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성, 패닉' 이스탄불공항 12시간..기자가 겪은 터키 쿠데타
[머니투데이 이스탄불(터키)=강기준 기자] [편집자주] 머니투데이 산업1부 강기준 기자는 그리스에서 여름휴가를 즐기기 위해 15일(현지시간) 터키 이스탄불 공항에 중간 기착했습니다. 이때 발생한 터키 군부 쿠데타로 일행 31명과 공항에서 12시간 가까이 발이 묶였습니다. 강기자가 일행과 겪은 혼란과 공포의 12시간을 정리합니다.

"테러 때문인가, 버스가 도착했는데 군대가 막고 있다네"
15일 현지시간 오후 10시30분. 이스탄불 공항에 8시에 도착하고도 출입국심사가 오래 걸려 겨우 나왔다. 여느 공항처럼 빽빽하게 택시와 버스가 승객들을 태우려 기다리고 있었지만, 우리가 타기로 한 버스는 오지 않았다.
처음엔 다들 공항 청사 밖에 나와 대기했다. 버스기사로부터 군인이 공항 주변을 통제하고 있어서 진입이 어렵다고 답장이 왔다. 다들 처음엔 최근 발생한 테러로 인해 검문이 까다로워졌나 싶었다. 그러고 보니 어느 순간 공항 주변에 차량이 한대도 없이 사라졌다.
오후 11시10분. 버스기사로부터 군과 경찰의 충돌이 있었다고 연락이 왔다. 앙카라에서 쿠데타가 발생했고, 공항 밖에 나와 있으면 위험하니 다들 안으로 들어가라고 현장에서 방송이 나오기 시작했다.
군부가 국영방송을 비롯, 국가 주요시설을 모두 점거했다는 소식이 공항에 퍼지면서 사람들이 동요하기 시작헀다.
공항직원들은 공항에만 있으면 안전하다고 안내했다. "누가 싸움에서 이기든 외국인은 건드리지 않을테니 걱정말라"는 얘기도 들려왔다. 교통편이 언제 뚫릴지 기약이 없어 관광객들은 모두 안으로 들어와 대기하기 시작했다. 걱정스런 마음에 가족에게 전화를 거는 사람도 있었고, 공항 로비내 카페 등지에서 하염없는 기다림이 시작됐다.

새벽 1시10분. 공항 밖에 나가 서 있는데 사람들의 함성소리가 들렸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저 호기심에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타타타타타" 하는 기관총 소리가 연속으로 들리기 시작했다.
건물 밖에 서 있던 사람들이 일시에 패닉에 빠졌다.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모두들 비명을 지르며 공항 청사 안으로 뛰기 시작했다. 건물 내로 들어가려면 짐 검사를 해야 하는 게 원칙인 터라 직원들이 제지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공포에 질린 군중들은 짐을 앞세워 밀고 들어가기 시작했다. 내 앞에서 담배를 피고 있던 공항직원도 작동을 멈춘 자동문을 급하게 손으로 억지로 열고 들어갔다.
총소리와 함께 안으로 뛰어가는 사람들의 파도를 거슬러, 경찰들은 총을 꺼내 들고 밖으로 뛰어 나오기 시작했다. 슬리퍼를 신고 있던 나도 주변에서 소리를 지르며 뛰자 덩달아 전력 질주해 공항 건물 안으로 대피했다. 와서 보니 급하게 뛰느라 발바닥이 다 까졌고 근육이 갑자기 긴장해서인지 온몸이 욱신거렸다.
새벽 1시40분쯤. 일반 시위대가 공항 로비까지 진입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불안해진 사람들은 공항 안쪽 짐 찾는 곳으로 뛰기 시작했다. 2차 아비규환이 벌어졌다. 입구가 사람들로 가득차 막히자 옆 쪽문으로 서로 밀며 들어가기 시작했다.
영사관에 전화를 걸었다.
영사관 측은 "우리도 계엄령 때문에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라며 "공항 같은 곳은 정부와 군부가 서로 점거하려고 교전을 벌일 가능성이 높으니 잘 숨어있으라"는 말만 했다. 현재로선 앉아서 뉴스를 주시하는 수밖에 없다는 말이 이어졌다.
공항에 발이 묶인 사람들은 공포감에 휩싸였다. 작은 소리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는 히스테리 반응이 이어졌다. 조금만 이상하다 싶으면 바로 뛰어가며 소리 지르는 모습이 보였다.

새벽 1시55분. 시위대가 공항 안쪽까지 진입했다. 두려움을 느낀 사람들은 공항내 청소도구실. 직원휴게실 등까지 들어가 몸을 숨겼다.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쿠데타 반대 시위대인듯한 이들은 출입국심사장까지 들어가 책상 위에 올라가 구호를 외쳤다. 다행히 이들은 별다른 위협을 끼치지 않고 10분쯤 뒤에 사라졌다.
2시10분경부터는 쿠데타가 성공했느냐 아니냐를 놓고 현장 관계자간 말이 엇갈리기 시작했다. 현지 경찰은 쿠데타가 성공했고, 공항이 장악됐다고 말했다.
무장해제하고 아침 경이면 계엄령 통행금지 등이 풀릴 거라고 말한다. 여행객들 가운데 여자들은 공포에 질려 눈물을 흘리거나 공중전화로 뛰어가서 가족에게 전화를 거는 모습이 많이 눈에 띄었다. 남자들은 뉴스를 지켜보거나 직원들을 붙잡고 상황을 조금이라도 정확히 알려고 노력하는 모습이었다.
3시 넘어서는 밖으로 나갈 수는 있으나 안전을 위해 대기하라는 안내가 나왔다. 현장직원들은 사무실에 뉴스를 틀어놓고 사람들과 같이 보면서 소식을 알려줬다.
일부 직원은 쿠데타가 성공했냐는 질문에 침묵만 지키거나, 뉴스에 쿠데타 실패가능성이 전해지고 있는 시각에도 아직은 모른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3시40분쯤 드디어 터키 주재 한국 영사관 직원 2명이 도착했다. 현재 쿠데타로 인한 충돌이 계속되고 있어서 교통편 이용이 불가하다는 설명이었다. 오전 6시쯤 항공편이 재개될 것 같다는 이야기가 나와 공항에서 바로 비행기로 귀국하거나 다른 나라로 향하는 방법도 생각해 봤지만 항공편이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4시쯤 공항 안에서도 진동이 느껴지는 굉음이 들려왔다. 포성인지 폭발물 소리인지 구별이 안 갔지만 사람들이 다시 소리를 지르고 이리 저리 뛰어다니는 3차 아비규환이 일어났다.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이스탄불 공항에 도착했다는 소식에 군부의 공격 목표가 되는 것 아니냐며 여행객들의 불안감이 더욱 커져 패닉이 확산됐다. 대통령은 쿠데타에 반대하는 입장을 밝히고 5시쯤 떠난 것으로 현장에선 전해졌다.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자 지친 여행객들은 짐을 찾는 컨베이어벨트에 걸터앉거나 아예 그 위에 누워서 잠을 청했고, 그 숫자는 늘어났다.
아침 7시쯤 버스를 타고 인근 호텔로 이동해도 될 것 같다는 공항 관계자들의 이야기에 공항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공항 인근 공터엔 시민들이 가득 앉아 불안한 모습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터키 국기를 건물이나 다리 위에 걸어놓고 쿠데타가 일단락되는 걸 자축하는 모이었다.
길거리에 군이 버리고 간 탱크나, 컨테이너 차량으로 만든 바리케이트 모습이 간밤의 긴박했던 상황을 대변해주고 있었다.
여전히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르는 이스탄불 시내를 최대한 피해서 버스가 이동했음에도 군데군데 쿠데타의 흔적이 눈에 띄었다.
8시 호텔 도착. 이스탄불 도착 후 12시간만에 첫 끼를 먹었다.

이스탄불(터키)=강기준 기자 stand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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