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병 아들 살해위협에도 "돈 없어 병원 못보냈어요"

CBS노컷뉴스 강혜인 기자 입력 2016. 7. 18.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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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춤형복지 시행 1년째, 여전한 복지 사각지대

가구여건에 맞게 다양한 복지혜택을 받을 수 있는 맞춤형복지가 시행된지 1년이 지났지만 가난에 허덕이는 수급자들에게 복지혜택의 문턱은 여전히 높기만 하다.

CBS노컷뉴스는 조현병을 앓고 있는 아들에게 살해 위협까지 당한 60대 여성의 사연을 통해 맞춤형복지의 사각지대를 살펴봤다.

아들에게 폭행 당하던 순간을 회상하는 권 씨 (사진=강혜인 기자)
◇ 한 밤중 어머니에게 칼 들이댄 조현병 아들

지난 4월 27일 새벽 4시쯤, 아들 이모(30) 씨와 함께 살던 어머니 권모(65·여) 씨는 잠을 자던 중 집 밖에서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

칼을 가는 소리였다. 문을 열고 나간 권 씨는 현관 바깥에서 벽에 대고 부엌칼을 갈고 있던 아들을 목격했다.

권 씨는 "이게 뭐 하는 짓이냐", "동네 사람들 다 들으니 들어오라"고 했지만 이 씨의 눈빛은 이미 이상해진 뒤였다.

이 씨는 그대로 어머니에게 달려들어 부엌용 칼 두 자루를 손에 들고 어머니를 때리기 시작했다. 어머니를 죽여버리겠다며 목에 칼을 들이댔다.

권 씨는 혼비백산해 집 밖을 뛰쳐나와 경찰에 신고했고, 경찰은 도망치고 있던 이 씨를 체포했다.

서울 서부경찰서는 이모(30) 씨를 존속살인미수 혐의로 구속해 지난 5월 3일 검찰에 송치했고, 이 씨는 법원에서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오후 4시가 넘은 시각. 권 씨는 이 날 하루종일 먹은 건 인스턴트 라면 하나였다. (사진=강혜인 기자)
◇ 가난에 허덕이는 어머니 "병원은 꿈도 못꿔"

권 씨는 가난했다. 사건 뒤 자택을 찾은 취재진에게 권 씨는 생활고를 털어놓았다. 오후 4시가 넘은 시각이었지만 그날 하루 종일 권 씨가 먹은 것은 라면 하나였다.

권 씨는 일주일씩 굶는 것은 일도 아니라고 말하며 "매일같이 허덕이며 살았다"고 말했다. 아들 이 씨가 14살이 되던 해 남편과 이혼해, 간간이 파출부 일을 하며 혼자 이 씨를 키웠다.

권 씨는 "아들이 부쩍 이상해진 건 한 6개월 정도 된 것 같다"고 회상했다.

갑자기 칼을 가는가 하면 가만히 누워있다가 미친 듯이 웃어댔다. 밤에는 천장에 시체가 보인다며 느닷없이 방에 불을 지르기도 했다. 집 앞 골목에서 어머니를 때리고 목을 조르는 건 일쑤였다.

정신질환 증세가 심해지는 아들을 보면서도 권 씨는 아들을 병원에 데려가 볼 생각은 하지 못 했다.

취재진이 "병원에 데려가보지 그랬느냐"고 물었지만 "당장에 차비 한 푼이 없는데 어떻게 병원에 데려가느냐"는 말이 권 씨의 힘없는 대답이었다.

"왜 (병원에 데려갈 생각을) 안 해봤겠어. 해봤지. 근데 돈이 없잖아. 병원에 가려면 주머니에 현금 20만원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겠어. 그 돈이 없잖아. 당장에 차비도 없고 입에 풀칠도 못 하는데 무슨 병원이야"

그렇게 아들을 보며 권 씨가 전전긍긍하는 동안 이 씨의 질환은 악화됐고 결국 이 씨는 어머니를 향해 칼을 드는 지경에까지 오게 됐다.

권 씨가 아들을 피해 도망쳐 나오던 현관 앞 복도 (사진=강혜인 기자)
◇ 주민센터에서 쌀 10kg 받은게 복지혜택 전부

사건을 맡은 경찰 관계자는 "권 씨는 기초생활수급 대상이 아니었다"며 "장성한 아들이 있으니 아마 선정이 안 됐던 모양"이라고 말했다.

권 씨는 작년 6월, 기초생활수급을 신청하기 위해 동 주민센터를 찾았다.

서류까지 준비해 갔지만 권 씨에게 돌아온 대답은 "나이가 65세 미만이고 아들이 있으니 지원을 받지 못할 것"이라는 말이었다.

당시 63세이던 권 씨는 '만 65세 이상'이라고 규정하는 법적인 의미의 '노인'이 아니었고, 그에 따라 당시 권 씨를 맞이했던 상담가는 "수급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말했던 것.

수급 대상이 될 수 없어도 지자체에서는 신청을 받고 그 후에 조사를 통해 면밀히 판단해야 하지만 권 씨를 돌려보냈고 전산 시스템에는 권 씨의 당시 신청 이력도 찾아볼 수 없었다.

빈곤사회연대 정성철 활동가(28)는 "기준으로는 수급 대상이 되지 못하더라도 신청은 다 받아주어야 한다"며 "신청 자체를 못 하게 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고 말했다.

설사 기준이 충족되지 않더라도 우선 신청은 받아두고 조사 후에 근로능력 및 생계 수준을 판단해야 한다는 게 정 씨의 설명이다.

어렵게 찾은 주민센터로부터 "수급자가 될 수 없다"는 답을 듣고 돌아선 권 씨는 그로부터 2주 후 주민센터로부터 "쌀 10kg가 있으니 가져가라"는 연락을 들었다.

권 씨는 2~3만원 짜리 쌀 한 봉지를 들고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권 씨가 국가로부터 받은 복지혜택의 전부였다.

게다가 명목적으로는 '지방 생활보장위원회(지생보)'라는 제도가 있어, 기초생활수급 대상이 되지 못 한다고 하더라도 일선 사회 복지 전문가의 판단 하에 지생보에 안건을 보내 한번 더 재고할 수 있도록 돼있지만 그마저도 실시되지 않았다.

◇ 맞춤형복지? "설계도 없는 집"

정부가 '맞춤형 복지'를 하겠다고 나선지 1년째. 기초생활수급자가 27%나 증가했다는 기사가 쏟아져 나왔지만 권 씨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었던 것.

성균관대학교 사회복지학과 박승희 교수는 "맞춤형 복지를 한다고 하지만 그 자체로 말이 안 된다"며 "원래 복지는 맞춤형이어야 하는데 한국은 그 기초적인 설계가 된 적이 없다"고 비판했다.

근본적인 틀이 만들어지지 않은 채 사건이 터지면 그때마다 '사례 발굴'을 하는 식이라는 것이다.

박 교수는 "한국의 복지제도는 '설계도 없는 집'이고, 따라서 계속 사각지대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국사회복지행정연구회 이용규 부회장도 "사례 관리를 한다고 하지만, 사례 관리는 상담실 책상 앞에 앉아서 등초본 떼듯이 '이건 안됩니다', '저건 안 됩니다' 식으로 하는 게 아니다"고 지적했다.

[CBS노컷뉴스 강혜인 기자] ccbb@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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