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조위 강제종료, 조사는 계속되어야 한다

박송이 기자 입력 2016. 7. 30.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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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세월호 특조위 강제종료 한 달, 예산·월급 끊겨 조사 어렵지만 열정으로 활동 이어가
7월 27일 서울 광화문 광장 내 세월호 광장에서 이석태 세월호특조위원회 위원장이 단식농성을 하고 있다. / 이준헌 기자

7월 28일. 단식 이틀째다. 이석태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위원장이 광화문광장에 앉아 있다. 오전 10시30분쯤, 누군가 이 위원장을 찾아와 알은체를 한다. 전날 이 위원장의 단식 소식을 취재했던 한 언론사 기자다. 그는 이 위원장에게 자신의 보도 내용을 봤느냐고 물으며 이 위원장에게 이해를 구했다. 자신의 보도 내용을 고치려는 데스크(부장)와 싸웠지만, 자신도 어쩔 수 없었다는 취지의 내용이었다. 보도에는 단식을 시작하는 이 위원장에 대한 부정적인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는 자신도 최선을 다했다며 사과인지, 변명인지 알 수 없는 말로 이 위원장에게 이해를 구했다.

7월 27일 오후 2시. 이석태 위원장은 특조위의 조사활동을 보장하라고 요구하며 단식농성에 돌입했다. 방송, 신문 등 많은 매체들이 취재를 했다. 그러나 이 위원장의 단식 소식이 얼마나 보도될지, 정부의 강제종료로 예산과 권한이 모두 박탈된 특조위의 절박함이 얼마나 제대로 보도될지는 알 수 없었다. 특조위에 대한 일부 언론의 프레임은 부정적이었다. ‘세금도둑’ ‘혈세낭비’라는 이미지를 덧씌웠다. <미디어오늘> 보도에 따르면 <조선일보>는 특조위 보도와 관련해서 모두 네 번의 정정보도를 냈다. 특조위의 예산을 두 배 가까이 높게 보도하고 특조위가 해외출장에서 비즈니스 항공권에 해당하는 비용을 요구한다는 것 등이었다. ‘세금도둑’ ‘호화 특조위’ 프레임이었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었다. <조선일보>는 정정보도를 내야 했다.

비협조적인 정부, 정부 편향적인 미디어라는 악조건 속에서 힘겹게 분투하던 특조위가 강제종료된 것은 지난 6월 30일. 2015년 1월 1일을 기산일로 보는 정부는 1년 6개월간의 특조위 활동이 6월 30일로 종료됐다고 주장한다. 정부의 주장대로라면 보고서 작성 기간인 3개월이 지나면 오는 10월 특조위는 완전히 문을 닫게 된다. 그러나 특조위의 주장은 다르다. 세월호 선체 인양과 미수습자 수습은 아직 시작도 하지 못했다. 기산일을 따져보면 별정직 일부를 채용함으로써 처음 인적 토대를 갖춘 게 2015년 7월 27일이다. 예산 배정을 받은 날도 8월 4일이다. 조사활동을 시작할 수 있는 인적·물적 기반을 갖춘 것은 채 1년도 되지 않았다.

강제종료 이후 한 달 동안 특조위는 어떻게 활동해 왔을까. 물론 조사관들의 월급은 끊겼다. 관련 사업 예산도 없다. 정부 부처는 특조위의 자료 제출 요구를 거부하고 연락을 받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조위는 계속해서 활동을 이어가고 있고 진실에 한 발짝 더 다가가고 있었다. 지난 7월 27일 특조위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트위터에서 세월호 피해자들을 비하하는 활동이 과거 국가기관 댓글조작 패턴과 유사함을 밝혀낸 것이다. 조직적인 여론 조작이 있었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이 날 특조위의 활동이 종료됐음에도 특조위 사무실에는 많은 기자들이 참석해 이를 취재했다. 그러나 특조위 조사관들의 아쉬움은 깊다. 예산과 인력이 더 있었다면 좀 더 깊이 있는 조사가 가능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다. 빅데이터 조사는 비용이 많이 드는 작업이다. 부족한 예산으로 전 기간을 조사할 수 없어 열흘씩 세 기간을 샘플로 추출해 조사할 수밖에 없었다. 세월호 피해자에 대한 악의적인 댓글은 SNS보다 포털사이트에 더 많았지만, 포털사이트에서 데이터를 사오는 비용이 많이 들었기 때문에 포털사이트 분석은 할 수 없었다.

보고서 발표가 있던 7월 27일 오후 1시, 단식농성 기자회견을 앞두고 이석태 위원장은 직원들 앞에 섰다. 직원들에게 단식농성에 들어간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다. 이 위원장은 먼저 직원들을 치하했다. “최근에 진상조사 결과에 국민들의 관심이 많았다. 만약 정상적으로만 조사되었다면 더 많은 결과들이 나왔을 텐데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강제종료된 지 한 달, 조사관들의 열정으로 특조위는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내부의 동요는 생각보다 적지만 이러한 분위기가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신분은 불안정해졌고 당장 재직증명서, 경력증명서 발급에도 제약이 생겼다. 가장으로서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조사관들에게 부담스러운 시간일 수밖에 없었다. “기본적으로 특조위는 조사만 열심히 하는 게 원칙이다. 그러나 별정직 직원 최고직인 진상규명국장을 임명해달라, 파견하지 않은 19명의 공무원을 파견해달라는 등의 문제로 조사관들 각자가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소모했어야 했나. 일일이 이야기할 수 없지만 여러분들 각자가 정부기관에 자료 등을 보내달라고 했을 때 이를 제대로 받지 못해 느꼈을 좌절감은 익히 알고 있다. 이를 이제는 끝낼 때가 됐다. 밖에 나가서 국민들에게 우리의 실상을 보여주고 특조위 고유의 업무, 조사관으로서 오로지 조사만 할 수 있도록 요구할 작정이다.”

이 위원장은 특조위 활동 보장을 요구하는 자신의 단식과는 별도로 조사관은 조사와 청문회 준비를 이어가 달라는 당부를 남겼다. “특조위가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직무를 잘 수행하려면 조사관들이 마음속에 일정한 전망을 가지고 가야겠다는 생각이다. 위원장인 내가 특조위 내에서뿐만 아니라 밖에서도 유가족들과 국민들을 향해 우리가 여전히 살아있다고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특조위가 실제 성과를 보였을 때 국민들은 큰 관심을 보인다. 특조위의 조사는 계속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력하게 표명할 필요성이 생겼다.”

이 위원장이 광화문광장으로 향한 7월 27일, 세월호 인양을 담당하는 조사관은 내부에서 비용을 충당해 진도 현장으로 향했다. 이날 세월호 인양작업의 첫 단추인 선수들기 작업이 예정돼 있었다. 물리적인 환경이 어렵지만, 그래도 ‘반드시 가야 할 자리는 간다’는 대원칙 하에 조사관들은 조사를 이행했다. 물론 현장은 더욱 열악해져 있었다. 강제종료 이전에도 해수부가 특조위에 협조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다음날 인양작업이 시작되면 마지못해 그 전날에 통지를 해주는 식이었다. 형식적인 통지였을 뿐 현장에서 특조위의 권한을 인정하거나 같이 가려는 의도는 없었다. 강제종료 이후 해수부는 인양작업과 관련해 조사관들에게 아무런 통지를 하지 않고 있다. 조사관이 전화를 하고 문자를 보내도 답하지 않는다. 조사관은 유가족들이 알려줘서 선수들기 작업이 예정돼 있다는 것을 알았다.

‘세월호 선체 인양’은 세월호 진상규명에 있어 중요한 문제다. 그러나 특조위를 강제종료한 후 정부·여당은 선체인양 후 조사에 대한 뚜렷한 대책이 없다. 여당은 ‘특조위 기산일은 1월 1일로 한다’는 말만 반복할 뿐, 선체가 인양되면 이후 조사를 어떻게 할지에 대해서는 중구난방식의 대책을 내놓고 있다. 농해수위 여당 간사인 새누리당 김태흠 의원은 특조위 활동은 종료됐고, 선체가 인양되면 국회가 중심이 되어 이를 조사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국회가 어떻게 이를 조사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대책은 내놓지 않았다. 농해수위 소속 여당 관계자의 말은 또 다르다. “선체가 인양되면 특조위에 선체 조사기간을 한 달 정도 보장해주겠다. 여러 가지 행정적 지원을 포함해 정부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러한 여당의 입장에 대해 권영빈 특조위 진상규명소위원장은 선체 조사에 특조위를 포함시킨다는 말은 특조위 강제종료에 대한 알리바이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7월 27일 단식을 시작하는 기자회견 자리에서 권 소위원장의 말이다. “인양 후 선체 조사에 특조위가 관여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말은 특조위를 강제종료할 때 불법성과 위법성을 완화하려는 변명거리에 불과하다. 특조위가 해체되더라도 선체 조사에 어떤 방식으로든 특조위가 관여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나. 그런데 해수부는 현재 인양문제에 관해서 특조위를 완전히 배제했다. 지난주에 특조위가 선수들기 일정과 관련해서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에 대해 문의했으나 아예 대꾸 자체를 하지 않는 상황이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이석태 위원장의 단식을 지지하며 특조위 활동을 보장하라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박송이 기자

여당을 비롯한 일각에서는 특조위가 아무 성과를 내지 못하지 않았느냐고 비난하기도 한다. 그래서 특조위를 해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의 비협조로 실질적으로 조사권한이 크게 축소된 상황에서도 특조위는 검찰이 수사하지 못한 것을 밝혀냈다는 평가다. 세월호에 철근 410톤이 적재됐다는 조사가 대표적이다. 유가족들이 요청한 진상규명 신청 목록 92번은 ‘세월호 도입 후 침몰까지 모든 항해 시 화물량 및 무게에 관한 조사의 건’이었다. 조사1과에 배치된 이 건에 대한 조사는 두 달 동안 진행됐다. 해운업계에서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조사라고 말했다. 화물들을 적재하고 중량을 신고할 때 선사가 이윤을 좇다보니 중량톤수가 제대로 기록이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세월호 침몰 원인 중 하나로 과적이 유력시되고 있는 상황에서 검증은 필요했다. 공무원 19명의 인력이 파견이 안 된 상황에서 조사관 1명과 자원봉사자 1명이 밤낮없이 일을 했다. 세월호 CCTV 66개와 인천항에 설치된 CCTV 6개를 확인했다. 인천항에 설치된 CCTV 6개를 통해 들어가고 나오는 화물차를 하나하나씩 연결해서 맞춰 보았다. 세월호 적하운임 목록에 있는 업체들에 일일이 연락을 했다. 화주들이 무엇을 실었고 몇 톤의 화물을 실었는지 직접 전화를 해서 확인을 했다. 조사 결과 세월호에 286톤의 철근이 실렸다는 검찰의 수사 결과는 잘못됐다는 것을 밝혀냈다. 물론 이 과정에서도 해수부는 비협조적이었다. 조사관은 해수부에 자료 제출을 요구해서 업체들의 명칭과 연락처를 받으려고 했지만 해수부가 보내준 자료에는 업체가 익명처리돼 있었고 연락처 또한 없었다. 있으나마나 한 자료였다. 다시 자료를 알려달라고 하니 개인정보 보호를 이유로 해수부는 거절했다. 몇 번을 요청하고 해수부와 격론을 거친 끝에 개인을 제외한 법인 연락처만 얻을 수 있었다. 조사과정에서 국가기관끼리 자료 제출 협조를 요청하는 것이지만 응답을 안 하거나 자료 제출을 할 수 없다는 식의 일은 비일비재했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 이 위원장은 상임위원들과 하루를 마감할 때마다 이렇게 인사를 했다. 특조위 흔들기로 조사에만 전념할 수 있었던 날은 하루도 없었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제반 여건은 더 만만치 않다. 20대 국회가 시작되면서 세월호 특별법 개정안이 제출됐지만, 국회선진화법에 묶여 큰 진전이 없다. 여야가 물밑으로 협상을 이어가고 있는 듯이 보이지만 아직 구체적인 진전은 보이지 않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박완주 원내수석부대표는 “농해수위 산하 세월호 소위에서 1차회의를 했고 8월 초에 2차 회의를 하기로 했다. 여당은 작년 19대 때에 비해서 농해수위 위원들 사이에서 특조위가 선체 인양 후 조사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에 대해서는 나름 공감대가 형성됐다. 여소야대가 됐다고 해도 선진화법으로 직권상정 외에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 정치적으로 타협하는 길밖에 없다. 소위에서 논의하고 있고 이를 지켜보고 있다.” 새누리당 김도읍 원내수석부대표는 “법상으로는 특조위 조사기간이 끝났다. 농해수위 여야 간사들이 협의를 하고 있는데 거기에서 어떤 합의안이 도출되면 원내지도부에 넘길 것이다.” 여야 간 정치적인 합의가 중요하다는 원론적인 말이다. 합의의 구체적 방향은 보이지 않고 강제종료된 후 시간은 한 달이 흘렀다.

정치권의 논의가 지지부진해질수록 이석태 위원장의 고민은 깊어진다. “국회 상황을 보면서 드는 판단은 언제, 어떻게, 어떤 과정으로 이 문제가 풀릴지 불확실하다는 것이다. 지금 손실된 기간만 해도 벌써 두 달이다. 한 달은 특조위가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해 논란이 있었고 한 달은 강제종료된 채 보냈다. 늦게 협의가 되고 손실된 이 기간들에 대한 고려가 없다면 특조위의 기간을 뒤늦게 보장한다고 해도 너무 짧은 기간이 보장될 수 있다. 현재 어떻게 될지 불확실하고 불투명하다.” 단식은 불투명한 상황에서 지금의 상황을 어떻게든 드러내 보이려는 고뇌의 결과였다. “위원장인 나도 조사관이니까 조사관들의 고뇌를 어떻게 드러낼 수 있을까 생각을 했다. 우리가 겸손하게 돌아보면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지만 반성적으로 제대로 못했다는 생각도 들고 이런 송구스러움도 알려야 할 것 같고, 또 불투명한 것을 어떻든지간에 극복할 수 있는 힘을 받을 필요도 있다는 생각도 들고, 국회에도 무언가를 요구하고 싶었다. 여러 가지 생각들이 결부가 되어서 조사관들의 대표로서 특조위 전체가 하지 않았던 호소를 하는 것이다.”

야당 일각에서는 대선을 앞두고 세월호 의제에 대한 정치적인 부담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오히려 그런 만큼 빨리 진전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진상을 규명하라는 시민사회적 동의가 있었던 의제다. 야권이 선거 때 세월호 참사를 들고 나왔기 때문에 시비가 된 건데, 지금은 선거 때도 아니고 대선국면이 시작되기 전에 더 빨리 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장덕진 서울대 교수는 특조위가 이렇게 무력화될 경우 한국 사회는 재난을 통해 교훈을 얻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재난과 관련해 여러 사례를 연구해봤다. 세월호 참사가 한국에서 지나치게 정치화됐다. 이건 정치화할 일이 아니다. 정치화해야 할 이유가 없다. 처음에 청와대나 여당 쪽에서 정치적으로 부담으로 느껴 굉장히 빠른 속도로 이를 정치화시켰다. 처음에 그런 스탠스를 취할 필요가 없었는데 말이다. 재난을 겪고 잘 극복한 나라들을 보면 재난과 관련된 모든 것을 조사해서 투명하게 밝혔다. 세월호 참사를 정치화시켜서 제도권에서 이를 정상적으로 처리하지 못하게 한다면 앞으로 비슷한 재난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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