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당국 통제에도.. 마오쩌둥·시진핑 나란히 우상화


‘文革 50년’ 시진핑 父 시중쉰 묘역 가보니…
시중쉰, 文革때 옥살이 고초
묘지 옆엔 마오쩌둥 친필碑가
재평가 기피 현실 보여주는듯
기념품가게 習메달 몰래 팔아
‘중쉰(仲勳) 동지, 당의 이익을 최우선시한다-마오쩌둥(毛澤東).’
오는 16일로 문화대혁명 발발 50주년을 맞는 가운데 13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아버지인 시중쉰(習仲勳)의 유골이 안치된 공원묘지에는 마오쩌둥의 친필이 새겨진 비석이 참배객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시중쉰은 문화대혁명 때 마오쩌둥에게 공격당해 16년 동안 옥살이를 하는 등 시진핑 가족들은 고초를 겪었다. 그러나 최고 지도자에 오른 시진핑 역시 마오쩌둥의 권위를 인정하고 그에 대한 직접 비판을 삼가는 한편 중국 정부가 공식적인 문화대혁명에 대한 재평가와 반성을 하지 않는 상황을 단편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중국 산시(陝西)성의 성 중심도시인 시안(西安) 도심에서 북쪽으로 약 100㎞ 지역에 위치한 웨이난(渭南)시 푸핑(富平)현. 작지만 깨끗하고 깔끔한 전원의 느낌을 주는 이곳은 시중쉰의 고향으로 그의 유골이 안치된 공원묘지가 있다. 잘 정돈되고 세련된 공원인 ‘화이더(懷德)공원’에 들어가자 ‘전국애국주의교육시범기지’라는 팻말이 드러났다. ‘시중쉰의 묘’라는 직접적인 안내판은 없었다.
입장료는 없지만 중국의 주민등록증 격인 공민신분증을 등록하고 표를 받아야 입장할 수 있다. 등록 및 표 배부 담당 직원은 “(공민)신분증만 된다. 여권은 안 된다”면서 경계하다가 “외국인은 여권이 신분증이다. 다른 여행지에서 모두 여권으로 한다”고 한참을 설득한 끝에 전화로 여기저기 묻고 여권 사진을 찍고 신분을 대조한 뒤에야 표를 줬다. 소지품은 지문 등록으로 열리는 가방 보관함에 둬야 하며 그러고도 금속탐지기를 통과하는 절차를 거친 뒤에야 입장할 수 있었다.
한 명의 보안요원이 외국에서 온 일행에게 바짝 붙었다. 작은 공원묘지에는 시중쉰의 좌상이 놓여 있었다. 그의 생애 전반은 산시성 일대에서 일어섰지만 문화대혁명 시기를 거치며 고초를 겪은 뒤에는 광둥(廣東)성으로 내려가 개혁개방을 이끌었던 생애를 반영한 듯 동남쪽을 바라보는 형상이다. 마침 시안에서 열리는 ‘실크로드 박람회’에 참가하는 시닝(西寧) 대표단이 단체로 엄숙한 분위기에서 헌화하고 참배했다.
2002년 5월 24일 베이징(北京)에서 별세하자 그의 유해는 화장돼 중국 혁명 원로들이 안치되는 바바오산(八寶山)에 3년간 안치돼 있다가 생전 고향으로 돌아가 묻히고 싶다는 그의 말에 따라 고향인 푸핑현으로 옮겨왔다. 이후 시 주석이 부주석에 오르면서 차기 지도자로 낙점된 2008년 10월 15일 중국 공산주의청년단 산시성 위원회는 이곳을 산시성 애국주의교육기지로 비준하고 이처럼 꾸몄다.
능원 밖에서 매점을 운영하는 할머니는 “혹시 시진핑 메달이 있느냐”고 묻자 “여기 있다”면서 매점 뒤의 상자에서 꺼내며 “최근에는 위에서 팔지 말라고 했다”고 말했다. 시 주석 우상화에 대한 지적이 나오자 언론 매체에 ‘시다다(習大大·시 아저씨)’라는 호칭을 쓰지 못하게 하는 등 자제령을 내린 것과는 별도로 실제 ‘시진핑 아버지 성지’인 이곳에서는 마오쩌둥과 시진핑이 나란히 우상화되고 있었다.
기념품 가게에 들어가자 한쪽에는 마오쩌둥의 초상화를, 다른 한쪽에는 시진핑의 초상화를 걸고 판매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공원 맞은편에는 ‘산시성 애국주의교육기지’라는 2층 건물 문 앞에 ‘시중쉰 기념관’이라고 적혀 있었다. 무산계급의 아들로 태어나 유년시절과 사망 이후 장례식까지 시중쉰의 일대기와 관련한 사료와 사진 자료들이 전시돼 있었다. 특히 시 주석과 함께 찍은 사진들이 다수 걸려 관람객들의 시선을 끌었다.
푸핑 = 글·사진 박세영 특파원 go@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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