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리포트] 성범죄 막은 대학 축구 선수..'애정 행위'로 둔갑할 뻔한 '성폭행'

박병일 기자 입력 2016. 7. 27. 11:15 수정 2016. 7. 27.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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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플로리다 주 게인스 빌에 있는 술집에서 이른바 ‘기도’로 일하는 시몬스는 술집이 거의 문을 닫을 늦은 밤, 순찰차가 술집 앞에 서 있던 젊은 남녀 한 쌍에게 강한 플래쉬 라이트를 비추면서 쫓는 모습을 목격했습니다. “두 남녀 모두 많이 취해 있었어요. 남성이 여성에게 치근덕대는 것 같았어요. 경찰이 길거리에서 그러지 말라며 가벼운 경고를 날리는 것이라고 생각했죠.” 시몬스의 말입니다.
 

십여 분 뒤 술집 문을 닫고 시몬스가 식당 안에 있는 쓰레기 꾸러미를 들고 술집 뒤쪽 골목에 있는 커다란 쓰레기통으로 가던 중에 그 남녀를 또 다시 목격하게 됐습니다. “두 남녀가 쓰레기통 근처에서 가깝게 붙어 있고, 그 주변에는 여러 명의 남성들이 둘러싼 채 지켜보고 있었어요.”

시몬스는 쓰레기 꾸러미를 버린 뒤 다시 식당으로 되돌아 가다가 언뜻 그 여성의 바지와 속옷이 내려져 있는 것을 보게 됐습니다. “사람들이 둘러싸 있는 상태에서 그런 광경이 펼쳐진 것은 일반적인 상황은 아니었죠.” 시몬스는 곧바로 휴대전화를 꺼내서 찍기 시작했습니다.

 

술집으로 돌아온 시몬스는 술집에서 함께 일하는 가르시아에게 이런 사실을 알렸습니다. 가르시아는 플로리다 주립대 미식축구팀의 라인 벡으로 이 술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이었습니다. 시몬스의 얘기를 들은 가르시아는 무슨 일인지 알아야겠다며 시몬스를 데리고 술집 뒤 바로 그 현장으로 달려 나갔습니다.

여성과 함께 있던 남성은 술에 잔뜩 취한 여성의 아래 속옷을 이미 벗겨놓은 상태였고, 주변 남성들은 낄낄대며 이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무슨 일이냐?’고 묻는 가르시아와 시몬스에게 남성은 ‘내 여자 친구니 신경 끄라’고 말했고, 주변에 있던 남성들도 ‘둘이 애인 사이니 그냥 들어가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돌아서려던 가르시아에게 갑자기 최근 게인스 빌 지방 검사가 학교 미식축구팀을 모아놓고 했던 강의 내용이 떠올랐습니다. 최근 미국 대학 미식축구팀의 유명 선수들이 줄줄이 성폭행 혐의로 재판에 서는 일이 잦았던 터였습니다.

“그 검사가 말한 내용이 또렷이 기억났어요. 만일 여성이 마약을 했거나 술에 취해 있다면 어떤 경우에도 성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설사 여성이 성행위에 동의했다고 해도 자신의 의지에 의해서가 아닌 마약이나 술에 취해 무의식 상태에서 뱉은 말일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죠. 그때 제가 봤을 때 여성이 너무 술에 취해 축 처져 있었어요. 뭔가 내가 나서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죠.”
 

크리스찬 가르시아

가르시아는 시몬스와 함께 여성을 끌어냈습니다. 여성과 함께 있던 남성이 그들을 막아서다가 앞으로 고꾸라지면서 바닥에 넘어졌지만, 가르시아와 시몬스는 멈추지 않고 여성을 부축해서 술집 안으로 데리고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경찰에게 신고했습니다.

“알고 보니, 그 남성은 이 여성을 알지 못하는 사이였어요. 순전히 거짓말을 했던 거죠. 게다가 주변에 있던 남성들 역시도 이 여성과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었고, 자기 친구 한 명이 술에 취한 여성에게 성폭행하려는 것을 지켜보면서 즐기고 있었던 거죠.”
 

체포된 크리스토퍼 리 쇼

현장에 있던 남성, 34살의 크리스토퍼 리 쇼는 경찰에 체포됐습니다. 쇼는 당초 경찰 조사에서 “그 여성이 자기를 유혹해서 술집 뒤쪽 쓰레기통까지 이끌려 갔다”고 진술했습니다. 여성의 유혹에 못 이겨 성행위를 하려고는 했지만 그 전에 가르시아와 시몬스가 개입하는 바람에 성행위조차 하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한마디로 여성이 먼저 유혹했고 실제 성행위도 하지 않았으니 무죄라는 주장입니다.
 
하지만 여성 측 진술은 정반대였습니다. 그 남성을 알지도 못하며 술에 너무 취해서 자기가 어떤 일을 당하고 있었는지조차 몰랐다는 것이었습니다. 두 사람의 진술이 엇갈렸지만 시몬스가 찍어놓았던 휴대전화 화면이 결정적인 증거가 됐습니다.

누가 보더라도 여성이 유혹해서 주변에 남성 측 친구들이 둘러싸 보고 있는 데서 성행위를 제안할 상황도 아니었거니와 술에 취해 정신을 잃은 모습이 명확히 찍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리 쇼는 술 취한 여성에게 성폭행을 시도한 중범죄 혐의로 알래추카 카운티 교도소에 수감됐는데 50만 달러, 우리 돈 6억원의 보석금을 내야만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 기사를 보면서 불현듯, CNN까지 이 사건을 비중 있게 다룬 이유가 무엇일까 궁금해졌습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미국은 성 문제에 대해 상대적으로 개방적인 나라입니다. 동시에 성 범죄에 대해서는 매우 엄격한 나라이기도 합니다. 성행위에 대해서는 개방적이지만 성범죄에는 엄격한 나라인 만큼 그 기준 역시 명확합니다.

그 기준은 동의 (Consent)가 있었느냐 여부입니다. 동의가 이뤄졌다고 해서 무조건 합법적 성행위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심심찮게 술에 취한 여성과 성행위를 가졌다가 체포돼 중형에 처해지는 유명 인사 (특히 대학 축구팀 선수들)들의 기사가 보도되고 있을 뿐 아니라, 미성년자인 중고등학생과 성행위를 가졌다가 역시 교도소에 수감된 남녀 교사의 기사도 속속 보도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단순한 동의 여부가 아닌 ‘의식적이고 합리적 동의’가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이번 사건도 가르시아의 개입과 시몬스의 증거 동영상이 없었더라면 잔혹한 성폭행이 상호 합리적 동의 하에 이뤄진 애정 행위로 둔갑됐을지 모를 일입니다. 뒤늦게 여성이 남성을 고발했더라도 주변에서 지켜본 남성 친구들이 거짓 증언을 했을 게 뻔하니 말입니다.
 
이번 사건이 보도된 이후 영웅이 된 가르시아는 검사의 강의를 정확히 이해한 듯 합니다. “남성 여러분은 여성이 술에 취해있을 경우에는 어떤 경우에도 절대로 성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혹시라도 그런 상황을 목격하게 되면 결코 수수방관해서도 안됩니다. 저는 때마침 그 자리에 있었고, 그 여성이 그렇게 당하도록 놔둬선 안 된다고 생각됐기에 그저 해야 할 바를 했던 겁니다."      

박병일 기자cokkiri@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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