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쏘다" 무하마드 알리, 74세로 사망

하세린 기자 2016. 6. 4.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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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보)'전설적 복서'이자 인종·종교 차별에 맞선 민권운동가..30여년간 파킨슨병으로 투병하다 숨져

[머니투데이 하세린 기자] [(상보)'전설적 복서'이자 인종·종교 차별에 맞선 민권운동가…30여년간 파킨슨병으로 투병하다 숨져]

1983년 1월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복싱의 전설' 무하마드 알리의 얼굴을 가격하는 시늉을 하고 있다. /사진=위키미디어커먼즈

'복싱의 전설' 무하마드 알리가 3일(현지시간) 74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이날 알리의 유족 대변인은 성명을 통해 "알리가 32년 동안 파킨슨병 투병 끝에 오늘 저녁 숨졌다"고 밝혔다. 알리는 며칠 전부터 호흡기 합병증으로 애리조나주 피닉스 소재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왔다. 장례는 고향인 켄터키주 루이스빌에서 치뤄질 예정이다.

그는 은퇴 3년 만인 1984년 파킨슨병을 진단받고 지난 30여년간 투병 생활을 해왔다. 1996년 투병 중 미국 애틀랜타 올림픽 개막식에서 떨리는 손으로 성화를 점화한 장면은 전 세계인들을 감동시켰다. 일부 의사들은 알리가 뇌의 신경계 퇴행성 질환인 파킨슨병을 얻은 것이 20년간 복서로 활동하면서 머리를 많이 맞은 것과 무관치 않다고 본다.

알리는 1960~1970년대 복싱을 주름잡았던 독보적인 아이콘이었다. 1964년 챔피언 소니 리스톤을 7회 TKO로 이겨 22세의 젊은 나이로 세계 헤비급 챔피언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알리는 권투 챔피언이기도 했지만 당대 가장 뛰어난 스포츠 엔터테이너이기도 했다. 그는 리스톤과의 대결 전에도 그를 끊임없이 자극했다.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쏘겠다"(Float like a butterfly, sting like a bee.)며 승리를 자신하기도 하기도 했다. 결국 리스톤에 승리한 뒤엔 "내가 가장 위대한 인간이다. 내가 세상의 왕이다"(I am the greatest! I'm the king of the world!)라고 외쳤다.

미국의 급진파 흑인 해방운동가 말콤엑스에게 영향을 받아 1963년 이슬람으로 개종한 알리는 승리 이후, 자신의 본명 카이우스 클레이가 '노예 이름'이라며 무하마드 알리로 개명하겠다고 선언했다.

2012년 필라델피아 자유의 메달을 수상하고 있는 모습. 자유의 메달은 미국의 건국 정신을 기리고자 미국의 옛 수도인 필라델피아 시당국이 1989년 제정한 상으로, 세계 인권 신장과 자유 수호에 힘써온 인물에게 수여한다. /사진=위키미디어커먼즈

그는 인종과 종교 차별에 맞선 활동가이기도 했다. 1967년 베트남전에 징집되자 "베트콩들은 내게 잘못한 게 없다"며 소집을 거부, 징역형을 선고 받았다. 이후 항소심에서 풀려났지만 권투 선수 자격을 박탈 당해 대학가에서 연설을 하며 열띤 논의를 이끌기도 했다.

이때 정작 미국 내에선 흑인들의 권리를 거부하면서 흑인들에게 외국에 나가서 싸우라는 정부의 위선을 꼬집었다. 그는 반전주의자와 흑인 민족주의자들로부터 큰 환호를 받았다.

사실 그의 이런 면모는 청소년기 때에도 그대로 나타났다. 12세 때 아마추어 복서 생활을 시작한 이후 18세이던 1960년 로마올림픽에서 라이트 헤비급 금메달을 획득했을 때다. 그는 금메달을 들고 금의환향하던 도중 우연히 들어갔던 백인 전용 카페에서 음료 서비스를 거부당했다. 그는 이 사건으로 큰 치욕을 느껴 금메달을 강에 버렸다.

곧 프로로 전향한 알리는 3차례에 걸쳐 헤비급 챔피언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통산 19차례 방어에 성공하면서 1960~1970년대 '전설의 복서'로 한시대를 풍미했다.

그러나 파키슨병도 그의 민권운동을 향한 열망을 끊을 수는 없었다. 알리는 지난해 12월에도 성명을 통해 공화당의 사실상 대선주자가 된 도널드 트럼프의 반무슬림 정책을 비판했다. 당시 그는 "우리 무슬림들은 이슬람을 이용해 자신의 개인적인 이득을 취하려는 사람들에 맞서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7남 2녀를 둔 알리는 1986년 재혼한 4번째 부인 로니와 함께 최근 피닉스 인근에서 조용한 나날을 보내왔다. 자녀 가운데 딸 레일라는 은퇴한 전직 프로복서이기도 하다.

하세린 기자 iwr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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