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는 구라다] 일본이 실패한 레그킥(leg kick), 한국이 입증하다

마운드 위의 노아 신더가드가 아름다운 금발을 휘날린다. 그는 최강의 패스트볼을 가졌다. 마치 번개가 내려치는 것 같은 공을 던진다고 토르로 불린다. 만화 캐릭터 말이다.

토르의 초구가 몸쪽에 박힌다. 스피드는 무려 98마일(157.7km). 간담이 서늘해질 정도다. 하지만 타자는 시큰둥하다. 평소나 다를 게 없다. 왼 다리를 번쩍-. 아낌없이 들어 올린다. 걱정스럽다. 저러고도 구속의 압력을 이겨낼 수 있을까?

2구째. 또 번개를 내려친다. 바짝 붙는 곳으로 97마일(156km)짜리가 날아왔다. 타자는 역시나 왼 다리를 한껏 끌어올린다. 그리고 쭉 뻗어주는 동작이 몸통의 회전력으로 전달된다. 자연스러운 타이밍에서 출발한 배트는 가볍게 공을 밀어낸다. 타구는 2루수 키를 넘었다. 그걸로 주자가 한 명 들어왔다. 스코어 보드의 숫자가 바뀐다.

타자는 무덤덤하다. ‘뭘 그 정도 가지고…’ 하는 표정이다. 맞다. 그에게는 일상이다. 새삼스러울 게 없다.

하지만 과연 그런가? 대단치 않은 일인가? 아니다. 그건 분명히 특별하다. 왜? 이제껏 그들이 가진 알고리즘과는 사뭇 다르다. 어떻게 그런 타격 폼으로, 그 속도의 공을 페어 그라운드에 집어 넣을 수 있다는 말인가.

강정호가 신더가드를 상대로한 준비 자세. 왼쪽 다리를 한껏 끌어올린 하이 레그킥이다. mlb.tv 화면

일본 타자들의 치명적 결함

레그 킥(leg kick). (우타자의 경우) 왼쪽 다리를 들고 치는 동작이다. 그러면 체중 전달로 스윙의 파워가 커진다. 주로 아시아권 타자들에게 애용된다. 특히 무릎을 허리 높이까지 올리는 하이 레그킥도 구사된다. 오 사다하루(왕정치)의 외다리 타법이 유명하다.

하지만 골치 아픈 부작용을 수반한다. 동작이 복잡해진만큼 반응 속도에서 한계가 드러난다. 일반적으로 92~93마일이 넘는 공에는 따라가기 힘들다는 게 정설처럼 굳어졌다.

때문에 대부분의 일본 타자들이 빅리그에 진출해서 이 문제 때문에 벽에 부딪혔다. 나카무라 노리히로, 가와사키 무네노리 같은 타자들이다.

가장 결정적인 것은 스즈키 이치로였다. ‘진자(시계추) 타법’으로 불리는 그의 시그니처 타격 폼은 전형적인 하이 레그 킥 동작이다. 하지만 미국 진출 첫 해 스프링캠프를 경험한 그는 ‘그런 폼으로는 절대로 메이저리그 투수들의 공을 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리고 스스로 진자 타법을 포기했다. 물론 이치로는 성공한 메이저리거다. 그러나 매년(7년 연속) 두자리수 홈런을 기록하던 일본시절의 파워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결국 이치로 모델은 하나의 정설이 됐다. 레그킥을 포기하던가, 장타를 포기하던가.

물론 메이저리그에도 하이 레그킥을 쓰는 타자들이 있다. 마이크 트라웃, 호세 바티스타, 미겔 카브레라, 호세 알투베 등이다. 하지만 일본 타자들에게는 더 어려운 적응 과제였다. 볼 빠르기도 그렇지만, (일본투수들보다) 훨씬 더 간결한 투구 동작, 큰 키와 긴 팔을 이용해 훨씬 더 앞에서 이뤄지는 릴리스 포인트가 문제였다.

유일한 적응 사례가 이대호의 팀 메이트인 아오키 노리치카 정도다. 하지만 그 역시도 일본 시절처럼 강력한 스윙을 구사하지는 못한다. (통산 OPS : 일본 .856 - MLB .740)

적응한 강정호, 타고난 이대호

강정호의 진출 초반에도 늘 이 문제가 따라다녔다. 어쩔 수 없는 절충이 필요했다. 본인의 선택은 투 스트라이크 이후가 되면 레그킥을 하지 않는 방법이었다. 그걸로 헛스윙 삼진을 줄일 수 있었다. 그러면서 적응력을 키웠고, 시즌 중반 이후에는 투 스트라이크를 먹고도 레그킥을 자제하지 않았다.

아니, 자제하지 않은 정도가 아니다. 리그에서 가장 강력한 패스트볼 히터가 됐다. 통계 전문 사이트 Brooks Baseball에 따르면 2015시즌 패스트볼 상대 타율이 4할이 넘는다(.404). 특히 95마일(153 km )마일 이상에는 경이적인 반응을 보였다. 타율이 무려 .487이나 된다.

그러다 보니 힘 깨나 쓰는 각 팀의 마무리들은 딱 놀기 좋은 사냥감에 불과하다. 올해만 해도 컵스의 헥터 론돈, 애틀랜타의 아로디스 비스카이노가 홈런의 희생양이 됐다. 모두 96마일짜리 속구였다. 물론 마음껏 다리를 끌어 올린 레그킥으로 만들어낸 타구들이다.

이대호도 캠프 초반 주변에서 우려의 시선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적응기도 없이 곧바로 완벽한 모습을 보였다. mlb.tv 화면

강정호는 그나마 적응기가 있었다. 절충도 하고, 조정하는 과정이 있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대호의 경우는 불가사의할 정도다. 누구보다 큰 레그킥 동작을 하면서도 이렇다 할 헛점을 보이지 않는다.

시애틀 역사상 신인 첫 대타 끝내기 홈런으로 기록된 타구가 그랬다. 텍사스의 제이크 디크먼의 97마일짜리에 아무런 어려움 없이 반응했다(4월). 샌디에이고 브랜든 마우어의 공을 칠 때도 마찬가지다(5월). 97마일을 부드러운 킥 동작으로 따라붙어 최적화된 타격 포인트를 찾아냈다.

반면 발을 들지 않고 치는 박병호가 패스트볼에 고전하는 모습은 역설적이다. 그의 경우는 발 앞부분으로 땅을 톡 치는 하는 toe-tap(토탭)이라는 스타일로 타격한다.

김현수는 심하게 레그킥을 쓰는 타자가 아니다. 살짝 당기는 정도다. 이치로가 미국에 온 뒤에는 진자 타법을 버리고 이 정도로 움직임을 줄였다. mlb.tv 화면

킹캉의 미국행과 관련된 잘 알려진 일화가 있다. 2년 전이다. 메이저리그의 한 아시아 담당 스카우트가 목동을 찾았다. 강정호를 보기 위해서다.

그런데 그는 끝나기도 전에 주섬주섬 장비를 챙기더니 퇴근 모드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레그킥이 너무 크군”이라는 혼잣말을 남겼다. 더 볼 필요가 없다는 뜻이었다. 아마도 일본 출신들의 수많은 실패 사례를 겪었기 때문이리라.

궁금하다. 지금 그 스카우트는 어떤 표정일까. 100마일에 육박하는 번갯불에도 자신감 넘치는 하이킥으로 마음껏 자기 스윙을 돌리는 강정호와 이대호를 보면서.

백종인 / 칼럼니스트 前 일간스포츠 야구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