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은 왜 유럽을 떠나려 하는가..그들의 '특권의식'
(서울=뉴스1) 최종일 기자 = 몇해 전에 아부다비로 향하는 프랑스 파리발 비행기 안에서 옆 자리에 앉았던 30대 후반의 영국인은 유럽 재정위기 사태에 대해 묻자 "독일인은 재미없게 일만 하고 그리스인은 게으름을 많이 피운다"며 경제와 생산성 수준이 다른 국가를 한 통화로 묶어놓으니 탈이 날 수밖에 없다는 취지의 대답을 해줬다.
이 남성은 그러면서 "영국인은 일도 잘하고 놀기도 잘한다"며 자신의 주량을 자랑했다. 3~4시간 지속된 대화에서 "영국은 섬나라"라며 다수의 영국인들은 "유럽보다 미국을 정서적으로 더 가깝게 느낀다"고 한 말은 특히 흥미로웠다. 그는 앞으로는 영국이 친(親)유럽 정책을 펴야 한다며 개인적인 바람도 전했다.
아랍에미리트(UAE)에서 엔지니어로 일한다는 이 영국인과의 대화는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이른바 브렉시트(Brexit)를 찬성하는 사람들 사이에 깊게 뿌리 내리고 있는 유럽회의주의(Euroscepticism)에 관한 자료를 찬찬히 들여다보고 나름의 생각을 정리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유럽인으로 정체성을 갖고 있는 영국인들의 비중은 유럽 내에서 유독 낮다. 지난해 영국의 싱크탱크 국가사회연구센터(NatCen)의 영국인사회태도조사에 따르면 영국이 유럽에 속한다고 보는 이는 15%에 그쳤다. 90년 중반 이후 계속된 조사에서 최고는 17%에 불과하다.(유럽에 속하지 않는다고 느끼는 응답자 중 51%는 경제 문제 등으로 EU 잔류를 바란다고 답했다)
언어습관도 흥미롭다. 영국인들은 유럽을 영국이 속하지 않는 타지로 표현한다. 영국 노동당 소속의 리처드 코벳 유럽의회(MEP) 의원은 자신의 웹사이트에서 "많은 영국인들이 휴가 기간에 유럽에 간다(Many Brits go to Europe for their holidays)"고 하는데 "많은 영국인들이 휴가기간에 유럽 내 다른 곳에 간다(Many Brits go elsewhere in Europe for their holidays)고 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하고 있다.
이같이 된 데에는 우선 지리적 요인이 있다. 영국은 대륙 끝에 있는 섬나라이며 항상 해양으로부터 영감을 받아왔다. 샤를 드 드골 대통령은 1963년 1월 해럴드 맥밀런 당시 총리가 추진했던 유럽경제공동체(EEC) 가입을 막게 된 이유를 설명하며 "영국은 섬나라이며 교역과 시장, 식료품 공급을 통해 가장 다양하고 가장 멀리 있는 국가들과 묶여 있다"고 영국의 차별성을 언급했다.
영국의 역사도 다른 대륙 국가와 차이가 있다. 식민지 확보와 무역, 투자, 이민의 형태는 유럽만큼이나 미 대륙과 아프리카, 아시아에도 초점을 맞췄다. 프랑스와 네덜란드, 스페인, 포르투갈이 이 같은 해양 경험을 다소 갖고 있지만 다른 국가들은 주로 이웃국가들 사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다. 또 유럽의 어떤 국가보다 다른 대륙에서 더 많은 전쟁을 경험했다.
역사학자 버논 보그대너는 BBC에 "수세기 동안 우리는 나치 등으로부터 인상적으로 고립돼 살았다. 물론 현재 고립의 시기는 갔지만 그것은 대륙과 제휴를 맺고 싶지 않은 영국민들에 여전히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EU에 속하는 아일랜드, 몰타, 키프로스 역시 섬나라다. BBC는 영국의 섬 사고방식은, 영국은 명령을 내리지 받는 곳이 아니라는 과거 잘나가던 시절에 대한 향수와 결합돼 있다고 진단했다.
2차 대전 중 상대적으로 영광스러운 역할을 했다는 점도 유럽회의주의를 더욱 뿌리내리게 했다. 주요국 대부분에 2차 대전은 자랑스러운 역사가 아니다. 다수의 국가는 잘못된 편에 섰고, 일부는 침략 당했다. 나머지는 중립을 유지했다. 영국의 대중문화는 여전히 '호시절'로 당시를 다룬다.
다른 국가들은 나치의 공포가 재현되지 않도록 하는 수단으로 EU를 지지했다. 하지만 영국은 이 역사를 잊고 싶어하지 않는다. 전쟁의 기억은 도덕적으로 우월하다는 감정을 준다. 마거릿 대처 전 총리는 영국이 겪는 불행의 대부분은 원천이 유럽이며, 앵글로 색슨 국가들 특히 미국은 영국을 불행에서 구해줬다고 종종 말했다. 다수의 영국인들, 특히 노년층 세대는 이에 동의한다.
경제적 요인도 있다. 영국은 내부의 강한 저항에도 EEC에 가입했다. 1975년 가입을 위한 국민투표에서 주요 3개 정당과 언론들의 전폭적 지지를 얻었다. 찬성은 67% 이상 이 나왔다. 하지만 이것으로 논란이 끝난 것이 아니었다. 유럽에 기댔지만 경제적 활력제가 못됐다. 파업은 계속됐고, 유가 상승으로 인플레이션은 두 자릿수를 기록했다.
아울러 EEC 회원국들은 1979년 유로화의 전 단계인 공동환율시스템(ERM)을 도입했고 영국은 1990년 이에 동참했다. 하지만 1992년 9월 헤지펀드 등 투기 세력의 공격으로 파운드화가 대폭락하자 노먼 라몬트 당시 재무장관은 ERM에서 발을 빼는 결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 사건은 영국과 유럽 간 관계가 크게 악화되게 한 주요 사건 중 하나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영국 경제 성장률은 프랑스와 독일, 이탈리아 등 주요 유럽 경제 대국을 뛰어넘었다. 영국은 고성장률과 낮은 실업률을 자랑했다. 영국은 노동시장 자유화, 해외 투자 적극 유치 등 대처 전 총리 시기에 구조 개혁에서 혜택을 봤다. 경제적 자신감이 EU에 거리를 두게 했다. 금융위기 이후에는 그리스의 사례에서 보듯이 심각한 경제 위기로 EU의 생존이 위협받으면서 유럽회의주의는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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