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광해의 역사속 한식]달단족의 쇠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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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광해 음식평론가 |
세조 2년(1456년) 3월, 집현전 직제학 양성지가 상소한다.
“백정은 화척 혹은 재인, 달단입니다. 그들이 이 땅에 산 지 이미 500년이 되었습니다. 이들은 이민족입니다. 자기들끼리 결혼하고 모여 살면서 소를 도살하거나 동냥질, 도둑질을 합니다.”(조선왕조실록)
‘달단’은 터키 북쪽, 중앙아시아의 타타르족과 뿌리가 같다. 역시 유목 민족으로 고기를 잘 만진다. 서양의 ‘타타르 스테이크’는 우리의 육회와 닮은 면이 있다.
고려, 조선 조정이 달단족을 천시한 것은 그들이 농경의 도구인 소를 도축하는 일로 생계를 삼았기 때문이다. 소의 도축은 식량 생산 감소로 연결된다. 농경국가로서는 소 도축을 인정하기 어렵다. 이 민족은 평소 버들고리(柳器)를 짜거나 밀도살로 살다가 형편이 어려워지면 소를 훔치거나 동냥질, 도둑질을 일삼았다.
세조 13년(1467년) 양성지(대사헌)의 거듭되는 상소다.
“예전에는 백정(白丁)과 화척(禾尺)이 소를 잡았으나, 지금은 양민들도 도축합니다. 예전에는 잔치 준비를 위해 소를 잡았으나, 지금은 팔기 위하여 소를 잡고, 예전에는 남의 소를 훔쳐서 잡았으나, 지금은 소를 사서 잡습니다.”(조선왕조실록)
이 민족의 소 밀도살이 조선 양민들에게까지 확대된다. 잔치 등 대소사에 쓰던 쇠고기가 일상적으로 사용된다. 쇠고기 판매도 버젓이 이루어진다. 양성지는 소 밀도살이 농경국가 조선에 치명적임을 잘 알고 있었다. 적극적으로 막는다.
양성지는 “달단족은 500년 전부터 한반도에 살았다”고 했다. 993년, 거란의 1차 고려 침략 시기다. 양성지는, 이때 이 민족이 거란군의 길 안내(향도)를 맡았다고 했다. 일부는 한반도에 머물렀을 것이다. 10세기 후반 이 민족이 고려에 왔지만 고려의 고기 만지는 솜씨는 여전히 수준 이하였다.
100여 년 뒤인 1123년(고려 인종 1년) 고려에 왔던 송나라 사신 서긍은 “고려의 고기 만지는 솜씨가 형편없다. 돼지를 불속에 던져서 그슬어 도축한다. 냄새가 심해서 먹을 수 없다”고 했다(선화봉사고려도경). 여전히 한반도의 고기 문화는 발전하지 못하고 있었다.
여말선초, 소 밀도살 및 고기 식용은 확대되고 사회적 문제가 된다. 중심에 달단족이 있다. ‘고려도경’에서 서툴다고 했던 한반도의 고기 문화는 이 민족 덕분에 급속히 발전한 것이다. 13, 14세기에는 몽골이 한반도를 침략, 지배한다. 달단족은 몽골의 한 부족이다. 몽골의 원나라 멸망 후 더 많은 수의 달단족이 한반도에 남는다.
태종 6년(1406년) 4월의 왕조실록에는 ‘달단 화척에게 소와 말 잡는 것을 금하도록 거듭 밝혔다’는 문구가 나타난다. 달단족의 소 밀도살이 상습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소 밀도살은 쉬 사라지지 않는다. 태종 11년(1411년)에는 신백정(新白丁)을 조사 색출해 도성으로부터 3사(舍·1사는 30리) 밖으로 내쫓는다. 세종 7년(1425년)에는 도성 서쪽 무악산 아래의 신백정을 도성 밖으로 내쫓는다. 세종 29년(1447년) 3월의 기록에는 ‘농사짓는 소를 달단 화척에게 팔기만 해도 재산 몰수, 수군 편입, 소를 훔쳐서 도살하면 장 100대에 얼굴에 문신을 새기고, 재산 몰수, 수군에 편입시킨다’는 내용도 나타난다.
한반도의 오래된 고기 문화로 ‘맥적(貊炙)’을 든다. 맥적은 ‘맥족(貊族)의 구운 고기’다. 맥족은 북방의 기마, 수렵 민족이다. 맥적이 어떤 것인지 뚜렷하게 전해지는 바는 없다.
‘달단 화척’은 조선후기 기록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그 대신 ‘백정’이 나타난다. 달단족은 서서히 우리 민족으로 편입되었다. 달단족은 한반도에 고기 문화를 전하거나 발전시킨 이들이다. ‘소 잡는 도적(宰牛賊·재우적)’은 ‘거골장(去骨匠)’으로 바뀐다. 한반도의 고기 문화는 맥적이 아니라 ‘밀도살을 일삼던 달단 화척’에서 찾아야 한다.
황광해 음식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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