 간 합의와 자녀의 동의다. 가족 모두가 마음을 모으면 더할 나위가 없겠지만 가족 중에 한 사람이라도 반대할 때는 충분한 시간을 갖고 기다려야 한다. 남편과 아내, 어느 한 편의 의지로 시골살이를 감행한 가정들 중 심하면 배우자가 우울증에 걸리거나 무기력이 이어지는 등 말 못할 고민을 안고 살아가는 예도 여러 번 보았다. 아이들도 낯선 곳에서 적응하기 어려워하며 도시로 돌아가자고 조르는 경우도 많다. 나아가 시골살이의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억지로 끌려 내려온 이에게 불만의 목소리가 녹음기처럼 반복되는 것도 피하기 어렵다.
가족 중 누군가 심하게 반대하는 까닭은 대개 새로운 환경이나 생활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시골에 가면 친구들 만나기도 어렵고, 힘든 농사일에 문화생활은 꿈도 꾸기 어려울 거야. 애들은 또 어떻게 키우지? 학원도 멀고…. 가면 안 돼. 난 도시가 맞아!’ 아내나 남편이 이와 비슷한 속마음을 내보인다면 우선 그 마음 그대로 인정하자. 대신 귀농강좌 수강 안내나 관련 도서 선물, 농촌체험 행사 참여와 비슷한 문제를 극복한 선배 농가 방문 등을 통해 여러 상황을 경험하게 하는 것이 방법이라면 방법이다. 요컨대 부부 간에 비슷한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다. 그러면 소소하게 남을 것은 남고 걱정이나 두려움은 천천히 사라져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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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성에서 귀농 준비를 하는 김재훈(40)씨. 선배농가에서 영농체험을 하고 있다. |
몇년 전 나는 충남에 안착한 귀농·귀촌인들의 공모 수기를 심사한 적이 있다. 이른바 성공사례를 모으려 한 것이지만 응모한 이들의 면면을 살펴보니 우리 가족이 귀농 초에 겪었던 어려움이 곳곳에 비슷한 모양새로 나타난다. 특히 수십 편의 수기들을 하나로 잇는 공통의 어려움은 초창기 3년 안팎의 무수한 시행착오와 예상보다 보잘 것 없는 수입이다. 농사를 지어 보면 호미와 낫 따위의 기본 농기구에서 비닐이나 농약 등 농자재 구입 비용도 만만치 않을뿐더러 여기에 집수리마저 남의 손에 맡긴다면 1000만∼2000만원은 최소한의 비용에 가깝다.
일머리 없는 새내기 농부로 농사철 내내 아침부터 저녁까지 동동거리며 바지런을 떨어도 누군가 수기의 한 구절처럼 전원생활은 한낱 꿈이고 현실은 고난의 연속에 가깝다. 극단의 사례로 한 해 수입이 두 아이의 유치원 교육비에도 미치지 못해 탈농하는 경우도 있다. 우리 부부처럼 첫해부터 수지를 맞추는 드문 예도 있지만 대개 3년 안에 적자를 벗어나면 정착에 성공한 것으로 본다. 따라서 짧게는 일년, 길게는 3년치 생활비를 준비하는 것이 안전하다.
다행히 생활비는 도시에 비해 적게 들 것이다. 하지만 이것도 시골 특유의 생활방식으로 전환해야 가능한 일이다. 크게 필요치 않으면 휴대폰 요금제도 낮추고 찬거리는 시장보다는 텃밭이나 들에서 해결한다. 당연히 적지 않은 비용이 들어가는 외식이나 취미생활도 가능한 줄여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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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미와 삽 등 농기구들. 농사를 지으려면 수십 가지가 필요하다. |
시골살이 10년 내로 이사 횟수에 따라 귀농·귀촌인들을 나눠 보면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이 나타난다. 크게 두 모둠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한 쪽은 대부분 두 번 이내의 이사로 완전히 정착한 부류이고, 나머지는 세 번 이상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게르족이다. 심지어 같은 땅에서 2년 이상 농사를 짓지 못한 농가도 있는데 6년간 여섯 번이나 삶터나 일터를 옮긴 예도 직접 들었다.
왜 그럴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결과적으로 후자는 이사하느라 막대한 에너지가 들어간다. 그렇지 않아도 바쁘고 힘든 게 시골살이다. 정말 큰 맘 먹지 않으면 삶의 자리를 옮기는 게 쉽지 않다. 이삿짐도 도시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웬만큼 농사채가 있는 집이라면 농사용 살림이 집안 살림보다 몇곱절 더 많으니 말이다.
꿈에 그리던 내 집을 짓거나 매입하는 것과 같은 이유로 삶터를 옮기는 건 축복받을 일이지만 그러지 않은 경우라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읍이나 면의 경계를 넘지 않는 한 리(里) 단위의 이주는 시나브로 부정적인 소문이 전해져 정착에 방해가 될 수도 있다. 지역민들의 입장에서 보면 임차가 많은 귀농인의 특성상 1∼2번(임대로 시작해서 집을 사거나 새 집을 지음)은 수긍을 하지만, 잦은 이사는 지역 사람들의 신뢰를 떨어뜨리고 경계심을 부추긴다. 일단 부정적인 소문이 돌면 좀처럼 회복하기 어려운 곳이 시골이다. 그래서 첫 단추를 잘 끼우는 것이 도시보다 시골이 더 어렵고 중요하다. 도시민 대상으로 귀농교육을 할 때 첫인상이 아닌 첫해 인상을 강조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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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배농가를 찾은 도시민들. |
귀농 10주년이 되던 해에 우리 지역에 내려왔다가 도시로 돌아간 이들과 남은 이들의 차이점을 곰곰이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이른바 준비 없이 내려온 IMF(국제통화기금)형 귀농과 그렇지 않은 경우에 초점을 맞추고 탈농한 사람들을 떠올려보니 둘의 차이가 점점 또렷해졌다. 무엇이 두 그룹의 행보를 서로 다른 방향으로 하게 했을까? 시골에 안착한 사람들의 공통점을 찾아보면 비결을 찾을 수 있다.
결론부터 밝히면 이 둘의 갈림길은 농촌생활을 즐기느냐 그러지 못하느냐에 달려 있었다. 즉 1997년의 IMF와 2008년에 있었던 미국발 금융위기 등 어려운 시절에 잠시 부모형제가 있는 고향에 의탁했거나, 혹시라도 농촌에서 돈을 벌 수 있을까 하는 막연한 희망을 갖고 온 이들은 얼마 버티지 못하고 유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에 반해 체계적인 귀농교육을 받거나 나름대로 준비를 탄탄히 하고 내려온 이들은 초기에 비슷한 어려움을 겪지만 탈농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두 집단의 차이는 무려 69%라는 좁히기 어려운 간극으로, 우리 지역에서는 지난 20년간 단 몇 농가만 도시로 돌아갔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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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동네 마을회관의 벽면. 시골에 오래도록 남으려면 준비가 필요하다. |
모든 것이 낯선 시골에서 큰 어려움 없이 안착할 수 있다면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시골도 사람 사는 곳이라 크고 작은 다툼과 갈등이 생기는 것은 도시와 마찬가지다. 개개인을 중시하는 도시의 ‘분리와 독립’은 ‘협동과 통일’을 앞세우는 농촌의 가치와 수시로 부딪친다. 이따금 새벽에 대문을 두드리는 어르신들도 계시고 개인적으로 바쁜 일이 있어도 동네 애경사에는 빠지기가 쉽지 않다. 때로는 양해도 없이 내 논의 물꼬를 틀어막고 당신 논으로 물길을 돌리는 논이웃도 허다하다.
자주 겪다 보면 어느새 익숙해지겠지만 이런 일에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하면 급기야 시골이 싫어질 수도 있다. 나아가 생각지도 않은 일로 마을 주민과 갈등이 생기기도 하고 심지어 귀농 동료와도 뜻이 맞지 않아 심각한 어려움에 빠지기도 한다. 문제가 있으면 해법도 있지만 농촌의 해법은 도시와는 많이 다르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마을이나 지역 내에서 일을 당할 때 당장 분하고 억울하더라도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말고 차분하게 인내로 풀어야 하는 것은 기본이고 물리적 충돌은 절대 금기사항이다. 모든 것은 통과의례로 한 번 지나가면 다시 오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어느새 마음이 평온해진다. 시골에서 최후의 승자는 농사가 그러하듯 작물이 요구하는 적절한 시기에 농부가 할 일을 하면 그만인 것처럼 지역민과의 관계 역시 마찬가지다.
부디 지역민보다 앞서지 말고 뒤처지지도 말며 그이들과 행보를 나란히 하시라. 그리고 오래오래 기억하시라. 시골살이의 어려움을 이겨낼 마음의 준비 중 으뜸은 모든 관계의 싸움에서 지고 또 지는 것임을! 문자 그대로 ‘지고 들어가면’ 시골살이가 편안해진다. 시집살이나 부부싸움이 그러한 것처럼….
이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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