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갈리아 1년] <2> '남성 메갈리안'의 시각
[경향신문]

“메갈리아의 언어는 기본적으로 약자의 저항 언어
사회적 억압 깬 여성들 힘에 기득권 남성들 불편”
남성들 “여혐 싫다. 한번만 ‘반성해야지’ 하면 되는데”
메갈리아의 등장 이후 ‘미러링’과 메갈리아의 활동에 관해 ‘남녀 갈등이 심해졌다’ 혹은 ‘남녀 싸움 부추기지 말라’는 식의 반응이 나타났다. 여성혐오에 대한 반동에서 출발한 메갈리아가 ‘성별 싸움’을 조장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실제로 앞서 두 차례 기사가 나간 후에도 댓글과 메일로 ‘양성 갈등 조장하지 말라’는 반응을 많이 접할 수 있었다. 이 같은 ‘남녀 갈등’ 식의 프레임은 메갈리아에는 여성만 있다는 인식을 전제로 하고 있다.
과연 메갈리아를 둘러싼 논쟁은 단순히 생물학적 남성과 여성의 싸움일까.
메갈리아의 언어는 외면적으론 분명 한국 남성을 향한 적대와 공격의 언어이기 때문에 남녀간 ‘성 대결’로 비칠 여지가 있다. 하지만 성 대결 구도만으로 해석하기엔 한계도 있다. 메갈리아, 그리고 메갈리아를 대체한 페이스북 페이지 등 공간에는 ‘남성 메갈리안’이 꽤 존재한다. 다수의 남성과 일부 여성이 메갈리아에 불편함을 드러내는 상황 속에서 이들의 존재는 독특하다. 이들은 스스로 페미니스트로 부르기를 주저하면서도, 자기 자신이 ‘한남충’은 아닐까 되돌아봤다.
■남성 메갈리안 “남성인 내가 봐도 미러링이 속시원했다”
“미러링을 처음 봤을 때,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한국 남성들이 여자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군대에서 참 많이 느꼈기 때문이다. 같이 일하는 여성들 외모 평가부터 시작해서, ‘개저씨(개+아저씨)’나 할 법한 성희롱이 난무했다. 음악 방송 틀어놓고 ‘쟤는 잘하게 생겼다’ ‘먹고 싶다’ 같은 말 하면서 낄낄대는 거다. 학교도 다르지 않았다. 고려대 단톡방 사건이 멀리 있는 게 아니다.”
취업준비생 이지훈씨(29·가명)는 “미러링은 필연적이었다”며 이 같이 말했다. 그는 “결국 갈등을 피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고 진단했다. 그는 “(여성들 입장에선) 평화롭게 ‘아 너네 남자들은 그렇구나’ 하고 넘길 수 있는 문제가 절대 아니었다”고 덧붙였다. 시끄럽게 문제제기를 하는 게 우선인 상황이었다는 뜻이다.
이씨는 “억압받는 입장에서는 싸우는 방식이 억압하는 입장에 비해 제한돼 있다. 이렇게 싸움을 할 때 약자 쪽은 항상 검열을 당한다”며 “여성들에게 ‘올바른 방식으로 싸우라’는 건 사실 굉장히 미안한 부탁”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문제에서 결국 가장 명확한 카테고리는 남성과 여성이다. 여성들이 그런 갈등 구도를 추구한다는 게 아니라 상황상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노승훈씨(34)는 “미러링은 남성들을 향한 실제적인 위협이 아니고, 미러링으로 경각심을 갖게 되는 건 남성”이라며 “메갈리안 입장에선 수단과 방법을 가릴 상황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노씨는 “이제 겨우 1년 활동했는데 남성들의 반발이 무척 크다. 남성들이 미러링을 불편해 하는 건 결국 본인이 (혐오 피해의)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서로 사이 좋게 지내자’는 건 지금 단계에서 할 수 있는 제안이 아니다. 오히려 미러링이 무덤덤해질 때까지 욕을 먹어야 되지 않을까 싶다”고 밝혔다.
지난해 12월 SBS의 ‘그것이 알고 싶다-소라넷 편’이 방송된 이후 시청자 게시판을 비롯한 온라인 공간에선 “모든 남성을 일반화하지 말라”는 남성들의 반발이 빗발쳤다. 이는 강남역 살인사건에 이르러서는 “모든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로 몰지 말라”로 이어졌다.
대학생 장정호씨(25)는 메갈리아를 처음 접하고 ‘왜 이렇게까지 할까’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고 했다. 장씨는 ‘일단 한번 지켜나 보자’하는 마음으로 들여다봤다. 그러다 장씨는 “‘그것이 알고 싶다’에 대한 남성 시청자들 반응에서 한국 남성의 일반적인 수준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장씨는 “일반화하지 말라고 말하기보다 왜 여성들이 그렇게까지 말하나 반성을 좀 했으면 좋겠다. 그런데 현재로선 한국 남성들이 성찰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장씨는 “미러링은 철저히 만들어진 혐오이자 전략이다. 남성들은 고작 ‘한남충’이란 말을 듣고 화내기보단 본인이 한남충이 아님을 스스로 증명해내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장씨는 또한 “당장 내가 맞을 것 같으면 나도 때리는 게 옳지 않나. 악성적인 여성혐오에 침묵해 놓고 이제와서 여성들에게 저항하지 말라는 건 저열하다”고 덧붙였다.

■“남성들은 ‘여혐’ 인식 못해”
“메갈리안과 소위 ‘한남충’의 댓글 싸움을 보며 분명한 시각 차이를 느꼈다. 남성들은 ‘여혐이 문제’란 인식 자체를 하지 않는다.”
노승훈씨는 남성들이 선택적 감정이입을 한다고 지적했다. 약자가 아닌 강자의 입장에만 스스로를 대입한단 뜻이다. 노씨는 “남성들은 문제를 인지하지 않아도 되는 권력을 가지고 있다. 여성혐오 문제를 성찰하지 않아도 남성들은 사는 데에 지장이 없다는 점에서 가장 무책임한 권력”이라고 말했다.
그는 메갈리아를 둘러싼 논쟁 속에서 여성혐오적 견해를 견지한 남성들을 ‘덩치 큰 남자 아이들’에 빗댔다. 노씨는 “놀자고 하면서 여자애를 막 힘으로 끌어와서 결국 울려놓고 그걸 재미있어 하는 남자애들한테 ‘너는 재밌지만 여자애한텐 폭력이야’라고 이야기하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선 ‘여성혐오’란 단어 자체가 잘못됐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즉각적으로 무슨 뜻인지 이해되지 않는 용어란 취지다. “나는 여자를 좋아하니까 여성혐오자가 아니다”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남성도 흔하다.
이를 두고 김호철씨(29·가명)는 “본인이 여성혐오를 한다는 걸 인정하기 싫고, 스스로가 바뀌기 싫으니까 ‘여성혐오’란 표현 자체를 공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어떤 말을 미러링해서 똑같이 돌려주면, 그 미러링의 원본을 싫어하는 딱 그 정도로만 싫어하는 게 아니라 더 싫어한다. 그게 바로 이중잣대”라고 지적했다.
그는 메갈리아 논쟁의 가장 큰 문제로 “여성혐오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설득할 수 없다는 점”을 꼽았다. 김씨는 “남성들은 본인이 ‘일부’ 김치녀, ‘일부’ 무개념녀를 혐오한다고 생각하지 결코 ‘여성혐오’를 한다고는 생각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여성혐오의 본 뜻은 포털 사이트에 검색해보면 첫 줄에 나온다. 조금만 알아보면 더 나은 층위의 토론을 할 수 있는데 그 정도도 알아보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당당하게 말하는 태도가 이해되지 않는다.”
이지훈씨 역시 “주변을 보니 남성들이 ‘여성혐오’란 단어를 굉장히 공격적인 것으로 받아들였다. 이해를 시켜줘도 ‘아 그래도 이거 좀 싫은데’라며 불쾌해하더라”며 “뜻을 알았으면 된 거지, 굳이 그 표현 자체에 불쾌감을 느끼는 이유가 이해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메갈리아 등장 이후 “메갈 때문에 여혐하게 된다” “이러니 여혐을 안 할 수 없다”는 반응도 두드러졌다. 메갈리아가 여성혐오의 결과물이란 점에서 이 같은 반응은 원인과 결과를 바꾸어 진단한 오류지만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
유민석씨(33)는 이를 두고 “말이 안 된다. 반항을 하면 혐오는 당연히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유씨는 메갈리아의 발화에 관한 연구논문 <혐오발언에 기생하기: 메갈리아의 반란적인 발화> 저자이기도 하다. 유씨는 “메갈리아의 언어는 기본적으로 약자의 저항 언어다. 사회적으로 억압돼 왔고 침묵을 강요당했던 여성들이 가진 힘을 기득권 남성들이 불편해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약자가 강자를 미워하고 혐오하는 건 억압당한 역사에서 비롯된 자연스러운 인지상정인 반면, 강자가 약자를 미워하는 건 비열한 짓”이라고 밝혔다. 노예가 주인을 미워하는 것과 주인이 ‘노예는 더럽고 천박해’라고 하는 것이 질적으로 다르다는 뜻이다.
유씨는 또한 “자기 목소리를 찾으려고 하는 움직임들은 역사적으로 항상 반발을 샀다. 메갈리아 등장 전에 여성들은 ‘김치녀’란 말에 불쾌해 하면서도 그걸 드러내기가 쉽지 않았다. 메갈리아처럼 저항하는 움직임이 없었다면 기득권은 더 자기 입맛대로 하려 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나도 ‘한남충’일까 되돌아 봐”
초창기 메갈리아에는 ‘탈치’ 혹은 ‘탈치남’이란 용어가 있었다. 벗어남을 뜻하는 ‘탈’과 김치남의 ‘치’가 합쳐져 ‘김치남이 아닌 남성’을 뜻하는 말로 쓰였다. 그러다 점차 “개념남 정도는 있을지 몰라도 탈치남은 없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당시 이러한 주장이 힘을 얻은 이유는 일부 남성들이 ‘나는 탈치남’이라며 스스로 ‘한남충’과 거리를 뒀기 때문이다.
인터뷰에 응해준 남성들도 같은 맥락의 고민을 했다. 노승훈씨는 “다른 남성들을 ‘한남충’이라고 할 때 조심스럽다. 자연히 ‘너와 달리 나는 한남충이 아니다’하는 식으로 도피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노씨는 ‘저도 한남이라서’ ‘저도 씹치남이지만’ 같은 표현을 자조적으로 쓴다고 했다.
유민석씨는 ‘본인은 성적으로 자유분방하고 방종하면서도 여성에게는 조신하고 순종적일 것을 요구하는’ 식의 이중잣대가 ‘한남충’임을 판가름하는 기준이라고 봤다. 유씨는 “한국 사회에서 생물학적인 남성으로 살아왔으니 나도 한남충의 범주에 어쩔 수 없이 들어갈 것”이라며 “결국 그런 이중잣대의 모순을 극복하려 하느냐 마느냐의 차이”라고 말했다.
장정호씨는 “남성도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다”고 단언했다. 그는 “큼직하게 나눴을 때 사람이 평등하다고 생각하면 페미니스트”라고 정의했다. 장씨는 “페미니스트로 전향하는 게 남성성을 버리는 것 같아 힘들었다. 그렇지만 25년간 남성성을 강요받으며 느꼈던 불편함이 페미니즘을 만나면서 풀렸다”고 말했다.
■“이제 남성들이 반성할 차례만 남았다”
이들은 “이제는 남성들과 한국 사회가 바뀌어야 할 때”라고 입을 모았다.
“지금의 젊은 남성조차도 최소한의 합리적인 사고를 박살내고 여성혐오를 한다는 게 싫다. 한번만 ‘반성해야지’ 하면 되는데…. 한국 남성에 대한 비판이 너무 없다. 조직 안에서도 비판이 없으면 썩는 것처럼, 한국 남성 집단의 합리성이 염려된다.”
장정호씨는 “메갈리아라는 돌은 이미 우리 사회로 던져졌다. 앞으로는 사회가 답해야 하는 시기가 올 것”이라며 이 같이 말했다. 장씨는 “젠더는 모두의 이슈이니 우리 사회가 이제 막 터져나온 여성들의 목소리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응답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낮은 출산률과 2030 여성의 혼인 기피를 예로 들며 “답하지 않으면 한국 사회는 존속이 어려워질 것 같다”고 말했다.
노승훈씨는 “메갈리아라는 ‘본진’이 없어진 상황에서도 문제제기를 하는 여성들이 계속 생겨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대화하려는 욕구가 한국 남성에 없진 않을 것이다. 다만 남성들은 본인이 휘두르는 게 칼인지 몽둥인지 인식하지 못하는 시간을 너무 오래 겪었다”며 “한국에서 남자로 태어난 것 자체가 죄는 아니지만 (남성이) 기득권임을 인식하지 않는다면 그땐 잠재적 가해자가 된다”고 말했다.
유민석씨는 “개그 프로그램이나 온라인 콘텐츠에서 김치녀에 대한 허상을 만들어내고, 여성에 대한 편견을 공유한 우리 모두가 공범”이라며 “역으로 이제는 남성들이 자기가 ‘한남충’ ‘씹치남’이 아님을 검열해야 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
<김서영 기자 westzer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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