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동과 약탈이 일상화 된 석유의 나라, 왜?
'빵집을 지키고 있는 군인'
이런 광경은 베네수엘라의 식량난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세계 1위 원유매장량을 자랑하는 베네수엘라는 극심한 식량난에 폭동과 약탈이 일상화됐다. 음식을 놓고 범조 조직 간 다툼이 벌어져 4살짜리 여자 아이가 총에 맞아 숨지는 등 최소 5명이 사망했다.
베네수엘라가 이런 극한 상황으로 내몰린 이유에 대해 많은 매체들이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적인 복지제도와 저유가에 따른 경제체제 붕괴를 중요한 원인으로 꼽고 있다.
하지만 부유한 산유국 치고 풍요로운 복지제도를 자랑하지 않는 나라가 없다. 더군다나 석유의존도가 높은 다른 산유국들은 베네수엘라만큼의 식량난을 겪지는 않고 있다. 무엇이 베네수엘라를 천국에서 지옥으로 떨어뜨린 것일까.
수출의 96%를 원유에 의존하는 베네수엘라에게 유가 하락은 재정에 직격탄이 될 수밖에 없다는 점은 분명하다.
유가 하락이 재정 수입을 옥죄면서 복지제도가 제대로 돌아가기 어렵겠지만, 식량 등 생필품 품귀 현상까지 일으킨 것을 차원이 다른 문제다.
식량난의 배후에는 '네덜란드 병'이 있다.
네덜란드 병은 수익성이 좋은 하나의 사업에 '올인'하다보니 다른 부문이 쇠퇴하는 현상을 말한다. 베네수엘라는 다른 산유국에 비해 더 심하게 '네덜란드 병'을 앓은 게 화근이었다.
원래 베네수엘라는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농업사회였다. 하지만 1922년 마라카이보 북쪽 바로수에서 석유가 발견됐고, 남미의 부유한 산유국으로 급부상했다.
석유산업에 전적으로 기대다시피하다보니 농업을 포함한 다른 경제는 뒷걸음치기 시작했다. 이런 구조적인 문제를 가리기 위해 필요한 물건을 무작정 수입했다.
과거에는 쌀과 커피, 고기를 해외에 수출했지만 지금은 이들 3개 품목을 모두 수입하고 있는 실정이다. 비옥한 토지를 가진 나라지만 농업 생산성은 바닥이다. 상당량의 식량은 미국으로부터 들여온다.
베네수엘라는 정부가 환율에 깊게 개입하고 있지만, 저유가로 달러 수입이 감소하면서 자국내 달러 공급이 어려워졌다. 이에 달러가치는 치솟았고, 자국 화폐인 볼리바르의 가치는 곤두박질쳤다.
여기에 기름을 부은 것은 정부가 암시장의 10%도 안되는 환율로 달러를 공급하는 '특혜환율'이다.
특혜 환율은 수입 생필품 가격을 안정시키기 위한 것이지만, 환투기와 부정부패를 부추기는 부작용을 낳았다.
수입업자들은 특혜 환율로 의약품 등 생필품을 수압했다가 포장도 뜯지 않고 다시 해외로 재수출했다. 국내에서는 정부가 가격을 통제하기 때문에 더 비싼 가격에 외국으로 빼돌린 것이다.
최근 심각한 옥수수 가루, 우유, 설탕 등의 품귀현상도 정부 공식 환율로 수입된 값싼 제품이 밀수출로 빼돌려진 결과로 베네수엘라 정부는 보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수입업자들은 정부로부터 싸게 사들인 달러를 암시장에서 비싸게 팔았다.
이렇게 물가상승과 화폐가치 하락의 악순환은 이어졌다.
유가가 높았던 시절에도 정부 재정수입이 늘어야 했지만 오히려 시중에 달러 공급이 준 것에는 부패에 따른 외화유출도 한몫했다.
베네수엘라의 근본 원인은 우파에서 주장하는 사회주의 정책 때문도 아니고, 마두로 정부가 주장하는 "미국의 사주를 받은 우파 기업들이 벌인 '경제 전쟁' 때문"도 아니다.
'검은 황금'에 취해 경제 체질 개선에 실패한 게 가장 큰 원인이다.
세계 1위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도 오일머니를 통해 국민에게 무상교육, 무상의료, 전기와 수도 무상고급, 에너지 보조금 지급 등을 하고 있다. 그렇다고 베네수엘라처럼 식량난 등 경제위기를 겪고 있지는 않다.
사우디는 일찌감치 농업에도 투자해 생산량을 늘렸고 올해 석유 중심의 경제에서 탈피하기 위한 청사진도 내놨다.
사우디는 '탈(脫) 석유'를 선언하면서 광공업, 관광, 금융, 물류 등으로 산업 포트폴리오를 다양화하겠다고 했다. 베네수엘라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함이다.
[CBS노컷뉴스 정영철 기자] steel@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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