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투기 읽어 주는 남자] 스타 기자, UFC 경기장에서 쫓겨나다

마이클 비스핑(오른쪽)은 지난 5일(한국 시간) UFC 199에서 루크 락홀드에게 KO승하고 UFC 미들급 챔피언에 올랐다. ⓒGettyimages

[스포티비뉴스=이교덕 기자] 지난 5일(이하 한국 시간) 미국 캘리포니아 잉글우드 더 포럼에서 열린 UFC 199에서 도미닉 크루즈는 유라이야 페이버와 3차전에서 3-0 판정승하고 밴텀급 타이틀 1차 방어에 성공했다.

은퇴 위기에 몰린 댄 헨더슨은 헥터 롬바드에 역전 KO승했다. 맥스 할로웨이가 리카르도 라마스를 3-0 판정으로 꺾고 9연승을 달렸다. 페더급에서 2년 전 코너 맥그리거에게 1라운드 KO패한 더스틴 포이리에는 라이트급으로 올라온 뒤 4연승했다.

'작동(작은 동현)'으로 불리는 '마에스트로' 김동현은 폴로 레예스와 난타전을 펼친 끝에 3라운드 KO패했다. 졌지만 감동을 주는 경기를 펼쳤다. '파이트 오브 더 나이트' 5만 달러(약 6,900만 원) 보너스를 받았다.

이날의 주인공은 루크 락홀드를 1라운드에 쓰러뜨리고 새 미들급 챔피언이 된 마이클 비스핑이었다. 2006년 TUF 3에서 우승하고 UFC에 들어온 지 10년 만에 처음으로 나선 타이틀전에서 정상에 서는 감격을 맛봤다.

비스핑은 기자회견에서 "운명은 나의 편이었다. 중요한 경기에서 지곤 했지만 언제나 난 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 경기로 세상에 충격을 안겼다. 언더독이었던 내가 1라운드에 KO로 이겼다"며 기뻐했다.

'마에스트로' 김동현은 폴로 레예스와 난타전을 펼친 끝에 3라운드 KO패했다. 명승부를 합작한 승자와 패자에게 주는 '파이트 오브 더 나이트' 보너스를 받았다. ⓒGettyimsges

잔잔한 감동을 준 UFC 199.

그런데 옥타곤 옆에서 또 다른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었다. 현장에서 대회를 취재하고 있던 미국 종합격투기 뉴스 사이트 MMA 파이팅의 아리엘 헬와니 기자는 비스핑과 락홀드의 타이틀전 직전에 UFC 직원들에게 경기장에서 나가 달라는 요구를 받았다. 그는 MMA 파이팅 동료 기자 두 명과 함께 강제로 경기장을 나왔다.

헬와니는 세계 종합격투기계에서 가장 유명한 기자다. 'MMA 아워'라는 영상 주간 인터뷰 코너의 사회자다. 여기서 나온 선수들의 발언이 기사화돼 전 세계로 퍼진다. 폭스 스포츠의 인터뷰 진행자도 맡고 있었다. 특종에 강했다. 넓은 인맥을 발판으로 발빠르게 움직여 여러 소식을 가장 먼저 보도하곤 했다. 그런 스타 기자가 경기장에서 쫓겨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헬와니는 트위터에 "메인이벤트 직전에 쫓겨났다. 기자 출입증도 빼앗겼다. 비스핑이 꿈을 이루는 장면을 보지 못했다"고 썼다. 이어 "오랜 동료 두 명도 함께 건물을 나왔다. 팬 여러분, 미안하다. 오늘 대회 후 소식은 전해 드리지 못한다"고 했다.

대회사가 기자를 끌어내는 일은 이례적인 경우. 그것도 가장 영향력 있는 기자를 쫓아냈다. 무슨 이유였을까?

코너 맥그리거와 네이트 디아즈의 웰터급 재대결이 8월 UFC 202에서 펼쳐진다는 소식과 브록 레스너가 다음 달 10일 UFC 200에서 경기한다는 소식을 UFC가 발표하기 약 2시간 전에 기사로 썼기 때문이었다. UFC 199 중계 도중 깜짝 발표해 전 세계를 들었다 놓으려고 했던 UFC는 팍 김이 샜다.

단순히 김만 샌 것이 아니었다. 평소 헬와니를 마음에 들지 않아 했던 데이나 화이트 UFC 대표가 격노했다. 그는 헬와니에게 UFC를 평생 취재하지 못하도록 하겠다고 엄포를 놨다.

쫓겨난 스타 기자 아리엘 헬와니, 그는 발빠른 보도로 명성이 자자했지만 이것이 데이나 화이트 대표의 심기를 건드렸다. ⓒGettyimages

헬와니는 야후 스포츠와 인터뷰에서 "UFC 홍보팀 관계자들에게 이끌려 경기장 백스테이지로 갔다. 거기서 화이트 대표에게 넌 경기장을 떠나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는 계속 '가서 벨라토르나 취재해라. 넌 여기 있지 못한다'고 했다"고 밝혔다.

화이트 대표는 7일 미국 연예 스포츠 매체 TMZ와 짧은 인터뷰에서 "취재하고 싶으면 취재하라고 해라. 대신 기자 출입증은 발급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UFC 200을 취재하려면 티켓을 사야 한다는 뜻인가?'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그리고 "내가 여기 있는 한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비스핑이 챔피언이 된 것보다 UFC가 헬와니를 평생 취재 금지 블랙리스트에 올린 것이 더 화제가 됐다. 여러 매체에서 헬와니의 징계는 가혹하다는 의견을 냈다. MMA 파이팅은 지난 6일 "우리의 가족 아리엘 헬와니, 에스더 린, 케이 시 레이던을 지지한다. 많은 분들의 응원에 감사 드린다. UFC와 아직 접촉하지 않았다. 새로운 내용이 나오는 대로 소식을 알리겠다"는 공식 성명을 발표했다.

곧 UFC는 헬와니 등 MMA 파이팅 기자들의 평생 취재 금지 조치를 취소하기로 했다. 7일 홈페이지에서 "UFC는 MMA 파이팅의 취재를 막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MMA 파이팅의 취재 능력을 포함해 미디어의 가치를 존중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진짜 하고 싶은 말을 뒤에 붙였다. "앞으로 종합격투기를 널리 알리기 위해 여러 미디어와 발맞춰 나가겠다"고 했지만 "우리는 선임 기자들의 계속되는 앞선 보도가 저널리즘의 목적에서 벗어나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말을 빼놓지 않았다.

결국 '아리엘 헬와니 사태'는 한바탕 해프닝으로 끝났다. 그러나 화이트 대표의 강공에 미국의 여러 미디어들은 속보 경쟁을 다시 한번 생각할 수밖에 없게 됐다. 여차하면 취재 거부를 당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 줬기 때문이다.

데이나 화이트 대표는 장판교의 장비처럼 외부 관계자들과 갈등을 빚을 때 오히려 강공으로 나간다. ⓒGettyimages

코너 맥그리거를 UFC 200에서 빼 버린 것과 같은 방식이었다. 맥그리거는 아이슬란드 전지훈련에 집중하고 싶다는 이유로 지난 4월 미국 라스베이거스 UFC 200 기자회견에 오지 않았다. SNS에서 은퇴를 선언하는 등 연막작전까지 펼쳤다.

맥그리거 길들이기에 나선 화이트 대표는 맥그리거와 디아즈의 웰터급 재대결을 UFC 대진표에서 빼 버렸다. UFC 선수라면 따라야 하는 대회 홍보 의무를 저버렸다는 이유였다.  일종의 괘씸죄였다.

설마설마하다가 자신이 UFC 200 출전자 명단에서 빠지자 맥그리거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결국 을의 자세로 화이트 대표와 만나 감정을 풀고 UFC 202에 출전하기로 약속했다. 여러 미디어가 UFC 공식 발표 전에 기사를 내는 데 주저하게 되었듯, 앞으로 맥그리거가 기자회견에 참석하지 않는 일은 없을 것이다.

화이트 대표의 강한 반격은 지금까지 나름의 효과를 보고 있다. 숨은 에피소드 하나가 있다.

2014년 2월 미국 라스베이거스 UFC 본부 회의실에서 약 20명의 기자들이 모인 간담회에서 화이트 대표는 큰소리쳤다. 여러 기자들이 몇몇 선수들의 금지 약물 복용 가능성을 지적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여기서 화이트 대표는 "지금 당장 의심이 가는 이름 하나 대 봐라. 전화해 놓겠다. 오늘 그 집에 사람을 보내 약물검사를 하겠다", "말해라, 말하라니까"라고 외쳤다. 이어 "그러면 다시는 이 얘기를 꺼내지 마라. 여러분들은 이런 게임을 좋아한다. 그러면 해보자. 난 준비됐다. 이름 하나, 아니 이름 열 개, 그냥 당신들이 원하는 이름 다 대 봐라. 지금 당장 모두 검사해 보겠다"고 했다.

기자들은 침묵했다고 전해진다.

장판교의 장비 같았고, 테이블 위에 올라가 원한다면 보여 주겠다던 나훈아 같았다.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