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안경 판매, 종이 면도날.. 남들과 다른 시선으로 새 시장 열다

오윤희 조선일보 국제부 기자 ·<정반합> 저자 2016. 6. 20.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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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의 틀을 과감히 깨야 성공할 수 있다. 왼쪽부터 포켓몬스터 대표 캐릭터 피카추, 와비 파커의 안경, 종이 면도기 ‘페이퍼컷 레이저’로 면도하는 모습.

캐릭터 업계에서 가장 전통과 영향력이 강한 회사를 하나만 꼽으라고 한다면 단연 디즈니를 들 수 있다. 미키마우스, 도널드 덕, 백설공주, 포카혼타스, ‘겨울 왕국’의 엘사에 이르기까지 디즈니는 전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캐릭터를 잇달아 성공시킨 기업이다.

언젠가 디즈니 홍보 담당자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때 그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해 줬다. 회사의 가장 커다란 자산이 캐릭터인 만큼 디즈니는 저작권 보호는 물론이고, 캐릭터의 정체성 지키기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이를 테면 전 세계 디즈니랜드에서 디즈니의 특정 캐릭터 분장을 하는 직원들은 철저하게 그 캐릭터가 되기 위한 훈련을 받는다.

신데렐라로 분장하는 직원은 어린이 관광객에게 사인을 해 줄 때도 자기 마음대로 해선 안 된다.

동글동글하고 여성스러운 ‘신데렐라 필체’를 충분히 익힌 다음, ‘신데렐라 스타일’로 해 줘야 한다. 캐릭터가 출판·영상물에 노출될 경우에도 고유의 이미지를 철저하게 지키도록 한다. 가령 중세 유럽의 고성에서 살고 있을 법한 백설공주가 베이징 국제공항의 수하물 찾는 곳에 서서 스마트폰으로 문자 메시지를 전송한다거나 해서는 안 된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디즈니의 캐릭터는 개성이 강하긴 하지만 고정불변이다. ‘무슨 무슨 캐릭터는 이러이러해야 한다’라는 고유의 법칙을 벗어나선 안 된다. 그런데 디즈니로 대변되는 캐릭터 업계의 틀을 과감히 깨고 성공한 것이 바로 일본의 엔터테인먼트 기업 포켓몬이다.



‘주식회사 포켓몬’이 입주해 있는 일본 도쿄 롯폰기힐스 모리타워. 주식회사 포켓몬은 포켓몬스터를 제작하고 캐릭터 상품을 판매한다. <사진 : 블룸버그>

사례 1 | 日 엔터테인먼트 회사 ‘포켓몬’
계속 변하고 진화하는 캐릭터로 성공

포켓몬스터(포켓몬)는 국내 TV에 소개된 애니메이션 덕택에 우리에게도 친숙한 브랜드다. 포켓몬이라는 이름은 ‘호주머니(포켓)에도 넣고 다닐 수 있는, 작고 귀여운 괴물(몬스터)’이라는 뜻이다. 주식회사 포켓몬은 원래 게임을 주로 제작했지만 포켓몬 캐릭터를 소재로 한 애니메이션, 영화, 캐릭터 상품 등이 먼저 출시된 게임보다 더 큰 인기를 얻게 되면서 디즈니처럼 종합 엔터테인먼트 회사로 거듭났다.

연매출만 해도 우리 돈으로 42조원(2015년 기준) 이상이다.

포켓몬이 디즈니와 가장 크게 차이가 나는 점은 캐릭터에 대한 철학이다. 2011년 이시하라 쓰네카즈(石原恒和) 사장을 인터뷰했을 때 그는 “캐릭터가 몇 종류나 되나”라는 단순한 질문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회사 상품에 대한 지식이 얕아서가 아니다. 아메바 같은 생물이 자연계에서 갑자기 불어나거나 여러가지 돌연변이를 일으켜서 희한한 변종이 되는 것처럼 포켓몬도 캐릭터가 계속 변화하고 진화하기 때문이다. 진화해서 다른 포켓몬이 된 존재를 하나의 종류로 쳐야 할지, 다른 종류로 쳐야 할지부터가 애매해진다. 종류가 같고, 진화 단계가 같으며, 성별이 동일하더라도 개체별 특징에서 차이가 날 수도 있다. 암수, 색깔 등 각각의 특징에 따라 종류를 나누면 포켓몬 가짓수는 1000개를 훌쩍 뛰어넘는다. 이시하라 사장은 이렇게 말했다.

“포켓몬은 생명체 같아서 피카추(포켓몬의 대표 캐릭터) 귀가 구부러져 있거나 꼬리가 조금 말려 있거나 해도 어쨌든 모두 피카추입니다. 한 마리, 한 마리가 다 다릅니다. 살아 있으니까요. 반면 디즈니 캐릭터는 다 똑같지 않나요.

귀 색깔이 다른 미키마우스, 부리가 다른 도널드 덕은 짝퉁이 됩니다. 이렇듯 캐릭터에 대한 시각, 접근법이 우리가 다른 캐릭터 회사와 가장 차별화되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존의 정형화된 캐릭터에만 익숙했던 소비자들은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처럼 변화하고 그래서 자신이 게임 등 가상의 세계에서 애완동물처럼 키울 수 있는 새로운 유형의 캐릭터에 열광했다.

이처럼 역발상을 하기 위해서는 남들과 다른 방식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연습이 필요하다.

경쟁자와 똑같은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면 결과적으로 비슷비슷한 제품밖에 만들 수 없다. ‘틀’을 벗어난 시각, 다른 업체와는 차별화되는 접근법으로 세상을 바라봤을 때 남들이 보지 못했던 새로운 시장이 보이는 법이다.



와비 파커 공동 창업자인 닐 블루멘탈(왼쪽)과 데이비드 길보아(오른쪽). <사진 : 블룸버그>

사례 2 | 美 온라인 안경판매 업체 ‘와비 파커’
배송된 안경 써보고 골라

남들과 다른 방식으로, 혹은 새로운 각도로 사물을 바라보기 위해선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어쩌면 ‘와비 파커(Warby Parker)’라는 온라인 안경 판매 업체가 그 해답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와비 파커 창업자들은 ‘자포스(Zappos)’가 온라인으로 신발을 판매하면서 신발 시장을 변화시켰던 것처럼 안경을 온라인으로 팔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갖고 안경 시장에 뛰어들었다. 주변에선 모두 말렸다. 그들은 “대체 누가 안경을 인터넷에서 구매하겠느냐”고 핀잔했다.

하지만 와비 파커 창업자들 생각은 달랐다. 그들은 시장 조사를 통해 룩소티카(Luxottica)라는 대기업이 안경 시장의 80%를 독점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룩소티카는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 생산비용의 20배를 안경 가격으로 책정하고 있었는데, 와비 파커 창업자들은 그 상태는 정당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또 일일이 안경점에 가서 수십 종류의 안경을 써 볼 필요 없이 집에서 간편하게 몇 가지 견본을 써 보고 소비자들이 맞춤 안경을 구입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것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생각한 방법이 고객들에게 안경 견본을 최대 다섯 종류 배송해서 최대 5일간 직접 쓰고 생활하도록 한 다음, 원하는 디자인을 고른 뒤 반송하도록 하는 시스템을 고안했다.

그런 다음 고객이 홈페이지에 시력, 눈동자 사이 거리 등을 입력하면 2주쯤 뒤 맞춤 안경을 배송하는 방식이다.

상품 가격도 크게 낮췄다. 미국 일반 안경점에서 안경 가격은 보통 500달러 내외지만, 와비 파커에선 95달러에 판매한다. 안경 하나가 팔릴 때마다 개발도상국에 안경 하나를 기부하기 때문에 소비자들은 안경을 사면서 착한 일에 동참할 수도 있다. 와비 파커가 이렇게 저렴한 안경을 생산할 수 있었던 비결은 자체적으로 안경테 디자인을 하기 때문에 로열티를 낼 필요가 없고, 온라인 판매라서 매장 운영비 부담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대기업 룩소티카와 똑같은 재료를 사용하고, 유명 안경 브랜드 ‘레이밴’을 만드는 중국 공장에 제작을 의뢰하기 때문에 제품의 품질도 뒤지지 않았다. 와비 파커는 지난해 <패스트 컴퍼니(Fast Company)>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업’ 1위를 차지했다. 과거 이 목록에서 1위를 차지한 기업은 구글, 나이키, 애플 등 대기업이다.

2010년에 창업한 신생 벤처 기업이 불과 5년 만에 종업원 5만명 이상을 거느린 거대 기업과 나란히 어깨를 견줄 만큼 경쟁력 있는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은 누구나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와비 파커가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데 있다. 와비 파커는 주변 사람들 모두 “안경은 온라인으로 팔 수 있는 품목이 아니야”라고 했을 때 거기에 설득당하지 않고 “왜 안경을 온라인에서 팔면 안 되지”라고 의심했다.

사실 마케팅 시장에 ‘당연한 것’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몇몇 성공한 사례를 통해 그 성공의 법칙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아무런 의문 없이 쫓아가고 있을 뿐이다. 오늘날처럼 빠르게 변화하는 시장에서 역발상으로 성공하기 위해선 당연해 보이는 것들을 무턱대고 추종하기보다는 그 당연해 보이는 룰에 반기(反旗)를 들고 스스로 새로운 룰을 만들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바로 와비 파커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말이다.



종이 면도기를 만든 디자이너 나딤 하이다리. <사진 : 페이스북 캡처>

사례 3 | 美 디자이너 나딤 하이다리
종이로 접은 면도기 만들어

누구나 책장을 넘기거나 서류 더미들을 정리하다가 종이에 손을 벤 경험을 한번쯤 해 봤을 것이다. 하지만 대개는 그것을 짜증나는 일로 여기고 넘어간다. 하지만 이런 불쾌함을 유용함으로 만든 사람이 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활동하는 디자이너 나딤 하이다리(Nadeem Haidary)는 종이에 손을 베어본 경험을 통해 ‘아, 종이가 이렇게 날카로운 것이구나. 이걸 칼처럼 사용할 수도 있겠는데’라는 발상을 하게 됐다. 그래서 종이로 면도날을 만들었다.

이름은 종이에 벤 상처를 일컫는 영단어 ‘페이퍼컷(papercut)’에 ‘면도기(razor)’를 합쳐 ‘페이퍼컷 레이저’라고 붙였다.

페이퍼컷 레이저는 면도 크림과 물에 젖지 않도록 종이를 방수 가공해서 평평한 일반 종이 형태로 판매한다. 소비자들은 이 제품을 구매한 뒤 종이접기하듯 종이를 접어서 면도기로 이용한다. 일회용 면도기처럼 한 번 사용하면 버리는 제품인데, 가볍고 사용이 간편한데다 재활용도 가능하다. 종이 모서리가 의외로 날카롭다는 사실은 변함없지만,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그 날카로움은 그저 ‘위험함’으로 여겨질 수도 있고 ‘유용함’으로 인식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다. 이처럼 사물엔 양면성이 존재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사물의 양면성을 잘 활용한다면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 훌륭한 역발상 아이디어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세계 3대 산업 디자이너로 꼽히는 카림 라시드. <사진 : 조선일보 DB>

사례 4 | 산업 디자이너 ‘카림 라시드’
“스스로 외계인이라고 생각하라”

500년 전에 살았던 마키아벨리는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무엇인가를 변화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수백년 전에 살았던 인물조차 기존의 방식을 버리는 것이 어렵다고 한탄하는 것을 보니 예나 지금이나 잘 알거나 익숙한 것에 안주하려는 자세는 우리 인간이 가진 고유의 습성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기존의 것과 다른 무엇인가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과거에 얽매이지 않는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다. 지금처럼 경쟁이 심한 마케팅 환경에선 더욱 그렇다. 그렇다면 독특한 관점으로 사물을 바라보고 남들과 다른 시선을 갖기 위해선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세계적인 산업 디자이너 카림 라시드(Karim Rashid)를 인터뷰했을 때 그는 창의성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 “흔히들 ‘창의성은 어디에서 오는가’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제 생각엔 창의성이라는 것은 어떤 ‘현상’이나 ‘능력’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이 특수한 창의성을 타고 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노력만 하면 창의적이 될 수 있는 DNA를 타고 났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카림 라시드는 현재까지 300개가 넘는 작품을 디자인했고, 디자인 관련 분야 상을 300개 이상 받았다. 전 세계적으로 400만개 이상 팔려서 ‘역사상 가장 유명한 쓰레기통’이라는 별명이 붙은 ‘가르보(Garbo)’를 디자인한 인물도 카림 라시드다. 국내에서도 ‘카림 라시드표 디자인’은 낯설지 않다. 뚜껑을 컵처럼 이용할 수 있는 투명한 푸른 색상의 파리바게뜨 생수병, 둥그스름한 삼각기둥 모양을 한 애경의 ‘순샘버블’ 주방 세제 용기, 티타늄 소재로 만든 현대카드 VVIP 카드 ‘더 블랙’이 모두 그의 손을 거쳤다.

독특한 디자인뿐 아니라, 핑크색 정장 등 튀는 개성으로도 널리 알려진 카림 라시드. 그가 소개한 창의적이 되는 방법은 “스스로를 외계인이라고 생각하라”는 것이었다. “좀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저는 이 행성(지구)에 살고 있지만 스스로 지구인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외계인의 관점으로 바라보면 사람이나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이 더 창의적이 될 수 있습니다. 자유로운 마음에서 비롯된 시선으로 세상을 둘러보면 감각이 더 예민해지니까요. 자유로운 시선을 갖고 우리의 삶을 더 나은 것으로 만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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