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투기 읽어 주는 남자] 권아솔 새 별명은 '권두부'..이둘희는 의문의 1승

조지 루프는 앞차기를 하다가 이윤준의 팔꿈치에 정강이가 찍히고 뼈가 부러졌다. ⓒ로드FC 제공 

[스포티비뉴스=이교덕 기자] "이런 날도 있구나 싶습니다."

정문홍 로드FC 대표는 14일 장충체육관에서 로드FC 31을 마치고 진행한 기자회견에서 대회를 총평해 달라는 요청에 이렇게 말하며 허탈한 듯 웃었다.

메인 카드 6경기 가운데 1라운드에 끝난 게 4경기였다. 그런데 대체로 개운치가 않았다. 뒷맛이 찜찜하게 남았다.

메인이벤트에서 조지 루프는 앞차기를 하다가 이윤준의 팔꿈치에 오른발 정강이를 찍혀 뼈가 부러졌다. 키 184cm인 그는 원거리에서 싸우려고 했다. 이윤준의 접근을 막기 위해 준비한 이날의 중요 무기가 바로 앞차기였다. 이게 오히려 독이 됐으니 사람 앞일 모르는 법이다. 예상치 못한 사고로 1분 15초 만에 경기 끝. 페이스북에서 독기 어린 설전을 펼치고 13일 계체에서 몸싸움을 벌였던 두 선수의 이제까지 신경전을 생각하면 경기 내용은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아쉽기만 했다.

정두제는 브루노 미란다의 길로틴 초크에 걸려 1라운드 1분 1초 만에 승리를 내줬다. 데뷔전에 나선 홍윤하는 탐색전 없이 베테랑 후지노 에미에게 덤비다가 중심을 잃었다. 곧바로 백 포지션을 내주고 리어 네이키드 초크에 목이 졸려 1라운드 47초에 기절했다. 이날 가장 길었던 경기가 최무송과 알라텡헬리의 밴텀급 매치였다. 2라운드 판정까지 갔으니 경기 시간 10분이었다. 메인 카드 6경기를 다 합한 시간은 겨우 20분 49초. 로드FC 역사상 메인 카드 경기 시간 총합이 가장 짧은 대회로 남게 됐다.

권아솔은 구와바라 기요시에게 18초 만에 TKO패한 뒤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로드FC 제공

권아솔의 경기가 가장 허무했다. "최홍만이나 아오르꺼러와 붙겠다"면서 헤비급 도전 의사를 나타내고 있던 로드FC 라이트급 챔피언 권아솔은 무릎을 다친 이둘희 대신 출전한 일본의 구와바라 기요시에게 18초 만에 KO패했다. 힘 차이가 났다. 한차례 엉켰는데 권아솔이 뒤로 '퉁' 하고 밀렸다. 그다음 구와바라의 오른손 카운터 훅을 왼쪽 옆머리에 맞고 쓰러졌다. 구와바라의 파운딩 연타에 심판이 경기 중단을 선언했다.

권아솔은 상위 체급 도전의 명분을 잃었다. 해 놓은 말이 있으니 악플 역풍에 시달릴 것이 분명했다. 대회 4일 전 급하게 투입된 선수에게 져 자존심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어쩌면 권아솔의 선수 생활에 또 다른 위기가 찾아온 것일 수 있었다. 여기서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권아솔은 이 패배를 개그로 승화시키는 특별한 능력을 자랑했다. 계속 후두부에 맞은 파운딩 탓을 하니 관중석이 웃음바다가 됐다. 경기 후 김대환 해설 위원과 인터뷰에서 권아솔은 '후두부'라는 단어를 네 번이나 꺼냈다.

권아솔 "후두부를 맞아서 정신이 없었다. 어떻게 된 상황인지 모르겠다. 후두부를 맞아서…"

김대환 해설 "타격전에서 맞은 펀치에 대해서는?"

권아솔 "그 전에 맞은 펀치는 기억이 안 난다. 후두부에 펀치를 맞은 것만 안다."

김대환 해설 "앞으로의 계획은?"

권아솔 "지금 후두부에 맞은 펀치로 정신이 없어서…. (관중들이 야유하자) 더 '우우우" 해 달라."

김대환 해설 "더 질문을 해도 후두부 충격 때문에 제대로 답을 하지 못할 것 같다."

권아솔은 구와바라 기요시의 펀치에 쓰러졌다. ⓒ로드FC 제공

그는 기자회견에서도 당당했다. 뻔뻔하다는 표현이 더 어울렸다. "기분이 좋다. 경기 내용이 생각 안 나기 때문이다. 기분은 매우 좋은 상태다. (최홍만을 향한 도발에 대해) 어차피 생각이 안 나기 때문에 다시 시작하겠다. 2013년 나카무라 고지에게 졌을 때와 비슷하다. 최홍만은 도망자다. 그를 계속 노리겠다. 최홍만은 다리 하나 뗄 때 3초 걸린다. 뛰어도 2초다. 난 1초에 세 발은 움직인다. 그는 날 한 대도 때릴 수 없다."

권아솔은 '권선정'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권아솔 선에서 정리된다'는 말을 줄인 것이다. 우리나라 격투기 최대 커뮤니티 '이종격투기 카페'에서 어떤 선수를 평가할 때 쓴 말이 널리 퍼졌다. 권아솔보다 실력이 위인지 아래인지가 기준이 된 적이 있었다. 이날 패배로 그에게 또 다른 별명이 생겼다. 권아솔의 '권'과 후두부의 '두부'를 합한 '권두부'다. 이미 여러 댓글과 SNS에서 권아솔을 '권두부'라고 부르고 있다. 어떤 팬은 페이스북에 두부 사진을 올려 권아솔을 비꼬았다.

정문홍 대표는 냉정한 비판으로 실망스러웠던 권아솔의 패배를 짚고 넘어갔다. "입심에 비해 실력이 별로다. (최홍만과 대결을 추진하겠는지 묻는 질문에) 이렇게 실력이 없어서야 뭐가 되겠나"라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영원한 라이벌 '크레이지 광' 이광희는 페이스북에 "바보"라는 짧은 글을 남겼다. 부상을 핑계로 도망갔다는 권아솔의 비난을 정면으로 맞은 이둘희는 축제 분위기. 페이스북에서 "페이스북 스타님 수고하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저에게 연락이 폭주합니다. 왜 제가 축하를 받고 있는지"라더니 "오늘 저희 카페에서 남은 시간 모든 음료를 무료로 증정합니다. 광주 동구 황금동 84번지 커피 볶는 집입니다"고 말했다. 기쁨도 나누고 자신이 운영하는 가게도 홍보하는 일석이조 코멘트. 이둘희의 '의문의 1승'이랄까. 실제로 이둘희의 카페에 여러 사람들이 찾아와 권아솔의 패배를 축하했다고 한다.

다른 경기들이 흐지부지 끝나는 바람에 가장 득을 본 사람은 8년 7개월 만에 국내 무대에 복귀한 딥(DEEP) 미들급 챔피언 최영이었다. 경기장 밖에선 이둘희, 경기장 안에선 최영이 이날 최대 수혜자였다. 윤동식은 클린치에서 상대를 넘어뜨리고 톱 포지션으로 올라갈 때 위력이 발휘되는 그래플러다. 스피릿MC에서 '반쪽 그래플러'였던 최영은 타격 실력을 키워 이날 윤동식이 건 클린치 싸움에서 넘어가지 않았고 펀치와 킥으로 주도권을 잡아 갔다. 왼손 잽이 날카로웠고 타격 콤비네이션의 마지막인 로킥에는 힘이 실려 있었다. 결국 2라운드 2분 28초 만에 오른손 펀치에 이은 파운딩 연타로 TKO승했다.

최영은 윤동식에게 TKO승하고 맹수처럼 포효했다. 백스테이지에서 "제압했다"고 소리쳤다. ⓒ로드FC 제공

앞의 세 경기가 이미 1시간 만에 끝난 상황. 편성돼 있는 방송 시간을 채워야 했다. 최영에게 많은 시간이 주어졌다. 마음껏 세리머니를 했다. 인터뷰도 꽤 길었다. "돌아왔습니다"라고 포효한 그는 관중석에 자리 잡고 있던 로드FC 미들급 챔피언 차정환을 향해 "차정환, 나 오늘 이겼어. 다음에 또 이기고 당신 벨트 가져가겠다. 각오하라"고 했다.

독특한 개그 감각을 가진 그는 관중들에게 웃음도 선사했다. "차정환이 나보다 1살 위라고 알고 있으니 형이라고 해야 겠지"라고 할 때 옆에서 김대환 해설 위원이 최영보다 차정환이 어리다고 귀띔하자 무안한 듯 하하하 웃었다. "베테랑이라고 불리는 나이가 됐지만 난 아직 할 수 있다. 딥 챔피언에 이어 로드FC 챔피언이 되겠다"고 했다. 백스테이지에선 "제압했다"고 소리쳤다고 한다.

로드FC는 최영과 윤동식의 경기가 미들급 타이틀 도전권이 걸린 4강 토너먼트의 첫 경기였다고 밝혔다. 또 다른 준결승전은 오는 7월 2일 중국 장쑤에서 열리는 로드FC 32에서 치러질 예정. 최영은 기자회견에서 "바로 타이틀전으로 갈 줄 알았다. 이번이 토너먼트 준결승전이었다는 건 오늘 처음 알았다. 그러나 대회사가 원한다면 따르겠다"고 말했다. 후쿠다 리키와 싸울 수 있겠느냐는 질문엔 "문제없다"고 짧고 굵게 답했다.

기자회견에서 정문홍 대표는 "조지 루프가 다 나으면 이윤준과 재대결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루프의 회복 기간이 길어질 경우, 이윤준은 "적당한 도전자가 있다면 밴텀급 타이틀전을 치르겠다"고 말했다. 현재 로드FC 밴텀급은 이윤준과 김수철의 투톱 체제. 그러나 두 선수는 정문홍 대표의 양아들 같은 존재들이라 둘의 대결이 바로 이루어질지는 미지수다. 김수철을 제외하면, 최근 사토 쇼코와 문제훈을 잡은 김민우가 타이틀 도전권에 가장 가까이에 있다. 5승 무패의 조영승도 주목해야 할 선수 가운데 하나.

정두제를 길로틴 초크로 꺾은 브루노 미란다는 라이트급 타이틀을 원한다고 말했다. ⓒ로드FC 제공

2014년 김원기와 이광희를 차례로 꺾었다가 2년 만에 로드FC로 돌아온 브루노 미란다는 기자화견에서 "권아솔은 강한 챔피언이다. 하지만 난 벨트를 원한다. 기회가 주어지면 싸우고 싶다"고 어필했다. 권아솔은 "미란다는 좋은 선수"라고 짧게 평가했다.

라이트급 타이틀 전선에 본격적으로 진입했다고 보기는 힘들지만, 이날 언더 카드 영건스 28에서 이긴 김경표와 기원빈은 지켜볼 만한 재목이다. 될성부른 떡잎이다. 김경표는 로드FC 미들급 챔피언 차정환과 페더급 챔피언 최무겸을 배출한 'MMA 스토리'에서 보증하는 강자다. 이날 중국의 란하오를 손쉽게 리어 네이키드 초크로 꺾어 4연승을 달렸다. 기원빈은 저력의 팀 파시에서 내 놓은 차세대 주자. 긴 팔다리에서 나오는 시원시원한 타격이 일품. 게다가 피니시를 노리고 들어가는 공격적인 타격가라 경기도 흥미진진하다. 임병하에게 카운터펀치를 맞고 휘청거리기도 했지만 집중력을 잃지 않았다. 클린치로 붙어 한숨 돌리고 적중률 높은 펀치로 TKO승했다. 위기 관리 능력을 증명했다. 전적은 4승 1패가 됐다.

이광희, 김승연이 돌아오고 브루노 미란다가 가세한 올해 라이트급은 다시 뜨거워질 전망. 정문홍 대표는 우승 상금 10억이 걸린 라이트급 토너먼트를 "곧 열겠다"고 예고했다. 

이날 가장 화끈했던 명승부는 영건스에서 열린 기원빈과 민병하의 라이트급 경기. 가장 인상적인 경기력을 보여 준 선수는 최영을 꼽고 싶다. 이윤준은 힘 안 들이고 로드FC 9연승으로 신기록을 세웠다. 다시 말하지만, 이날 대회에 나오지도 않은 이둘희는 의문의 1승을 따내고 미소를 지었다.

로드FC 31 결과

[페더급] 이윤준 VS 조지 루프
이윤준 1라운드 1분 15초 조지 루프 정강이 부상으로 TKO승

[무제한급] 권아솔 VS 구와바라 기요시
구와바라 기요시 1라운드 18초 펀치 KO승

[미들급] 윤동식 VS 최영
최영 2라운드 2분 28초 펀치 KO승

[69kg 계약 체중] 정두제 VS 브루노 미란다
브루노 미란다 1라운드 1분 1초 길로틴초크 서브미션승

[스트로급] 후지노 에미 VS 홍윤하
후지노 에미 1라운드 47초 리어네이키드초크 서브미션승

[밴텀급] 최무송 VS 알라텡헬리
알라텡헬리 2라운드 종료 3-0 판정승

-영건즈 28

[라이트급] 김경표 VS 란하오
김경표 1라운드 2분 리어네이키드초크 서브미션승

[계약 체중] 김원기 VS 민경철
민경철 2라운드 1분 40초 파운딩 TKO승

[라이트급] 기원빈 VS 임병하
기원빈 1라운드 3분 7초 파운딩 TKO승

[페더급] 정영삼 VS 양재웅
정영삼 2라운드 종료 2-1 판정승

[라이트급] 정제일 VS 조영준
정제일 2라운드 종료 3-0 판정승

[플라이급] 박노명 VS 왕더위
왕더위 1라운드 4분 2초 리어네이키드초크 서브미션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