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는 기술, 체력은 괜찮지만 정신력이 약하다???'

스페인 전, 한국 대표팀 선발 라인업

한국 대표팀이 지난 1일, 스페인과의 평가전에서 1-6 으로 패했다. 슈틸리케 감독 부임 이후 잘 나가던 대표팀에 첫 고비가 찾아온 듯 하다. 이미 언론을 통해 대표팀에 대해 많은 이야기가 다뤄지고 있지만 전술적인 요소들은 앞으로 개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과 스페인이 당장 일주일 후 다시 경기를 치르면 이길수도 있지만 더 크게 질 수도 있다. 그게 축구다. 나는 스페인과의 평가전에 대해 큰 불만은 없다. 어제 경기의 잘잘못을 따지는 것보다 피파랭킹 54위의 대한민국이 다가올 평가전과 월드컵 최종예선을 통해 어떻게 발전할 것인지에 대한 관심이 더 크다. 하지만 경기에 대해 한 가지 절대적으로 아쉬운 점은 있다.

‘경기 중 발생하는 기술적인 실수가 결국 정신적인 실수로 이어졌다.’

메시나 호날두 모두 패스 미스를 하고 때로는 쉬운 찬스를 놓친다. 90분간 완벽한 선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실수가 발생 한 뒤의 대처 방법과 속도다. 패스 미스를 통해 실점의 빌미를 제공한 선수가 킬러 패스로 환상적인 도움을 기록하는 것처럼, 또는 자책골을 기록한 수비수가 세트피스 상황에서 골을 기록하는 것처럼 기술적인 실수는 그 경기 안에서 만회 할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의 기술적인 실수를 마음에 두고 반복되게 하여 그것이 결국 정신적인 실수로 이어져 무너진다면 그것은 선수와 팀 모두에게 치명적이다. 경기 중 발생한 기술적인 실수는 그 경기에서 끝내야 한다. 하지만 우리 선수들은 결국 스페인 전에서 그것을 끝내지 못했다.

# 뫼비우스의 띠

‘한국 축구는 기술은 뛰어나지만 체력이 부족하다.’

지난 2002년 FIFA 한일 월드컵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당시 국가대표팀 히딩크 감독이 한 말이다. 그동안 우리는 반대로 인식하고 있었기에 히딩크 감독의 발언은 파격을 넘어 혁명적이였다. 32년 만에 본선에 진출한 1986년 멕시코 월드컵부터 1998년 프랑스 월드컵까지 네 차례 월드컵에서 단 1승도 없이 비슷한 과정을 거치며 항상 “4년 후”를 기약했다.

'한국 축구는 기술은 뛰어나지만 체력이 부족하다.' - 히딩크의 한마디는 '혁명'이였다.

2002년 월드컵 이전, 세계무대에서 우리는 유럽과 남미 선수들보다 기술이 부족하기에 체력으로 승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현재 기준으로 생각하면 말도 안되는 방법이지만 과거 월드컵 대표 선수들은 체력 향상을 위해 산소가 부족한 고지대에서 수분 보충없이 마스크를 낀 채 뛰었고 공동묘지에서 새벽에 ‘담력 훈련’을 했으며 계곡 폭포 밑에서 ‘급류차기’를 하기도 했다. 마치 ‘특전사’ 같이 단련된 선수들은 월드컵을 앞두고 열심히 준비했던 ‘체력’ 하나만 믿고 컨디션 조절이나 상대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상태로 월드컵 첫 경기를 맞이했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대표팀은 벨기에와의 1차전이 열리기 5일 전 현지에 도착)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 출전 했던 한 축구인이 말했다.

‘월드컵 본선을 준비하면서 뛰는 훈련을 하도 많이 해서 우리가 상대보다 기술이 부족해도 체력으로 극복 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어. 그런데 킥오프 휘슬 딱 울리고 처음 몸싸움을 했는데 마치 쇳덩이에 부딪히는 느낌이였어. 우린 그동안 체력 하나 믿고 왔는데 막상 상대가 우리보다 힘도 좋고 빠른거야. 자신감은 바닥을 치고 어떻게 해 볼 방법이 없었어.’

1986년 멕시코 월드컵부터 1998년 프랑스 월드컵까지 네 차례 본선 무대의 흐름은 반복되었다. 우왕좌왕 하다가 끝난 1차전, 아쉽지만 역부족이였던 2차전, 16강은 좌절되었지만 끝까지 몸을 날렸던 3차전, 그리고 1승 없이 조별리그 탈락. 20년간 뫼비우스의 띠처럼 반복된 흐름을 깬 것이 바로 2002년 월드컵, 그리고 히딩크 감독의 한 마디 였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대표팀

# 세계의 벽

1980년 대에 태어난 선수들은 위에서 언급한 ‘뫼비우스 띠’ 같은 월드컵의 영향력을 받았다. 성인 대표팀은 우리들의 영웅이자 우상이였지만 4년 마다 그들이 힘 없이 무너지는 모습을 TV 를 통해 지켜봐야했다. 종종 연령별 국제대회나 교류전을 통해 유럽과 남미 팀을 상대로 경기하면 필요 이상으로 긴장되고 위축되는 경우가 많았다. 경기 시작 전부터 그런 느낌은 아니였다. 하지만 킥오프 후 몇 차례 경합을 통해 공을 빼앗기고, 돌파를 허용하다 보면 어느 새 평소보다 빠르게 자신감이 떨어졌다. 공을 빼앗은 것 같았는데 빼앗지 못하고, 분명 돌파한 것 같았는데 돌파하지 못했다. 움직임과 패턴도 국내 선수와 달랐다. 분명 수없이 해온 축구 경기였지만 생소하고 어색했다. ‘우리 세대’까지는 분명 세계의 벽이 존재했다.

하지만 1990년 대에 태어난 선수들은 다르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2002년 월드컵을 통해 많은 영향력을 받았고 이전 세대들 보다 나은 환경과 시스템을 통해 성장했다. 손흥민을 비롯하여 1992년 생이 주축이였던 지난 2009년 FIFA U-17 월드컵에서 한국 대표팀은 8강에 진출했다. 이 대회를 TV로 시청하면서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장면이 있다. 한국과 우루과이의 조별리그 1차전에서 경기 초반 이중권 (현.인천 유나이티드)에게 협력 수비가 들어왔다. 패스를 주고 가도 되는 상황이였는데 조금 무리하게 드리블을 시도하다가 반칙을 당했다. 넘어진 이중권의 얼굴을 카메라가 보여줬는데 이중권은 건방질 정도의 웃음을 보이며 일어섰다.

그 때 소름이 돋았다. U-17 월드컵이지만 분명 ‘세계무대’였고 조별리그 1차전 상대는 강호 우루과이였다. 하지만 당시 이중권을 비롯한 선수들은 개의치 않는 듯 했다. 그 경기에서 한국은 1차전 임에도 경기를 주도하며 3-1 로 승리했다. 그들은 대회 기간동안 에너지가 넘쳤고 기술적인 실수에 대범하게 대처했으며 상대가 누구든 ‘쫄지 않았다.’ 1990년대 태생 선수들에게 과거 선배들이 수십년간 느꼈던 ‘세계의 벽’은 이제 존재하지 않는 듯 했다.

안익수 감독이 이끄는 U19 대표팀은 내년 U20 월드컵을 준비한다. 이들에게 '세계의 벽'은?

# 2002년 월드컵 그 후

2002년 월드컵 이후 세 번의 월드컵이 지나갔다. 지난 브라질 월드컵을 제외한 두 차례 대회에서 한국은 승리를 경험했다. 무엇보다 가장 부담이 가는 조별리그 1차전에서 2승 1무를 기록 중이다. (2006년 vs 토고 2-1 승, 2010년 vs 그리그 2-0 승, 2014년 vs 러시아 1-1 무) 과거 한국은 본선 조별리그에서 타 팀의 제물이였지만 이제는 ‘1승’은 가능한 팀이 되었다. 하지만 16강에 진출하려면 1승으로는 부족하다. 2승 또는 2무나 적어도 1무가 더 필요하다. 월드컵은 단기 토너먼트 이기에 변수가 많지만 참가국은 국가의 모든 축구 분야별 역량을 총동원하여 대표팀을 지원한다. 선수와 스텝만으로 치르는 대회가 결코 아니다.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겠지만 성공한 월드컵의 기준을 16강에 둔다면 한국 대표팀의 롤모델은 멕시코가 될 수 있다. 멕시코는 1986년부터 지난 2014년 브라질 월드컵까지 6개 대회 연속 16강에 진출했다. 월드컵이 어디에서 개최되던, 28년간 어떤 세대가 대표팀을 구성하던, 조편성이 어떻게 되던 멕시코는 언제나 16강에 진출했다.

2015 북중미 골드컵 우승팀 멕시코는 최근 6차례 월드컵에서 연속 16강에 진출했다.

# 축구에서 발생하는 ‘플레이’의 네 가지 단계

‘판단’ - ‘행동’ - ‘결과’ - ‘책임’

경기 도중 발생하는 ‘플레이’에는 네 가지 단계가 있다. 우선 선수는 공을 받기 전 ‘판단’을 한다. 자신에게 오는 공을 드리블 할건지, 원터치로 패스를 할건지 등에 대한 판단이다. 판단을 하면 그 판단에 의한 ‘행동’을 한다. 그리고 행동을 하면 패스가 성공하거나 실패한것처럼 ‘결과’가 나온다. 성공하면 환호하거나 자신의 멋진 패스를 감상하면 되지만 실패한다면 ‘책임’을 져야 한다.

안타깝게도 한국 선수들은 플레이의 네 가지 단계 중 ‘판단’과 ‘책임’ 부분에서 약점을 드러낸다. 이는 유소년 시절 받은 교육과도 연관이 있다. 흔히 한국 선수들의 창의성이 부족하다고 하는데 이 역시 비슷한 맥락으로 볼 수 있다. 그간 우리네 시스템은 유소년 시기 선수들이 경기장 안에서 직접 ‘판단’ 할 수 있는 기회를 잘 주지 않았다. 지도자들이 급하다보니 유소년 선수들에게 직접 판단 할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하지 않았다. 선수들은 상황에 대해 직접 판단하지 않았기에 자연스레 결과가 좋지 않으면 책임지려 하지 않았다.

또한 공격 포지션을 소화하는 한국 선수들은 ‘수비하는 습관’이 부족하다. 공격하다가 공을 빼앗겼을 때 그 위치에서 곧바로 수비로 전환하는 모습, 공에 대한 집착과 집요함이 부족하다.

현대 축구에서 공격수의 수비 능력은 대단히 중요한데, 많은 선수들이 프로에 입단한 뒤 이 부분에서 어려움을 겪는다. 사실 이 또한 위에서 언급한 부분과 연관성이 있다.

스스로 판단하여 책임까지 질 줄 아는 선수는 기술적인 실수가 반복되더라도 결코 정신적으로 무너지지 않는다.


# 자신의 실수에도 가끔은 뻔뻔해라

축구에서 이를 악물고 버티는 것만이 정신력이 아니다. 상대의 강함이나 약함에 관여하지 않고 일정한 경기력을 유지하는 것, 5-0 으로 이길 때나 0-5 로 지고 있을 때 같은 리듬으로 경기에 임하는 것도 정신력이다. 모든 선수는 실수를 두려워한다. 하지만 실수는 발생 할 수 밖에 없다. 그렇기에 때로는 실수에 조금은 뻔뻔해질 필요도 있다.

현재 볼프스부르크에게 뛰고 있는 단테와 브라질 주벤투데에서 함께 했을 때의 이야기다. 연습경기에서 단테가 컨디션이 안 좋았는지 패스 미스를 남발했다. 참다 참다가 화가 나서 소리를 질렀더니 단테가 오히려 크게 화를 냈다.

‘너는 실수 안해? 너나 잘해!’

단테는 실수한만큼 더 열심히 뛰었고 때로는 거친 플레이도 선보이며 끝까지 책임지려 했다. 그리고 다음 경기에서 곧바로 컨디션을 회복했다. 한 경기에서 발생한 기술적인 실수를 그 경기에서 그대로 끝내버린 것이다.

단테는 강한 정신력을 갖춘 진정한 프로다.

# 속도 보다는 방향

평가전은 증명하는 자리가 아니다. 반드시 증명을 해야 한다면 월드컵이다. 그리고 월드컵은 4년 마다 개최된다. FIFA가 없어지지 않는 한 월드컵은 계속된다. 우리가 2002년에 경험한 것처럼 급하게 먹은 밥은 체하기 마련이다. 빠르고 급하게 성과를 내는 것이 꼭 좋은 것이 아님을 경험했다. 지난 브라질 월드컵에서 한국 대표팀의 객관적인 전력은 32개 팀 중 29위~30위 정도였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의 기준은 ‘16등’ 이였다. 피파 랭킹을 무조건 신뢰할수 없지만 최신 랭킹을 반영하면 한국은 54위, 스페인은 6위였다. 1-6 이라는 결과에 ‘대표팀 20년 만에 대패’, ‘무모한 슈틸리케’ 등 자극적인 제목의 뉴스도 많지만 조금은 주위를 둘러보면 어떨까?

앞서 한국 축구는 이제 월드컵 조별리그에서 1승 정도는 가능한 힘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제 다음 단계는 꾸준히 승점 1점을 추가할 힘을 갖는 것이다. 월드컵에서 첫 승을 거두기까지 48년이 걸렸고 첫 승 이후 성과는 비교적 빠르게 이어지고 있다.

2002년 히딩크 감독이 보여준 것처럼 성인 대표팀의 영향력은 그 밑에 연령별 대표팀, 나아가 자국 리그와 유소년 레벨까지 연결된다. 예를 들어 슈틸리케 감독이 우수한 피지컬에 헌신적인 스트라이커를 선호하면 리그 내 클럽들과 유소년 클럽까지 연쇄 반응이 생긴다. 현재 성인 대표팀의 주축은 90년대 태생 선수들이다. 이들은 과거 선배들과는 다른 환경에서 성장했고 청소년 시절 이미 세계의 벽을 허문 경험이 있다. 지금 대표 선수들이라면 경기 중 반복된 기술적인 실수에서 발생하는 부담감도 충분히 이겨낼 수 있는 능력이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현재의 대표팀 세대가 한국이 월드컵 본선에서 승점 1점을 추가할 힘을 만들어준다면 좋겠다. 한국 대표팀 선수들의 기술과 체력은 세계적으로 중간 정도는 된다. 이제는 심리적으로 강해지는 방법을 터득해야 한다. 기술적인 실수가 더 이상 정신적인 실수로 이어지면 안된다.

오랜 시간동안 한국 축구는 ‘투혼’으로 대변되는 ‘정신력’이 강하다고 생각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조별리그 벨기에와의 경기에서 이임생의 붕대 투혼은 국민들을 감동시켰다. 그 때 그 경기를 같이 보던 프랑스 친구가 놀리면서 했던 말이 기억난다.

“축구를 잘하면 저렇게 몸을 던지며 플레이 할 필요가 없잖아?”

시대는 변했다. 그 친구의 말과 달리 한국은 축구를 못하지 않는다. 축구를 못하지도 않는데위기 상황에서 몸을 던지는게 뭐가 부끄럽나?

14년 전 히딩크 감독의 한 마디가 한국 축구에 혁명을 일으킨 것 처럼, 누군가 영향력 큰 인물이 이렇게 말한다면 어떤 반응이 나올까?

‘한국 축구는 기술, 체력은 괜찮지만 정신력이 약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