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2.knowledge] 슈퍼에이전트 호르헤 멘데스는 누구인가?

편집팀 2016. 5. 27.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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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포투] 조제 모리뉴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감독이 되었다. 협상 테이블에 낯익은 얼굴이 앉았다. 현존 축구계 최고의 거상 호르헤 멘데스(50, 포르투갈)다.

그의 고객 명단은 눈부시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를 비롯해 하메스 로드리게스, 앙헬 디마리아, 디에고 코스타, 엘리아킴 망갈라, 팔카우, 티아구 실바, 페페 등이다. 모리뉴도 그의 고객이다. 슈퍼에이전트인 탓에 돈만 아는 속물일까? 아니다. 지난해 호날두는 결혼하는 멘데스에게 그리스의 섬을 선물했다. 슈퍼스타들이 그를 ‘진정한 친구’로 여긴다.

월드 No.1 풋볼매거진 <포포투>가 슈퍼에이전트 호르헤 멘데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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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초여름. 18세 포르투갈 미드필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계약서에 최종 서명하는 현장이었다. 곁에 있던 호르헤 멘데스는 “계약서에 서명하고 나서 샴페인 한잔 하자고”라고 말했다. 계약은 예정대로 마무리되었다. 멘데스는 기뻐할 틈도 없이 핸드폰을 들고 다른 계약을 이야기하며 어디론가 사라졌다. 호날두는 호텔에서 기다렸지만, 멘데스는 결국 돌아오지 않았다. 호날두는 그 이야기를 재미있는 일화로 여기며 “멘데스는 정말 좋은 사람이다. 진정한 친구이자 존경할 만한 인물”이라고 말한다.

멘데스는 전화 통화와 관련한 일화가 많다. 조제 모리뉴가 레알 마드리드에 있던 시절, 멘데스는 호날두, 페페, 히카르도 카르발류, 앙헬 디 마리아, 파비우 코엔트랑 등을 거느리고 있었다. 당시 멘데스는 플로렌티노 페레스 회장에게 하루 평균 25통의 전화 연락을 했다고 한다. 페레스 회장은 “모두 다른 건들에 관한 통화였다”라고 웃으며 말했다. 첼시의 피터 케니언 전 단장은 “새벽 2시에 전화를 걸더니 새벽 3시에 다시 전화를 걸겠다고 말하곤 끊은 적이 있다”라고 말한다. 

멘데스는 평소 핸드폰 4대를 갖고 다닌다. 호날두는 “멘데스는 하루 중 20시간을 4대 중 1대를 사용하면서 보낸다”라고 한다. 멘데스가 세계 최고 에이전트사인 <제스티후테>를 경영하는 방식이다. 지금 그는 무려 7억 파운드가 넘는 몸값에 달하는 고객들을 관리한다. 

1966년 1월 리스본에서 태어난 멘데스는 부친이 일하던 석유회사의 사원용 숙소에서 자랐다. 모친은 집에 머무르며 밀짚으로 모자나 바구니 따위를 만들었다. 주말이 되면 멘데스는 해변으로 나가 모친이 만든 물건을 팔았다. 멘데스의 친구들은 하루에 평균 500에스쿠도(약 5000원) 정도를 벌었다. 멘데스는 그보다 10배를 벌었다. 당시 그는 ‘카바나스’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2012년 그의 다큐멘터리 <슈퍼에이전트>에서 고향을 방문한 멘데스는 마을 주민들에게 자신을 ‘카바나스’라고 소개해야만 했다. 

20세가 되던 해, 멘데스는 리스본에서 포르투갈 북부의 비아나두카스텔로로 이사했다. 그곳에서 멘데스는 한 썰렁한 쇼핑몰에서 자리를 얻어 ‘사무이 비디오’라는 비디오 가게를 열었다. 동시에 그는 하위 리그 클럽인 비아넨세의 선수로도 등록되어 있었다. “정말 유령이 나올 것처럼 텅 빈 쇼핑몰이었다. 그래도 넓은 주차장이 언제나 비어 있어 비디오를 빌리러 오기엔 좋은 환경이었다. 클럽으로부터 받는 돈보다 비디오 가게로 버는 돈이 훨씬 많았다. 선수가 아닌 다른 길을 모색하는 하나의 전환점이 되었다.”

그는 사업의 규모를 넓혔고, 업종도 바꾸었다. 멘데스는 스페인 국경 인접 지역에서 나이트클럽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그는 포르투, 브라가, 비토리아기마랑스 등에서 뛰는 프로축구선수들을 만나게 된다. 운명의 인연이라고 할 수 있는 누누 에스피리투 산투(전 발렌시아 감독)와 만난 곳도 자신의 나이트클럽이었다. 

당시 누누는 비토리아기마랑스의 골키퍼였다. 언젠가 FC포르투 혹은 스페인 라리가 진출을 꿈꾸고 있었다. 멘데스는 자신이 직접 누누를 데포르티보 라코루냐에 이적시키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는 직접 차를 몰아 무작정 300여km를 달려 데포르티보 라코루냐로 갔고, 그곳에서 렌도이로 회장을 만나기 위해 며칠을 기다렸다. 결국 렌도이로 회장은 그를 만나줬고, 누누는 라리가 진출의 꿈을 이뤘다. 멘데스는 에이전트 수수료를 한 푼도 받지 않았고, 둘은 평생 친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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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후반 기회가 열렸다. 당시 포르투갈 이적시장을 지배하던 에이전트인 조제 베이가와 포르투의 핀투 다 코스타 회장의 관계에 틈이 벌어졌다. 멘데스의 선수들 가운데 코스티냐가 모나코에서 포르투로 이적했고, 조르제 안드라데와 데쿠가 뒤를 이었다. 당시 베이가는 루이스 피구, 누누 고메스, 페르난도 쿠투 등 스타플레이어들을 보유하고 있었다.

2002년 여름 멘데스는 우고 비아나를 1200만 유로 이적료로 뉴캐슬에 팔았다. 그해 9월 한 여성이 17세 아들의 에이전트 계약을 위해 멘데스의 사무실을 방문했다. 그 아들은 베이가와 계약이 끝난 직후였다. 그의 이름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였고, 멘데스와 계약한 몇 달 뒤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했다.

거물 에이전트 피니 자하비가 멘데스를 첼시에 소개했고, 호날두를 영입했던 맨유의 CEO 피터 케니언이 때마침 첼시로 자리를 옮겼다. 2004년 멘데스는 조제 모리뉴, 히카르두 카르발류, 파울루 페헤이라를 스탬포드 브릿지로 이적시켰다. 조제 보싱와와 데쿠도 뒤를 따랐다.

멘데스의 방식은 분명하다. 한 클럽과 계약할 때, 그는 선수 한 명이 아니라 여러 명을 한꺼번에 처리한다. 주축 대부분을 제공하기도 한다. 2006년 멘데스와 손잡은 브라가가 대표적이다. 브라가의 안토니오 살바도르 회장은 멘데스와 거래를 튼 지 5년 만에 리그 2위에 올랐고, UEFA유로파리그 결승전에 진출했으며 2013us 포르투갈 리그컵을 들어 올렸다. 

언제나 성공적이진 않았다. 베식타스는 2010-11시즌에 걸쳐 1년 안에 멘데스의 선수 6명을 샀다. 히카르두 콰레스마, 시망 사브로자, 우고 알메이다, 훌리오 알베스, 시드네이, 베베였는데, 이들의 출전 수를 모두 합쳐도 20경기에 불과했다. 데미뢰렌 회장이 터키축구협회 회장으로 자리를 옮긴 뒤에 후임인 피크레트 오르만 회장은 손해를 보면서 멘데스의 선수들을 시장에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일각에서는 불만도 나왔다. 슈퍼에이전트 중 한 명인 미노 라이올라(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는 멘데스가 너무 이익에 따라서 움직이며 선수를 최우선적으로 고려하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포르투갈 출신 에이전트 3인은 제각각 멘데스를 고소하기도 했다. 모리뉴가 레알 마드리드 감독으로 있던 시절 클럽 내에서 멘데스가 특권을 누린다는 지적도 있었다. 다른 에이전트가 훈련장을 방문하기 위해서는 3일 전에 신청해야 했다. 멘데스는 자유롭게 모리뉴 감독의 집무실을 드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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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멘데스를 지지하는 목소리도 크다. 고문 변호사인 카를로스 오소리오 데 카스트로는 “멘데스는 준법에 관해서 강박적일 정도로 확실하다. 고객으로 둔 선수들을 도울 뿐 아니라 클럽을 상대로 최선을 다해 고객을 보호하려 한다”라고 주자한다. 플로렌티노 페레스 회장은 “그는 레알 외에도 다른 라릭 클럽들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 멘데스가 이 분야에서 ‘넘버원’인 이유가 따로 있지 않았다”라고 말한다.

멘데스는 레알의 사업 파트너일 뿐만 아니라 바르셀로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맨유, 첼시 등과 모두 가까다. 터키의 페네르바체와 갈라타사라이, 포르투갈의 FC포르투와 벤피카도 마찬가지다. 멘데스 측에 따르면, 2000년 이후 포르투갈 빅3 클럽의 총 거래량의 68%가 멘데스를 통해서 이루어졌다고 한다.

선수 이적뿐 아니라 클럽과 새 구단주를 연결하기도 한다. 발렌시아의 피터 림, 모나코의 드미트리 리볼로프레프가 좋은 예다. 이런 식으로 새 구단주가 부임하고 나면 멘데스 특유의 ‘일괄 영입’ 옵션이 뒤따르곤 한다.

디에고 코스타가 브라질의 한 변두리 마을에서부터 첼시까지 이르는 여정을 살펴보면, 멘데스의 사업 방식과 영향력을 엿볼 수 있다. 10대 시절 지역 클럽인 바르셀로나 스포르 치부카펠라에서 장기간 출전 정지 징계를 받고 있을 때, 멘데스의 아래서 일한다는 사람이 찾아왔다. 

코스타는 “그 사람이 찾아온 날, 갑자기 징계가 풀려 출전할 수 있게 되었다. 경기가 끝나자 그 사람이 내게 스포르팅 브라가 이적을 제안했다”라고 말한다. 브라가 이적 6개월 후, 아틀레티코는 150만 유로를 지급해 코스타의 소유권 절반을 샀다. 2014년 아틀레티코가 코스타를 4000만 유로를 받고 첼시에 팔았을 때 나머지 절반을 보유한 누군가는 기쁨의 미소를 지었을 것이다.

호날두는 멘데스를 다룬 다큐멘터리에서 이렇게 말한다. “멘데스는 지금 가진 모든 것들을 누릴 만하다. 그보다 더 열심히 일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지금 하는 일들, 그가 거래하는 클럽들, 관리하는 선수들, 그가 성사한 계약 내용을 보면 멘데스가 업계 최고라는 사실을 의심할 여지가 없다.”

사진=포포투, Gettyimages/이매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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