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청 '한국인 두 번째 사제' 최양업 신부 '가경자' 선포

김용운 2016. 4. 28.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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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9년 사제서품 1861년 과로와 장티푸스로 사망땀의 순교자로 불리며 한국 천주교 주춧돌 놓아
‘가경자’로 선포된 최양업 신부

[이데일리 김용운 기자] 한국인 두 번째 사제인 최양업 토마스 신부(1821∼1861)가 가톨릭 성인 인정의 첫 단계를 넘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는 최양업 신부 시복(諡福) 안건이 지난달 14일 교황청 시성성 성덕(聖德) 심사를 통과했으며 지난 26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최양업 신부의 성덕을 인정하는 시성성 교령을 승인하며 ‘가경자(可敬者)’로 선포됐다고 28일 밝혔다.

가경자는 시복 심사 중에 영웅적 성덕이 인정된 ‘하느님의 종’에게 붙이는 존칭으로 ‘존경해도 되는 이’라는 의미다. 생전의 업적 가운데 기적이 인정되면 ‘복자(福者·신자들의 공경의 대상으로 공식 선포한 사람)’가 된다.

한국 천주교에서 가톨릭의 성인에 오른 인물은 국내 최초의 신부이자 순교자인 김대건 신부(1821∼1846)를 비롯해 103위가 있다. 또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해 복자로 시복한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가 있다. 이들은 모두 순교자다.

‘땀의 순교자’로 불리는 최양업 신부는 한국교회 첫 번째 신학생이자 두 번째 사제다. 1821년 3월 충남 청양 다락골 인근 새터 교우촌에서 성 최경환 프란치스코와 복자 이성례 마리아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1835년 프랑스 선교사에 의해 한국 최초 신학생으로 선발돼 1836년 12월 3일 최방제, 김대건과 함께 마카오로 유학을 떠나 파리 외방전교회 극동대표부 신학교에서 공부했다.

1849년 4월 15일 사제품을 받고 그해 12월 3일 귀국해 쉼 없이 사목방문을 했다. 또 한문 교리서와 기도서를 한국어로 번역하고, 순교자들의 기록을 수집했다. 1861년 경남 지역 사목 방문을 마친 뒤 서울로 가던 중 과로와 장티푸스로 6월 15일 마흔 살의 나이로 타계했다.

주교회의 관계자는 “순교자가 아닌 시복 후보자는 덕행과 기적 심사를 모두 통과해야 하는데 최양업 신부는 덕행이 인정받았기 때문에 가경자로 불리게 됐다”며 “한국인의 교황청 시복 절차에서 기적 심사를 거치게 된 것은 최양업 신부가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김용운 (lucky@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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