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빚는 사람들]①-상 이종기 오미나라 대표 "오미자 와인, 세계 최초 개발"
술이 좋아 술 만드는데 평생을 바치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위스키 마스터 블랜더로 30여년을 근무하다 국산 오미자 와인을 만들어 와인의 본고장인 프랑스에 수출하는 술 제조의 명인이 있다. 또 서울대 법대 출신의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일하다, 돌연 강원도에서 막걸리, 약주, 증류식 소주를 만드는 기인도 있다. 술이 좋아 술을 빚는 사람들을 찾아가는 술 기행을 몇차례 나누어 연재한다. [편집자주]

국내 위스키 시장 1, 2위는 윈저와 골든블루이다. 알코올 도수 40도인 윈저는 1996년 국내 출시, ‘한국인의 입맛을 겨냥한 프리미엄 위스키' 라는 평가를 들으며 꾸준히 성장했다. 또 저도주를 표방(알코올 도수 36.5도)하며 2009년에 나온 골든블루는 도수가 낮은 술을 선호하는 시대 트렌드에 힘입어 출시 4년도 안돼 국내 최초 프리미엄 위스키인 임페리얼(점유율 3위)을 제치고 시장점유율 2위에 올랐다.
윈저와 골든블루는 국내 위스키 시장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하는 라이벌이지만 ‘한 아버지 밑에서 난 형제 사이'라는 기이한 인연을 갖고 있다. 같은 회사 제품도 아닌데 형제지간이라니? 윈저와 골든블루는 우리 나라를 대표하는 위스키 마스터 블랜더 이종기 오미나라 대표가 개발한 술이다. 윈저를 만들 당시 이종기 대표는 두산씨그램에서 위스키 개발팀 과장이었고, 골든블루 역시 2006년 디아지오코리아 부사장을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한 뒤인 영남대 등에서 양조학 강의를 하던 시절인 2009년에 만든 술이다.
그러나 요즘 이종기 대표의 관심은 온통 오미자에 쓸려 있다. 오미자 최대 집산지인 경북 문경에 양조장을 차려놓고 오미자 와인을 만들고 최근에는 오미자 증류주까지 만들었다. 단맛, 신맛 등 5가지 맛이 난다 하여 오미자라고 하는데 특히 소화에 효험이 있다고 전해 내려오고 있어 한식당에서 식후 음료로 오미자 차를 내놓는 집이 적지 않다.
그러나 오미자 열매는 신맛이 강해 그동안 누구도 술로 만들 엄두를 내지 않았다. 그러나 30여 년의 직장생활 동안 수십 가지 술을 만든 이종기 대표는 ‘세계 시장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한국 술을 만들겠다'고 결심하면서 술 재료로 국산 오미자를 선택했다. 그는 “오미자는 맛, 색, 향 등 관능적 매력이 탁월해 제대로 와인을 만들면 세계 술 시장에서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말했다.

이종기 대표의 꿈과 술이 익어가는 곳, 문경 오미나라를 찾았다. 중부내륙고속도로 문경새재IC에서 5분 거리에 있는 오미나라는 오미자 양조장, 숙성고, 시음장 등을 갖춘 오미자 테마파크로 외국으로 치면 오미자 와이너리인 셈이다.
오미나라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술 특유의 시큼한 냄새가 먼저 반긴다. 입구 벽에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오미로제(오미자 스파클링 와인)를 들고 이명박 전 대통령과 건배하는 사진이 걸려 있다. 오미로제는 2012년 서울에서 열린 핵안보정상회의 만찬주로 선정돼 품질을 대외적으로 인정받았다.
이종기 대표는 “서울에서 열린 큰 국제 행사에는 오미로제가 거의 빠지지 않을 정도로 호응이 좋아 술 개발자로서 보람을 느낀다"며 “다만 원료인 오미자 단가(무농약유기농 오미자만 구매하는데 kg당 1만2000원 정도 든다)가 꽤 높아 아직 일반인들이 편하게 마실 가격이 아닌 점은 아직 개선의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오미자 와인 제조과정은 포도로 만드는 일반 와인과 별 차이가 없다. 매년 9월쯤 잘 익은 오미자를 잘 씻어 읍착(과일 열매가 잘 발효되도록 으깨는 과정)시킨 뒤 발효과정을 거쳐 숙성시키면 된다. 그러나 오미자는 신맛 등이 워낙 강해 발효조(이곳에는 총 6만 L 용량의 발효시설을 갖추고 있다)에서만 1년 6개월 동안 발효시킨다. 대개 와인 제조과정에서는 1~3주 정도 발효과정을 거친다.

오미자와인은 1차 발효를 거친 뒤에도 스파클링은 병입 발효, 일반 와인은 오크통에서 다시 1년 6개월 정도 발효, 숙성과정을 거친 뒤에야 상품화된다. 결국 오미자 수확 후 최소 3년이 지나야 오미자와인으로 거듭난다는 얘기다. 와인으로 유명한 프랑스 와인 중에서도 그해 수확한 포도로 짧은 발효, 숙성기간을 거쳐 그해 바로 마실 수 있는 보졸레 누보 같은 ‘인스턴트 와인’에 비하면 오미자 와인은 대단한 ‘슬로 푸드(Slow Food)가 아닐 수 없다.
그는 오미자와인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술’을 만들겠다는 꿈은 이루었지만 그가 세계 시장에 내놓을 한국술을 만들겠다고 결심한 계기는 오래 전으로 거슬러간다. “1990년 두산 근무 당시 2년 동안 스코틀랜드에서 양조학을 배울 기회가 있었어요. 어느날 대학원의 양조학 교수 한 분이 세계 각국에서 모인 학생들에게 자기 나라 대표 술을 가지고 와서 시음회를 열자고 하더군요. 저는 나름 기대를 하며 인삼주를 준비해갔어요. 그런데 그 교수는 다른 나라 술은 후한 평가를 주더니 인삼주는 ‘인공감미료 맛이 너무 강하다, 한국 사람은 술과 약을 구분 못하느냐' 이런 핀잔을 주지 않겠어요. 저는 자존심이 많이 상했고 ‘세계에서 인정받는 한국산 명주를 반드시 만들겠다'고 결심했죠.”
그러나 오미자와인이 개발되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다. 오미자는 색과 향이 뛰어나지만 오미자 원액 자체는 짜고 신맛이 강해 그대로 먹을 수 없고 발효 자체가 쉽지 않았다. “2007년에 프랑스 샴페인의 본고장 샹파뉴의 중심지 에페르네의 샴페인 연구소를 찾아갔습니다. 가지고 간 오미자 원액으로 발효가 가능한 지 부탁했지요. 그런데, 오미자는 쓴맛과 매운 맛이 강해 천연방부제 역할을 하기 때문에 발효가 안된다는 거예요.” 결국 이종기 대표의 손에 의해 연구 2년 여만인 2008년에 오미자 발효에 성공했다. 세계 최초의 오미자와인이 탄생한 것이다.
이후 3년여의 상품화개발 과정을 거쳐 2011년 오미자 와인과 오미자 스파클링이 세상에 나왔다. 오미로제 이름과 술병 디자인은 참이슬, 처음처럼을 네이밍하고 디자인한 브랜드 전문가 크로스포인트의 손혜원 대표(더불어민주당 의원) 가 맡아주었다.

문경에서 만난 이종기 대표는 그러나 지쳐 보였다. 그를 알고 지낸 지 20년이 넘었다. 술에 관한 열정은 여전했지만 겉모습은 힘들어 보였다. “잘 아시겠지만 우리나라 주세법이 술 가격에 세금을 매기는 종가세이기 때문에 병 하나하나마다 납세필증을 붙여야 됩니다. 우리 같은 영세기업들에겐 이런 행정 절차에 너무 많은 일손을 뺏기고 있습니다." 패스포트, 씨그램진, 썸싱스페셜, 윈저, 골든블루, 그리고 오미자와인까지(그는 최근 문경사과로 증류주 ‘문경바람’까지 만들었다) 우리나라 ‘술 제조의 산 역사’를 쓴 주역이지만 그가 대표로 있는 오미나라는 아직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전통술 업계가 대부분 당면하고 있는 문제이지만 유통망 확보가 안돼 판매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아무리 좋은 술을 만들면 뭐하겠는가? 판매망이 없어 소비자들이 쉽게 살 수 없다면 결국 단종될 수밖에 없다. 또, 언제 대기업이 외국산 싼 오미자(중국산 오미자는 국내산 가격의 4분의 1수준)로 유사한 술을 만들어 오미자술 시장을 죽여버리지는 않을까? 이런 불안감을 그는 떨치지 못하고 있다. 2005년 이 대표가 충북 충주에 세운 세계술박물관 ‘리쿼리움’도 매년 2만 명이 찾는 지역명소가 됐지만 연간 수천만원의 적자를 감수하고 있다. 좌초 위기(?)에 놓인 그의 술 개발 이야기는 하편에서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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