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서울메트로, 3년 전에도 숨진 하청업체 직원 '탓'
메트로 측이 최근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정비하다 열차에 치여 숨진 김모(19)씨의 '안전 규정 위반' 책임론을 제기하고 나선 가운데 메트로의 '떠넘기기' 행태가 도를 넘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31일 법조계에 따르면 스크린도어 유지·관리업체인 은성PSD의 직원 심모(사망 당시 37세)씨의 어머니는 지난 2013년 성수역 사고로 아들을 잃은 후 메트로와 은성을 상대로 서울중앙지법에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유족은 법정에서 "망인이 선로 안에서 스크린도어 점검 작업을 하고 있었음에도 전동차를 통과시켜 사고가 발생했다"며 메트로 측의 과실을 주장했다. 은성 측과 용역 계약을 맺은 메트로가 안전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주장이었다.
사고가 났던 2013년 1월 19일 오후 1시 40분쯤 심씨는 성수역 역무원에게 스크린도어 일일 점검을 하러 나왔다고 통보한 후 동료와 함께 스크린도어를 점검하고 있었다.
특정 지점에서 이상이 발견되자 심씨는 '컨트롤 유닛'이라 불리는 일종의 제어장치를 끈 후 동료에게 스크린도어가 닫히지 않도록 붙잡게 하고는 선로 안에서 센서를 점검했다.
하지만 이때 전동차가 심씨가 작업 중이던 성수역을 향해 달려왔다. 역무원에게 점검 계획을 알리고 왔던 터라 전동차가 멈춰설 것으로 생각했던 심씨는 미처 피하지 못하고 열차에 치여 그 자리에서 숨지고 말았다.
이후 제기된 민사소송에서 메트로 측은 '심씨가 심야시간에 점검해야 하는 규정을 어기고 주간에 작업을 했다'는 취지의 주장을 펼치면서 심씨에게 사고 책임을 떠넘긴 것으로 나타났다.
메트로는 심씨의 과실을 입증하기 위해 "열차운행, 승객안전 등에 직접 영향을 줄 수 있는 점검 및 보수사항은 영업종료 후 시행해야 한다"고 규정한 용역계약 관련 서류를 재판부에 냈다.
메트로는 또 "긴급을 요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열차운행에 지장을 주지 않는 범위에서 종합관제소에 통보 후 조치를 취하고, 모든 조치는 반드시 열차가 운행하지 않는 심야시간에 실시해야 한다"는 내용의 공문을 은성 측에 여러 차례 전달했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이러한 증거자료 등을 토대로 "서울메트로에 주의 의무 위반이 있었다고 보기에 부족하다"며 메트로의 주장을 받아들이고 유족의 청구는 기각했다.
재판부는 "모든 점검 및 고장조치는 반드시 열차가 운행하지 않는 심야시간에 실시하도록 주의를 촉구한 사실이 인정된다"며 "심씨는 주간에 작업을 해야 할 만큼 긴급한 상황이 아니었음에도 작업을 시도했다"고 판단했다.
이어 "심씨는 스크린도어 개방과 선로 내부작업에 관해 종합관제소에 전혀 통보를 하지 않았고, 컨트롤 유닛을 차단하는 바람에 역무실에서 경보가 울리지 않아 역무원들이 스크린도어 개방 사실을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다만, 재판부는 은성 측에 대해서는 일부 책임을 인정해 "심씨에게 3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유족은 은성 측의 책임 범위를 30%로 제한한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고, 손해배상 금액을 1500만원 늘리는 선에서 강제조정안에 합의했다.
이 사건을 맡은 법률사무소의 관계자는 "당시 유족들이 고용노동부에 고소도 했는데 메트로의 책임을 묻기가 어려웠던 것으로 안다"며 "1심 판결 이후 메트로에 대해서는 항소를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처럼 법적 책임을 피해간 메트로가 이번 구의역 사망 사고를 수습하는 과정에서도 용역업체 직원에게 책임을 떠넘기려는 조짐을 보이자 '책임 회피→관리 부실→사고 발생'의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와 함께 메트로가 실제로는 은성 측과 '심야 점검'이 아니라 '수시 점검' 계약을 맺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이정훈 서울시의원은 "은성 측이 스크린도어 고장시 1시간 내에 신고내용을 처리해야 한다는 내용이 협약서에 나온다"며 "일반 승객들도 수시로 스크린도어에 끼이는 사고를 당하는 만큼 신속한 응급 조치가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관제센터의 승인 없이는 선로에 들어갈 수 없는 만큼 심씨가 신고 의무를 다하고 선로에 들어갔을 것"이라며 "안전 규정을 어긴 메트로가 외려 신고 의무를 다한 심씨에게 책임을 돌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CBS노컷뉴스 김효은 기자] africa@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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