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도어에 사라진 19살 '전동차 기관사의 꿈'
(서울=뉴스1) 김혜지 기자 = 30일 오전 서울 광진구에 위치한 건국대병원 장례식장은 검은 상복을 입은 사람들로 붐볐다. 하지만 최근 혼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가 숨진 수리용역업체 직원 김모씨(19)의 빈소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지난 28일 서울 광진구 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는 수리용역업체 직원 김씨가 전동차에 치여 숨지는 사고가 발생해 서울메트로의 관리·감독 부재가 낳은 인재(人災)라는 지적이 이어졌다. 이후 김씨의 시신은 서울 건국대병원에 안치됐다.
이날 김씨의 유족은 파도처럼 밀려왔다 사라지는 사람들 사이에서 안치소에 있는 김씨의 시신을 조용히 지켰다.
김씨의 아버지(54)는 아들의 죽음이 "얼떨떨하고 믿기지 않는다"고 털어놨다. 그는 지난해 10월 취직한 아들이 안전하지 못한 상황에서 격무에 시달렸다고 원통해 했다.
그는 "직원 4명이 지하철 1~4호선의 49개역을 담당했다고 한다. 인원은 적은데 고장은 계속 나니까 2인1조 체제가 아닌 1인 체제로 위태롭게 일한 것 같다"며 "2인1조로 일하라는 매뉴얼이 있지만 하청업체로서 사실상 지킬 수 없는 '규정 아닌 규정'인 셈"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럼에도 2인1조 규정을 지키지 않은 아들에 과실이 있다는 식의 얘기가 나오고 있다"며 억울해 했다.
유족에 따르면 깔끔한 성격이었던 김씨는 입사 이후 가방을 방 한 구석에 던져두고 씻지 않은 채 잠에 곯아떨어지는 일상을 반복했다. 스크린도어는 고장이 자주 났기 때문에 혼자 많은 지하철 역을 돌아다녀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씨는 근로 조건에도 불구하고 은성PSD가 서울메트로의 자회사로 전환되면 공기업 직원이 될 수 있다는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고 유족들은 전했다.
김씨의 어머니는 "아들이 '엄마, 나 공무원 되면 고등학교 담임선생님이 나 취업하게 도와주셨으니까 선물을 드릴 거야'라고 말하더라"며 "그때 정말 기특한 생각이라고 칭찬했는데, 얼마 후 협력업체 직원 전원의 고용 전환이 불투명해졌고 아들은 항의 집회에 나갔다"고 씁쓸히 회상했다.
유족들은 김씨의 꿈이 전동차 기관사였다고 밝혔다. 또 김씨의 취직을 말리지 못한 후회를 감추지 못했다. 특히 김씨가 사고를 당한 다음 날이 김씨의 생일날이었기 때문에 슬픔은 더욱 깊어 보였다.
김씨의 어머니는 "아들은 기관사가 꿈이었다. 회사에 취직하고 자격증을 따면 나중에 기관사가 될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했다"며 "곧 자격증 공부를 할 거라며 들떠 있었는데…그때 말렸어야 했다"고 눈물을 글썽였다.
그는 "스크린도어 사고가 많이 나서 취업을 말려야 하나 생각도 많이 했지만 언론에 여러 번 나왔고 또 2인1조라니까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게 너무 후회된다"고 구슬 같은 눈물을 흘렸다.
김씨의 이모도 마찬가지로 슬픔을 털어놨다. 그는 "처음에는 애가 힘들어 하길래, 사회초년생들이 다들 그렇듯 힘든가 보다 싶어 '처음엔 다 그러니까 잘 다녀보라'고 격려했다"며 "하지만 안전장치 없이 홀로 일하는 등 위험한 상황을 설명했더라면 누가 다니라고 했겠냐"고 울음을 터뜨렸다.
유족들은 김씨를 듬직하고 기특한 아들로 기억했다. 김씨의 어머니는 "사고 날 월급 받았다면서 동생 과자 챙겨줄 정도로 든든한 아들이었다. 동생도 형 일하는 모습을 보고 '든든하다'고 하더라"며 "아무 말 없이 가족을 챙기는 성격이었고 힘든 일이 있어도 속으로 삭이는 성격이었다. 장남이라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김씨의 어머니는 같은 회사에 다니는 동창 친구에게 그만 둘 것을 권유하고 싶다고도 전했다. 그는 "내가 보니까 순서가 문제일 뿐 언제든지 다음에 죽을 사람이 나올 수 있는 상황"이라면서 "희생자가 언제 나올지 모른다"고 강조했다.
한편 사건 수사를 맡은 서울 광진경찰서는 서울메트로 안전관리책임자를 상대로 스크린도어 수리 업체에 대한 관리·감독을 제대로 했는지를 조사한 뒤 과실이 드러나면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flyhighro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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