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고전] (23) 로버트 루트번스타인·미셸 루트번스타인 '생각의 탄생'
[경향신문] ㆍ천재들의 창조적 사고 탐구, 인문형 자기계발서의 탄생

모순이다.
인문학은 심각한 위기라는데, 인문학 대중 강의는 인기 폭발이다. 대학에서는 인문학 관련 학과들이 폐지나 통폐합되며 인문학자들의 한숨이 깊어지는데, TV 같은 대중매체에서는 오히려 인문학 콘텐츠의 인기가 상한가다. 한 종편에서는 ‘어쩌다’ 나이만 먹어 ‘어른’이 된 대중을 대상으로 한 교양 강의쇼가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을 갈구하던 사람들에게 큰 만족감을 선사해주고 있다.

세상이 워낙 얄궂다보니 인문학도 덩달아 얄팍해지고 있다. 진지하고 어려우면 바로 외면당한다. 의미는 뒷전이고 재미만이 최고이다. 시간을 들이고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지루하게 여겨질 뿐이다. 어떤 문제가 있으면 ‘도깨비 방망이’처럼 뚝딱 해답이 튀어나와 줘야 한다.
이러한 가벼운 풍조에 일부에선 ‘가짜 인문학’ ‘인문학 연예인’ ‘인문학 장사’라는 단어들을 갖다붙이며 십자포화 공격을 하지만, 대중은 “재미있는데 뭐 어때”라며 ‘꼰대스럽다’고 비판을 조롱한다.
어찌됐건 인문학이란 단어가 대중들의 입에 자주 오르게 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런저런 논란과 치고받는 신경전을 통해 결국 제자리를 찾아갈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기 때문이다. 인문학이 조용히 장렬하게 전사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보다야 훨씬 낫지 않겠는가!
<생각의 탄생>(박종성 옮김)을 ‘21세기 고전’으로 추천하려다 보니 말머리가 길었다. 과학자인 로버트 루트번스타인과 역사학자인 그의 아내 미셸 루트번스타인이 함께 쓴 <생각의 탄생>은 ‘창조’와 ‘혁신’이라는 키워드가 등장할 때마다 자주 언급되는 책이다.
책은 레오나르도 다빈치, 아인슈타인, 파블로 피카소, 리처드 파인먼, 제인 구달 등 인류 역사상 위대하다고 손꼽히는 르네상스형 인간들의 생각법을 추적하고 있다.
창조적 생각이 탄생되는 과정을 관찰과 형상화, 추상, 패턴 인식, 패턴 형성, 유추, 몸으로 생각하기, 감정이입, 차원적 사고, 모형 만들기, 놀이, 변형, 통합 등 13단계로 나누어 소개한다. 시대와 분야를 넘나드는 방대한 자료 조사를 통해 천재들의 삶과 업적을 씨줄과 날줄로 촘촘히 엮어낸 저자들의 노련함이 돋보인다.
워낙 많은 천재적 인물들이 계속해서 나오는 바람에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단점이 있지만 ‘창조적 생각법’에 관해서는 <생각의 탄생>에 견줄 만한 책을 찾기 힘들다.
‘통섭의 대가’로 불리는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은 “아, 내가 써야 할 책이 먼저 나왔구나!”라며 아쉬움 가득한 추천사를 남겼고, 책에 대한 소문이 퍼져나가면서 각계각층의 리더와 유명인사들이 앞다퉈 자신들의 추천도서 목록에 올리기도 했다. 다양한 부류의 독서모임에서는 이 책을 주제로 활발한 토론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인문, 역사 분야로 분류된 <생각의 탄생>을 ‘자기계발’과 ‘교육’의 목적으로 탐독하면서, 이 책은 점차 인문서가 아니라 자기계발서로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생각의 탄생>은 과연 어느 분야의 책으로 분류해야 할까. ‘인문형 자기계발서’라는 말은 이렇게 탄생했다. 무엇이 과연 인문학이고, 인문학이 아닌 것은 또 어떤 것인가, 인문학이 과연 삶의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을까…. 최근 인문학을 둘러싼 논란, 특히 인문학에서 진짜와 가짜를 구분지으려는 것을 지켜보면서 불편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일부에서 재미가 있으면 사이비 인문학이고, 삶의 문제와 결부되면 타락한 인문학이라는 주장이 특히 불편하다.
우리가 문학작품을 읽는 이유는 사랑과 우정, 정의와 자유의 가치를 일깨우며 사람으로서의 도리를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도전과 응전의 연속으로 점철된 역사를 공부하면서 현재를 살아가는 통찰력과 지혜를 얻을 수 있어서다. 철학하기를 통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중대한 질문과 마주하고 올바른 삶을 추구하게 된다. 인문학이 단숨에 우리를 부자나 천재로 만들어줄 수는 없어도, 인문학을 통해 더 나은 삶을 추구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삶의 문제에 대한 정답이 인문학에 나와 있지는 않지만 해결의 실마리는 발견할 수 있다.
출간된 지 10년 가까이 된 <생각의 탄생>을 다시 읽으며, 인문학의 본질과 가치를 생각해본다. 사람의, 사람에 의한, 사람을 위한 학문인 인문학을 우리는 너무 고결하게만 취급하려고 하는 것은 아닐까.
<홍순철 BC에이전시 대표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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