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한욱의 서양사람] 콜팩스 학살

2016. 4. 28.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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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미국의 남북전쟁이 북군의 승리로 끝나 링컨 대통령이 노예해방령을 선포했다. 그렇지만 노예제를 옹호하던 미국 남부에서 흑인에 대한 박해는 줄지 않았다. 그것의 극명한 사례가 1873년 4월 부활절 일요일에 남부의 루이지애나주 콜팩스에서 일어난 학살이었다.

요즘엔 미국에서 민주당이 진보를, 공화당이 보수를 표방한다. 그러나 19세기에 민주당은 남부 농장 소유주들의 권익을 옹호하며, 노예제 폐지를 주장하는 북부의 공화당에 맞섰다. 그런 상황에서 1872년에 루이지애나 주지사 선거가 있었다. 전쟁에서는 북부가 승리를 거뒀지만 남부에서는 ‘백인 연맹’과 같은 무장 집단이 흑인 투표자들에게 위협을 가하고 폭력을 행사하는 일들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그래서 선거관리위원회에서 루이지애나 주지사 당선자 선언을 번복하는 일이 일어났다.

그 부활절 일요일에 장총과 소형 대포로 무장한 백인 민주당원들이 공화당원들을 습격했다. 이렇게 보면 이 사건은 과열된 정당 정치가 빚어낸 과도한 폭력의 한 사례라고 볼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문제는 백인 공화당 당직자들은 공격을 받지 않았다는 데 있다. 반면 해방 노예들은 투항을 했음에도 살해되었고, 그날 밤 도주했다가 붙잡힌 흑인 50여명이 더 희생되었다. 100명이 훨씬 넘는 흑인 희생자 숫자는 확인조차 불가능했다. 시체를 강에 버리거나 암매장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확실히 정당의 강령보다는 피부의 색깔이 문제였다.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흑인이 투표를 하거나 공직에 오르거나 배심원으로 선정될 경우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 미국의 의회에서 발의하여 통과시킨 법안들조차 무의미했다. 당시 미국의 대법원에서는 개인이 아닌 주 정부가 그런 행동을 할 경우에만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판결을 내렸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그 백인 범법자들을 기소조차 할 수 없었다. 지금도 콜팩스에는 (양민) ‘학살’이 아닌 (흑인) ‘폭동’의 장소였다는 팻말이 서 있다.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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