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댓글부대 김흥기 의혹' 모르쇠 일관하는 청와대
[경향신문]
‘댓글부대’ 논란 김흥기씨와 안봉근 비서관 관계 갈수록 의혹
청와대는 국정원 출신의 김흥기씨가 내년 대선을 앞두고 ‘댓글부대’를 연상시키는 조직 구축을 시도한 사실에 또다시 침묵을 지켰다. 물론 청와대가 개인의 활동을 일일이 해명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김씨의 경우는 사정이 다르다. 그는 지난해 9월 박근혜 대통령 최측근 실세 중 한 명인 안봉근 국정홍보 비서관과 친분을 과시하며 국정홍보 월간지 회장 취임을 시도했다. 지난 2월에는 박 대통령이 관심을 갖고 만든 청년희망재단 후원 행사에 새누리당 전희경 의원과 함께 공동연사로 등장했다. 급기야 지난달 9일 국회 의원회관 대강당에서 여소야대 국회를 압박하기 위한 ‘애국세력’의 집단청원 사이트 구축을 제안했다. ‘안 비서관은 김씨와 일면식도 없다’는 청와대 해명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김씨의 활동이 너무 멀리 나갔다.
<경향신문>은 지난 12일 청와대 정연국 대변인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이제 김흥기씨에 대해 결단을 내려야 하지 않을까요. 청와대가 침묵하면 안봉근 비서관이 김씨의 활동을 방조하는 걸로 비쳐질 수밖에 없습니다.”
기자의 질의 문자에 청와대 침묵
예전과 마찬가지로 정 대변인은 아무런 답변도 보내오지 않았다. 그렇다면 청와대의 침묵이 의미하는 바는 뭘까. 정 대변인이 <경향신문> 질의에 마지막으로 반응을 보인 것은 지난달 9일이었다. 당시 <경향신문>은 ‘안 비서관을 사칭했다는 김씨가 청년희망재단이 후원한 행사에 버젓이 등장했는데 민정수석실은 뭘 했느냐’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문자를 본 정 대변인은 오후 3시쯤 전화를 걸어왔다. 그는 “뭐 때문에 그러느냐. 그냥 자기 혼자 일방적으로 떠들고 다닌 것이다. 이 사람하고 안 비서관은 전혀 연관성이 없다”며 전화를 끊었다.
하지만 정 대변인이 ‘자기 혼자 떠들고 다니는 것’이라고 해명한 바로 그 시각 김씨는 새로운 일을 벌이고 있었다. 새누리당 박인숙 의원이 주최한 전국학부모교육시민단체연합(전학연) 출범식에서 애국세력의 사이버 청원기지 구축을 제안하고 나선 것이다. 안내장에는 새누리당 전희경 의원과 함께 친박계 핵심인 행정자치부 장관 출신 정종섭 의원도 축사자로 이름이 올라가 있었다.
김씨가 당시 행사에서 제안한 애국세력 청원사이트는 박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전파하는 ‘댓글부대’ 조직을 연상시키고 있다. 김씨는 청원사이트를 통한 보수우파 세력들의 대동단결을 강조하면서 ‘월남 패망론’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박 대통령이 최근에 말씀하셨지만 월남이 패망한 것은 그 사회에 지식인이 없어서가 아니다”라며 “지식인은 많은데 용기 있는 애국자가 없으면 어느 나라든 망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용기 있는 애국자’의 모범으로 박원순 서울시장 아들 병역면제에 대해 집요하게 문제를 제기하는 아줌마 부대의 활동 사진을 보여주기도 했다. 김씨는 ‘대한민국 교육현장은 전쟁 중’이라며 잘못된 세력으로부터 바른 세력을 지켜내야 한다고 거듭 강조하기도 했다.
이쯤되면 김씨를 단순히 자기가 혼자 좋아서 떠드는 사람으로 취급하기는 어렵다고 할 수 있다. 더구나 김씨가 강조한 보수애국단체 대동단결은 현 정권 핵심부의 의중과도 정확히 맞닿아 있다. 김씨와 손을 잡은 사람들은 애국단체총협의회(애총협)와 대한민국애국시민연합(애국연합) 소속 활동가들이었다. 애총협은 이병기 전 국정원장이 대통령 비서실장이 되기 직전인 지난해 2월 보수단체들을 불러모아 모임을 가질 때 논란의 중심에 있던 단체기도 하다. 국민행동본부의 서정갑 본부장은 지난 5월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이 전 원장이 당시 모임에서 돈 지원을 쉽게 하기 위해 보수단체의 단일화를 제안했다’는 취지의 폭탄발언을 한 바 있다. 이 전 원장이 염두에 두고 있던 창구는 이상훈 전 국방장관이 상임의장을 맡고 있는 애총협이었다. 서 본부장은 <경향신문>에 “이병기 원장이 직접 이름을 거명하지는 않았지만 누가 봐도 애총협을 중심으로 하나로 뭉치라는 것이었다”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애총협이 부상한 데는 이 전 원장과 애총협의 이 전 국방장관이 노태우 대통령 시절부터 가깝게 지냈던 인간관계가 작용했던 것으로 해석했다. 그는 “좌파정권 하에서 아무런 활동도 안한 사람들이 (보수)정권이 등장하자 정권의 하수인이 돼서 모든 보수단체는 내 밑으로 들어오라는데, 말이 되느냐”고 흥분했다.
결국 이 전 원장의 단일화 시도는 무위로 끝나고 오히려 보수단체는 신·구파 간에 갈등만 키우는 계기가 됐다. 김씨가 4·13 총선 후 애총협과 손을 잡고 보수세력의 대동단결과 애국세력 청원사이트 구축에 나선 것은 바로 이런 고민과 무관치 않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애총협 핵심 인물로 ‘애국닷컴’을 운영하는 김상진 SNS 단장이 4·13 총선 다음날 페이스북에 올린 글은 보수세력의 대동단결을 위한 신개념 청원사이트의 등장을 예고하고 있었다. 김 단장은 페이스북에 “이번 선거는 우파 분열의 무서움과 사이버여론의 중요성, 길거리 선전전이 중요함을 다시 한 번 느끼게 한다”고 적었다.
그렇다면 김씨가 애총협과 손을 잡고 구축하려는 청원사이트에는 과연 어떤 구상이 담겨 있을까. 김 단장은 “내가 청원사이트에 대한 아이디어를 갖고 있었는데, 그분(김흥기)과 얘기를 하다 보니 공통분모가 많아 같이 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김씨의 조언이 도움이 되었느냐는 질문에 “내가 몰랐던 부분, 방관했던 부분들을 어드바이스 해줬고, 어떻게 하면 (청원사이트를) 발전시킬지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어떤 부분이 도움이 됐느냐는 질문에는 “그런 것까지 대답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고 했다. 다만 이공계 출신으로 행정고시에 합격해 국정원에 근무했던 김씨가 사이버여론전에서 뭔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준 것은 분명했다.
이 점에서 김씨가 2012년 새누리당 대선캠프에서 활동한 후 2013년 중반부터 전 세계에서 가장 조직적으로 댓글부대가 활동하고 있는 중국과 접촉을 시도한 부분은 주목을 끌기에 충분하다. 그는 실제로 상당한 액수를 지불하고 중국과학원 빅데이터센터와 모종의 계약을 체결하고 서울 강남에 중국과학원 한국교육원을 만들었다. 그는 특허청과 중소기업청을 후원기관으로 끌어들이고, 미래부에는 엉터리 정책보고서를 제출해 1억원을 지원받기도 했다. 2014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아무런 지역적 연고도 없는 강원도에 내려가 시민단체 대표로 선거전에 뛰어들기도 했다. 이처럼 중국 빅데이터 센터와 연계도 있고, 직접 선거전도 경험했으며, 정부 돈을 끌어오는 방법도 잘 아는 그가 애총협에 새로운 사이버여론전을 제안한 것이다.
이병기 전 국정원장과 각별한 친분 과시
청와대에서 말하는 대로 아무런 배경이 없는 그가 보수세력의 대표주자로 급부상하고 있는 애총협의 사이버운동 방향을 좌지우지하는 데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보기는 어렵다. 특히 그는 애총협으로 보수단체 단일화를 제안했다고 보도가 됐던 이병기 전 국정원장과의 각별한 친분을 과시하기도 했다. 그는 지난해 9월 국정홍보 월간지 사무실에 20여명 규모의 연구소 설립을 추진할 당시 월간지 사장 김모씨가 자신의 힘을 의심하자 한 통의 카톡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자신이 대외협력업무를 맡고 있는 문화단체 명의로 이병기 대통령 국무조정실장 앞으로 보낸 공문이었다. 김 사장은 김씨가 전화를 걸어와 ‘지금 서울역인데 안봉근 비서관을 만나러 청와대에 들어가는 중’이라고 했던 것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김 사장 밑에서 편집국장 일을 보던 박모씨는 더 결정적인 증거를 갖고 있었다. 그는 <경향신문>에 “김씨와 청와대 비서관들의 관계를 보여주는 여러 통의 문자를 갖고 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이 때문일까. 김씨는 안 비서관과 친분관계를 보도한 <경향신문>을 지난 5월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면서 김 사장은 고소인 명단에 포함시켰지만 문자를 갖고 있다는 박씨는 제외했다.
검찰이 어떤 판단을 내릴지 모르지만 감사원은 이미 김씨가 미래부로부터 엉터리 보고서를 제출하고 1억원을 지원받은 것에 면죄부를 부여했다. 청와대는 여전히 김씨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청와대의 침묵은 김씨에 대한 ‘무시’가 아니라 배후가 드러날 것에 대한 ‘공포’를 대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시간은 청와대 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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