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역사에 손꼽을 만할 정도로 잔인한 승부였다. 독일과 이탈리아 두 팀은 3일 새벽 4시(한국시각) 프랑스의 누보 스타드 드 보르도에서 열린 UEFA(유럽축구연맹) 유로 2016 8강전서 치열한 공방전을 펼치 끝에 1-1로 비겼고 이후 치러진 승부차기서 9번째 키커까지 가는 피 말리는 접전을 펼치다 독일의 헥토르가 승부를 결정지었다.
이로써 독일은 프랑스와 아이슬란드 경기의 승자와 4강전서 맞붙게 됐다. 한편 ‘자국 대표팀 역사상 최약체’라고 불린 이탈리아는 탄탄한 시스템에도 불구하고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다.
역사상 최약체 대표팀, 변함없는 카테나치오의 매력
이탈리아는 2006 독일 월드컵 우승 이후, 유로 2012서 준우승을 차지하기도 했으나, 여전히 2010 남아공 월드컵과 2014 브라질 월드컵 조별리그서 무기력하게 탈락한 기억을 지우진 못한다.
‘설상가상’ 이탈리아 프로축구리그 세리에A는 19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까지 줄곧 세계무대를 주름잡으며 UEFA 챔피언스리그 7시즌 연속 결승진출이라는 대업을 세우기도 했으나, 현재 심각한 재정난에 시달리며 프랑스와 포르투갈, 네덜란드 리그에까지 밀리는 신세가 되었다. 이처럼 이탈리아 축구는 점차 정상에서 멀어져 갔다.
그러나 한 줄기 희망은 있었다. 승부조작 스캔들 이후 좀처럼 옛 명성을 되찾지 못하던 유벤투스가 안토니오 콘테 감독을 선임하면서 명가 재건에 성공했다. 전 세계가 스페인 축구에 매료되어 4-2-3-1 포메이션을 기반으로 한 짧은 패스 축구를 추구할 때, 유벤투스는 백3(Back 3)와 안드레아 피를로라는 세계 최고의 ‘레지스타’(딥라잉 또는 후방 플레이 메이커)를 중심으로 무패우승을 거두었다. 그들의 철저한 수비 위주 플레이와 다이렉트 축구는 한편으로 단조롭고 지루하다는 비판도 받았지만, 라이벌 팀과의 우승경쟁서 가히 압도적이었다.
따라서 이탈리아 축구협회는 대표팀서도 옛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 콘테 감독을 사령탑에 앉혔다.

이탈리아가 반한 콘테의 축구는 무엇인가? ①
그렇다면 대체 어떤 점이 이탈리아 축구협회의 마음을 사로잡았을까? 콘테 축구의 특징은 다음서 찾아볼 수 있다.
* 20세기를 대표한다.
* 질서와 비율, 균형의 미를 추구하고 보편적 리얼리티를 구현하고자 했다.
* 극도로 단순한 형태다.
사실, 이는 오늘날까지 미술과 건축, 그래픽 디자인에 큰 영향을 미친 ‘화가’ 피트 몬드리안에 대한 특징이다. 우리에게는 흔히 ‘뜨거운 추상’의 바실리 칸딘스키와 더불어 ‘차가운 추상’을 대표하는 인물로 알려졌다.
필자는 이번 유로 2016 대회에서의 이탈리아 축구를 보며 문득 몬드리안의 작품이 떠올랐다. 몬드리안의 그림은 이탈리아의 카테나치오처럼 극도로 제한된 범위 안에서 표현하고 가장 단순한 요소인 ‘직선’과 ‘원색’으로 표현됐다.
여기서 ‘극도로 제한된 범위’라 하면 5-3-2 또는 3-5-2, 3-3-4로 불려지는 포메이션이자 카테나치오(리베로를 둔 수비 시스템)의 절제적 움직임을 말하고, ‘원색’이라 하면 화려한 개인기와 개성 강한 플레이를 보여주는 선수들과는 달리, 팀 스타일(또는 포지션)에 적합한 선수들의 특성을 말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무엇보다 ‘직선’이라는 공통점이 몬드리안의 그림과 이탈리아 축구의 강한 유대감을 형성한다.
몬드리안은 작품에서 수평과 수직 등 기본적 조형요소를 그대로 간직하면서도 더욱 복잡하고 경쾌한 리듬과 구조의 풍부함을 드러냈다. 수평은 평온함을 의미하고 수직은 생기를 의미한다. 두 선이 서로 적절한 각도에서 교차하면, 역동적인 평온함에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콘테 축구도 마찬가지다. 기본적인 형태와 시스템을 간직하면서도 그 안에서 끊임없는 간격유지와 압박 및 커버, 수비수와 골키퍼 간의 콤비네이션이 담겨있다.
더욱이 수평이라 하면 공 소유 시 너비를 확보하고, 상대가 공 소유 시 공의 움직임에 따라 자연스레 미끄러지듯 이동하는 수비조직과 같다. 수직은 깊이를 말하며, 전진패스에 따른 공격적이고 활발한 생기와 같다. 결정적으로 축구 또한 이런 너비와 깊이가 적절히 유지됐을 때 공을 점유할 수 있고 공격을 전개할 수 있다.
몬드리안은 “미술에 있어 정신적인 것(이상)에 근접하려면 우선 현실의 사용도를 가능한 최소화해야 하고 정신과 재료 둘 중 하나만 가져선 삶도 예술도 만들어 낼 수 없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요소 간의 관계를 창출해내며 그 관계만을 중시하는 것, 나아가 이 관계들의 균형을 모색하는 것, 이는 오늘날의 과업이며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다.”고 덧붙였다.
이탈리아 축구 또한 선수 개개인의 플레이를 최소화하고 기본적인 형태를 유지한다. 소속팀서의 거침없는 플레이가 ‘팀’이라는 단어에 맞춰지는 셈이다. 팀은 그 안의 포메이션과 포지션, 시스템, 동료 선수의 특성 등에 따라 각기 다른 요소 속 관계를 창출하고 그 관계의 움직임(시스템)에 따라 팀으로서 움직인다.
이탈리아가 반한 콘테의 축구는 무엇인가? ②

조금 더 경기력 측면에서 콘테 축구를 이해하자면 우선, 이탈리아의 선수 구성은 3명의 중앙 수비수인 백3와 그 앞에 서는 레지스타, 중앙 미드필더 2명, 양 측면 윙백 2명, 서로 성향이 다른 최전방 공격수 2명을 기용한다.
특히 최전방 공격수의 파괴력이 중요하다. 이탈리아는 수비적인 전술 탓에 역습에서의 한 방을 노리지 못하면 경기 내내 수동적일 수밖에 없다. 실제로 2006 월드컵 이후, 질라르디노와 디 나탈레, 이아퀸타, 카사노, 로시 등 여러 공격수가 파괴력 부족을 이유로 이탈리아를 수비에만 그친 팀으로 퇴보시켰다.
콘테는 현재 공격수 1명을 골 결정력이 좋은 장신 선수(그라치아노 펠레)로 기용하고 다른 한 선수는 작지만 수비가담과 드리블, 창의적인 패스 실력까지 갖춘 만능 공격수(마르틴스 에데르)를 기용한다. 더불어 이들은 갈수록 빨라지는 현대축구에 맞게 빠른 발과 연계능력을 갖췄다. 이름값에선 ‘사상 최약체’라 불릴지 몰라도 팀을 4강 문턱까지 이끈 원동력이었다.
다음은 전술이다. 이탈리아는 축구에서 중요한 3가지 상황(공을 점유할 때/상대가 공을 점유할 때/공수전환)의 관점에서 봤을 때, 아래 설명한 것과 같은 주요 포인트를 갖고 경기를 풀어간다.
[공을 점유할 때]

* 백3와 골키퍼가 공을 점유하고 경기를 풀어간다.
* 레지스타는 반드시 인내심을 갖고 빨리 그리고 깊게 내려오지 않는다. 수비수의 빌드업 능력을 믿고 필요에 의해서만 가담한다.
* 수비수들은 상대가 어느 한 쪽으로 쏠릴 때까지 공을 점유한다. 그러다 공 가진 선수가 상대 수비 뒷공간으로 침투 패스하거나, 공 가진 선수가 상대 수비진 앞쪽 2선을 향해 공격수에게 연결한다.
* 만약 상대 수비 뒷공간을 곧바로 노린다면, 양 윙백과 공격수의 침투를 노릴 수도 있고 아니면 대게 공 가진 선수 반대편에 있는 중앙 미드필더가 침투한다.
* 이러한 방법이 어렵다면, 곧장 공격수에게 보내는 포스트 플레이로 투톱 간의 혹은 공격수와 미드필더 간의 콤비네이션 플레이를 펼칠 수 있다.
[상대가 공을 점유할 때]

* 선수들은 볼과 골 사이에서 형태를 계속 유지하며, 공의 움직임에 따라 조직을 이동한다.
* 상대가 반대편으로 긴 패스를 통해 공격을 전환한다면, 반대편 중앙 미드필더가 공의 움직임에 따라 제때 수비조직을 갖추기 어렵다. 이 경우, 반대편 윙백이 전진해 상대를 압박하고 반대편 중앙 수비수가 바깥쪽으로 달려가 커버한다. 그럼 순간적으로 백4가 된다.
* 이처럼 측면 중앙 수비수들은 수시로 넓은 공간이 발생하는 측면으로 달려가 1v1 수비를 할 수 있다.
[공수전환]
문제는 공수전환이다. 이탈리아 카테나치오는 수비진을 내린 채 깊은 수비 블록을 갖춘다. 공수전환의 이동 폭이 넓다는 말이다. 따라서 빠른 공수전환을 요구하는 현대축구서 낮은 수비블록을 갖춘 팀들은 많은 체력을 소모하고 헌신적인 플레이와 정확한 판단을 요구한다. 게다가 공격수가 고립되기 쉽고 수비진을 끌어올린 팀에 비해 상대적으로 긴 패스를 해야 한다. 웬만해선 2~3배 더 빨리 상대보다 움직여야 한다는 거다.
이는 과거 피지컬 체계가 제대로 잡혀 있지 않았던 시절이라면, 개인 기량 차로 어느 정도 무마할 수 있었다. 그런데 신체 능력이 크게 차이 나지 않는 오늘날엔 전술적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
낮은 수비블록을 구축하는 대표적인 팀은 과거 조세 무리뉴 감독이 이끌었던 팀이다. 한때 첼시와 인터밀란서 수비위주 축구를 펼쳐 수많은 우승을 차지했다. 무리뉴 감독은 수비진을 끌어올려 기술적인 선수들에 의한 공 점유와 압박으로 공수전환의 어려움을 해결하려 한 펩 과르디올라, 아르센 벵거 감독과는 달랐다. 수비능력이 출중하고 활동량이 많은 선수들을 기용해 중앙의 다이아몬드 형태를 통한 깊이와 공수 전환 시 공격수들의 측면침투를 강조했다.

또, 8~90년대 이탈리아 명문구단 AC밀란을 이끌었던 아리고 사키 감독이 최전방과 최후방 간격을 40M로 매우 촘촘히 유지했던 것처럼 미드필드 진영을 20m 간격으로 유지하고자 했다. 자신의 진영에서 수적우세를 살려 타이트한 간격을 유지해 공격을 막기 위함이었다. 그러고는 상대적으로 압박이 적은 측면을 통해 빠르게 역습을 노렸다. 이는 지금도 매우 훌륭한 수비법이다.
그러나 여전히 공격에서의 의문 즉, 역습의 단조로움은 변함없다. 정확한 긴 패스가 이루어지지 않거나 중간에 차단되었을 때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축구에는 한 가지 필수요소가 있다. 아까도 말했듯 엄청난 활동량이 바탕이어야 한다. 행여 공격수가 긴 패스를 제대로 컨트롤하지 못했을 시, 이를 쫓아 경합하고 미드필더는 흘러나오는 공을 중거리 슈팅으로 이어갈 수 있어야 한다.

콘테 감독이 이끄는 이탈리아도 이와 매우 흡사하다. 중앙의 엠마누엘레 자케리니와 마르코 파롤로, 스테파노 스투라로 등은 굉장히 활동범위가 넓고 끊임없이 상대를 압박하며 때때로 페널티 박스까지 침투한다. 양 윙백 마티아 데 실리오, 알레산드로 플로렌치 등도 마찬가지다.
결론
그러나 이날 이탈리아는 철저한 움직임과 탄탄한 시스템에도 극복하지 못한 한계에 부딪혔다. 콘테 감독이 아주 늦은 시각 꺼내 든 교체카드와 지금껏 변화를 주었던 모습들을 생각해보면, 이번 대회 이탈리아 선수단 구성은 빈약했고 그들의 기량도 감독의 마음을 훔치기 부족했다.
결국, 이탈리아는 그동안 주축 선수로 활약해오던 안토니오 칸드레바와 다니엘레 데로시, 티아고 모타를 기용하지 못한 채 독일을 상대해야 했다. 비록 전력이탈이 없는 데다, 포메이션까지 바꿔가며 이번 경기를 준비한 '우승후보' 독일을 상대로 승부차기까지 갈 정도로 잘 싸웠지만, 그동안 보여준 경기력에 비해 아쉬웠다.
특히 이날 데로시와 모타 모두 경기에 나서지 못하며 파롤로가 대체해야 했던 레지스타의 부재는 빌드업의 다양성 부재와 전진패스의 아쉬움을 남겼다. 결과적으로 마지막 패스와 컨트롤이 세밀하지 못했던 이탈리아 공격에서의 문제점을 부각했다.
몬드리안은 "형태와 색채가 극도의 단순화에 도달한 형태들이므로, 이들을 각 특성에 따라 지키고 구성하고 확립하는 것은 젊은 세대들이 할 일이다"라고 했다.
축구와 미술의 언어가 정비례하진 않는다. 그러나 이탈리아 대표팀의 경기를 보고 영향을 받을 지도자가 훗날 어디선가 나타날 지도 모른다. 그저 단순하게만 보였던 카테나치오가 이들로 하여금 더 체계적이면서도 선수 개개인의 특성을 살린 화려한 플레이로 발전하는 모습을 머지않아 보게 될 지도 모르겠다.
분석 = 전주대학교 박경훈 교수, 전주대 축구학과 경기분석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